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1화
상단장의 허가가 떨어졌기에 요한나 레비아탄은 상행준비를 서둘렀고 나 역시 상단장이 매일매일 갱신해서 보내주는 정보들을 읽으며 작전에 대해 고민했다.
이번 작전의 목표는 요한나 레비아탄의 처리 혹은 배제였고 그녀를 퇴장시키기 위해선 그에 걸맞은 무대가 필요했다.
“어디에서 어떻게 하이르 앗 딘을 만날지만 알아도 습격이 한층 수월해질 텐데.”
탈다스 상단장이 요한나가 이끄는 상단의 이동 경로에 대해서 보내주기는 했지만, 솔직히 그녀가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간다는 보장은 없다.
나중에 들키게 되면 추궁당할 게 뻔한데 굳이 단서를 흘리고 다닐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 때문에 나는 역으로 추리를 해 나가기로 했다.
일단 그녀가 목적지로 찍은 곳은 몽펠리에 지역이다. 중간에 뭔 짓을 하건 간에 그녀는 자신의 입으로 내뱉은 말이 있는 이상 그곳까지는 갈 것이다.
하이르 앗 딘하고 계약한다고 그가 바로 병력 몰고 우와아아앙 하면서 레비아탄 상단을 쓸어버리는 건 아닐 테니까. 그녀가 원하는 건 어디까지나 탈다스 상단장을 사고사로 위장해 죽여버리는 것이다.
그 때문에 그녀는 몽펠리에로 가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계약을 해야 했고 이 점을 감안해보면 하이르 앗 딘의 본거지는 몽펠리에까지 가는 길 근방에 있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나는 이 게임의 고인물이었다. 당연히 게임을 하면서 하이르 앗 딘을 몇 번이나 조져본 적도 있었고 그의 본거지를 급습해본 적도 있었다.
물론 랜덤 변수가 적용되는 만큼 하이르 앗 딘의 본거지는 매번 바뀌지만, 리젠 장소는 몇 군데로 한정되어 있다.
그도 그럴 게 하이르 앗 딘의 본거지는 기본적으로 대형 항구를 가진 도시여야 했고, 해적에게 장악될 만큼 도시의 치안이 개판 나 있어야 하며, 본업이 해적이니만큼 주변에 무역로가 조성되어 있어야 한다.
이런 조건들을 만족할만한 장소는 굉장히 드물었고 몽펠리에 근방에서 이 조건을 만족하는 도시는 오직 니스 하나였다. 그리고 니스는 꽤 높은 빈도로 하이르 앗 딘의 본거지가 되는 지역이었다.
“물론, 요한나가 니스로 간다는 보장은 없지만, 굳이 그곳을 목적지로 잡은 건 다 이유가 있겠지.”
“처음 며칠 동안은 가도로 이동하겠지만, 하이르 앗 딘에게 가거나 그의 전령과 만날 때는 최대한 보는 눈을 줄이기 위해 사람이 많이 안 다니는 산길을 이용하겠지.”
“이 근방의 정세랑 치안을 생각해보면….”
나는 지도를 보며 배제할만한 사항은 과감히 배제하며 그녀의 이동 경로를 대강 잡아냈고 그녀를 습격할만한 포인트를 3~4개 정도 집어낼 수 있었다.
나는 이 위치를 힐데에게 끊임없이 주지시키며 이번 습격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고, 나는 요한나가 상행을 떠나기 사흘 전에 카메리 마을로 가달라는 탈다스의 명령을 듣고 바로 노바라를 떠났다.
물론 이건 내 알리바이를 위한 명령서였고 나는 즉시 반대편으로 기수를 몰아 힐데와 휘하 병력들을 요한나보다 한발 앞서 거점 도시들에 머무르게 했다.
그래서 적당한 곳에서 기습을 해서 처리할 생각이었지만, 요한나는 꽤 오랜 기간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고 진짜 상행이 목적인 것처럼 몽펠리에로 향했다.
내 예상대로라면 지금껏 지나왔던 도시인 베르첼리나 아스티, 늦어도 알바에서 하이르 앗 딘의 전령들을 만나거나 아니면 본인이 직접 남하를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요한나가 이끄는 상단은 내가 마지노선이라고 정한 곳을 훨씬 지나서까지 아무런 변화도 없었고 그 때문에 나는 그 이전의 마을에서 전령과 만났던 게 아닌가, 내가 뭔가 놓친 게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차라리 피해가 좀 크더라도 이대로 상단을 덮쳐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될 때쯤, 갑작스레 요한나가 이끄는 상단이 이전과는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
몽펠리에로 가는 길에 필수적으로 들르게 되는 거점 도시인 쿠네오에 들어가기 전 일련의 무리가 상단에서 빠져나와 남하했고 나는 본능적으로 저 안에 요한나가 있음을 깨달았다.
거리가 멀었기에 서둘러 지도를 펼쳐 그들의 기수가 향하는 곳을 파악한 나는 부르고스 외곽에서 대기하고 있던 힐데와 병력을 끌고 서둘러 요한나와 그 일행의 뒤를 쫓았다.
이 낯선 곳에서 고작 열댓 명으로 이루어진 무리를 뒤쫓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원래의 라그나르가 추적술에도 일가견이 있었고 저들의 목적지를 알고 있었기에 손쉽게 뒤따라 잡을 수 있었다.
우리가 적들을 따라잡은 건 이제 막 해가 떨어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는데 적들은 지속된 산행에 지쳤는지 텐트를 친 채 저녁 식사 준비와 휴식에 여념이 없었다. 나와 함께 수풀 속에 몸을 숨긴 채 그들을 노려보던 힐데가 내게 물었다.
“바로 급습하실 겁니까?”
“아니, 천천히 뒤쫓으면서 힘이 빠질 때까지 기다린 다음 급습할 거야.”
요한나 일행은 흔적을 지우기 위해 가도가 아닌 산길을 택해 이동 중이었고 이는 싫어도 한동안 산기슭을 타고 다닐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당연하겠지만, 행상인도 아니고 규모 좀 되는 상단이 굳이 산길을 타고 다닐 이유는 없었고 그 때문에 요한나는 말할 것도 없고 호위병들 역시 산행에 피로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나로서도 산 초입보다는 산 안쪽 으슥한 곳에서 쓱싹하는 게 더 편했다. 혹시나 적들이 도망쳐도 손쉽게 따라잡을 수 있는 데다 목격자를 걱정할 염려도 없을 테니까.
그렇게 얌전히 그들의 뒤를 쫓기를 나흘째,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찾아왔다.
어부지리, 방휼지쟁, 견토지쟁,
표현하는 방식이야 제각각이었지만, 그 뜻은 일맥상통했고 우리는 지금 그런 행운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예상치 못했습니다만… 때때로 행운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오는군요.”
“그러니까 행운이겠지.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게 불구경이랑 싸움 구경이라는데 얌전히 구경이나 하자고.”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수십 명의 도적들이 요한나 일행을 덮쳤고 그들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바로 무기를 뽑아 들고 도적들과 맞서 싸웠다.
썩어도 준치라고 요한나가 정예병만 추려서 뽑았는지 호위병들은 피곤에 찌든 상황에서도 질서정연하게 도적들을 격퇴했고 몇 번 더 찔러본 도적들은 아군이 픽픽 죽어 나가자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숫자상으로 도적들이 더 많고 적이 지쳐있던 만큼 시간을 끌며 싸웠다면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승리할 수 있었을 테지만, 애초에 도적놈들은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심보로 달려드는 놈들이었기에 아니다 싶으면 잽싸게 도망치는 데 이골이 난 놈들이었다.
그걸 보고 상황판단이 빠르다고 해야 할지 약아빠진 놈들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도적들로 인해서 적의 틈이 생긴 건 사실이었고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내가 시간을 끌 테니 물 샐 틈 없이 포위해.”
“알겠습니다.”
힐데는 수하 몇 명을 끌고 조용히 사라졌고 나는 수풀을 헤치고 나와서 부상자들을 수습하는 요한나에게 건들건들 걸어가며 내 존재를 과시했다.
“이런 이런… 이게 누구야?”
낯선 목소리에 호위병들은 다시 자신들의 무기를 꺼내 들었지만 요한나는 그들을 제지한 뒤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블라디미르 스바치치? 네놈이 왜 여기서 나오는 거지?”
그나마 숨기고 있던 적의를 이젠 완전히 드러내는군. 내가 귀족을 칭하고 있는데도 저런 모습을 보일 정도면 꽤 극한까지 몰려있던 모양이다. 뭐, 상황이 상황이니 이해는 한다.
“하하, 내가 오면 안 될 곳이라도 왔나? 그대가 상행에 곤란을 겪고 있는 것 같아서 좀 도와주려는 건데.”
짧은 말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을 깨달았는지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경계심 어린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며 물었다.
“오라버니의 번견 주제에 무례하군. 설마 날 감시하라고 보낸 건가?”
“눈치가 빠르군. 하지만 거기에서 정정해야 할 게 두 가지 있어.”
나는 천천히 그녀의 앞으로 걸어가며 도끼를 뽑아 들었다.
“내 이름은 블라디미르 스바치치가 아니라 라그나르 로드브로크. 바이킹들의 왕이지.”
“…그 이야기를 지금 내게 하는 이유가 뭐지?”
난 굳이 그녀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조금씩 그녀에게 다가가며 내 할 말을 했다.
“그리고 이게 두 번째로 정정해야 할 부분인데, 그대의 오라버니께선 그대를 감시하는 게 아니라 처분하길 원하더군.”
내 말이 끝나는 순간 수풀에 숨어 있던 힐데와 병력들이 뛰쳐나와서 요한나의 호위병들을 급습했다.
호위병들 역시 나와 요한나의 대화가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걸 깨닫고 나름대로 대비를 하고 있었지만, 긴 행군과 방금 전의 전투로 지쳐있었기에 제대로 된 저항조차 못 하고 순식간에 참살당하고 말았다.
자신을 지켜줄 병력들이 순식간에 도륙 나자 요한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 짓더니 날 노려보며 소리쳤다.
“이대로 내가 죽으면 너라고 무사할 것 같나? 내 죽음이 밝혀지면 조사가 들어갈 거다. 아무리 네가 알리바이를 만들어놨다고 해도 틈이 있겠지. 그 틈을 파고들면 결국 네가 날 죽였다는 게 밝혀질 텐데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
“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문제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그것보다 그대는 지금 자신의 목부터 걱정해야 하지 않을까?”
험하게 죽기 싫으면 입 닥치고 있으라는 내 신호가 먹혔는지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사실, 그녀의 입장에서 자신이 죽은 뒤 내가 교수형을 당하든 참수형을 당하든 그건 중요치 않을 것이다. 그녀에게 제일 중요한 건, 지금 여기서 무사히 살아 돌아가는 거니까.
“라그나르. 시체들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적당히 도적들 시체랑 섞어 놔. 그러면 누가 발견해도 도적들에게 당한 것처럼 보이겠지. 어쩌면 남아있는 도적놈들이 알아서 처리해줄지도 모르고.”
“이런 비겁한 녀석!”
“오, 용병에게 그것보다 더한 찬사는 없는 법이지.”
“이런 개자식….”
“그렇게 욕하지 말라고. 애초에 비겁한 것만 따지면 네가 더하지 않나?”
“뭐?”
“멀쩡히 일 잘하고 있는 상단장을 끌어내리기 위해 영주와 손잡고 염료 길드의 길드장까지 끌어들인 데다 하이르 앗 딘에게 탈다스 상단장을 습격하라고 부추기기도 했었지. 그런 너에 비하면 나는 신사가 아닐까?”
“입 닥쳐! 비천한 용병 따위가 뭘 안다고! 내가 이 가문에서 어떤 심정으로 살아왔는지 네가 알기나 해!?”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 하지. 내가 악당의 구구절절한 사연까지 알아야 하나? 다 듣고 공감하면서 눈물이라도 흘려주면 만족하나?”
내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하자 요한나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난 그런 그녀의 옆에 있는 시체의 다리를 붙잡고 질질 끌고 가며 말을 이었다.
“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난 너를 죽일 생각이 없어. 탈다스는 널 처분하라고 했지만, 굳이 죽이고 싶지도 않고.”
“무슨 소리지? 내게 원하는 게 있는 건가?”
“글쎄… 단순한 변덕이자 내 자비이며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해두지.”
내 말이 이해가 잘 안 가는지 요한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확인하듯 되물었다.
“그러니까 내 가능성을 보고 날 살려주겠다는 건가?”
“그런 셈이지.”
“그러느니 날 섬기는 게 낫지 않나? 원한다면 금은보화는 물론이요 눈이 돌아갈 만한 여인도 안겨주지. 원한다면 이 나를 취해도 좋다.”
어느새 스스로의 가치를 끌어올리며 자기 잘난 듯이 얘기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생각해보면 염료 길드의 길드장도 그렇고 바지사장도 그렇고 눈앞의 요한나며 탈다스 상단장에 이르기까지 상인이라는 놈들은 배짱이 몸의 9할 이상을 이루고 있는 모양이다.
“그것도 나쁜 제안은 아니지만 이미 난 탈다스 상단장과 계약을 맺어서 그건 힘들 것 같은데? 그리고….”
나는 내 옆에 서 있는 힐데의 어깨를 가볍게 붙잡고 어깨동무를 하며 거만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내 옆에는 이미 이렇게 아름다운 장미가 있는데 다른 꽃에 눈이 돌아갈 리가 있나.”
하지만 당사자인 힐데는 내 말에 벌레 씹은 표정을 짓더니 나를 매도하기 시작했다.
“설마 꽃이라는 게 절 보고 얘기하는 겁니까? 세 살짜리 애도 안 할 그런 구시대적인 대사를 로맨틱하다 생각하고 얘기하는 걸 보니 기겁하다 못해 통탄스럽군요. 그런 구닥다리의 표본 같은 대사를 듣고 좋아할 여자가 정말 이 세상에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왜 당신이 지금까지 결혼을 못 했는지 알 것 같군요.”
물론 매도하는 입술과는 별개로 붉게 달아올라 빨개진 그녀의 귀가 아주 잘 보인다. 평상시에는 붉은 머리에 가려져서 잘 안 보이는 주제에 말이다.
“곧 죽어도 나를 섬길 생각은 없는 건가?”
“글쎄. 얘기했듯 상단장과의 계약이 아직 안 끝났거든. 하지만 네가 크게 성공해서 상단장이 제시한 금액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큰돈으로 나를 고용한다면, 생각해볼 여지는 있겠지.”
“하, 상인의 피를 들끓게 만드는 말이군.”
“그래서, 내 제안을 받아들인 건가?”
“어쨌든 죽는 것보단 낫겠지.”
“탁월한 선택이야.”
나는 품에서 은화 꾸러미를 꺼내 그녀에게 던졌다.
“네가 능력이 있다면 다시 일어나서 날 마주할 수 있을 테고, 아니라면 길에서 객사할 테지.”
“오늘, 날 섬기지 않은 걸 후회하게 만들어 주지. 그리고 이 굴욕을 몇 배로 되돌려주마.”
“하하하, 기대하고 있겠어. 요한나 레비아탄. 내가 널 살려준 게 잘못된 선택이 아니라는 걸, 네가 네 오라비보다 뛰어나다는 걸 내게 입증해 봐라.”
내 말에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날 노려보더니 내가 건네준 말을 타고 점차 멀어졌다.
반면 힐데는 내가 상의도 없이 목표를 놓아주다 못해 친근한 분위기까지 만들어버리자 불만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라그나르. 저 여자를 안 죽여도 괜찮겠습니까.”
“사제인 네가 죽음을 논하다니… 놀라운데?”
“제 손으로 죽인 이가 몇이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보다 이 일로 인해 탈다스 상단장과의 관계가 애매해지지 않겠습니까?”
“탈다스도 ‘처리’하라고만 했지 ‘죽여달라’라고 얘기한 건 아니었잖아?”
“제가 보기에는 말장난 같습니다만.”
“글쎄, 뭐든 선택의 문제지. 그녀를 지금 죽이면 후환은 없을지 몰라도 그걸로 끝날 뿐이야. 하지만 그녀를 살려두면 나중에 은혜를 갚기 위해 박씨를 물고 올지 어떻게 알아?”
보통 NPC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발생하곤 있는데 가끔 그 역경을 딛고 재기하는 경우가 있다. 그 경우를 대비해 이런 식으로 최대한 완만하게 해결을 해 놓으면 나중에 자신의 목숨을 살려줘서 고맙다며 내게 도움을 주는 일도 있다.
거기에 원래 용병은 고용주가 시킨 일을 하는 게 일이라서 상대도 딱히 용병들에게 원한을 품는 건 아니다.
이게 농담이 아닌 게 전투 중 용병들한테 돈을 못 주니까 용병들이 안 싸운다고 배 째라 하는 경우도 허다했고 아예 성을 나가버리는 일도 있었는데, 그때는 적들도 딱히 제지하지 않고 그냥 보내주는 게 일반적이었다.
오히려 그 용병들에게 자신들이 그것보다 많은 양의 돈을 줄 테니 자신들의 편에서 싸워달라고 요청하고 용병들도 수락하는 걸 보면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아무튼, 현대인의 관점으로 중세 감수성을 이해하기란 꽤 힘든 일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일은 오빠와 동생이 싸운 거고 동생이 패배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후일 요한나가 나를 만나더라도 바로 날 적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 나락 같은 상황에서 성공할 인물이라면 자신의 허를 찌르고 실각시킬 정도로 능력이 좋은 나를 품을 생각을 하겠지.
거기에 의심병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후일 탈다스와의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그때를 대비해서 나도 히든카드 하나 정도는 숨겨둬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