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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바이킹이 되었다-55화 (55/205)

▣ 055화

“알고 계시니 다행입니다. 사냥개는 사냥개답게 자신의 역할에 충실해야겠지요. 그러니 선택하십시오.”

“뭘 말인가?”

“제노바를 몰락시킨 총독으로 역사에 이름이 남을지, 아니면 다시 한번 황금기를 이끈 총독으로 남을지. 선택은 총독님의 몫입니다.”

내 말에 입을 다물고 침묵하던 총독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언제나 총독으로서 많은 결정을 해왔지. 하지만 이번만큼 힘든 결정은 처음이군.”

“이해합니다. 교황파인 제노바가 신성 제국의 3기둥 중 하나인 칼리나 변경백이 만든 조직에 가입해도 될지, 하이르 앗 딘을 토벌한다는 건 결국 베네치아와 적대하겠다는 얘긴데 이 선택이 제노바를 몰락시키는 건 아닐지 등등 머릿속이 복잡하시겠지요.”

내 말을 조용히 듣던 총독은 기가 차는지 코웃음 치며 되물었다.

“하, 이해한다면서 내게 선택지를 강요하나?”

“그게 진정한 협상가 아니겠습니까? 거기에 총독님께선 결국 제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당신은 제노바의 상인이자 총독이기 전에 한 아이의 아버지니까요.”

“자네 말이 맞아. 젠장. 자네의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하지.”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신께 맹세코 내 아들을 구할 수 있겠지?”

“오, 물론입니다. 다만 이 모든 건 제가 총독님께 보이는 호의임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앞서 말했듯 나는 딱히 총독의 도움이 없어도 가브리엘 아도르노의 도움을 받는다면 제노바의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런데도 굳이 총독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건 내가 하이르 앗 딘 토벌 이후의 미래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니스는 갱들이 점령한 도시마냥 개판이었지만 충분한 잠재력이 있는 도시였다.

일단 지리적으로 프로방스를 비롯해 다른 동맹 도시들에게 둘러싸여 있기에 방어에 큰 신경을 쓸 필요가 없고 그 자체로 큰 항구도시였기에 얼마든지 지중해로 뻗어 나갈 수 있었다.

즉, 각 잡고 내정만 돌리면서 발전시킨다면 인구수를 폭발적으로 늘리며 경제 발전 테크만 찍는 게 가능하다는 얘기다. 물론 그를 위해선 제노바의 도움이 필수였다.

“나는 상인이네. 은혜와 원한에는 확실하지.”

“제노바 상인의 신의는 유명하지요.”

“그래서, 내 아들은 어떻게 구할 생각인가? 니스에 박혀있는 내 아들을 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

“뭐 당연히 그러겠지요. 하이르 앗 딘도 제노바를 제어할 수 있는 카드를 허투루 다루진 않을 테니까요.”

“자네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창피하네만 난 아들을 구하기 위해 외교로 압박하는 건 물론이요, 무력을 동원하기도 했고 돈을 가지고 하이르 앗 딘을 회유하기도 했으며 제노바가 가진 이권을 양도하겠다는 의사까지 내비치는 등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해봤네.”

물론 하이르 앗 딘에겐 씨알도 안 먹혔을 것이다. 이미 그는 베네치아와 커넥션이 있는 상태였고 총독의 아들을 잡아만 두고 있어도 이득인데 굳이 풀어줄 이유가 없으니까.

“저는 야만인이자 총독께서 알고 계시듯 무식한 바이킹입니다. 제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자 가장 잘하는 건 딱 한 가지입니다.”

내 말에 총독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되물었다.

“설마 자네 니스로 쳐들어갈 생각인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를 위해선 여러 가지 도움이 필요합니다.”

나는 그에게 작전을 이야기했고 얘기를 다 들은 총독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자네 미쳤나?”

“그런 얘기 많이 듣습니다. 실제로 같이 다니는 친구들도 그런 얘기를 자주 하더군요.”

“내 비록 그대와 모시는 신은 다르지만, 그대의 신께선 꽤 과격하신 모양이군.”

“꽤 화끈하신 분이죠.”

물론 오딘은 화끈하다 못해 미친놈이다. 애초에 지식을 얻겠다고 스스로의 눈을 바치거나 궁니르로 자신을 꿰뚫어 이그드라실에 매달려있는 것만 봐도 제정신은 아니잖은가.

“내가 볼 때는 그냥 미친 것 같네만… 뭐, 때로는 미쳐야 할 때도 있는 거지.”

“원래 투자는 과감해야 하는 법 아니겠습니까.”

내 말에 총독은 피식 웃으며 재밌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자네는 바이킹보단 상인을 해야 했을 것 같은데? 혹시 내 밑에서 배울 생각은 없나?”

“아쉽지만 그랬다간 칼리나 변경백이 화를 낼 겁니다.”

물론 화를 내는 수준이 아니라 제노바를 갈아버릴지도 모른다. 칼리나가 지금이야 내게 순한 맛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녀가 빡돌면 어떻게 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그것 참 아쉽군. 아무튼, 연합 가입 의사에 대해서는 1주일 안에 대답해주겠네. 물론 당연히 긍정적인 대답이 나오겠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제노바는 여러 가문이 국정을 운영하는 만큼 오래된 은원도 많고 구조가 조금 복잡하거든.”

“괜찮습니다. 그동안 전 이곳에서 싱싱한 해산물이나 먹으며 관광이나 하겠습니다.”

“적당한 가이드를 하나 붙여주겠네. 더불어 이곳에서 체류하는 동안 쓰는 돈은 전부 이쪽에서 부담하도록 하지.”

“제가 또 공짜를 사양 안 하는 건 어떻게 아시고…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

그렇게 제노바의 총독과 가브리엘을 비롯해 제노바의 유력 가문의 수장들이 피 터지게 의견을 조율할 동안 나는 힐데, 이비와 함께 제노바 곳곳을 돌아다니며 지친 몸과 마음을 힐링했다.

“아무리 남의 돈이라지만 이렇게 돈을 물 쓰듯 써도 되는 겁니까?”

이야기 속에 나오는 거부라도 된 것처럼 돈을 펑펑 써대는 나를 보며 힐데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고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어때? 내가 이렇게 소비를 해줘야 경제가 돌아가는 거야.”

“금욕은 정신 수련의 기본입니다. 대부분의 종교에서 이를 권장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오딘께서 딱히 그런 말씀은 없으셨는데?”

생각해보면 오딘부터가 다른 종교의 신과 비교해서 인성이 제대로 된 신은 아니잖은가.

“사후에 가게 될 천국을 대비해 지금이라도 검소한 삶을 살아보는 건 어떻습니까?”

“돈을 대주는 물주와 맛있는 음식과 술. 그리고…….”

나는 힐데와 이비의 어깨에 손을 올려 내게 끌어들이며 호탕하게 웃었다.

“양손에 이렇게 아름다운 미녀들이 있는데 여기가 곧 천국 아니겠어?”

“주, 주군.”

“난봉꾼이나 할 법한 발상이군요.”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이비는 그나마 드러나 있던 목이 새빨갛게 변했고 힐데는 늘 그렇듯 귀를 새빨갛게 물들인 채 차가운 얼굴로 대꾸했다.

“아무튼, 연합이 발족하고 나면 한동안 계속 바쁠 테니까 미리 쉰다 생각하고 편하게 즐겨.”

그렇게 1주일 정도 휴가를 즐겼을 무렵, 제노바의 총독이 나를 소환했다. 그는 팬더마냥 눈가에 다크써클이 짙게 올라와 있었는데 누가 봐도 지쳐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얼굴에 기름이 번들번들한 게 좋아 보이는군.”

“총독님 덕분이지요.”

“난 자네 덕에 이렇게 개고생을 했는데 말이지.”

“그게 다 제노바의 미래를 위해서 그런 거잖습니까.”

“하, 그 기름칠한 듯한 혓바닥은 여전하군. 뭐 좋아. 여기 우리의 요구 조건을 담은 계약서네. 적당히 조절했으니 칼리나 변경백도 거절하진 않을 걸세.”

“감사합니다. 다음에 뵐 때는 전장에서 뵙겠군요.”

“그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빌고 있겠네.”

* * *

<신성 제국 동부 드레스덴>

“살아남은 병력은 이게 전부인가?”

“…예.”

보좌관의 대답에 황제는 허망한 표정으로 자신을 따르는 패잔병들을 바라본 뒤 어이가 없다는 듯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하…하하, 어이가 없군. 며칠 전만 해도 크라쿠프가 내 손에 들어올 것 같았는데 지금은 병력을 다 잃고 이렇게 패퇴해서 도망치고 있다니.”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분명 이번 전쟁은 시작부터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드레스덴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수복한 것은 물론이요, 칼리나 변경백이 보낸 용병인 라그나르가 례셰크까지 격파하며 사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이때 자신은 선택을 해야 했는데, 례셰크를 풀어준 라그나르는 여기서 이만 병력을 물리고 폴란드 내부의 공작들이 서로를 불신하게 만들어 미래를 기약하라 조언했다.

확실히 그의 말은 일견 옳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는 사태의 겉만 봤을 뿐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본질을 꿰뚫어 보진 못했다.

물론 이해는 한다. 그는 야만인이고 이런 복잡한 정치 관계에 대해 잘 모를 테니 본인이 생각할 때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조언을 자신에게 한 것이겠지.

이미 자신은 폴란드와 한 차례 전쟁을 벌였지만 쫓겨나듯 패퇴해야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번에 다시 한번 더 병력을 일으켰다.

그만큼 이번에는 제대로 된 성과를 내서 황제의 위엄을 떨쳐야 했다. 물론 지금도 나쁘지 않은 전과를 냈지만 그건 자신이 아닌 ‘라그나르’라는 야만인이 이룬 성과였다.

아마 이대로 병력을 물린다면 자신은 ‘야만인보다 못한 황제’라는 인식이 모든 귀족들의 뇌리에 박히게 될 테지.

그리고 그런 만큼 본래 자신의 목적이었던 드레스덴을 수복한 사자공의 명성만 높아질 것이다. 이번 전쟁을 위해 일시적으로 동맹을 맺었을 뿐 사자공은 위험한 존재였기에 이 이상 그가 크는 꼴을 더 지켜볼 순 없었다.

그 때문에 자신은 무리해서 병력을 일으킨 만큼 누구나 납득할만한 전과가 필요했다.

테살로니카 왕국의 보니파시오가 칼리나에게 영혼까지 털리고 몇 년째 찌그러져 있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였다.

결국, 이 모든 정치적이고 복잡한 상황을 생각해 볼 때 지금처럼 대규모로 병력을 일으키는 건 힘든 일이었다. 그 때문에 자신은 결국 진군을 명할 수밖에 없었다.

진군이라는 선택은 처음에는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다. 드레스덴이 순식간에 뚫리자 브로츠와프 또한 삽시간에 포위당했고 그곳의 공성을 사자공에게 맡긴 뒤 자신은 병력을 끌고 크라쿠프까지 진군했다.

요지는 폴란드의 공작들이 연합하기 전에 각개격파하는 것이었고 크라쿠프를 포위할 때까지만 해도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정의공이 이끄는 윙드 후사르와 함께 키예프 공작의 친위병인 드루지나들까지 합류해서 공격하자 제국군은 속절없이 밀리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길어져 있던 보급선과 장기화된 원정으로 인한 피로감과 사기 저하가 그 원인이었고 결국 자신은 도망치듯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콘라드.”

“예. 폐하.”

“하인리히는 뭘 하고 있었나?”

“사자공은 충분히 브로츠와프를 점령할 수 있었음에도 꾸물거리며 시일만 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황제 폐하가 퇴각을 시작하자 이를 엄호하기는커녕 엘베강 서부로 퇴각하며 병력을 보전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콘라드의 대답에 프리드리히는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이를 갈았다.

“비천한 짐승에게 누가 이 제국의 진정한 주인인지 가르쳐줘야겠군. 돌아가는 대로 사자 사냥을 준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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