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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바이킹이 되었다-56화 (56/205)

▣ 056화

제노바에서 달콤한 휴가를 즐기고 몽페라토로 이동하는 와중에 전령이 내게 북부에서 폴란드와 벌였던 전쟁의 결과를 전해주었다.

카지미에슈 정의공의 반격과 키예프 루스의 참전, 그로 인해 패퇴하는 황제와 바닥을 친 황제의 권위, 그와 반대급부로 올라간 사자공의 명성.

내용 자체는 간단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일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유추하기에 충분했다.

황제는 이번이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 내 충고와 조언을 무시하고 크라쿠프까지 진군한 거겠지.

당시 내 위치가 칼리나를 등에 업은 야만인 용병이었다지만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내 말이 맞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에휴, 그러니까 하지 말라면 하지 말았어야지.”

물론 이건 황제한테만 하는 얘기는 아니다. 사자공 역시 헛짓거리는 안 하는 게 좋을 거라 은근슬쩍 얘기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똥볼을 거하게 차버렸다.

본인이야 이번 전쟁에서 실리를 챙겼다고 생각할 테지만, 황제는 사자공에 대한 원한이 뼈에 사무쳐 있는 상태다.

그리고 그건 원 역사에서도 그랬듯 법의 보호를 전부 박탈시키는 ‘법 밖에 선 자(outlaw)’라는 형벌과 함께 그의 전 영지가 몰수당하는 판결로 아주 잘 드러난다.

“쯧쯧, 사자 사냥이 시작되겠군.”

물론 하인리히 사자공을 도와 그가 프리드리히와 호엔슈타우펜 왕조를 꺾고 황제에 오르는 ‘사자의 포효’와 ‘벨프가의 비상’ 퀘스트를 수행할 수도 있긴 하지만 그럴 생각은 없다.

어디까지나 나는 지금의 균형이 그대로 유지되기를 원하며, 남부 연합의 힘을 받아 북부의 바이킹들을 규합해야 하니까.

* * *

나는 몽페라토의 영지로 들어가기 전에 미리 전령을 보내 내가 몽페라토의 땅을 밟는 것과 목적 등을 미리 밝히며 후작에게 허락을 구했다.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영지라면 사후 허락을 구해도 문제 될 게 없었지만 몽페라토는 칼리나와 원수 사이라고 해도 무방한 보니파시오 후작의 영지였다.

물론, 보니파시오는 현재 4차 십자군의 일원으로 참전해 동로마를 멸망시킨 공로로 라틴 제국 내부의 제후국인 테살로니카 왕국의 왕이 된 상태였다.

그렇다고 해도 그의 아들인 데미트리우스가 후작위를 물려받아 다스리고 있었고, 지금은 보니파시오의 형제 중 한 명인 윌리엄 5세가 데미트리우스를 쫓아내고 강제 점거하고 있는 상태였다.

쿠데타… 쿠데타라고 하기에는 그렇고, 그냥 몽페라토에서 내전이 일어났고 윌리엄 5세가 승리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렇게 답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저 멀리서 흙먼지가 일었고 나는 인상을 쓰면서 눈을 가늘게 뜨고 병력들에게 전투 준비를 시켰다.

지금껏 겪은 경험으로 판단하건대 저런 모래 먼지는 사막이 아닌 이상 자연 발생하지 않는다. 즉, 인위적으로 생겨난다는 얘긴데 열에 아홉은 기병들이 대규모로 이동하며 생겨나는 현상이었다.

만일 윌리엄 5세가 내가 보낸 전령을 조지고 나까지 조질 생각으로 달려오고 있는 거라면 나 역시 무기를 들고 맞서 싸워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은 기우였는데 윌리엄 5세를 비롯해 그가 이끄는 기병들은 무기를 들고 있지 않았고 갑옷도 입고 있지 않았다. 그것도 모자라 그는 한참 전부터 말을 몰아 달려왔는지 땀을 주륵주륵 흘리며 나를 맞아주었다.

“어서 오시오. 라그나르 경. 내 그대가 몽페라토에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소.”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후작 각하.”

“자, 여기서 이러지 말고 일단 성에 들어가서 얘기라도 나눠봅시다. 내 그대가 오기 며칠 전부터 그대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소.”

“하하, 후작 각하께서 이렇게 환대해주실 줄 알았다면 제가 좀 더 빨리 올 걸 그랬습니다.”

“지금이라도 이렇게 만났으니 된 거 아니겠소. 자, 음식이 식을 테니 어서 들어갑시다. 내 다른 건 몰라도 주방장들 요리 솜씨는 보증할 수 있소.”

“오, 그건 꽤 기대가 되는군요.”

나와 윌리엄은 오늘 처음 보는 사이지만 그는 죽마고우라도 보는 것처럼 친근하게 굴었다. 물론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기에 적당히 맞춰주었고.

그가 내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이유는 간단했는데 지금의 윌리엄은 작위에 대한 명분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어쩌다 보니 영지를 먹는 데는 성공했는데 지지 기반이 빈약한 상태라고 보면 될 것이다.

반(反)보니파시오라는 기치를 내걸기는 했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는 휘하의 귀족들을 휘어잡는 게 불가능했다. 실제로 보니파시오는 테살로니카 왕국의 왕이 되지 않았던가.

귀족들 입장에선 굳이 윌리엄에게 붙는 것보다 보니파시오를 따르는 게 떨어지는 떡고물이 더 많을 터였다. 그러니 윌리엄은 지금의 미묘한 상황과 공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기를 쓰고 연합에 들려 하는 것이다.

신성 제국 남부, 이탈리아반도 북부에서 칼리나 디 카노사라는 이름은 하인리히 사자공과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에 버금가는 위엄을 떨치고 있었으니까.

또한, 이미 보니파시오와 대적하며 날을 세운 칼리나를 구심점으로 삼아 중립을 지키고 있는 귀족들을 설득함과 동시에 몽페라토 내부의 친보니파시오 세력들을 척결하고 칼리나를 방패로 삼으려는 수작일 것이다.

실제로 위치만 놓고 보자면 이탈리아반도 중부와 북부에 위치한 칼리나의 영지가 먼저 공격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그건 육지뿐 아니라 배를 타고 상륙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나는 그걸 알면서도 다 묵인했다. 칼리나 역시 이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몽페라토를 연합에 끌어들인 거니까.

애초에 그녀 입장에서도 뒤통수에 언제든지 칼을 꽂을 수 있는 적을 두는 것보단 그래도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잡아두는 게 좋았다.

그녀가 직접 이야기한 건 아니지만, 그녀의 측근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인데 지난번에 보니파시오가 쳐들어왔을 때 몽페라토가 호응해 전선이 나뉘자 전쟁에서 패배할 뻔했다고 한다.

물론 칼리나는 탁월한 지휘력과 용병술을 앞세워 몽페라토를 짓밟았고, 그 때문에 보니파시오의 아들인 데미트리우스의 세력이 약해진 틈을 타서 기회를 노리고 있던 윌리엄이 작위 찬탈에 성공한 것이었다.

이처럼 모든 일에는 인과관계가 있는 법이었고 서로가 서로를 동맹으로 원하고 있다 보니 일은 일사천리였다.

윌리엄은 내가 검은 용군단의 일원을 모으고 다닌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계약 조건을 파악한 뒤 적당히 자신의 영지에 걸맞은 타협안을 내밀었고 살펴본 나는 승낙했다.

― 윌리엄 5세에 대한 칼리나의 적극적이며 확고한 지지.

― 쌍방간에 군사방위동맹을 맺을 것. 한쪽이 공격받으면 본인의 영지에 대한 선전포고로 간주하고 병력을 파견할 것.

이처럼 윌리엄으로서는 당연히 확답받고자 하는 내용이 전부였고 칼리나 입장에서도 못 들어줄 정도의 조건은 아니었으니까.

거기에 방위동맹 역시 따져보면 칼리나가 더 공격받을 일이 많았기에 문제 될 것도 없었다.

“이 계약으로 몽페라토와 카노사가 이전의 악연을 잊고 신뢰와 믿음으로 연결되기를 빌겠습니다.”

“저 역시 이 계약이 서로 간의 신뢰로 가는 첫 발걸음이 되기를 희망하며 몽페라토와 카노사 두 영지의 앞길에 찬란한 축복이 함께하기를 염원하겠습니다.”

적당한 미사여구로 동맹이 맺어진 것을 축하하며 서로를 치켜세워주는 걸로 동맹의 의식은 끝이 났다. 물론 나는 여기에 한술 더 뜰 생각이었다.

“윌리엄 각하. 우리가 이렇게 새롭게 동맹을 맺었으니 이를 널리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야 그렇지요?”

“후작 각하와 칼리나 변경백의 이름으로 테살로니카 왕국에 이 계약서를 하나 보내주는 게 어떻겠습니까?”

내 말의 의도를 깨달은 후작은 방이 떠나가라 폭소했다.

“푸하하하하,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벌써부터 잔뜩 일그러진 보니파시오의 얼굴이 선하군요.”

“남아있는 찌꺼기들 처리는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후작님께서 원하신다면 두 팔 걷고 도와드릴 용의도 있습니다.”

아직까지 이곳에는 친보니파시오 세력과 그의 아들인 데미트리우스가 남아있었다.

현대나 동양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본다면 쿠데타나 찬탈에 성공했으니 당연히 죽여야 되는 거 아니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건 중세 감수성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일단 어지간한 잘못이 아닌 이상 죽여서 좋은 소리를 못 듣는다. 실제로도 그렇고 게임 시스템적으로도 몇 명 죽이는 건 넘어가 주지만 학살을 하게 되면 강력한 페널티를 받는다.

그리고 이건 연합과도 연관된 문제인데 당연히 싸우다 보면 포로로 잡히는 경우가 생긴다.

이때, 적군이 너희 연합에서 우리 측 귀족을 죽였으니 네놈들도 죽여야겠다. 뭐 이런 식으로 나오면 연합 내의 귀족들은 참전을 꺼릴 것이다.

그 때문에 내가 정의공의 아들인 례셰크를 풀어줬을 때도 ‘왜 안 죽였냐?’가 아니라 ‘왜 그냥 풀어줬냐?’에 방점이 찍혀서 추궁을 받았던 거고.

물론 ‘로마인 참살자’라고 불린 불가리아 제국의 차르 칼로얀이나 ‘불가리아인 학살자’로 불린 동로마의 바실레이오스 2세처럼 노빠꾸로 두개골 수집을 하는 왕이나 황제도 있긴 하지만, 이는 굉장히 드문 케이스였다.

“스스로 일을 벌였다면 뒤처리 역시 자신이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정도도 증명하지 못해서야 어찌 검은 용군단의 일원이라 칭할 수 있겠으며 칼로나 변경백 각하의 동맹이라 당당히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여 칼리나에게 자신의 필요성을 입증하려 했고 나는 그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후작 각하의 큰 뜻을 몰라본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하하, 너무 제 얼굴에 금칠을 해주시는군요. 그나저나 라그나르 경께서는 밀라노로 복귀하면 뭘 할 생각이십니까?”

“일단은 좀 쉬면서 숨을 가다듬어야겠지요. 이 연합은 단순히 눈앞의 이익이 아닌 백년대계를 위해 맺어진 연합이 아니겠습니까?”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연합의 발족식을 최대한 화려하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든지 첫인상과 거기에서 나오는 임팩트가 중요하다. 그런 내 말뜻을 알아들었는지 윌리엄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때가 온다면 제가 가문의 깃발을 내걸고 선봉에 서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몽페라토와의 협상도 마무리 지으며 모든 일을 끝마친 나는 밀라노로 복귀하며 칼리나가 있을 동쪽을 바라보았다.

제노바에서 갑자기 생각난 게 하나 있어서 그녀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잘 도착했는지 모르겠다. 뭐, 호위로 따라온 용기사에게 최대한 빨리 전하라고 하긴 했는데… 어련히 알아서 잘 전달했겠지.

* * *

<테살로니카 왕국의 수도 테살로니카>

콰직!

“이… 이이…… 이런 개같은!!!”

보니파시오 1세는 편지를 채 끝까지 읽지 못하고 와락 구기며 바닥에 집어 던졌다. 그런 그의 모습에 쫓겨나듯, 아니 누가 봐도 몽페라토에서 쫓겨난 채로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는 데미트리우스와 보니파시오를 추종하는 귀족들은 몸을 떨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보니파시오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네놈들은 내가 이런 치욕을 당할 동안 대체 뭘 했단 말인가!?”

“…….”

“입이 있으면 대답을 해봐!!!!”

물론 이렇게 된 원인을 따지면 보니파시오가 무리하게 병력을 일으켰고 칼리나 변경백에게 개털리듯 털린 게 가장 큰 원인이었지만 그 말을 입에 담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윌리엄 그 개같은 자식을 진작에 죽여버리거나 감옥에 가뒀어야 했는데!”

야심만만한 표정으로 언제나 자신의 자리를 노리고 있던 동생을 떠올리며 보니파시오는 이를 갈았다.

“지금 당장 칼리나 그 빌어먹을 년에게 항의 서한을 보내라.”

물론 이런 항의 서한을 보내봤자 비웃음을 당할거라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여기서 또 무리하게 군사를 일으켰다가 또다시 패배하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테살로니카 왕국이라는 국가의 존립 자체가 불확실해질 테니까.

결국, 보니파시오가 할 수 있는 건 언젠가는 반드시 복수해주겠다고 다짐하며 분노를 삭이는 것뿐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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