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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바이킹이 되었다-47화 (47/205)

▣ 047화

밀라노로 향하는 과정은 순탄했다. 주도로만 이동한 데다 황제와 사자공이 경쟁하듯 붙여준 기병들이 호위로 따라붙었기에 근처에 있던 도적들도 우릴 피해 도망칠 정도였다.

“그래서 라그나르. 떠나기 하루 전에 황제가 당신을 부른 이유가 뭡니까?”

“아 그거? 별거 아니야. 그냥 계약을 좀 더 연장해줄 수 있냐고 물어보던데?”

“당연히 거절했겠지요? 뭐, 거절했으니까 이렇게 전장에서 벗어날 수 있었겠지만.”

“당연하지. 내가 정치를 잘 모른다지만, 그 미묘한 힘의 균형은 잘 알고 있거든.”

“고작 그 말을 하자고 따로 독대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더 얘기한 건 없습니까?”

“있긴 했지.”

나는 그녀에게 대답하며 내 옆에 둥실둥실 떠 있는 퀘스트창을 바라보았다.

# 메인 퀘스트

― 바이킹을 위한 나라는 없다 : 바이킹들을 규합해 나라를 만들고 초대 군주가 되시오.

# 서브 퀘스트

― 하이르 앗 딘 토벌 : 악랄하기로 이름 높은 하이르 앗 딘을 토벌하시오.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황제의 입장에서 라그나르 당신은 그럭저럭 쓸만한 칼이었을 텐데 너무 쉽게 보내주는 것 같았으니까요.”

힐데도 내 곁에서 보고 배운 게 있어서 그런지 눈치가 좋아졌다. 굳이 숨길 것도 아니었고 어차피 나중에 말해줄 생각이었기에 말 나온 김에 얘기해주기로 했다.

“그러니까….”

* * *

<신성 제국군 주둔지 – 황제의 막사>

“그래. 혹여 칼리나 여변경백이 나에게 따로 비밀스럽게 전하라거나 몰래 전하라며 건네준 편지 같은 건 없었나?”

황제는 이번 전쟁에서 어떻게든 칼리나의 지지를 받고 황권을 강화하고 싶은 모양이지만 어림도 없다. 황제가 강력한 황권을 가지게 되는 순간 내가 위로 올라갈 길이 사라져버린다.

그렇다고 황제가 허수아비가 되면 정신 나간 놈들이 자기가 황제가 되고 싶다고 지랄할 테니 최대한 지금의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폐하. 폐하께서 제게 무슨 대답을 원하시는지는 알고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제가 거짓을 이야기할 순 없지 않습니까.”

“별수 없군. 그럼 내가 자네를 고용하도록 하겠네.”

“폐하, 말씀드렸듯 저는….”

하지만 프리드리히는 손을 들어 내 말을 막은 뒤 느긋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 전쟁에 참전하라는 말이 아니네. 어차피 그대는 용병이 아니던가? 내가 그대에게 의뢰를 하나 하고 싶다는 얘기네.”

의뢰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제국의 황제인 프리드리히가 내게 할 만한 의뢰라면 그만큼 힘들 테지만 보상은 확실할 것이다.

“전 대가를 받고 싸우는 용병입니다. 대가가 있다면 뭔들 못 하겠습니까.”

“말이 잘 통하는군. 내가 자네에게 할 의뢰는 간단하네. 니스에 본거지를 틀고 있는 하이르 앗 딘을 토벌해 주게.”

간단하게 얘기하는 것치고는 말도 안 되는 난이도의 의뢰였다. 하이르 앗 딘이 일개 용병에게 ‘토벌해줘.’라고 해서 토벌될 정도였다면 진작에 토벌했을 것이다.

아마 황제는 내가 아니라 내 뒤에 있는 칼리나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직접 나서주길 원하는 거겠지. 황제 입장에서 현재 구도를 뒤흔들만한 힘을 가지고 있는 칼리나는 두려운 존재일 테니까.

그러니 자기편이 될 수 없다면 차라리 그녀가 가지고 있는 힘을 소모하길 원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대놓고 칼리나에게 이를 얘기할 순 없으니 그녀와 커넥션을 가지고 있는 내게 이를 의뢰하는 것이다.

“할 수 있겠나?”

속 보이는 황제의 물음에도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못할 것도 없지요. 하지만 폐하. 그 대가로 전 뭘 얻을 수 있습니까?”

“그대가 하이르 앗 딘을 토벌한다면 그가 다스리던 땅을 그대에게 주지. 물론 귀족 작위도 내려주겠네.”

얼핏 들으면 공정해 보이는 거래 같지만 결국은 프리드리히가 이득을 보는 거래다.

토벌을 하면 하는 대로 남부의 골칫덩이인 하이르 앗 딘을 토벌함과 동시에 사람들은 칼리나가 황제의 명령을 받아 움직인 것으로 생각할 테니 황제는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위엄을 널리 떨칠 수 있다.

하지만 나 역시 얻을 게 없는 건 아니다. 그 누구도 토벌하지 못한 하이르 앗 딘을 토벌한다면 엄청난 명예와 명성을 얻을 수 있음은 물론 귀족 작위를 받을 수 있다.

단순히 귀족이 되고 안 되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만약 내가 귀족작위를 얻고 싶었다면 칼리나를 통해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선 낙하산에 불과하다. 현대 사회에서도 낙하산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를 생각해보면 내 힘으로 이룬 업적 정도는 있어야 한다.

적들에게 ‘개 좇같은 낙하산 새끼’보다는 ‘좆같긴 한데 능력 있는 놈’으로 각인되는 게 더 나을 테니까.

“화끈하시군요.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 명령을 완수하기가 힘듭니다. 조금 기한을 넉넉하게 잡고 천천히 의뢰를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네. 나 역시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원하는 건 아니니까.”

* * *

“이게 전부야.”

내 설명에 힐데는 눈살을 찌푸리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당연히 힘들겠지. 그래도 성공하면 니스의 영주로 임명해준다잖아?”

“니스가 어떤 상태인지 알고는 있습니까?”

당연히 알고 있다. 애초에 날강도가 다스리는 도시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있겠는가. 멕시코에 직접 가 본 적은 없지만, 마약왕이 점거한 도시보다 더한 상태겠지.

“개판이겠지. 그래서 거길 택한 거야. 기존에 있는 기득권에 거리낄 것 없이 내 마음대로 설계할 수 있으니까.”

“그래도 너무 위험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힐데가 이비를 바라보며 얘기하자 이비는 내 눈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이비는 내게 한 일이 있다 보니 늘 힐데에게 쩔쩔맬 수밖에 없었다.

“어? 어… 예. 그렇습니다. 주군. 하이르 앗 딘의 악명은 아이유브까지 널리 퍼질 정도입니다.”

“그럼 내가 하이르 앗 딘을 잡으면 전 세계에 내 이름이 진동한다는 말이군. 안 그런가?”

“그거는… 그렇습니다만 위험하다는 사실은 변함없습니다.”

“그럼 뭐, 칼리나의 기둥서방이라도 해야겠네.”

내 말에 힐데는 인상을 팍 쓰며 나를 노려보았다.

“라그나르. 당신의 농담이 재미없다는 건 몇 년간 겪어서 알고 있지만, 이것처럼 끔찍하고 재미없는 농담은 처음 듣는군요.”

“오늘도 어김없이 신랄하네. 근데 하이르 앗 딘을 잡겠다는 생각은 진심이야.”

“후… 뭐, 좋습니다. 애초에 당신은 한다고 하면 하는 사람이었죠. 당신을 말리진 못 하겠지만, 당신이 무슨 선택을 한다고 해도 전 늘 당신의 곁에 있겠습니다.”

일견 고백과도 같은 그녀의 대답에 나는 피식 웃으며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도 그런 비슷한 말을 했지. 커서 아빠랑 결혼한다고 했던가?”

“…쓰, 쓸데없는 건 잘도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아무튼, 전 당신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고마워. 근데 나도 막무가내로 맨땅에 머리를 박겠다는 소리는 아니야.”

“따로 생각해둔 방안이라도 있습니까?”

“당연하지. 애초에 나도 혼자서 하이르 앗 딘을 잡을 생각은 없어.”

나 혼자서 하이르 앗 딘을 잡으려면 내가 이끄는 병력만 천 명을 넘겨야 할 거다.

“뭘 할 생각이십니까?”

“세력부터 모아야지. 자세한 건 칼리나한테 가서 얘기해보자고.”

* * *

<신성 제국 남부도시 밀라노>

나는 딱히 칼리나에게 복귀한다는 전령을 보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그녀는 휘하의 용기사단을 이끌고 직접 내 개선식을 해주었다.

고작 삼십 명도 안 되는 인원을 맞이하는데 천 명이 넘게 나와 있는 민망한 상황이 연출됐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는 듯 말에서 내려 나를 가볍게 끌어안았다.

“어서 와. 라그나르.”

“다녀왔어. 칼리나. 그런데 이 요란한 개선식은 뭐야?”

내가 휘날리는 꽃을 바라보며 물었지만, 그녀는 뭘 당연한걸 물어보냐는 듯한 얼굴로 대꾸했다.

“내 남편 될 사람이 가서 크게 한 건 했다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겠어?”

“너무 과한 것 같은데… 게다가 다 네가 도와준 덕분이잖아.”

“겸손하기도 해라. 아무튼, 여기 서서 얘기하기도 뭐한데 일단 들어가자.”

그녀는 다시 말에 올라 나를 이끌었고 그 뒤를 수십 명의 용기사단이 호위하며 뒤따랐다.

그렇게 개선식인지 연행식인지 모를 행사를 마친 나는 샤워를 마치자마자 곧장 그녀에게 독대를 신청했다.

“안 그래도 내가 부를 생각이었는데… 그 잠깐의 시간도 못 기다릴 정도로 내가 보고 싶었어?”

그녀는 싱글싱글 웃으며 내게 농담을 건넸고 나 역시 웃으며 농담으로 받아쳤다.

“나야 늘 네가 보고 싶었지. 그래서 황제가 가지 말라고 매달려도 이렇게 뿌리치고 왔잖아?”

“푸하하하, 당신의 농담 실력도 꽤 늘었네?”

키득거리며 웃던 칼리나는 다리를 꼰 채 소파에 몸을 기대며 물었다.

“그래서 이제 뭘 어떻게 할 생각이야? 당신이 원하면 여기에 알 박아도 되는데. 다른 걸 박아도 되고.”

그녀는 노골적으로 내 고간을 바라보며 얘기했지만 난 애써 무시한 채 대답했다.

“우리 위대하신 황제 폐하께서 하이르 앗 딘을 토벌해달라고 하시더군.”

“하이르 앗 딘? 흐음… 확실히 골치 아픈 녀석이긴 하지.”

그녀는 상상만으로도 짜증 나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종종 무역선을 약탈하기도 하고 간 크게 내 휘하의 상단들까지 건드리는 정신 나간 놈이지. 그렇다고 본격적으로 전쟁하기에는 수지타산이 안 맞아.”

그녀의 말대로 하이르 앗 딘은 각 잡고 조지면 조질 수 있지만 들이는 출혈과 노력에 비해서 얻는 게 별로 없는… 말하자면 존나 쎈 중립 선공몹 같은 놈이었다.

“물론 내가 존경하고 경외해 마지않는 당신이 호구 잡히고 싶어서 이런 의뢰를 덜컥 받아온 건 아닐 테고… 무슨 생각이라도 있어?”

“이걸 명분으로 남부에 새로운 세력을 구축해야지.”

“새로운 세력?”

“칼리나 네가 남부에서 큰 힘을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야. 하지만 북부의 사자공이나 중앙의 황제처럼 큰 세력을 가지고 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거든.”

정확히 말하자면 북부와 중앙은 사자공과 황제를 중심으로 한 하나의 세력이라면 남부는 칼리나 개인이 큰 힘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변명 같지만 최근 몇 년간은 밀라노를 비롯한 직할령의 안정화와 발전에 온 힘을 쏟느라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승리하긴 했지만 테살로니카 왕국의 보니파시오와 벌였던 전쟁은 나도 출혈이 컸거든.”

“딱히 널 질책하는 게 아니야. 단지, 황제가 이런 명분을 줬으니 활용하자는 거지.”

“세력을 결집하자는 거야?”

“맞아. 우리의 목소리를 더 키우고 입지를 다지려면 널 중심으로 남부의 귀족들도 뭉쳐야 해. 하이르 앗 딘 토벌은 이걸 위한 명분이 돼줄 거야.”

잠시 생각하던 칼리나는 악동처럼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가 알면 뒷목 잡을만한 일이네.”

“잡다한 일은 내가 직접 할 테니 너는 합류시킬만한 영주들 목록 좀 추려줘.”

“알겠어. 라그나르 당신이 하자면 해야지. 그런데 연맹의 이름은 어떻게 할 거야? 따로 생각해둔 게 있어?”

나는 잠시 생각하다 집무실 안쪽에 걸려있는 카노사 가문의 문장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검은 용군단으로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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