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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바이킹이 되었다-8화 (8/205)

▣ 008화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래저래 빨리 온다고 준비는 했는데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조금 늦었습니다.”

나는 그와 가볍게 손을 마주 잡으며 악수를 한 뒤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약속 시각에 늦은 건 아니지만 어쨌건 상대보다는 늦게 온 데다 상대가 갑질을 하기 위해서 잔뜩 벼르고 있었으므로 한 번쯤 달래줄 필요는 있었기 때문이다.

“크흠. 괜찮소. 약속 시각에 늦은 것도 아니니 물자만 확인하고 바로 출발하도록 합시다.”

상대도 귀족인 내가 이렇게 공손히 나오는데 굳이 더 추궁하기도 그랬는지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 지었고 다행히 시작부터 삐꺽거리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물품 검사를 끝마치자마자 징수관은 말에 올랐고 영주의 병력들은 익숙하게 수레를 호위하기 위해서 달라붙었다. 내 손짓에 휘하의 병력들도 수레에 달라붙은 채 호위하기 시작했고 나와 힐데는 상단장이 지원해준 말을 타고 징수관의 옆으로 붙었다.

“스바치치 가문 출신이라고 하셨소?”

“그렇습니다. 북부에 있는 작은 가문입니다.”

“흐음….”

징수관은 내 말에 단순히 고개만 끄덕였는데 날 무시한다기보단 단순히 스바치치 가문에 대해 몰랐기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귀족 가문이라지만 신성 제국에는 수많은 공국과 백국이 난립했고 그 모든 가문을 외우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강동구의 공작 누구누구. 수원 왕국의 누구누구, 합정동의 백작 누구누구 이런 식으로 나라 자체가 쪼개져 있는 판국이다 보니 일일이 외우고 확인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저보다 연배가 높으신 것 같은데 말씀 낮추시지요.”

나이로 보나 현재 직위로 보나 상대가 더 끗발이 높았기에 나는 바로 서열정리를 했고 징수관 역시 거절하지 않고 승낙했다.

“흠, 그럼 그렇게 하세. 그래서 자네는 상단장과는 어떻게 알게 됐나?”

“과거에 그가 북부로 상행을 왔을 때 처음으로 만났는데 그게 인연이 되었습니다. 이번에 가문에서 나오면서 새롭게 용병단을 꾸리게 됐는데 오래된 인연도 만나고 새롭게 둥지도 틀 겸 해서 이곳으로 내려온 겁니다.”

물론 본래의 블라디미르 스바치치가 가문에서 나오면서 용병단을 꾸리는 것 이외에는 전부 다 거짓말이었지만 애초에 확인할 방법이 없었기에 징수관은 그러려니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계시는 분은?”

징수관은 힐데를 가리켰고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정화 교단의 사제이자 제 아내입니다.”

“사제인데 아내라고?”

징수관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되묻자 나는 미소를 잃지 않고 대답했다.

“정화 교단은 사제의 결혼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허어, 그렇구만….”

징수관은 힐데를 힐끔 바라보고는 나를 바라봤는데 궁금한 게 많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초면에 물어보기에는 실례라 생각해서 그런지 입을 다물었고 나는 웃으며 그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정화 교단에서 정식 사제가 되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동안 세상을 돌아다니며 신앙을 전파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며 교단의 이름으로 악을 정화해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혼자서 돌아다니기에는 위험하니 저희와 같은 용병단과 함께 다니는 겁니다.”

“그렇게 함께 다니다 정이 들었다는 얘기구먼.”

“그렇습니다. 징수관님.”

“하하, 그대의 얘기를 듣다 보니 나도 아내를 처음 만났던 때가 기억나는군.”

유부남이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생겨서 그런지 그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 친근한 표정으로 결혼 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얘기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성문에 도달했다.

“레비아탄이라고? 정지!!”

“무슨 일이십니까?”

“수레에 실린 물건을 검사하도록 하겠다. 전부 내려!”

“물품에 대한 신고는 이전에 했고 징수관님을 비롯한 다른 분들이 검수를 마쳤습니다.”

“그건 내 알 바 아니네.”

힐데가 차분한 목소리로 얘기했지만, 경비대장은 막무가내였고 그 얘기를 멀리서 듣고 있던 세금 징수관은 얼굴을 붉힌 채 말을 몰아 앞으로 뛰쳐나가며 소리쳤다.

“지금 뭐 하는 건가!?”

“지, 징수관님?”

“당장 길을 열어라!”

“저… 그게….”

징수관의 호통에도 경비대장은 우물쭈물하며 길을 열기를 주저했고 징수관은 한층 더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내 말이 들리지 않나!!?”

“…알겠습니다.”

경비대장이 손짓하자 경비병들이 길을 열었고 물자를 실은 수레는 아무 문제 없이 성문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노바라에서 어느 정도 멀어지자 징수관은 헛기침을 하며 내게 사과했다.

“크흠, 미안하게 됐네. 최근 밀수와 관련된 문제가 심각해서 검문을 강화했더니 이렇게 된 모양일세. 나중에 내 경비대장을 다시 한번 교육하도록 하겠네.”

“괜찮습니다. 본인의 본분에 충실하였으니 오히려 상을 내려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짐짓 대인배처럼 얘기하자 징수관은 호탕하게 웃었고 나 역시 웃으면서 분위기를 맞췄지만 내 머리는 계속 핑핑 돌아가고 있었다.

뻔히 세금 징수관이 검수를 하고 동행으로 함께 나가는 걸 알면서도 짐을 뒤진다? 수레가 한두 개라면 몰라도 십여 개가 있는데 그걸 다 뒤지고 문서와 대조해서 확인한다면 빨라도 반나절, 늦으면 온종일 걸릴 게 분명했다.

거기에 경비대장 역시 뭔가 억울한 눈빛으로 징수관을 쳐다본 걸 보면 그 역시 이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사주받은 게 분명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경비대장을 부릴 수 있는 이는 노바라의 영주인 볼프강이나 영주의 일가 피붙이 정도는 돼야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까지는 탈다스 상단장이 얘기해주지 않아 긴가민가했었는데 이걸로 레비아탄 상단은 노바라의 영주 가문과 문제가 있다는 걸 재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지금 당장 건드릴만한 문제도 아니었고 내가 나선다고 해결하기도 힘든 문제인 데다 정보도 불확실했기에 일단은 레비아탄의 내부에 산적한 문제들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뭐, 탈다스에게 자세한 얘기는 들은 건 아니었지만, 내부 사정이야 안 봐도 뻔하다. 내부 경영권을 두고 불거진 문제일 텐데 난 그걸 어떤 식으로든 해결할 자신이 있다.

상대를 협박하든, 없애 버리든, 돈으로 찍어누르든, 권위로 박살 내버리든. 방법은 생각보다 다양했으니까. 그리고 그를 위해선 일단 내 눈앞의 세금 징수관과 친해질 필요가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내 밑천을 드러내며 관심 좀 가져달라고 꼬리를 흔들어댈 필요는 없다. 어차피 이번 임무를 끝내려면 두세 달은 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그와 친해질 기회는 무궁무진했으니까.

* * *

그렇게 나는 세금 징수관을 따라 마을을 돌면서 준비해 온 물자들을 각 마을과 거래했다. 거래할 당시의 금액으로 거래가를 미리 정해놓았던 만큼 이득을 보는 경우도, 손해를 보는 일도 있었지만, 거기에 대한 대가는 상단장인 탈다스가 질 문제지 내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니었다.

애초에 탈다스 역시 내게 상인으로서의 자질을 기대하고 여기에 넣은 건 아닐 테니까. 물론, 귀족이라는 내 지위를 이용해 마을 사람들을 슬쩍 겁박하면 기존의 금액에 추가로 더 받아낼 수 있겠지만, 이는 신뢰의 문제인 데다 안 그래도 영주에게 미움받고 있는 상태에서 트집 잡힐 일을 할 필요는 없다.

그 때문에 난 행정적인 일은 전부 힐데에게 떠넘긴 채 징수관과 친해지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밑밥을 깔아놓았다.

우선 마을 안에서는 물론이고 중간중간 이동하며 야영을 할 때마다 우리 쪽에서 불침번을 전부 다 서주었고 징수관이 처리해야 할 자잘 자잘한 문제들도 내가(정확히는 힐데가) 처리했다.

그뿐만 아니라 식사시간에 음식도 넉넉하게 챙겨줌은 물론 목욕물도 먼저 따뜻한 물을 제공하는 등 여러모로 편의를 봐주었고 그 때문인지 영주의 병사들과 징수관은 내게 굉장히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주었다.

물론 그 대가로 아군의 사기가 떨어짐은 물론 힐데에게서 온갖 불평불만이 쏟아져나왔지만, 이는 충분히 감수할 만한 일이었다.

어차피 사흘간 레비아탄 상단에서 푹 쉬면서 병사들의 사기는 최고조를 찍어놨으니 어느 정도 떨어진다고 해도 감당할 수 있는 범위였다.

이런 내 노력은 마침내 빛을 발했는데 징수관은 이동하는 도중에 내 옆에 말머리를 붙이고는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자네 혹시 계속 노바라에 머물 생각인가?”

“별일 없으면 그럴 생각입니다.”

“크흠, 만난 지 얼마 안 된 자네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미안하지만 노바라보다는 근방의 대도시인 밀라노로 가는 게 좋지 않겠나?”

“노바라의 볼프강님과 레비아탄의 상단장인 탈다스와의 갈등 때문입니까?”

“으음… 역시 자네도 알고 있었나?”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리된 이유를 모를 뿐이지요.”

“뭐, 결과를 알고 있다면 원인을 얘기해주는 거야 상관없겠지.”

작게 한숨을 내뱉은 징수관은 주변을 둘러보며 목소리를 낮추며 은밀하게 이야기했다.

“꽤 오래된 얘기에다 내 입으로 말하기에도 굉장히 민망한 일이지만 원인 자체는 별거 아니었네. 볼프강 백작님께서 레비아탄의 상단장이 가지고 있던 알렉산드라이트를 구매하고자 하셨네. 하지만 상단장은 미리 거래가 예약되어 있다며 거절했네.”

“예약이 돼 있으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닙니까?”

“맞아. 거기에 원래 거래 상대는 밀라노의 지배자였던 레이디 칼리나 여변경백이었으니까 상단장으로서는 난감했겠지. 어쨌건 백작님께서는 웃돈을 주고 사겠다고 몇 번이나 얘기해도 상단장은 상인의 신용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단호하게 거절했네.”

“설마 그것 때문에 사이가 소원해진 겁니까?”

아니, 한두 살 먹은 애새끼도 아니고 물건 하나 안 팔았다고 삐져있는 거라고? 그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징수관도 씁쓸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네. 영주님께서 본인의 약혼자에게 탄생석으로 줄 생각이셨거든.”

“아니 근데 알렉산드라이트가 꽤 희소하긴 하지만 볼프강 백작님께서 구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지 않습니까?”

“묘안석 효과가 나타나는 알렉산드라이트는 드물지 않던가.”

“아… 과연. 그렇군요.”

광물 자체로도 희소성이 있긴 하지만 캣츠아이 효과를 내는 보석은 더욱더 희귀하다. 일례로 현대에서 캣츠아이 효과를 보이는 알렉산드라이트가 103억이라는 몸값을 뽐내기도 했다.

“아직 어리셔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가 다 창피하더군. 애초에 선대 가주님께서 레비아탄 상단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서 이 도시를 이렇게 키워놓으셨는데… 이것 참.”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상단의 중요성에 대해 모를 리가 없지 않습니까?”

말하자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데 그걸 자기 손으로 가르는 바보가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물론 세상은 넓고 병신은 많기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뭐, 원래부터 탈다스와 사이가 조금 안 좋긴 했네. 후계자 시절부터 씀씀이가 꽤 헤프셔서 종종 돈을 빌렸었는데 탈다스가 거절하기도 했으니까. 아마 그때부터 앙심을 품고 있었겠지. 선대 가주님이 그렇게 일찍 돌아가시지만 않았어도 이렇게까지는 안 됐을 텐데… 참 안타까운 일이네.”

그런 것치고는 징수관 본인도 돈을 뜯어 가지 않았던가? 내가 묘한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자 그는 민망한 듯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크흠. 솔직히 나도 내 행동이 자랑스러웠던 건 아니지만 어쩔 수가 없었네. 영주님께서 시키시는데 내가 거절할 수도 없는 일 아니던가. 거기에 신께 맹세코 뜯은 돈은 한 푼도 빼돌리지 않고 전부 영주님께 가져다 바쳤네.”

“오, 물론 이해합니다. 그게 어찌 징수관님의 잘못이겠습니까.”

괜히 여기서 너도 잘못했어라고 하면서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일단 말하는 걸로 봐선 징수관은 현 영주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모양새였으니까.

“이해해줘서 고맙네. 아무튼, 영주님도 레비아탄 상단이 몰락하면 영지 운영에 차질이 빚어진다는 걸 모르시진 않기에 나름 대비책을 준비 중이시네.”

그 대비책을 징수관에게 들은 나는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레비아탄 상단은 총체적 난국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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