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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바이킹이 되었다-61화 (61/205)

▣ 061화

“적의 병력들이 본대 쪽으로 모이고 있다고?”

“예.”

“그것도 모자라 총독의 아들이 안티베로 후송되고 있고?”

“예. 거기에 기존에 경비에 돌리고 있던 병력들도 본대와의 전투를 위해서 일부 차출했다고 합니다.”

항구도시인 칸을 털어먹고 옆에 붙어있던 안티베까지 털기 위해 휴식을 취하던 라그나르는 전령의 보고에 코웃음 쳤다.

“함정이군.”

누가 봐도 함정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그 누가 용기사단과 맞서려 하겠는가. 이건 마치 소총 들고 탱크에 맞서려고 하는 격이다.

거기에 굳이 용기사단이 아니라도 평지에서 기병과 싸운다? 세 살 난 어린아이가 지휘관이라도 쓰지 않을 작전이다.

거기에 하이르 앗 딘은 해적이지 산적이나 도적이 아니잖은가. 그러니 굳이 이런 식으로 동네방네 광고하면서 출진을 알리는 이유는 딱 하나뿐이다.

“저희를 끌어들이고 싶은가 봅니다.”

“뭐, 우리가 최근에 끗발 좀 날리긴 했지.”

말 그대로 다 불태우고 마을 주민의 탈을 뒤집어쓴 도적들을 전부 사로잡아 노예로 만들면서 혁혁하게 전과를 올리고 있었다.

이런 후방 교란은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는데, 악명높은 해적들이라지만 그들 역시 사람이었고 니스에 가족을 둔 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니스가 아니더라도 근처에 있는 마을들이 털리는 걸 바라보면 마음이 편하겠는가? 물론 그들이라고 해적질을 하다가 잡히면 죽게 된다는 걸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그걸 멀리서 남의 일처럼 바라보는 것과 눈앞에서 직접 실감하는 것과는 다른 얘기다. 특히나 숭고한 사명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이익을 위해 모인 어중이떠중이들은 본인의 안전이 최우선일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마을을 습격하며 적당히 목숨을 빌미로 겁박하면 아는 걸 술술 내뱉었다. 내가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하이르 앗 딘 휘하의 마을을 털어먹을 수 있던 것도 그런 요인이 컸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솔직히 이 정도면 저희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대로 본대에 합류해도 뭐라 하지 못할 겁니다.”

“그건 그런데 결국 내 최종목표는 총독 아들의 구출이잖아?”

“그건 그렇습니다만 굳이 적군의 함정으로 기어들어 가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사실 힐데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적들은 대놓고 총독의 아들을 후방으로 후송하면서 구출해가라고 엉덩이를 흔들어 대고 있었다.

이건 뭐 너무 대놓고 함정이라 오히려 진짜가 아닌가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구할 기회가 온 건 사실이다. 원래는 감옥에서 꺼내 수송하거나 본대와의 결전으로 시선이 분산된 틈을 타서 감옥을 습격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판을 깔아주니 어울려줘야겠지.

“원래 함정은 몰랐을 때가 무서운 거지 함정인 걸 알고 가면 상관없어.”

마치 공포영화를 보면서 갑툭튀 시점이 언제인지, 추리소설에서 범인이 누군지 알고 읽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요점은, 함정을 파훼할 대비만 하면 두려워할 게 없다는 얘기다.

“이미 결정을 내린 모양이군요. 따로 생각해둔 방안은 있습니까?”

“음, 그러니까….”

나는 생각해둔 방안을 얘기했고 내 옆에서 조용히 얘기를 듣던 힐데는 눈살을 찌푸리며 반대했다.

“너무 위험합니다. 대체 어느 미친놈이 수백 명의 적이 숨어있는 곳으로 혼자 걸어 들어간답니까? 거기에 감옥 위치가 지하라는데 구출하고 나면 대체 어떻게 도망칠 겁니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게 신의 기적이지.”

“확실히 당신이 신에게 사랑받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에인헤랴르의 힘을 봤기 때문인지 힐데는 별다른 말을 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되기는 하는 모양이었다.

“후우, 알겠습니다. 일단은 안티베로 가면서 더 생각해보지요.”

어차피 안티베로 이동할 생각이었기에 우리는 안티베로 이동했다. 적의 정찰병에게 추적당하거나 들킬 위험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야간에 행군했고 날이 밝기 전에 안티베 인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적당한 숲 사이에 주둔지를 만들고 휴식을 취하고 나온 내게 이비가 따뜻한 수프와 조금 딱딱한 빵 덩어리를 가져다주며 보고했다.

“주군, 정찰 결과 별다른 특이사항은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이거 먹고 내가 직접 확인해볼게.”

어차피 이곳에서 이틀 정도 쉬면서 철저하게 정찰을 할 생각이었기에 나는 늦은 아침을 먹자마자 말에 올라 정찰을 수행했다.

확실히, 정찰병들의 말대로 외부에서는 별다른 흔적을 찾지 못했다. 한 번 비가 와서 그런지 대규모 병력들이 이동한 흔적은 비에 씻겨져 내려갔으며 겉으로 볼 때 안티베는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고인물인 내 눈을 속이는 건 불가능했다. 안티베의 인구수보다 명백히 많은 밥 짓는 연기,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에 새겨진 긴장, 허물어진 성벽들을 최근에 보수한듯한 흔적.

이 모든 것이 날 사로잡기 위한 함정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내 감이었고 나는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에인헤랴르의 힘을 개방했다.

― 에인헤랴르의 힘이 개방됩니다.

― 신성력이 몸에 잘 받는 것 같습니다.

― 평상시보다 더 강력한 힘을 내는 게 가능합니다.

― 모든 스탯과 스킬이 강화됩니다.

“이런 시발.”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함께 온 힐데는 내가 뜬금없이 욕설을 내뱉자 궁금한 듯 물었지만 나는 손을 내저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냐.”

물론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다. 저 시스템 로그들은 신성 중독의 초기증세다.

게임을 한 지 얼마 안 되는 뉴비들이야 ‘와! 전투력 상승! 와! 스탯 강화!’ 이러면서 좋다고 날뛰지만, 이 게임은 반동이 굉장히 심한 게임이다.

특히 직접적인 전투력과 관련된 신성력이 그런 부작용이 굉장히 컸는데, 가령 광전사나 광폭화 스킬 얻었다고 미친 듯이 쓰면서 날뛰면 진짜 캐릭터가 미쳐버린다.

내가 의도한 것도 아닌데 전투 중에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며 아군을 죽이거나 동료를 다치게 한다. 당연히 이런 주인공의 행동은 아군의 사기에 영향을 끼치며 동료들의 호감도를 깎아 먹을 수밖에 없다.

결국, 전장 한복판에서 아군이고 적군이고 할 것 없이 다 쓸어버리다 전기가 끊어진 기계처럼 툭 쓰러져서 죽는 게 광전사의 말로다.

이 게임의 고인물들이 괜히 기독교 신앙을 추천하는 게 아니다. 많은, 아니, 거의 70% 이상이 믿는 만큼 기적에 대한 부작용도 적고 기적 역시 다른 종교와 궤를 달리한다.

반면 오딘의 힘은 대부분 전투기반이었기에 이처럼 손쉽게 중독에 걸릴 수밖에 없다. 결국, 기적이라는 건 인간이 이루어낼 수 없는 일을 신의 힘을 기반으로 이뤄내는 거니까.

“젠장, 힘의 발현에 조금 더 시간 여유를 둬야 했나?”

괜히 후회가 밀려왔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하이르 앗 딘 토벌 후에는 니스에 틀어박혀서 도시 발전을 시키고 있을 테니까.

“이글 아이.”

에인헤랴르의 권능 중 하나를 사용하자 시야 한구석에 지도가 펼쳐지며 적대적인 NPC가 감지되었는데 안티베에는 온통 빨간 점밖에 없었다.

“저기 하얀색이 총독의 아들인가 보네.”

다행히 진짜 총독의 아들이 안티베에 있긴 한 모양이다. 원하던 모든 정보를 얻은 나는 바로 주둔지로 복귀했고 곧장 힐데에게 안티베를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안티베에 대한 공격이 주목표가 아니라 시선을 끄는 게 자신의 목적임을 알았기에 그녀는 외부에 불을 지르고 궁기병들을 운용하며 요란하게 공격을 했다.

안티베의 수성병력들은 공격 사실을 알았기 때문인지 당황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수비태세에 들어갔고 나는 그사이에 빙 돌아서 맨손으로 성벽을 넘었다.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불가능한 영역의 일이었지만 에인헤랴르의 힘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다.

“흐음, 그나마 미로 같은 지형은 아니라 다행이네.”

물론 지하 감옥인 만큼 나올 때 확실히 조지겠다는 의지가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길을 못 찾아서 헤매는 것보단 낫지 않겠는가.

에인헤랴르의 힘을 통해 극도로 날카로워진 감각은 나를 주시하는 시선을 포착했지만, 시선의 주인들은 딱히 나를 제지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나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지하 감옥에 도착할 수 있었고 잠시 돌아다닌 끝에 구질구질한 방 안에 갇혀있는 사내를 마주할 수 있었다.

직접 만나 본 적은 없지만 이미 몽타주로 얼굴을 확인했기에 단박에 그가 총독의 아들이라는 걸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 감옥에서 흰색 점은 눈앞의 사내밖에 없기도 했고.

열쇠를 찾으려면 또 한세월이 걸릴 게 뻔했기에 나는 억지로 쇠창살을 비틀었고 쇠창살은 기괴한 소리를 내며 휘어졌다.

“쿨럭. 누구십니까.”

“자네를 구하러 온 백마 탄 왕자라네. 친구.”

그제야 바닥에 죽은 듯이 누워있던 사내는 간신히 얼굴을 들어 날 바라보았고 이내 허탈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이게 당신을 끌어들이기 위한 함정이라는 건 알고 계십니까?”

“물론이지. 내가 이래 봬도 눈치 하나는 빠르다네.”

“다른 건 모르겠지만 농담 하나는 잘하시는군요.”

“자네를 구하러 온 건 진실이네. 자. 서둘러 나가도록 하지.”

하지만 총독의 아들은 여전히 단념한듯한 목소리로 힘없이 대꾸했다.

“밖에 나서면 적들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절 데리고 어떻게 도망치실 생각이십니까? 그놈들이 제 다리를 박살 내 놨습니다.”

“내가 업고 가면 되지 않나?”

“혹시 절 화살받이로 쓰실 거라면 아주 탁월한 선택이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뭐, 걱정되는 건 알겠지만 날 믿게. 어린 친구.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기는 그렇지만 내가 모시는 신께서는 날 끔찍이도 아끼시거든.”

“천사들이라도 보내주신답니까?”

“뭐, 비슷하지.”

내 대답에 미친놈이라도 보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내를 바닥에 내려놓은 뒤 나는 차디찬 감옥 바닥에 무릎 꿇은 채 경건한 표정으로 기도문을 읊었다.

“천공신 오딘이시여. 이곳에 당신을 위한 제물들을 마련했나이다.

슬레이프니르에 올라 그대에게서 도망치려는 자들을 사냥하소서.”

― 천공신 오딘이 라그나르의 제안을 수락합니다.

― 안티베에 한정해 와일드 헌트가 시작됩니다.

― 안티베에 한정해 강한 한파와 눈보라가 몰아칩니다.

― 모든 감각이 무뎌집니다.

― 망자들이 되살아납니다.

시스템 로그가 채 끝나기도 전에 공기가 차갑게 식어갔고 지하임에도 불구하고 늑대들이 울부짖는 소리와 까마귀들의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그와 함께 사방에 새하얀 안개가 펼쳐지자 나는 웃으며 총독의 아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 이제 탈출하도록 하지.”

하지만 그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 아니, 정확히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내가 머무르는 이곳은 시간이 통째로 잘려나가기라도 한 것처럼 흑색으로 물들어 있었으니까.

“이런 시발.”

이 현상의 원인을 알고 있는 나는 절로 욕설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눈앞에 추가로 떠오르는 시스템 로그는 내 생각에 확신을 심어주었다.

― 천공 신 오딘이 안티베에 직접 강림합니다. 경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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