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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바이킹이 되었다-43화 (43/205)

▣ 043화

“정말 대놓고 싸울 생각입니까? 차라리 하선할 때 덮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기다려 봐. 다 생각이 있으니까.”

“그렇게 얘기하면서 지난번에 용병단 와해됐던 건 기억에서 싹 지웠습니까?”

젠장. 라그나르는 왜 힐데를 팩트 폭력배로 키워놓은 거지?

“이번에는 달라. 확실해.”

“도박에 인생 망가지는 사람들이 늘 하는 소리가 그 소리인 건 아십니까?”

그녀의 팩트 앞에 무력해진 나는 또다시 필살기를 쓰기로 했다. 원래 이런 건 자주 쓰면 안 되지만 어쩔 수 없다.

“너 자꾸 아빠한테 말대꾸할 거야?”

“…….”

아빠라는 말 한마디에 힐데는 입을 다물었고 나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적들을 살폈다. 적들의 숫자는 대략 200이 좀 안 돼 보이는데 제대로 무장을 한 인원은 채 반도 안 됐다.

원래 휘하에 병력이 얼마 안 됐을 텐데 그걸 쪼개고 쪼개서 여기에 왔으니 당연히 숫자가 적을 수밖에 없겠지.

물론 그렇다곤 해도 30:200이라는 숫자의 폭력은 변함없었지만, 전쟁이란 숫자만으로 하는 게 아니다.

지휘관이 정의공쯤 되는 명장이라거나 휘하 병력들의 티어가 1~2개만 높았어도 바로 도망쳤을 테지만, 고인물의 감이 저 정도는 충분히 해볼 만하다 외치고 있었다.

“나, 나으리. 저희는 어떻게 합니까?”

“일단 이 집이랑 저 집도 태우고 들판에도 불을 지르게. 나머지는 집 안에서 문 걸어 잠그고 절대 나오지 말라 하고. 이해했나?”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만일 이를 어겨서 죽으면 본인 책임이라는 얘기도 꼭 전하게.”

내 말에 촌장은 발등에 불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마을 사람들을 향해 달려갔고 나는 천천히 부하들을 적절한 위치에 매복시켰다.

마을 습격의 실체를 숨기기 위해서 피도 여기저기 흩뿌리고 잔해물을 뿌려놓음은 물론 일부러 연기를 잔뜩 피웠기에 적들의 시야는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바람 역시 적들을 향해 불고 있었기에 이 습격이 가짜라는 걸 알아채기는 쉽지 않았고 결국 적들은 주변을 경계하면서도 천천히 이곳을 향해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 게임에서 봤던 례셰크와 똑 닮은 친구가 병력을 끌고 딴 곳으로 이동했는데 주변으로 넓게 퍼지는 걸 보니 포위망을 펼치는 모양이었다.

뭐, 이렇게만 보면 례셰크의 판단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게 있다면 바로 상대가 나라는 점과 그가 아직 어리다는 점이었다.

여포라고 어린 나이부터 인중여포라고 불렸을까? 관우와 장비라고 어렸을 때부터 만인지적이라고 불렸을까? 척준경이라고 코흘리개 시절부터 소드마스터라고 불렸을까?

다 나이를 먹고 경험을 쌓아가면서 황금기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지금의 례셰크는 머리는 잘 굴러가지만, 전투에는 젬병인 애송이였다.

그럼 병력의 질이라도 좋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휘하에 기병이 있긴 하지만 서너 기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갑옷도 걸치지 못한 경보병에 불과했다.

반면, 내 휘하의 병력들은 수많은 전투 경험치를 가지고 있으며, 무장도 튼실했고, 인간 흉기 및 탑티어 버퍼인 힐데와 신의라고 불리는 이비, 그리고 고인물인 내가 있었다.

“이런 미친 짓을 또 하게 될지는 몰랐군요. 죽지 마십시오. 당신이 죽지만 않는다면 어디에 있더라도 제가 찾아갈 테니.”

힐데는 자신의 메이스를 꺼내 들며 볼멘소리를 내뱉었고 이비 역시 굳은 얼굴로 샴쉬르를 꺼내 들며 내게 맹세했다.

“주군, 이 목숨을 바쳐 주군을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걱정 마. 이 전투는 이미 우리가 이겼으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힐데를 무시하며 나는 경건하게 기도문을 읊었다.

“천공신 오딘이시여.

내가 전장에서 두려움 없이 싸우도록 투지를 내려주소서.

내가 전장에서 공포에 물들지 않도록 분노를 내려주소서.

내가 전장에서 겁을 집어먹지 않도록 용기를 내려주소서.

그리하여 내가 전장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면 그때 나를 발할라로 이끄소서.”

기도가 끝나는 순간 내 몸에 엄청난 활력과 함께 시스템 로그가 끝도 없이 올라왔다.

―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기도가 천공신 오딘에게 닿았습니다.

― 오딘이 이 영광스러운 전투를 주시합니다.

― 오딘이 자신의 하나뿐인 대전사에게 축복을 내려줍니다.

― 에인헤랴르의 힘이 라그나르에게 깃듭니다.

― 강렬한 투지와 피 끓는 분노,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용기가 당신의 몸속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오릅니다.

― 전투의 함성과 늑대의 포효 스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보통 이 게임을 처음 접하는 초보들은 오딘이든, 제우스든, 예수든, 부처든, 알라든 아니면 이름 모를 잊혀진 신이든 간에 자신이 섬기는 신이 하나쯤은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신들은 가끔 플레이어나 NPC를 통해 기적을 선보인다. 기적이라고 하니 잘 와닿지 않을 수도 있는데 사실 힐데가 쓰는 버프들도 따지고 보면 그런 기적의 열화판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열화판이라고 해도 자신이 원할 때 아무런 대가도 없이 신성력만을 소모해 버프를 거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기에 그녀가 ‘빙옌의 성녀’라고 불리는 것이다.

말이 조금 샜는데, 어쨌건 힐데의 버프가 우습게 보일 정도로 신의 힘은 기적 그 자체였다.

그리고 지금, 나의 기도는 오딘에게 닿았고 신의 기적이 발현되었으며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내가 직접 오딘의 기적이 발현될만한 무대를 만든 것이다.

무대라고 거창하게 표현하긴 했지만, 실상은 매우 간단했다. 바이킹이 활약할 수 있을 만한 전장에서, 오딘의 이름으로 기도문을 읊고, 바이킹의 이름으로 적을 학살하면 끝이다.

이런 식의 기적은 불리했던 전투를 뒤집는 건 물론이요, 모두의 앞에서 이 기적을 선보이면 해당 종교의 성인으로 추앙받을 수 있으며 동시에 엄청난 명성과 명예를 거머쥘 수 있다.

물론 신도의 수가 훨씬 많은 기독교와는 그 기적의 궤를 달리하지만, 기독교의 경우 나 같은 고인물이라도 신의 기적이 발현되는 환경과 조건을 만족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반면, 이제는 사장되어가는 오딘 신앙 같은 경우 그 기적의 힘이 기독교나 정교회, 이슬람에 비해 약하기는 하지만, 그만큼 기적을 발현시키기도 쉬웠다.

거기에 통칭 ‘신의 기적’을 몇 번 발현시키다 보면 모든 특성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에인헤랴르 특성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에인헤랴르 특성을 얻게 되는 순간 개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지간해선 하지 않았지만, 어차피 지금의 나는 바이킹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끝까지 가야 하지 않던가.

“후우…….”

숨을 내쉬며 몸 안에 넘쳐흐르는 힘을 갈무리한 나는 사냥감을 사냥하는 맹수처럼 적들을 노려보았다. 례셰크는 이곳이 자신의 무덤인지도 모르고 주변을 경계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반면 신성력에 민감한 힐데는 내 몸에서 풍겨오는 힘을 느낀 건지 흡사 괴물이라도 보는 듯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라그나르. 당신 설마 자신의 몸에 강신이라도 한 겁니까?”

“하하, 그랬다간 몸이 조각나 버릴걸?”

아무리 영세하고 사그라드는 신이라지만 오딘은 북유럽의 최고신이자 와일드 헌트를 이끄는 폭풍 신이었다. 지금의 내가 그의 힘을 품기에는 아직 그릇이 모자랐다.

“그럼 이 힘은 대체….”

“말했잖아. 우린 이길 거라고.”

나는 힐데의 머리를 가볍게 두들겨준 뒤 앞장서서 다가오는 적의 기병에게 들고 있던 도끼를 집어 던지며 벼락같은 고함을 내질렀다.

“오딘을 위하여!!!!!!”

오늘 이 전투가 끝나고 나면, 저들은 왜 바이킹이 공포의 대명사로 불렸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 * *

“흐음… 뭔가 이상한데?”

말 위에서 마을을 살펴보던 례셰크는 눈살을 찌푸린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을은 적들에게 습격을 당한 것치고는 지나치게 조용했다.

습격이 진행 중이라기에는 쥐죽은 듯이 조용했고, 습격이 다 끝났다고 보기에는 시체가 하나도 없었다.

물론 군데군데 피가 흩뿌려져 있고 여전히 마을이 불타고 있으며,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있긴 했지만, 의심이 점점 고개를 쳐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혹시 자신을 꾀어내기 위한 적의 함정일 수도 있기에 례셰크는 뒤에 서 있던 기병을 지목하며 명령했다.

“자네! 가서 마을을 한번 살펴보게.”

“예. 영주님.”

기병은 창을 뽑아 들고 조심스레 주변을 경계하며 조금씩 앞으로 전진했다. 그런 그의 모습이 연기에 가려질 때쯤 잘 가던 기병은 일순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신형이 무너져내렸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짐승의 포효와도 같은 거대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딘을 위하여!!!!!”

동시에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모를 적들이 연기 속에서 우르르 튀어나와 자신들을 향해서 달려오기 시작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례셰크는 적군의 모습을 보면서 고민했다.

자신들이 적의 함정에 걸린 것일까? 하지만 습격을 하는 적의 수는 끽해야 서른 명 언저리였다. 하지만 드러난 게 전부라는 보장은 없었다.

지금이라도 포위망을 형성하기 위해서 밖으로 돌렸던 콘라드와 병력들을 돌려야 할까? 어쩌면 저 숫자는 그저 자신들을 잡아두기 위한 미끼가 아닐까?

저들과 굳이 부딪히지 않고 병력을 빼서 혹시나 진짜 적의 본대와 싸우고 있을 콘라드를 도와주는 게 옳은 선택이 아닐까?

이처럼 례셰크가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 적들은 떨어진 거리가 무색하게 가까워졌다. 그제서야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례셰크는 얼굴이 새파래져서 칼을 뽑아 들고 소리쳤다.

“전군 대형 유지!!! 방패 앞으로!”

자신의 실책이었다. 누가 봐도 이쪽의 숫자가 3배는 많은데 적들이 달려들 거라 누가 생각하겠는가. 심지어 적군은 대부분이 보병이었고 말을 탄 건 고작 3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기세가 매서웠고 한눈에 봐도 사기가 올라있는 상태였기에 례셰크는 긴장한 얼굴로 고래고래 소리쳐가며 병력들을 독려했다.

“겁먹지 마라! 적은 고작 한 줌에 불과하다! 대형 유지!!”

하지만 가장 앞장서서 말에 올라 창을 들고 달려오는 적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비웃듯 말 위에서 들고 있던 창을 내던졌다.

“컥!”

무시무시한 파공성을 내며 날아온 창은 방패를 꿰뚫고 그 뒤에 있던 창병까지 꼬치구이로 만들었다. 그 모습에 죽음의 공포가 아군을 휩쓸었고 동시에 사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재수 없으면 싸워보지도 못하고 병력이 와해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은 례셰크는 직접 병력들을 지휘하며 독려했다.

또한, 병력들이 전열을 정비할 시간을 벌기 위해 남아 있던 기병들을 전부 투입해 적을 막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비록 저들이 폴란드 최고의 정예병인 윙드 후사르는 아니지만, 세 명이라면 저 미친놈을 충분히 저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례셰크가 그런 자신의 생각이 오산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상대가 내던진 도끼에 기병 하나가 절명했으며, 하나는 방패에 얼굴을 얻어맞고 낙마했고, 남은 하나는 말 위에서 적에게 멱살을 붙잡힌 채 질질 끌리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건만, 그게 자신의 눈앞에서 일어나자 병력들은 패닉에 빠졌다. 례셰크 역시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지만, 자신은 병력들을 지휘하는 지휘관이었다.

“겁먹지 마라! 적의 숫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 이대로 버티고 있으면 외부의 아군이 구원을 올 것이다!”

례셰크는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자신의 본분대로 병력을 지휘하며 전열을 정비하려 했지만, 적은 이게 끝이 아니라는 듯 괴성을 내지르며 질질 끌고 오던 아군 기병을 내던졌다.

콰아앙!

이미 절명한 것처럼 보이는 기병의 시체는 방패병들을 덮쳤고 몇몇은 그 힘을 이기지 못해 바닥을 나뒹굴었다.

말 위에서 제대로 된 균형도 잡지 못한 채, 한 손으로 사람을 집어 던지는 말도 안 되는 광경에 병사들은 물론 례셰크마저 공포심을 느낄 정도였다.

결국, 맨 앞에서 자신의 눈앞에 다가오는 악몽 그 자체와 마주한 방패병은 극도의 공포와 스트레스를 버티지 못한 채 방패를 내던지고 도망쳤다.

그들은 스스로 이빨과 발톱을 뽑아내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휘몰아치는 두려움이 그들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죽음이 형상화되어 다가오는 모습에 병사들의 공포와 광기는 극에 달했으며 그 결과 대열이 무너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썰물처럼 흩어지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례셰크는 어떻게든 병력을 통제하려 했지만, 그들에게 례셰크의 목소리는 닿지 않았다.

그렇게 파수견과 양치기가 사라진 양 떼는 늑대의 밥에 불과했고 적장은 도망치는 양들을 그대로 두고 보지 않겠다는 듯 두 자루의 도끼를 치켜들며 사자처럼 포효했다.

“오딘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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