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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바이킹이 되었다-18화 (18/205)

▣ 018화

“히에에에에엑! 흐아아아아아! 흐어어어어어엉!!!”

내 인사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는 기겁하면서 비명을 내지르는 리액션을 보여주었고 나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리액션이 맛집이라서 만족스럽다. 하긴, 길드장 정도 되면 저 정도 짬은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지금 만나~ 당장 만나~”

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미친 듯이 도끼를 내려찍었고 안 그래도 걸레짝이 됐던 문은 비틀린듯한 비명 소리를 내며 박살 났다.

히얼스 쟈니 업적을 완료하셨습니다.

― 게임의 장르를 공포게임으로 바꾼 당신에게 감탄을 표하며 ‘도끼 살인마’ 칭호를 수여합니다.

― 도끼 살인마 : 도끼를 다루는 실력이 늘어나며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 확률이 늘어납니다.

“거 참, 뜬금없네.”

나는 피식 웃으며 시스템 창을 끈 뒤 내 눈앞에 있는 길드장을 바라보았다.

“흐이이이악!”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그는 겁에 질린 돼지마냥 비명을 내질렀는데 그나마 자신과 나라는 괴물을 차단해주던 방벽이 사라지자 정신이 반쯤 가출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그를 도살하기 위해 느긋하게 도끼를 빙빙 돌리며 천천히 걸어 나갔고 그 순간 벽 뒤에 숨어있던 길드장의 수하가 나를 기습해왔다.

카앙!

길드장이 숨겨뒀던 비장의 한 수는 웃음이 나올 만큼 허무하게 막혔고 상대의 눈동자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그에게는 미안하지만 알기 싫어도 알 수밖에 없는 게 애초에 그림자가 비치는 데다 길드장은 비명을 지르는 와중에도 눈동자가 특정한 곳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기에 기습을 예측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사람이 둘이었는데 갑자기 하나가 증발한 것도 웃긴 일이지.

“실력은 나쁘지 않군. 아마 다음번에는 성공할지도 모르겠어. 물론 네놈에게 다음 기회라는 건 없겠지만.”

나는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상대를 한껏 비웃어준 뒤 도끼를 휘둘러 단숨에 상대의 목을 베어냈다.

퍼어억!

사내의 ‘머리였던 것’이 도끼날에 수확 당해 바닥을 구르자 길드장은 비명도 못 지르고 그대로 벽에 주저앉았고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길드장을 바라보았다.

이미 길드장의 죽음은 정해진 수순이었지만, 심심풀이 겸 혹시 알아낼 정보가 더 있을까 해서 조금만 더 살려두기로 했다. 원래 고양이도 쥐를 죽이기 전에 가지고 놀지 않던가.

“안녕하신가. 이곳에서 돈 냄새가 나서 한번 와봤는데 내가 제대로 맡은 모양이군.”

내가 당장 도끼를 휘두르며 달려드는 대신 별다른 위해를 가하지도 않고 말을 건네자 그는 뭔가 지레짐작이라도 했는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어쭙잖은 위엄을 드러내며 호통쳤다.

“네 이놈!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런 무례한 짓을 벌이는 것인가!?!”

말이 통한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저렇게 기세등등해지는 게 웃긴 일이지만… 원래 말이 안 통하는 미친놈이 제일 무섭지 않던가.

“글쎄… 다른 건 모르지만, 돈이 많다는 것 하나는 알고 있지.”

실제로 입고 있는 옷을 보면 귀한 비단에, 그보다 더 귀하다는 보랏빛 염료를 물들인 옷을 입고 있었으며 두툼한 손가락과 목에는 보석으로 세공된 반지며 목걸이가 걸려있었다.

“본인은 카메리 염료길드의 길드장이다!”

“오, 생각했던 것보다 거물이셨군. 뭐, 호위병들을 여럿 두고 있는 걸로 봐서 확실히 귀하신 분일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

“알면서 감히 날 습격하다니! 내 뒷배에 누가 있는 줄 아느냐!?”

“흠, 누가 있지?”

“듣고 놀라지나 말아라. 이곳 노바라의 적법한 계승자이자 아데우스 가문의 영주! 볼프강 아데우스 님이 바로 나의 후원자이시니라!”

“흐음….”

아무래도 저놈은 내가 단순히 약탈을 하기 위해서 온 도적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게 아니고서야 자기 뒷배를 저렇게 술술 불 리가 없지.

“그뿐인 줄 아느냐? 레비아탄 상단의 상단장이 나의 후원자로 있으며 수많은 귀족분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게 바로 나이니라!”

저렇게 자화자찬을 하는데 낯뜨겁지도 않나? 어떻게 자기 잘났다는 소리를 저런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얘기할 수 있지?

아무튼, 자기 입으로 자백을 하는데 녹음을 할 수 없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래도 뭐, 바지사장에게 받아낸 장부도 있고 이곳을 뒤지다 보면 쓸만한 자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이라도 네놈의 죄를 뉘우친다면, 내 특별히 그대를 용서하고 크게 써주도록 하겠다. 장담컨대 나를 섬긴다면 돈과 여자, 부와 명예가 그대와 함께할 것이다!”

나름대로 배포는 있는 모양인데 상대를 잘못 골랐다. 지금 와서 줄을 갈아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데다 길드장이 내미는 동아줄은 썩어있었으니까.

“괜찮은 제안이긴 한데…… 그러는 자네는 내가 누군 줄 아나?”

“누, 누구십니까?”

거창하게 자기소개로 자신을 한껏 부풀리며 상대를 협박함과 동시에 미끼를 통해 회유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전히 껄렁껄렁한 표정으로 대꾸하자 상대의 기세는 쭈그러들었다.

“누구일 것 같나?”

“혹시… 귀족 나으리십니까?”

그는 내 눈치를 보며 공자도 박수 치며 엄지를 치켜올릴 만한 존댓말을 입에 담았고 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래도 나름 큰 길드의 길드장인데 포커페이스는커녕 저렇게 변화무쌍한 표정을 보여주는 걸 보면 역시 죽음의 위기 앞에서 자존심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닌 모양이다.

“아니, 널 죽일 사람이지.”

“왜, 왜 나를 죽이겠다는 거요? 나는 그대와 아무런 은원도 없지 않소.”

누군가 현대인이 싸가지가 없는 건 도끼에 머리가 쪼개질 염려가 없어서라는 우스갯소리를 한 적이 있는데 눈앞의 길드장을 보아하니 썩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눈앞에서 널 죽이겠다고 해도 저렇게 공손한 표정과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걸 보면 말이다.

“글쎄, 아까 말한 자네의 뒷배가 자네를 죽이라고 하더군. 참 아이러니한 일이야. 그렇지?”

“뒷배라면… 설마 영주님이 나를 죽이라고 명령했단 말이오!?”

물론 내가 말한 뒷배는 영주가 아니었지만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은 채 미소만 지었고 그의 얼굴은 거무죽죽하게 썩어들어갔다.

“제발, 제발 날 살려주시오. 나는 아무런 죄도 없소. 그냥 영주님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오.”

“나도 시킨 대로 일할 뿐이야. 자네도 잘 알지 않나?”

물론 영주가 시킨 건 아니지만 말이다.

“생각해보시오. 날 죽이면 그대 역시 언제 팽당할지 모르는 일 아니오. 날 죽이려는 게 비밀 엄수를 위해서일 텐데 그대라고 못 죽일 것 같소?”

그 말이 일견 그럴듯해 보였기에 나는 들어 올렸던 도끼를 살며시 내려놓았고 그걸 본 길드장은 내가 맘을 바꿀세라 입에 게거품을 물며 나를 흔들기 시작했다.

“그것 보시오. 내 말을 듣고 주저한 것만 봐도 당신 역시 영주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부족한 것 아니오. 보아하니 떠돌이 용병 같은데 차라리 나를 죽이는 대신 내게서 돈을 받고 멀리 떠나는 게 어떻소? 내 목숨값은 후하게 쳐 드리리다.”

“흠… 확실히 나쁜 제안은 아니야.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해. 너도 그렇고 영주도 그렇고 날 쫓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있나? 나도 비수 하나는 숨겨둬야 하니 좀 더 그럴듯한 정보를 줘 봐.”

내 말에 길드장은 머리를 굴리기 시작하더니 자신이 아는 정보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새롭게 취임한 볼프강 영주는 국왕에게 바치는 세금을 빼돌리고 있소.”

“어떻게?”

돈을 빼돌리는 방법이야 많지만, 그 빼돌리는 방법이 불법인가 편법인가는 중요한 문제다.

“인구수 장부를 조작하고 병충해나 역병, 가뭄, 홍수와 같은 천재지변으로 인한 피해를 부풀려 보고해 세금을 감면받고 그 차액을 빼돌리고 있소.”

영주들이 뒷돈 챙기는 거야 뭐 공공연한 비밀이라서 고급 정보는 아니다. 애초에 신성 제국은 각 지방의 영주가 강력한 자치권을 가지고 있어서 세금 삥땅 치는 건 술안줏거리도 못 된다.

배 째라며 세금을 안 내는 놈들도 많은데 세금을 삥땅 칠지언정 꾸준히 납부하는 볼프강 정도면 성실 납세자지.

“자네 목숨값이 그렇게 싸던가?”

내가 도끼날을 만지작거리며 얘기하자 그는 얼굴이 핼쑥해져서 바로 다음 정보를 뱉었다.

“볼프강 영주는 자신의 자금줄을 꿰차기 위해 레비아탄 상단을 잡아먹으려 하고 있소. 실제로 얼마 전 상단장이 습격을 당했는데 그게 하이르 앗 딘에게 의뢰를 해서 그렇게 된 것이오.”

“하이르 앗 딘이라… 천하의 둘도 없는 도적놈이지.”

“귀하도 잘 아시는구려. 그런 도적놈과 손을 잡은 사실이 세간에 퍼지면 영주가 공적으로 몰리는 건 순식간이요.”

“쓸만하긴 하지만 어떤 미친놈이 범죄를 저지르며 증거를 남기겠나. 보나마나 일 터지면 꼬리를 잘라버리겠지.”

“…그렇소. 실은, 레비아탄 상단장과 상단의 운영권을 두고 다투는 여동생이 있는데 그녀가 그 일을 전담해서 했다고 하더군.”

“콩가루 집안이군. 그래서?”

이미 아는 정보이지만 난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물었고 그는 내 눈치를 보며 마저 이야기했다.

“그녀가 이번에 상단장을 완전히 끝장내기 위해 다시 하이르 앗 딘을 만나러 간다고 했소.”

생각보다 중요한 정보가 튀어나왔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고 물었다.

“그게 끝인가? 아직도 조금 모자란 것 같은데.”

내가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서자 그는 똑같이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며 진정하라는 듯 날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이건 정말 귀중한 정보인데, 실은 노바라와 경계를 맞대고 있는 밀라노 근방의 산맥에서 철광산이 발견됐소. 잘 알겠지만, 경계 근처의 산맥 내부에서 광산이 발견된 경우 이게 누구 것인지 특정하기가 힘들지 않소?”

“그거야 그렇지.”

“그래서 볼프강 영주는 이걸 밀라노의 칼리나 변경백과 나누기 싫어서 몰래몰래 캐내고 있소.”

솔직히 심심풀이로 한번 툭 찔러봤는데 정보가 아주 그냥 우수수 떨어져 내린다. 애초에 이런 기밀에 가까운 정보를 알고 있으니 본인도 영주가 암살자를 보냈다고 생각한 거겠지.

내 고인물의 감이 얘기하건대 어차피 내가 아니었어도 길드장은 영주의 손에 죽었을 것이다. 가령, 술을 마시고 하늘을 나는 시도를 한다든가 하는 등의 매우 불행한 사고를 당해서 말이다.

“좋아, 마음에 드는 정보로군.”

“후우, 그럼 이제 날 살려주는 거요?”

“아, 근데 내가 하나 깜빡 잊고 말 안 한 게 있는데… 내 고용주는 레비아탄 상단의 상단장이야.”

“그게… 무슨….”

길드장은 녹이 슨 기계처럼 버벅이며 말을 뱉었고 나는 도끼를 가볍게 쥐며 마저 이야기했다.

“뭐기는, 자네와 한패인 상단장의 여동생이 아니라 자네의 적인 탈다스 상단장이 내 고용주다 이 말이지. 그리고 자네는 적에게 고급 정보들을 주절주절 떠든 셈이고.”

내 말에 길드장은 다리에 힘이 풀리는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더니 내게 애원하기 시작했다.

“제발 살려주시오. 원하는 건 다 주겠소. 도, 돈을 원하시오?”

“네가 주는 돈이 더 많을까? 아니면 네 목이 더 값어치가 있을까?”

그 말에 길드장의 눈에 체념이 어렸고 나는 바로 도끼를 휘둘러 그를 고통 없이 보내주었다. 사방에 피가 튀었지만 나는 무덤덤하게 피를 닦은 뒤 뒤처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꼬박 하루 동안 시체들을 처리하는 한편 은신처를 뒤졌고 증거물들을 확보하자마자 바로 카메리 마을로 향했다.

바지사장은 사흘도 안 돼서 은신처를 털어버렸다는 말에 미심쩍은 눈초리를 보였지만, 직접 가서 죽어있는 호위병과 길드장을 보더니 뛸 듯이 기뻐했다.

그는 이곳에서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게 만전의 준비를 하고 있겠다고 내게 이야기했고, 나는 마을에서 푹 쉬고 가라는 그의 제안도 거절한 채 바로 갈라이트 마을로 향했다.

이번 일로 영주의 왼팔을 잘랐으니, 그가 날 적으로 인지하기 전에 남은 팔 하나도 잘라놔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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