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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바이킹이 되었다-39화 (39/205)

▣ 039화

“뉘른베르크라… 제국의 황제가 머무르는 곳이니 호화롭겠군요.”

마치 산타가 있다고 믿는 것만 같은 힐데의 순수함을 깨는 게 미안했지만, 그래도 직접 가서 보고 실망하는 것보단 낫지 않겠는가.

“글쎄… 꼭 그렇지는 않아.”

신성 제국의 황제라지만, 실상은 동네에서 힘 좀 쓰는 아저씨에 불과하다. 황제라는 작위도 어떻게 보면 인기투표나 반장선거에 불과하기도 하고.

단적인 예로 하인리히 사자공의 직할지가 바르바로사가 다스리는 곳보다 넓으며 땅도 더 노른자위였다.

그럼 머무는 도시가 제일 크고 호화롭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뉘른베르크가 작은 도시는 아니지만, 바이에른의 뮌헨이나 작센의 하노버가 훨씬 더 크고 인구수도 많았다.

그리고 더 안타까운 건 작센과 바이에른이 하인리히 사자공의 땅이었다는 점이었다.

“차라리 밀라노가 더 크고 호화로울걸?”

“그 미친년이 머무는 곳이 더 좋다는 말입니까?”

“힐데. 제발 그… 호칭 좀….”

칼리나는 이랬거나 저랬거나 신성 제국의 변경백이다. 그것도 이름만 그럴싸하거나 바지사장이 아니라 남부에 관해서는 실권을 꽉 쥐고 있는 권력자다.

아무리 힐데가 정화교단의 사제에 꽤 높은 위치에 있다고 해도 이러는 건 외교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당사자인 힐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제가 빤히 보고 있는 앞에서 당신에게 키스한 게 미친년이 아니면 또 뭐겠습니까.”

“아, 음….”

“솔직히 말해보십시오. 라그나르. 기분 좋았습니까?”

갑작스레 내게 불똥이 튀었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내가 여심에 대해서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눈치가 없는 건 아니었다.

여기서 ‘헤으으응, 칼리나와의 키스 기분 좋았어욧! 이런 걸 몰랐다니 인생의 절반 손해봤어엇!’이라고 답하면 힐데가 폭발하는 건 안 봐도 비디오다.

“그, 알잖아. 힐데.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서 기분 좋고 뭣도 없었어.”

“흐음, 그렇습니까? 그런 것치곤 굉장히 즐기던 것 같은데.”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내겐 요사스러운 혀 특성이 있으니까.

“아, 그러고 보니 힐데. 요새는 아빠라고 안 불러주는 거야?”

바로 과거의 일을 들먹이는 거다. 요새 힐데와 계속 붙어 지내다 보니 꿈에서 그녀와의 과거가 기억나거나 갑작스레 생각이 나는 경우가 있다.

“무, 무슨!!!”

“이전처럼 아빠라고 불러보는 게 어때? 파파라고 불러도 괜찮은데.”

“마,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제가… 제가 대체 언제 그랬다고!”

원래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지만, 나와 힐데가 진짜 부모 자식 사이도 아니고 그녀의 어릴 적 흑역사를 알고 있는 한 그녀가 날 이길 순 없다.

애초에 그녀가 자다가 오줌을 싸면 옷과 이불을 세탁하는 건 내 몫이었으니까.

“하하하, 기억이 안 나면 어쩔 수 없지. 그보다 슬슬 도착한 것 같은데?”

내가 너무 티 나게 말을 돌렸지만, 힐데는 잠시 날 노려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대꾸했다.

“확실히 라그나르 당신 말대로 생각보다 크지는 않네요.”

“뭐, 수도라는 게 사실 황제가 머무는 곳이 수도라서 큰 의미를 지닌 것도 아니거든. 그래도 프랑크푸르트는 꽤 크니까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번 가서 봐봐.”

“전 어차피 당신만 따라다닐 테니 당신이 프랑크푸르트에 갈 일이 있으면 볼 수 있겠지요.”

내 말에 그녀는 무슨 소리냐는 듯 답했고 나는 그녀의 폭탄선언에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다.

“계속 날 따라다닌다고? 죽을 때까지?”

“전 하나 남은 가족과 더 이상 떨어지고 싶지 않습니다.”

“음….”

내가 라그나르의 과거를 봤을 때 그는 분명 시체들이 즐비한 곳에서 힐데를 주웠다. 아마 거기에 있던 건 그녀의 ‘원래’ 가족들이었겠지.

그러니 결국 힐데는 자신의 모든 가족을 잃어버렸다는 말이고, 라그나르는 그녀가 마지막으로 인정하고 신뢰하며 믿을 수 있는 가족인 것이다.

“그래, 나도 가족인 널 잃고 싶지 않아.”

처음에는 힐데가 유용하고 능력도 좋은 데다 유일한 희망이라 데리고 다녔는데 그동안 함께 다니다 보니 정도 들었다.

거기에 라그나르의 기억이 점차 내게 동화되고 있어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애틋한 감정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눈을 치켜뜨며 내게 쏘아붙였다.

“그러면서 왜 절 두고 떠났습니까?”

“어… 어?”

라그나르의 모든 기억이 동기화된 건 아니었기에 나는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고 힐데는 그런 내 모습이 우스웠는지 키득거렸다.

“농담입니다. 당신이 절 위해서 떠났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겐 당신과 떨어져 있던 5년이라는 시간이 가장 괴로웠다는 걸 꼭 기억해주십시오.”

담담히 얘기하고 있었지만 그런 그녀의 얼굴은 누구보다 쓸쓸해 보였기에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래. 꼭 기억할게.”

“그거면 됐습니다. 어차피 이제 당신과 떨어질 일은 없을 테니까요.”

처음에는 몰랐지만, 어느 정도 그녀와의 과거를 알게 된 지금은 왜 힐데가 그렇게 내게 매달리는지 알 것 같았다.

언젠가 라그나르의 기억을 모두 되찾을 수만 있다면 진정으로 그녀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 * *

힐데와의 대화를 마무리한 나는 병력을 끌고 천천히 뉘른베르크의 성문으로 향했다.

성벽의 위에는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의 가문인 호엔슈타우펜의 문장뿐만 아니라 여러 제후들의 문장이 새겨진 깃발들이 형형색색 휘날리고 있었다.

“다 아는 사람들이구만.”

물론 저 수많은 가문 중에 쓸만한 인물은 라인팔츠의 궁정백인 콘라드 정도뿐이었다.

그나마 그 역시 바르바로사와 함께 호엔슈타우펜 가문 소속이었으니, 결국 황제의 집결령에 콧방귀 좀 뀐다는 인물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바르바로사가 왜 이 악물고 황권을 강화하려는지 알 것 같네.”

그래도 나름 한 제국의 황제인데 뭐 제후라는 놈들이 말을 들어 처먹기는커녕 자기가 더 잘났다고 지랄하고 있으니 짜증이 날 만도 하겠지.

“이러면 칼리나한테 너무 미안해지는데.”

칼리나는 사실 말만 변경백이지 제국 내의 선제후 중 하나인 사자공을 제외하면 그녀를 따라올 만한 권력자는 없었다.

그런데 그녀가 황제의 명을 받들어 병력을 보냈다? 당장 사자공이 고까운 눈으로 쳐다볼 것이며 정계가 뒤흔들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아닌 칼리나가 감당할 몫이었고 그녀 역시 그걸 알고 나를 보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지금 할 일은 그녀가 준 기회를 잘 이용하는 것이다.

마음을 다잡은 나는 병력을 정렬시킨 뒤 성문으로 향했고 성을 지키던 경비병은 겁먹은 눈초리로 나와 내 뒤에 있는 병력들을 바라보았다.

숫자가 많지는 않지만, 함께 온 일행이 전부 중무장을 하고 있는 데다 나와 힐데, 이비는 말을 타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내 뒤에는 칼리나를 뜻하는 포효하는 검은 용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으니까.

* * *

신성 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는 집무실에 앉아 지도와 서류 더미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비협조적일 줄은 몰랐군.”

전군에 동원령을 내렸지만, 자신의 부름에 응한 건 채 30%도 되지 않았다. 특히, 가장 강력한 기사단을 지닌 하인리히 사자공의 사자 기사단과 칼리나 여변경백의 드래곤 기사단은 온다, 안 온다는 답신조차 없었다.

물론, 그 둘은 선제후인 만큼 굳이 자신의 부름에 응할 이유는 없었지만, 그래도 상도덕이라는 게 있지 않던가.

게다가 하인리히와는 조약도 맺었건만, 이렇게 속을 태우는 건 자신이 내게 고개 숙인 게 아니라는 걸 암암리에 선포하고 있는 거겠지.

“이래서야 누가 황제인지 모르겠군.”

그 둘의 합류가 불투명하다면 이번 전쟁의 승패도 가늠할 수 없다. 물론 본인의 휘하에도 신성 기사단이 있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폴란드 왕국 역시 기사단을 가지고 있는 데다 특히 폴란드는 윙드후사르라는 정신 나간 돌격 기병을 가지고 있기에 이대로 전쟁을 벌여봤자 필패였다.

하다못해 둘 중의 하나라도 참전해준다면 승리할 자신이 있었다. 사자공이야 원체 그를 따르는 파벌들이 많았고, 칼리나 여변경백은 중립을 표방하고 있었지만, 암암리에 자신과 사자공을 지지하지 않는 자들의 거두로 인정받고 있었다.

하지만 편지에 명시해놓은 시일이 다 끝나가는데도 오지 않는다는 건 애초에 올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다.

물론, 둘은 남쪽 끝과 북쪽 끝에 있었기에 뉘른베르크까지 오기에는 다소 빡빡할지 몰라도 올 생각만 있었다면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이대로 집합에 시간이 더 소요되면 이후 있을 군사행동에도 지장이 갔다. 애초에 황제인 자신이라도 병력을 소집할 때 붙잡아 둘 수 있는 시간은 40일이 한도였다.

솔직히 말해 고작 40일 가지고 그 안에 뭔가를 할 수 있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40일이라는 조건 때문에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모이는 데도 시일이 걸리고 이동하는 데도 시일이 걸리며 적과의 전투에도 시일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적이 대놓고 배 째라며 수성전에 올인하면 공격자의 입장에서 선택지는 두 가지밖에 없었다.

개 좆같은 겁쟁이 새끼라고 욕하며 비어있는 마을을 약탈하고 불 지른 뒤 퇴각하거나, 반드시 네놈 대가리를 따버리겠다며 병력을 들이박거나.

그 때문에 역사적으로 공성 시 무리하거나 희생이 큰 공격을 감행한 것도 다 이 봉건의무 조약에 묶여 있었기에 나온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봉건 영주들은 40일이 지나면 전투가 진행 중이든 말든 난 내 의무 다했으니까 가버려도 황제 입장에선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물론 자신과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영주라면 그래도 뒷마무리는 지을 테지만, 그게 아닌 영주들은 어떻게 제지할 방법이 없었다.

지난번 폴란드와의 전쟁에서 단 한 번에 무너졌던 것도 그런 이기적인 영주들의 행태 때문이었다.

이길 수 있는, 아니, 다 이겼던 전쟁을 패배한다는 게 얼마나 화가 나는지는 다들 알리라.

“폐하!”

“무슨 일인가? 급한 일이 아니면 내가 집무실에 있을 때 부르지 말라 했을 텐데?”

안 그래도 적은 병력들로 어떻게든 승리할 수 있는 작전을 짜내다 보니 머리가 쪼개질 것 같았는데 그마저도 방해를 하니 짜증이 치밀어 올라왔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행정관의 말에 황제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칼리나 여변경백의 지원 병력이 도착했습니다!”

“뭐라!? 지금 어디에 있던가?”

“일단 응접실로 모셔놨습니다. 헌데….”

최근 듣던 얘기 중 가장 반가운 이야기였기에 프리드리히는 행정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도 않고 바로 문을 열어젖힌 뒤 앞장서서 걸어 나갔다.

그런 황제의 뒤를 귀족과 호위병사들이 뒤따랐고 행정관은 당황해서 황제를 말리려 했지만 황제는 거의 뛰다시피 응접실로 향했다.

늘 포커페이스를 유지해야 하는 황제의 직위에 걸맞지 않게 바르바로사는 세상에서 가장 기쁜 얼굴로 응접실의 문을 열었고, 이내 더할 나위 없이 일그러졌다.

“…그대는?”

황제의 물음에 투박하고 거칠어 보이는 인상의 사내는 바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미천한 야만인이 신성 제국의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신은 칼리나 여변경백의 명을 받고 황제 폐하를 지원하기 위해 파견된 라그나르 로드브로크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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