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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바이킹이 되었다-14화 (14/205)

▣ 014화

생각보다 오래 갈라이트에 머무르게 될 것 같았기에 나는 마을로부터 물자를 받으면서 지원자들을 뽑아 자경단으로 훈련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싸움 실력 자체는 형편없었지만, 대부분 농사를 짓던 이들이라 기본적인 골격과 힘은 쓸만했다. 무엇보다 살인 기계를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몸과 마을을 지킬 정도만 육성하는 거였기에 과정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창 똑바로 들고! 손에 힘 빼지 마!”

내가 호통치자 창날이 내려가 있던 자경단원 몇몇이 움찔거리며 다시 창날을 들어 올렸고 나는 그들 사이를 거닐며 이야기했다.

“지금 너희가 받는 훈련이 힘들고 지칠지라도 지금 너희가 흘리는 땀방울 하나가 실전에서는 피 한 방울이 된다.”

물론 나는 이런 원론적인 얘기만 하지는 않았다. 내가 훈련받을 때도 저런 소리 들으면 개소리 지껄이지 말라고 욕부터 나왔으니까.

“도적놈들에게 너희가 일군 노력의 결실을 빼앗기는 것도 억울한데 너희의 팔다리까지 헌납할 텐가?”

나는 일부러 그들의 아픈 곳을 찌르며 투지를 끌어올렸고 그 투지가 식기 전에 중점만 잡아서 속성으로 가르쳤다. 어차피 우리가 이곳에 천년만년 있을 것도 아니고 도적들만 격퇴하면 되는 것 아닌가.

“거기 너! 방패는 장식인가!? 네가 똑바로 방패를 들어야 네 동료가 살아남는다! 팔이 빠질 것 같아도 방패를 더 높이 들어!”

창과 방패. 이처럼 초보자에게 어울리는 무기가 또 있을까. 방패로 막고, 찌르고. 방패로 막고, 찌르고.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아주 간단한 동작 메커니즘이다. 이걸 못 하면 자경단이고 나발이고 그냥 평생 도적들 노예로 살아야지.

“무턱대고 찌르지 마! 상대와의 거리를 재고! 아군의 위치를 확인하고! 대열을 맞춰서 함께 공격해! 네놈들이 혼자서 무쌍 찍는 사자심왕이라도 되나? 항상 다대일로 뭉쳐서 공격해!”

물론 초보자에게 어울린다는 건 다루기가 쉽다는 거지 그게 만만한 무기라는 뜻은 아니었다. 입문이 쉽다고 마스터가 쉬운 건 아니니까.

특히 창 같은 경우 응용을 하면 창대의 길이를 조절하며 상대의 무기에 따라 유동적으로 대응하거나 풍차처럼 크게 휘두르며 창날로 대가리를 터뜨리는 등 다양한 전략 전술이 있다.

하지만 저들에게는 대열을 유지하며 찌르기 정도만 가르쳐도 도적들 정도는 간단하게 격퇴할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탈영병이나 패잔병들이 도적화된 게 아닌 이상 나머지 놈들은 어중이떠중이나 다를 게 없다.

막말로 주민들이 농기구가 아닌 무기를 들면 도적이 되는 거고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보건대 그런 놈들은 다 좆밥이었다.

그렇게 근 일주일 정도 마을에 머물면서 자경단을 훈련한 나는 촌장을 찾아갔다.

“어서 오십시오. 나으리.”

내가 자경단을 허투루 가르치는 게 아니라 하루 대부분을 가르치는 데 쏟고 있는 걸 알고 있어서인지 나에 대한 촌장의 존중과 공손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근 일주일간 기초는 만들어놨소. 맘 같아서는 더 가르치고 싶지만, 그래서야 도적놈들을 속이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

“그럼 지난번에 말씀하신 대로 할 생각이십니까?”

“도적놈들도 우리가 떠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그래야겠지.”

아마 예정대로라면 도적들이 이 마을을 습격하고도 남았겠지만, 우리가 머물고 있느라 눈치를 보고 있을 테니 우리가 떠나자마자 좋다고 습격해올 것이다. 물론 그놈들도 머리가 장식품이 아니라면 하루 이틀 정도 간을 보겠지만 말이다.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촌장과 몇 마디 대화를 더 나눈 뒤 바로 병력을 끌고 갈라이트 마을을 떠났다. 물론 마을을 아예 떠나는 게 아니라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마련해둔 임시거처로 갔는데 여기는 지난 일주일간 힐데를 비롯한 내 휘하의 병력들이 만들어 둔 곳이었다.

내가 병력들을 가르치는 동안 그들은 놀고만 있던 게 아니라 촌장의 도움을 받아 마을 사람들 몰래 마을 어귀에 임시 거처를 마련해놓았다.

촌장에게 지원받은 물자를 일부 빼돌려 이곳에 쌓아두었고 다행히 우리가 가져온 식량을 포함해 근 일주일은 머물만한 물자를 비축해 둘 수 있었다.

“생각보다 괜찮은데?”

“밤이 되면 습기가 차서 기온이 떨어지니 최대한 아늑하게 만들어 봤습니다.”

“대단한데? 요새는 교단에서 그런 것도 가르쳐주나?”

왜 교단에서 이런 생존 기술을 가르치는 건가 의문이 들 수도 있는데 여러 교단 중에서도 정화교단은 수많은 사제와 수녀들을 저 먼 오지까지 순례시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생존 기술에 능통할 수밖에 없었는데 막말로 길거리에서 노숙하는데 불 피우는 법을 모르면 어찌 되겠는가?

산속을 헤매다가 식량이 다 떨어졌는데 먹을 걸 채취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사냥을 했는데 도축을 못 한다면? 길을 잃었는데 방향을 읽는 법을 모른다면?

그래서 정화교단의 사제들은 견습 사제도 그 하나하나가 베어그릴스와 같은 생존 전문가들이었고 이들은 군대와 함께 행군할 때 진가를 발휘했다.

추운 겨울날, 몸을 따뜻하게 만드는 법과, 불의 온기를 유지하는 법, 동상에 안 걸리는 법, 한여름에 날벌레들을 퇴치하는 법, 요리를 상하지 않게 하는 법과 같은 것들에 능통하다 보니 병사들의 전투력 유지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물론 힐데는 그런 내 예측에 무슨 헛소리 하냐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대꾸했다.

“또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습니까? 전부 당신이 억지로 가르친 것 아닙니까?”

“내가?”

“진짜 치매라도 온 겁니까? 아직 나이 마흔도 안 돼서 치매에 걸리면 조금 곤란한데요.”

“뭐, 그래도 네가 나 안 버리고 계속 돌봐줄 거잖아.”

지금까지 힐데가 내가 보여준 행동과 헌신을 생각해보면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날 버리지 않을 것이다. 아마 호감도는 몰라도 신뢰 자체는 맥스를 찍지 않았을까?

“물론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그 자신만만한 얼굴을 보니 한 대 때려주고 싶군요.”

말을 마친 그녀는 피곤한 듯 작게 하품을 하며 슬쩍 내 무릎을 바라보았고 그 모습을 보자 갑자기 과거 라그나르의 기억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본의 아니게 그의 기억을 엿본 나는 땅굴의 벽에 몸을 기댄 뒤 내 무릎을 팡팡 치면서 그녀를 불렀다.

“힐데.”

“왜 그러십니까?”

“피곤할 텐데 여기에 와서 눈 좀 붙이지 그래?”

물론 내 행동을 본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흔들림 없이 나를 매도했다.

“무릎베개라니, 제 나이가 몇인지 알고는 있습니까? 이쯤 되면 진짜 치매가 아닌지 궁금해지는군요.”

물론 말을 하면서도 그녀의 시선은 내 무릎에 고정되어 있었다. 본인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너무 티가 나긴 하네.

“뭐 어때? 우리 사이에.”

“당신한테는 부끄러움과 창피함이라는 감정도 없는 모양이군요.”

“그렇게 매몰차게 말하지 말고.”

“하아….”

힐데는 꽤 거부감이 있는 듯했지만, 내가 끈질기게 권유하자 마지못해 내게 다가오더니 특유의 불만과 경멸이 뒤섞여있는 표정으로 날 향해 이야기했다.

“아시겠습니까? 이건 결코 제가 원해서 당신의 무릎을 베는 게 아니라, 라그나르 당신의 음습하고 뒤틀린 욕망을 충족시켜주기 위해서 사제인 제가 봉사를 해주는 겁니다.”

“그래그래.”

“별로 이해하는 표정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뭐, 좋습니다.”

그녀는 피곤했는지 더 이상 얘기하지 않고 그대로 내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다만 특이하게 얼굴을 내 쪽으로 향한 채였는데 다소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긴 했지만, 이미 깊게 잠든 듯했고 깨우기도 뭐해서 그냥 내버려 뒀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머리를 대자마자 잠에 빠지겠는가.

그렇게 잠든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던 나 역시 그간 피곤이 누적되어 있었는지 수마가 찾아왔고 곧장 잠에 빠져들었다.

* * *

[사흘 뒤]

“흐으으읍… 하아. 이건 뭐 지렁이가 된 기분이네.”

길게 기지개를 켠 나는 푸념과 함께 몸 여기저기를 풀어주며 스트레칭을 해주었다. 하루 이틀이면 몰라도 사흘째 서늘하고 습기 찬 땅굴 속에서 지내다 보니 몸 상태가 영 말이 아니었다.

“촌장으로부터 안드레이라는 배신자가 어젯밤에 몰래 마을을 나서는 걸 확인했다고 하니 빠르면 오늘, 늦어도 내일이면 습격할 겁니다.”

“도적이면 도적답게 깡으로 밀고 들어와야지 이건 뭐 간잽이들도 아니고… 빨리 끝내고 따뜻한 물에 몸을 푹 담그고 푹신한 침대에서 자고 싶다.”

짚을 비롯해 이불과 헝겊으로 나름 푹신푹신한 잠자리를 만들었다지만 침대에 비할 바는 아니었고 세면도 제한됐기에 나는 우울한 얼굴로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런 날 보며 힐데는 한마디 툭 내뱉었다.

“고작 사흘도 안 지났는데 뭘 그러십니까.”

“신성력으로 청결 유지하는 네가 할 소리야?”

“저는 사제이지 않습니까. 신을 모시는 자는 언제나 청결해야 합니다.”

그렇게 얘기하니 또 할 말이 없기는 하지만 왠지 모르게 저건 반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지사지라고 그녀를 끌어안고 면도를 하지 못해 까끌까끌해진 수염을 그녀에게 비비면 내 고통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자 힐데는 인상을 팍 쓰며 내게서 슬금슬금 멀어졌다.

“별로 좋은 생각은 하는 표정은 아닙니다만… 혹시라도 옛날처럼 수염을 비비면 정말 화낼 겁니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아시겠습니까?”

“흐흐, 힐데 너처럼 감이 좋은 꼬맹이는 싫어하지 않아.”

“이, 이… 미치셨습니까!?”

힐데가 뭐라 하건 나는 히죽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갔고 그녀가 기겁한 표정으로 내게서 도망치려 할 때 밖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병사가 달려와서 보고했다.

“단장님. 마을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약속된 신호에 나는 몸을 닦고 있던 수건을 내팽개치고 서둘러 갑옷을 챙겨입고 무기를 꺼내 들었다. 휘하의 병사를 비롯해 힐데 역시 이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서둘러 무장을 끝냈고 나는 한달음에 마을을 향해 달려갔다.

예상대로 수많은 도적들이 마을을 급습하고 있었고 내가 훈련한 자경단이 간신히 적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적들을 동요시키고 아군의 사기를 끌어 올리기 위해선 모두의 시선을 끌어모아야 했기에 나는 힐데를 바라봤고 그녀는 달리는 말 위에서 사자처럼 포효했다.

“신이시여! 불경한 자들을 정화하고 구원할 힘을!!!!”

― 정화교단의 전투집념 버프가 열화되어 광역으로 적용됩니다.

― 정화교단의 전투속행 버프가 열화되어 광역으로 적용됩니다.

― 정화교단의 전투의지 버프가 열화되어 광역으로 적용됩니다.

카랑카랑하면서도 기운 넘치는 그녀의 목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고 동시에 온갖 자잘자잘한 버프들이 달라붙었다.

그녀의 버프와 더불어 강력한 지원군의 등장에 자경단의 사기는 뜨겁게 끓어올랐고 반대로 도적들은 당황한 눈초리였다.

생각 외로 자경단의 저항이 거센 데다가 뒤섞여서 난투를 벌이고 있었기에 급하게 발을 빼는 것도 쉽지 않았다.

거기에 나를 비롯해 힐데와 내가 이끄는 레이븐 용병단은 격파한 도적단의 수가 백을 넘어갈 만큼 전투의 스폐셜리스트였기에 아군의 급습 한 번에 도적들은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처참하게 박살 나고 말았다.

순식간에 자신들을 괴롭히던 도적들이 궤멸하자 촌장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나와 용병단을 바라보았고 마을 사람들은 만세를 외치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사람의 사체와 유혈이 낭자한 곳에서 기뻐하는 것도 웃긴 일이지만, 원래 생존과 전쟁이라는 게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고 나는 병사들이 도적들의 시체를 뒤지며 찾은 전리품 중 하나인 피에 젖은 편지를 들고 촌장에게 다가가 그에게 건네주며 이야기했다.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네. 자네 손으로 매듭지어야 할 것도 있겠지?”

내가 뭘 얘기하는지 깨달은 촌장은 굳은 얼굴로 내게서 도끼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뭔가 결심한 듯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배신자를 향해 다가갔다.

“안드레이.”

“예. 촌장님!”

“왜 마을을 배신했지?”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배신이라니요? 확실히 제가 겁이 많아 싸우는 데 주저하긴 했습니다만 그걸 가지고 배신자라고 말씀하시다니….”

촌장은 그의 대꾸에 피식 웃으며 내게서 받아든 편지를 그의 앞에 떨어뜨렸고 내용을 확인한 배신자는 아까와는 다르게 당황했는지 말까지 더듬으며 변명했다.

“오, 오, 오해입니다. 촌장님. 제게 변명할 기회를 주신다면… 컥!”

하지만 촌장은 더 들어볼 필요도 없다는 듯 사형집행인처럼 도끼를 위로 치켜든 뒤 순식간에 그의 머리를 내려찍었고 배신자는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절명했다.

몇 년간 알고 지내온 이를 죽였다는 충격과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 때문인지 촌장은 비틀거렸고 나는 그런 그의 어깨를 두들겨주며 작게 위로했다.

“고생했네.”

잔인하고 눈살이 찌푸려지는 일이었지만 이건 마을의 촌장인 그가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해야 할 일이었다.

어쨌거나 이 마을의 지도자는 촌장이었고 그는 배신자의 말로를 마을의 모두에게 보여줘야 했으며 떨어진 위엄과 지도력, 결단력을 다시 세워야 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렇게 도적들의 습격은 기나긴 기다림의 과정에 비하면, 너무나도 손쉽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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