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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바이킹이 되었다-19화 (19/205)

▣ 019화

밤새 말을 달려 갈라이트 마을에 도착하자 이른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은 싫은 기색 없이 나를 격하게 환영해주었다.

슬쩍 마을을 둘러보니 나름대로 무장한 자경단원들도 보이고 낮지만, 마을 전체에 방책도 올라가 있는 걸 보면 내가 없는 사이 힐데가 일 처리를 깔끔하게 잘해준 모양이다.

“오셨습니까. 나으리.”

“그래. 마을을 보아하니 별다른 일은 없었던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사제님께서 해주셔서 마을 사람들이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었습니다.”

“힐데는 안에 있나?”

“예. 지금 바로 사제님이 머무시는 곳으로 사람을 보냈으니 곧 오실 겁니다.”

촌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힐데가 나를 향해 다가왔고 나는 활짝 웃으며 그녀를 향해 양팔을 벌렸다. 평상시처럼 매도라도 들어올까 했지만, 이번만큼은 그녀도 별다른 말 없이 나를 꼭 안아주었다.

“다녀왔어.”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입니다.”

“그래. 근데 제대로 안 씻어서 냄새나니까 조금만 떨어져 주지 않을래?.”

스스로도 알 정도로 시큼하고 쿱쿱한 냄새가 내 몸에서 피어올랐기 때문에 나는 서둘러 그녀를 밀어냈다.

“전 별로 신경 안 씁니다.”

“너는 신경 안 쓰일지라도 내가 신경 쓰여.”

아무리 내가 얼굴에 철면피를 깔았다고 해도 이건 뭐라고 해야 할까… 조금, 조금 많이 민망하다.

“이전에도 종종 그래놓고 뭘 이제 와서 신경 쓰고 있습니까?”

제대로 기억도 안 나는 과거의 일을 들먹이면 할 말이 없어졌지만, 일단 나는 찰거머리처럼 붙어있는 그녀를 떼어냈다. 그런 내 행동에 그녀는 뭔가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지만, 나는 애써 말을 돌렸다.

“이곳에서의 일은 잘 끝냈어?”

“물론입니다.”

“하긴, 힐데 너는 언제나 날 실망시킨 적이 없었지.”

내가 빙의하고 난 뒤로도, 그 이전의 불완전한 기억을 뒤져봐도 힐데가 라그나르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은 믿음과 신뢰 그 자체였다.

“좀 더 칭찬해도 좋습니다.”

그녀치고는 드물게 잘난듯한 표정을 짓는 모습에 나는 아까의 복수도 해줄 겸 조금 심술을 부리기로 했다.

“역시 나한테는 너밖에 없어. 너처럼 믿음직한 동료가 또 있을까.”

“…….”

“널 만난 건 내게 있어 최고의 행운이야.”

“이제… 이제 됐습니다. 당신은 부끄러움이라는 감정도 없는 겁니까?”

“흐흐, 혹시 부끄러운 거야?”

“시끄럽습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그녀는 의도적으로 말을 돌렸고 나는 조금 더 놀려줄까 하다가 시간이 없었기에 바로 본론에 들어가기로 했다.

“여기서 이야기하기는 조금 그렇고… 조용한 곳 있어?”

“제 숙소로 가시지요.”

힐데는 나를 자신이 머무르는 숙소로 이끌었고 집 안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의자에 걸터앉으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정리해서 그녀에게 얘기해주었다.

조용히 내 말을 경청하던 그녀는 내 얘기가 끝나자 한숨을 내쉬었다.

“대강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만, 스케일이 생각보다 커졌군요. 썩어도 준치라고 그래도 영주인데 대책은 있으신 겁니까?”

“글쎄, 운이 좋으면 잘 풀리겠지.”

“설마 정면으로 부딪칠 생각은 아니겠지요?”

“나도 굳이 싸우고 싶진 않지만, 무리를 이끄는 장이라면 최악의 상황도 생각은 해둬야겠지.”

“라그나르 당신이 명령한다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앞장서서 싸울 테지만, 부디 몇 달 전의 일을 기억해주십시오.”

그녀의 말에 나는 처음 내가 라그나르로 빙의했던 때를 떠올렸다. 기억상으로 그때 힐데가 이끌던 레이븐 용병단의 인원은 약 50명에 이를 정도의 대규모 집단이었다.

단순히 보병 편제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라 중무장한 기병들도 있던걸 감안해보면 작은 영지 하나와 싸움을 벌여도 될 정도로 강력한 용병집단이었다.

문제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수천 명 규모의 고티어 병력들이 격돌하는 곳에서 선두로 나서서 싸우다 보니 영혼까지 박살 나버린 것이다.

애초에 영주 휘하에 있는 기사와 중기병, 중장보병들은 온종일 사람 죽일 궁리만 하는 살인 기계들인데 어중이떠중이 같은 징집병들로 이길 생각을 하는 게 오히려 놀부심보가 아닐까?

이처럼 플레이어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게 영주라는 존재였고 지금의 나로서는 백작급은커녕 남작급의 영주와 부딪혀도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 것이다.

물론, 영주가 우리와 대립각을 세운다면 지체 없이 밟아줄 생각이다. 그걸 위해서 영주의 끄나풀들을 어르고 달래고 협박해가며 정보를 얻고 있는 게 아닌가.

“나도 굳이 영주와 싸울 생각은 없어.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우리는 이미 이 일에 발을 담갔고 영주가 우리와 싸우려 한다면 우리도 칼을 뽑아야지.”

“알겠습니다. 뭐, 제가 지금까지 봐온 당신이라면 이번 일도 현명하게 해결하겠지요.”

“믿음에 부응하도록 노력해야겠네. 아무튼, 지금 당장은 상단장에게 보고하는 게 먼저야. 일단 우리의 고용주는 상단장이니 그의 판단을 기다려야지.”

“지금 바로 떠나실 겁니까?”

“가능하다면. 아, 그 전에 일단 좀 씻어도 될까? 며칠간 제대로 못 씻어서 그런지 조금 많이 찝찝한데….”

얘기하는 지금도 시큼한 냄새가 올라오고 있었고 머리도 간질거렸기에 당장 씻고 싶었다.

“그럼 저는 씻고 나오실 동안 떠날 준비를 끝마쳐놓겠습니다.”

“부탁할게.”

찬물에 몸을 담그고 그간의 묵은 때를 전부 벗기고 나오니 힐데의 말대로 모든 준비가 끝나있었고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역시 S급 동료 하나 있으니까 편하긴 하다. 힐데가 없으면 이런 잡다한 일을 내가 일일이 다 챙겨야 할 텐데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저를 비롯한 저희 마을은 나으리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떠난다는 소식에 촌장과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마중하기 위해 마을 어귀까지 나왔고 나는 그의 인사를 받으며 슬쩍 물었다.

“은혜랄 게 무에 있겠나. 아, 그리고 혹시 그대의 마을에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있나?”

갈 때 가더라도 받을 건 받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까지 엄청나게 많이 도와줬으니 마을의 평판과 촌장의 호감도가 꽤 올랐을 거다. 그런 만큼 보상을 기대해봐도 좋겠지.

“물론입니다. 실은 몇몇 젊은이들이 나으리와 함께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촌장의 말이 끝나자 마을의 자경단원 중 몇몇이 앞으로 나왔고 그 순간 시스템 창에 온갖 로그들이 떠올랐다.

― 퀘스트의 초과달성으로 합류 병력들의 경험치가 증가합니다.

― 마을과의 유대 및 촌장과의 호감도로 인해 병력들의 경험치가 추가로 증가합니다.

― 실전을 경험한 병력들입니다. 경험치가 추가로 증가합니다.

로그들을 치우고 직접 그들의 정보를 확인한 나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 신성 제국 정예 기수 1, 신성 제국 저격병 2, 신성 제국 정예 창병 2, 신성 제국 석궁병 2 이 레이븐 용병단에 합류합니다.

사실 마을의 호감도 작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서다. 단지, 일반적으로 병력을 모집할 시 하위 티어의 병력들만 쏟아지는데 마을과 촌장의 호감도와 함께 퀘스트를 함께 해결할 시 이처럼 고위급 병력들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걸 감안하고서라도, 이 정도로 고위 티어들이 합류하는 건 굉장히 드문 일이다.

“고맙네. 혹여라도 어려운 일이 있다면 언제라도 내게 연락하게.”

나는 그들과 작별인사를 한 뒤 지체 없이 노바라를 향했다. 마을에서 거리가 어느 정도 멀어지자 나는 바로 시스템 창을 켰다.

“부대 정보창.”

<레이븐 용병단>

라그나르 로드브로크

빙옌의 힐데가르트

에피로스 친왕국 정예 창병 ― 2

루스 공국 석궁병 ― 2

신성 제국 정예 창병 ― 4

신성 제국 석궁병 ― 4

신성 제국 정예 기수 ― 1

신성 제국 저격병 ― 2

아이유브 왕조 방패병 ― 2

“미쳤군. 평생 터질 포텐이 여기서 터진 건가?”

보통 마을의 평판과 촌장의 호감도를 최대치까지 찍어놔도 최하위 티어인 징집병, 농민병을 수십 명씩 주거나 한 티어 위인 창병이나 궁병을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전장에서 통솔력을 올려주는 기수에 저격병과 정예 창병, 석궁병까지 추가로 얻었다. 이 정도 병력 규모라면 어디 가서 두들겨 맞고 다니진 않겠지.

다만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게 사람이 많아진다는 건 드는 돈이 많아진다는 것과 같은 얘기다.

지금의 나는 고정된 수입이 없는 상태고 탈다스와 맺은 계약은 단순히 임무에 대한 보상을 받는 형태다. 즉, 10명으로 해결하건, 20명으로 해결하건 받는 비용은 똑같다는 말이다.

“지금 모아놓은 돈으로는 길어야 3개월 정도가 한계인가.”

용병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돈이고 제때 돈이 지급되지 않으면 사기가 팍팍 떨어져서 전투력이 개판이 된다. 심지어 한두 달은 참을지 몰라도 그 이상 체불이 지체되면 용병단을 떠나게 되고 그 상태로 한 달만 지나면 용병단은 와해되고 만다.

“서둘러 자리를 잡아야겠군.”

* * *

그렇게 노바라로 돌아온 나는 곧장 상단장에게 그간의 일을 이야기했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걸 얘기한 건 아니고 적당히 가공해서 얘기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심각성을 파악하기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후우, 저도 대강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만, 역시나 그랬군요.”

“여기 있는 게 증거물들입니다. 문서의 내용이 외부에 알려지면 큰 혼란이 일 테니 상단장님만 확인해보십시오.”

“감사합니다. 정말 큰일을 해주셨군요.”

“그건 그렇고 상단장님. 이제 어쩌실 겁니까?”

“뭘 말입니까?”

“몰라서 되묻는 건 아니시지요?”

내 말에 상단장은 두 눈을 감고 장고에 빠졌다. 나는 지금 상단장의 여동생을 처리하자고 제안했고 그는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여동생을 처리한다는 게 걸리는 건지, 아니면 영주와 맞선다는 사실에 겁먹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영주와 싸우진 않더라도, 영주가 우리에게 해코지하지 못하게 팔을 잘라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대로는 계속 공격당할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단장. 고통스럽겠지만, 고름은 째야 합니다. 방치할수록 주변의 살도 썩어들어갈 겁니다.”

“…….”

“하이르 앗 딘이 다시 한번 공격하면 그땐 버티지 못할 겁니다. 만약 상단장님께서 하이르 앗 딘과의 전면전을 원하신다면, 저는 이 일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습니다.”

약간의 협박성 발언을 내뱉으며 상단장을 강하게 압박하자 그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는지 결연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좋습니다. 그럼 용병단장님께서 절 대신해 칼을 휘둘러 주시겠습니까?”

“그러지요. 그게 내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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