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바이킹이 되었다-13화 (13/205)

▣ 013화

나는 즉각 병력을 데리고 이동하면서 상단장이 건네준 문서를 정독했다. 옆에서 힐데가 보충 설명을 해줬는데 딱히 새로운 정보는 없었다.

“바로 카메리로 가실 겁니까?”

“아니, 가기 전에 여기 이 마을….”

내가 지도에 나와 있는 마을을 가리키며 말하자 힐데가 바로 대답했다.

“갈라이트 말씀이십니까?”

“그래. 거기부터 들러서 정보부터 수집하고 추후 어떻게 움직일지 정할 거야.”

이 게임에서 퀘스트 받았다고 신나서 룰루랄라 목적지에 가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다. 만약 이 게임이 일반적인 게임의 퀘스트마냥 NPC한테 가서 말 걸고 업무 처리하고 경험치랑 보상받는 게임이었다면 망겜 소리는 안 들었겠지.

일단 이 게임은 퀘스트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선 유저가 직접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른바 방 탈출 게임 같은 건데 본인이 힘이 되면 그냥 문고리를 잡아 뜯고 나가도 상관없고 능력이 되면 창문에서 레펠을 해도 되고 벽을 폭파시키고 나가도 될 정도로 자유도가 높은 게임이었다.

심지어 아무도 안 보이는 곳에서 의뢰주를 암살하고 보상은 물론 가진 재산을 전부 털어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니 더 말할 게 있을까.

아무튼, 이대로 카메리의 염료 길드에 가봤자 제대로 된 얘기도 못 듣고 쫓겨날 게 뻔했다. 그러니 일단은 정확한 정보가 필요하다. 세이브 로드도 안 되는데 괜히 헛다리 짚어서 일을 망칠 수는 없잖은가. 적어도 어떤 놈을 조져야 하는지는 확실하게 파악하고 가야 한다.

그렇게 나는 지도를 보며 병력을 끌고 갈라이트 마을로 향했다. 마을 자체가 조금 외진 곳에 있어서 살짝 헤매긴 했지만, 무사히 마을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자주 쓰는 길이 아니었는지 제대로 관리도 안 되고 엉망이었지만 도로 가든 모로 가든 서울만 가면 그만 아니던가. 그렇게 마을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내 눈에 이상한 광경이 포착됐다.

“잠깐만. 저거 혹시….”

“왜 그러십니까?”

“다들 엎드려서 몸 숙여봐.”

갑작스런 내 명령에 수하들은 물론이요 힐데까지 얼굴을 찌푸렸지만, 일단은 명령이라 들었고 나는 힐데에게 손짓하며 내 옆으로 불러들였다.

“뭡니까 갑자기?”

“저기 저거 보여?”

내 말에 힐데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앞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되물었다.

“저 사람들이 뭐가 어때서 그러십니까?”

“저거 도적 새끼들이랑 도적 끄나풀이야. 아마 끄나풀은 갈라이트 마을에 살면서 도적이랑 내통하는 거겠지.”

“…예?”

힐데는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지만 내 고인물의 감이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얼굴이나 잘 기억해 둬. 잘하면 대박 칠 수도 있을 것 같으니까.”

“으음, 일단 알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일련의 무리가 헤어지는 것까지 지켜본 뒤에야 은신을 해제했고 힐데는 찌뿌둥한 듯 기지개를 길게 키더니 내게 다가와 물었다.

“그런데 라그나르. 대체 어떻게 저들이 도적이라고 확신하는 겁니까?”

고인물의 감이라고 할 순 없으니 나는 적당히 둘러대기로 했다.

“잘 생각해봐. 여긴 애초에 버려진 길인 데다 주변을 경계하며 몰래 만나는 것만 봐도 구린내가 풀풀 풍기지 않아? 애초에 저놈들 행색만 봐도 대강 답이 나오잖아?”

원래 도적놈들은 딱 보면 저 새끼 도적이네 하는 촉이 온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확실히 수상쩍은 면도 있기는 합니다만….”

여전히 힐데는 긴가민가한 얼굴이었고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한마디 했다.

“아니면 말고.”

어쨌건 중요한 건 정보를 얻는 일이기에 나는 부대를 이끌고 갈라이트 마을로 들어갔다. 마을 자체는 그렇게 크진 않았지만, 여관과 식당도 있는 게 며칠간 머물기에는 괜찮아 보였다.

나는 바로 여관에 병력을 맡긴 뒤 힐데와 함께 촌장의 집으로 향했는데 다행히 촌장은 저택에 있었고 우리를 경계하면서도 맞아주었다.

“무슨 일입니까? 이방인이시여.”

“촌장. 그대에게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네. 잠깐 시간 좀 괜찮겠나?”

“들어오십시오.”

촌장은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나와 힐데를 집 안으로 들였고 차를 우리에게 건네주었다. 보아하니 경계심이 많은 것 같은데 문전박대를 당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겨야 할 것 같다.

“자네 혹시 카메리에 대해서 좀 알고 있나?”

“글쎄요.”

“혹시 그곳에 있는 염료 길드에 대해서 뭐라도 알고 있는 게 있나?”

“잘 모르겠군요. 생각이 날 듯 말 듯 합니다만.”

내가 뭘 물어도 촌장은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어물쩡 넘어갔고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애써 눌러 담았다.

“더 물어보실 게 없다면 일어나봐도 되겠습니까?”

촌장은 명백한 축객령을 내렸고 나는 결국 귀찮지만 일 좀 도와주면서 호감도 작을 한번 해주고 물어보기로 했다. 하는 김에 부대의 병력도 좀 충원하고.

내가 굳이 호감도 작을 하려는 이유는 간단했는데 이 게임은 내 행동에 대한 NPC의 반응을 눈으로 확인하는 게 불가능하다.

즉, 일반적인 게임에서 NPC에게 ‘시발년아!’라고 외치면 ‘호감도가 깎였습니다.’라거나 ‘NPC는 이 일을 기억할 것입니다.’와 같은 시스템 로그가 남는다.

그럼 그걸 보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응과 대가를 확인할 수가 있는데 이 게임은 그런 게 아예 없다는 점에서 현실과 똑같았다.

내 선택지가 제대로 된 건지 아닌지조차 판단할 수가 없고 똑같은 행동을 취해도 NPC의 성향이나 가치관, 당시의 상황 등등에 따라 대응이 달라서 100% 정해진 정답은 없다.

심지어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에서 통수치는 일도 비일비재했기에 완벽이라는 건 없었다. 그저, 이런 행동을 하면 대부분은 이런 식으로 반응한다고 미루어 짐작할 뿐. 그 때문에 눈앞의 촌장을 겁박해서 정보를 알아내 봤자 그게 진실인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실제로 이 때문에 NPC의 말을 철석같이 믿다가 통수 맞고 게임오버 당한 뉴비들이 울분에 가득 차 게임 커뮤니티에 ‘NPC들이 갑자기 배신해서 뒤졌는데 이 새끼들 뭐임?’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오는 건 종종 있는 일이었다.

아무튼, 그런 와중에 100% 확률로 호감도를 올리는 방법이 몇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마을의 일이나 촌장을 개인적으로 도와주는 것이다. 물론 똑같은 일을 해도 호감도가 얼마나 올라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촌장. 혹시 내가 도와줄 일은 없나?”

내 말에 촌장은 나와 힐데를 쓱 훑어보더니 우물쭈물하며 입술을 달싹였다. 나는 인내심을 발휘해 그가 얘기하기를 기다렸고 마침내 그는 작은 한숨을 쉬며 이야기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자경단 조직을 도와주실 수 있으십니까?”

“자경단? 짐승이 마을을 습격이라도 하는 겁니까?”

힐데의 물음에 촌장은 자조적으로 웃으며 얘기했다.

“짐승이라… 확실히 짐승 같은 놈들이 마을을 습격하기는 하지요.”

“도적들에게 습격을 받는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부디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이대로 계속 도적들에게 털리면 마을은 더 이상 존속할 수가 없습니다.”

“도적들 때문에 외부인에 대한 경계가 그렇게 심했던 건가?”

“예. 아마 며칠 뒤면 도적놈들이 수금하기 위해 올 텐데 이번에 자경단을 조직해 어떻게든 막아내 볼 생각입니다. 하지만 자경단을 조직하고 싶어도 저희는 다 농사나 짓던 사람들이라 애로사항이 많습니다. 부디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흠.”

나는 촌장의 말을 들으며 맹렬히 머리를 굴렸다. 일단 촌장이 대놓고 자경단 얘기를 꺼내는 걸 보면 마을 전체가 도적들과 한통속은 아닐 것이다. 상식적으로 도적과 결탁한 놈이 굳이 도적들을 상대할 수 있는 자경단을 조직해 달라고 할 리가 있겠는가.

다만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고 나는 조금 더 확인을 해보기로 했다. 내가 이렇게 조심하는 건 가끔 도와달라 해놓고 산적이랑 결탁해 용병이나 상단을 털어먹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초보 때는 나도 그렇게 속아서 당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때에는 설마 NPC가 대놓고 플레이어를 속이면서 엿을 먹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으니까.

“차라리 그럴 거면 우리에게 의뢰하는 게 좋지 않겠나?”

“맞는 말씀이지만 의뢰하고 싶어도 돈이 없습니다.”

“그렇군. 그런데 왜 노바라에는 구원요청을 안 했나?”

“몇 번이나 지원을 요청하는 파발을 보냈습니다만 볼프강 백작이 영주가 된 뒤로 저희의 구원요청은 묵살됐습니다.”

표정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만약 저게 거짓말이라면 저 촌장은 남우 주연상을 탈 자격이 있다.

“좋아. 이곳에서 머무는 동안 갈라이트에서 우리의 의식주를 부담하고 내가 아까 물어봤던 정보들에 대해서 알려준다면 도와주도록 하지.”

“말씀하십시오. 제가 알고 있는 거라면 뭐든 답해드리겠습니다.”

“아, 그전에 마을의 누군가가 도적들과 내통하고 있는 것 같더군.”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는 촌장에게 오다 봤던 광경을 이야기했고 그의 인상착의를 말해주자 촌장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했는데 툭 건드리면 활화산처럼 폭발할 것만 같았다.

“안드레이 이 개자식이….”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참에 이를 역이용해서 도적들을 소탕하는 게 어떤가?”

나는 촌장에게 내 계획을 이야기했고 촌장은 바로 승낙했다. 아마 그로서는 이번 기회를 놓치면 평생 도적들에게 종속되어 살아야 할 텐데 그건 죽기보다 싫을 것이다.

촌장으로서 마을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과 사명감도 있겠지만, 촌장이라는 자리가 주는 권력의 달콤함도 놓치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거기에 지금의 내게 도적 하나둘 조지는 건 식은 죽 먹기에다 마을 및 촌장의 우호도를 올려놓으면 나중에 여러모로 쓸모가 많다. 내가 다음에 이 마을을 올지 안 올지는 모르겠지만, 호감도 작업을 해서 나쁠 건 없지 않은가.

“그럼 약속대로 자네가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얘기해주게.”

내가 자신들을 도와준다는 약속을 하자마자 촌장은 내 마음이 바뀔세라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총동원해서 이야기했고 나는 촌장을 먼저 찾아온 게 정답임을 깨달았다.

그에게서 얻은 정보를 간단히 정리해보면 이번에 새롭게 길드장으로 취임한 사내는 별다른 영향력도 없었는데 갑자기 길드장에 취임했으며, 최근 염료 길드는 투자가 잘못돼서 파산할 위기에 처해있고, 얼마 전 노바라에서 높으신 분이 카메리 마을에 들렀다 갔다고 했다.

이를 바탕으로 음모론을 세워보면 다음과 같았는데 새롭게 취임한 길드장은 바지 사장이고, 파산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 노바라의 높으신 분과 어떤 거래를 했으며, 그 거래의 결과로 레비아탄 상단과의 거래가 끊어졌다는 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리고 경험상 이는 높은 확률로 들어맞을 것이다. 이렇게 정리해놓고 나니 대강 윤곽이 잡혔는데 복잡해 보여도 이런 문제는 의외로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다. 늘 그렇듯, 물은 답을 알고 있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