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화. 심상에서 싸움
-너로구나!
머릿속에서 무언가 울려 퍼졌다.
마치 뱀이 수천 마리는 동시에 기어 다니며 나오는 것 같은 목소리. 단 한마디에 인간을 소름 끼치게 만드는 그런 존재.
아셀은 목소리의 주인공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조르게스타...’
마왕의 목소리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게임을 플레이했을 적에 저것에 죽은 적이 수십이오, 폐허가 되어버린 자신의 영지나 사업장이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아니 페이크 월드를 플레이해본 적이 있던 유저라면.
저 사악한 목소리를 잊을 수 없을 게 분명했다.
-호오.. 참으로 대단하도다 이 몸을 아는듯한 눈치와 정신이 박살이 나지 않다니 말이야!
조르게스타는 진심으로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우선 그가 인간이라는 하찮은 존재에 놀랐다는 것에 스스로에 대한 놀람이 가장 큰 이유였으나.
300년 전 동안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잊었을 인간들 사이에서 단숨에 자신을 알아차린 존재 게다가 자신을 목도하고도 정신이 박살 나지 않은 것.
그것들이 조르게스타 같은 마왕으로 하여금 단 한 명의 인간에게 놀라움을 표하게 만들었다.
-크하하하하하 하기야.. 이렇게 나와야지 재미있지. 지금 세상에 그 유명한 7용사나 갈란 같은 녀석들이 없다면....
“새끼 뭐이렇게 시끄러워.”
머릿속을 울려 퍼지는 녀석의 광소에 아셀은 진심으로 눈살을 찌푸리며 마기 징벌을 바닥에 내려치기 시작했다.
쾅! 쾅! 쾅! 거대한 소음이 일어나며 바닥에 점점 거대한 구멍이 생기는 모습들.
모두가 아셀의 행동에 놀라워하는 것과는 다르게 아셀은 바닥에 내려치는 징벌의 모습에도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조르게스타의 목소리가 사리지지 않는다는 것에 더욱 눈살을 찌푸릴 뿐이었다.
-하하..대단하구나 그래 그런 오만함. 그것에 네놈을 만든 것인가?!
순간 거대한 어둠이 아셀을 뒤덮었다.
그것이 마기에서 일어난 마왕의 사념이 아셀의 정신을 침투해오는 것을 눈치채는 것도 잠시.
아셀은 자신의 앞에 거대한 노란색 두 눈이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음을 발견했다.
-대단한 것도 잠깐이지... 이렇게 눈앞에 작게만 보이는 존재 그것이 바로 인간 아니던가!
마왕의 두 눈은 마치 아셀에게 굴복을 명하는 것 같이 고고히 떠올랐다.
그것이 내보이는 거대한 적의와 광기는 일반인들로 하여금 저절로 굴복하게 만들려는 것도 잠시.
무심히 그것을 바라보는 아셀은 피식 웃으며 가운뎃손가락을 녀석에게 들어 올려보았다.
-...무례하기도 하구나 네 조상들도 내게는 그래도 경외심을 내보였는데 말이지.
“벌써부터 서로 감정싸움 벌이지 말자고. 네놈이 그렇게 다급하게 재촉하지 않아도.”
아셀의 손에는 어느새 아르테스가 쥐어져 있었다.
“곧 네놈을 잡으러 가줄 테니까.”
순간 일어난 거대한 신성력.
빌딩과도 같은 거대한 검강이 조르게스타의 두 눈을 향해 떨어지기 시작하는 것도 잠시.
사방의 모든 어둠이 유리가 박살 나듯 산산조각 나기 시작했다.
-그말... 기대하마.
“새끼. 싱겁기는...”
자력으로 마왕의 정신공격에서 벗어난 아셀은 어느새 자신을 바라보며 두 눈을 껌뻑이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저 어깨를 으쓱거려 보았다.
“음.. 마왕 레이드 하러 가실 분?”
***
[크흡!]
[아.아버지! 괜찮으십니까!]
권자에 앉아있던 마왕 조르게스타의 입가에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있을 수 없는 일.
누군가 마왕에게 상처를 입혔다는 사실에 마왕자 벨이 경악을 하며 무언가 고민에 빠진 조르게스타를 바라보았다.
‘아셀 필드가 아버지를 정신세계에서 몰아냈단 말인가!’
아무리 대단한 인간이라고 하지만, 마왕이 직접 간섭하는 정신공격에서 벗어난 것.
자신의 상식을 부숴버린 아셀의 모습에 마왕자 벨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300년 전의 인간들 중에서도 아셀 같은 위업을 보여준 인간은 없었기 때문에.
[재미있구나.. 벨이여.. 재미있어.]
쿠르르르르르르르 마키헬 전역이 조르게스타의 분노로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그가 분노에 터트리는 거대한 마기들이 마키헬의 전역에 영향을 끼치는 모습들.
대다수의 마족들이 지난날 조르게스타가 부활하며 보여준 학살을 떠올리며 공포에 바르르 떨기 시작했다.
[아주 재미있어..어찌 이런 인간이 이 몸의 부활에 맞춰 나타날 수 있단 말이더냐!]
[아버님...!]
사방을 억죄어오는 마기들에 의해 마왕의 시종들이 우선적으로 그 거대한 마기의 압력에 머리가 터져 나갔다.
[하하..하하하하하하!]
‘아버지가 동요하시고 계시다!’
마왕자 벨은 단번에 마왕이 불안해한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것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마왕이라는 존재가 한 인간 때문에 불안이란 감정을 토해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아셀 필드가 그렇게 대단한 인간이란 말인가?!’
일순간 아셀이 태어나기도 전에 아니 아셀이 태어나고 나서 필드가를 대륙에서 지워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들어 왔다.
아셀 필드만 대륙에 없었어도 그들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을 게 분명했기 때문에.
[좋은 대적자를 내게 남겨 놓았구나 벨이여..]
[죄송합니다! 아버지! 죽여주십시오!]
마왕의 말이 마치 자신을 책망하는 것 같기에.
황급히 머리를 땅에 쾅 쾅 찍어내기 시작한 벨을 바라보며 마왕 조르게스타는 그저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자신의 아들의 자해를 바라보았다.
[전군을 소집해라. 벨.]
[설마 지금 바로 대륙으로 가시려는 겁니까?!]
마왕의 말에 마왕자 벨의 두 눈에 당혹스러움이 묻어났다.
라메르의 죽음.
그것은 이 마키헬에 있는 마족들이 대륙으로 나아갈 교두보를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라는 소리였다.
[아버지.. 하지만. 지금 대륙에는.. 커...커헉!]
순간 마기로 만들어진 수십 개의 무기가 마왕자의 몸을 관통하자 그는 하던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실패는 용서가 되지만, 겁쟁이는 아들로서 용서가 되지 않는구나 벨이여...]
[아버지. 아니 마왕님 다시 한번만. 재고해주십시오.]
평상시라면 고통에 물러났을 벨이었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못했다.
300년.
마왕이 죽고 300년간 마족들을 이끌어오던 그였기에.
이번의 실수가 마족들로서 마지막임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네 입에서 나올 말은 ‘알겠습니다’지 ‘재고해달라’는 말이 아니다.]
[크..크헉.]
수십 개의 무기들이 비틀며 마왕자 벨의 온몸에 상상하지도 못할 거대한 고통을 주기 시작했다.
[전군을 소집해라 벨. 설마 내 손으로 아들을 죽이게 하는 과오를 범하게 할 셈이더냐?]
벨의 두 눈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것이 불안감에서 오는 것임을 눈치챘던 것도 잠시.
그는 고통에 못 이겨 결국 고개를 끄덕이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아버지...]
***
“바바리안들과 수인족들... 그래 다이어 울프족과 네가 친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니 놀라울 게 전혀 없었단다.”
마병들이 모두 사라지고 아셀이 자연스럽게 마기 징벌을 사출의 주머니에 넣는 것도 잠시.
말릭은 진심으로 믿기지 않으며 주변에 있는 바바리안들과 수인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대체 언제 바바리안들과 혼인을 했더냐 아셀. 설마 이 모든 것이 정략적인 혼인이라는 것이더냐?”
“재미있는 인간이구나. 그대 아셀과 나는 정략적인 혼인이 아니라 서로 뜨겁게 사랑하며 혼인한 사이다.”
“뜨.뜨겁게 사랑?! 야 아셀 너 이게 무슨 소리야?!”
카이나의 말에 르안느가 소리쳤지만, 아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뿐이었다.
“내가 언제 너랑 혼인했어. 사람들 오해하니까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
“혼인은 하지 않아도 결혼식을 열었던 것만큼은 사실이니.”
“겨.결혼식?!”
르안느의 머리가 터질 듯 붉어지기 시작했다.
결혼식이라는 그 단어가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청룡 어서 말해보거라 내가 아셀과 결혼식을 했었다고 말이다.”
“아직도 그 이상한 청룡 백호 같은 호칭 안 버렸냐?”
카이나의 사천왕 중 한 명인 청룡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도 잠시.
갑자기 다이아 울프족의 족장 메차쿤이 성큼성큼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오 저게..’
카이나의 아버지이자 하이엘프의 선택을 받았던 남자.
다이아 울프족의 족장이자 마수왕조차 다이아 울프족을 집어삼키지 못하게 만든 존재.
아셀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메차쿤이 자연스럽게 발산하는 위엄을 바라보며 감탄하고 있을 때였다.
“네가 아셀 필드인가?”
“아버지 얘가 아셀이야! 내 친구 아셀 어때?!”
“투마리스 나는 이 인간에게 물어봤지 네게 물어보지 않았다.”
‘드디어!’
아셀은 자신의 주변에 정상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존재가 나타난 것 같자 두 눈을 번쩍였다.
메차쿤이 보여주는 강자의 위엄은 지난날 자신의 주위에 강자라는 이름으로 개성이 넘치던 존재들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으니까.
“다이어 울프들의 족장이신 메차쿤님을 뵙습니다. 필드가의 아셀이라고 합니다.”
“....”
“아셀 저 아이가 저렇게 예의 바른 인사를 할 수 있던가?”
“놀라운걸.. 아셀이 저렇게 예의 바른 모습을 보인다는 게?”
아셀의 낯선 모습에 모두가 놀라운 것도 잠시.
메차쿤은 아셀을 잠시 유심히 바라보았다.
“흐음... 그래.”
자신을 바라보기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메차쿤은 손가락으로 아셀의 몸 이곳저것을 찔러보거나 심지어 코를 킁킁거리며 아셀의 냄새까지 맡았던 것.
‘아... 역시.’
이런 메차쿤의 모습에 아셀은 드디어 정상인 강자를 만났다는 기대감이 눈 녹을 듯 사라졌다.
“크흠.크흠. 그래 그래.”
“이봐 그대 아셀을 그만 괴롭히지 그래? 난처해 하지 않는가?”
“허락한다.”
갑작스러운 메차쿤은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아셀을 어깨를 두드렸다.
“투마리스가 아주 물건을 데려왔구만. 아셀 자네는 내 사위가 될 자격이 충분해.”
“.........”
“그.그게 무슨 소리인가! 그대 아셀은 내 것이라고 설마 바바리안들과 전쟁을 원하는 것은 아니겠지?”
“전쟁? 아셀의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해서라면 그까짓 것 치르면 그만이지.”
전쟁까지 치르겠다는 메차쿤의 말에 카이나의 얼굴이 터질 듯 붉어졌다.
“대단하구나 아셀. 너를 차지 하기 위해 전쟁까지 벌이겠다는 장인어른이 나왔다니 말이지.”
“그건 놀리는 말입니까 아니면 진지한 물음입니까 스승님?”
말릭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아셀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그것이 어째서인지 자신의 미래에 대한 위로라고 생각되어진 것도 잠시.
아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메차쿤과 카이나의 시작되는 싸움을 막아섰다.
“미안한데. 우선 마왕부터 잡아야 하니까 제발 둘 다 가만히 있어.”
“아셀 어서 말하거라 그대는 바바리안들과 함께할 거라고!”
“사위는 다이아 울프들과 함께 한다고 말하게! 보아하니 가장 먼저 도움을 준 건 내 딸이었던 거 같으니까 말이지!”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싸움.
아셀은 다짐했다. 마왕을 잡는 순간 자신이 어떻게 할지를.
‘은둔한다.’
평화로울 자신의 미래에 무언가가 하나 추가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