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8화. 엘프들 (2)
하미에르를 따라 나서기로 한 일행은 아셀과 르안느를 포함한 신성 기사단 다섯으로 정해졌다.
“마을은 세계수 근처의 대수림에 위치해 있습니다.”
워프 게이트를 몇 개 갈아타고 도착한 대수림.
거대한 열대우림 같은 곳을 바라보며 아셀은 턱을 쓰다듬었다.
과거 게임을 했을 적 세계수가 마수왕의 입안으로 들어가고 사방이 불타는 와중.
저 끝을 알 수 없이 펼쳐진 대수림은 마경 중 하나로 바뀌었었기 때문에.
“마을에서 정비를 하시고 세계수로 가시면 될 거 같습니다.”
“세계수로 가는 길은 아시나요?”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한 세계수.
그랬기에 모든 엘프들은 세계수가 있는 엘프들의 왕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기에.
아셀은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가자고 말하는 하미에르를 놀라운 듯 바라보았다.
“가는 길은 압니다. 다만...”
잠시 괴로운 기억을 끄집어내듯 하미에르는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곳으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들어갈 수 없다면요?”
“다른 존재들이 일정 경계선을 넘는 순간 대수림 밖으로 보내지거든요. 르안느양.”
하미에르의 말에 르안느는 안타까운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무려 200년이 넘게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엘프들의 처지가 안타까워 보였기 때문에.
“마을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까?”
“역시나 친절하신 분. 1000명 정도 그곳에 머물고 있습니다.”
“천 명?!”
“세상에 그렇게 많은 엘프들이 사는 마을이 대륙에 존재했다고?!”
“어떻게 그동안 아무도 몰랐지?”
놀라워 하는 신성 기사단을 바라보며 하미에르는 그저 모호한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직접 가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이곳에서는 기분 좋은 느낌이 계속 든다 파트너!]
팽 카이저의 흥분가득한 목소리가 아셀의 머릿속에 가득 울려 퍼졌다.
[역시나 대수림.. 동료들이 이곳이 기분 좋아진다는 곳이라고 그렇게 들었거늘!]
‘근데 나 에프릴님의 그림자 안 불러왔는데 어떻게 내 머릿속에 말을 거냐?’
[걸면 안 되는 것인가?!]
당연한 의문에 팽 카이저는 너무하다는듯한 목소리로 아셀에게 말했다.
‘아니 웃기잖아. 지금 나는 정령하고 친화력이 0에 가까운 몸인데?’
투마리스의 그림자를 불러들이고 있었기에.
아셀의 현재 정령에 대한 친화력은 0에 가까운 상황.
이런 상황 속에서 정령왕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확실히 지금 파트너는 앞에서 욕을 내뱉고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정령과 친하지가 않다.]
‘......’
[하지만 그런 파트너의 역겨운 모습이라도 이 자비심 넓은 팽 카이저님의 대수림과도 같은 마음이라면 모두 커버가 되는 거 아니겠느냐!]
‘입 다물고 있어.’
[파.파트너 그게 무슨 말버릇인가 정령이 기껏 먼저 마음을.....!]
무언가 계속해서 머릿속을 소리치는 팽 카이저의 말을 무시하며 아셀은 길고도 긴 대수림 안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와아...... 이 나무들 좀 봐 아셀!”
“이거 내 도끼에 한 번에 썰릴까?”
“우리의 견고함도 여기서는 조금 약할 거 같은데..”
거대한 나무들이 사방에 펼쳐져 있었다.
가장 작은 나무만 해도 족히 5m 크기로 보이는 상황.
심지어 그것들의 위에서는 알 수 없는 동물들이나 과일들 심지어 하급 몬스터들이 아셀과 일행들을 경계하듯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모두들 대수림에서는 정신을 집중하셔야 합니다. 어머니 대자연은 인간들을 너무나도 좋아하기 때문이죠.”
하미에르의 경고에 그제서야 성기사들은 헛기침을 내뱉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런 곳에 엘프들 말고 다른 종족들도 사는 겁니까?”
“예. 아셀님. 이 넓은 대자연을 엘프들만 독차지하기에는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겠습니까.”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하미에르는 마치 현자와도 같은 말을 했다.
“이곳에는 문명화가 덜 된 인간들 그리고 대륙에서 엘프를 잡기 위해온 사냥꾼들. 그리고 엘프들조차 알 수 없는 종족들이 살고 있지요.”
“엘프들도 모르는 종족들이 있나요!?”
“르안느양. 우리도 모든 것을 알지 못합니다. 이 넓은 대자연에 모든 것을 아는 존재는 세계수 하나뿐이겠지요.”
“아....”
하미에르의 말에 신성 기사단들과 르안느는 잠시 감탄을 했다는 듯 입을 살짝 벌리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하미에르 경.”
“예 말씀하시지요. 라파엘님.”
“혹시 방금 이야기 우리가 나중에 전도할 때 살짝 바꿔서 사용할 수 있겠소? 세계수를 여신님으로 바꾼다면 좋은 이야기가 될 거 같아서.....”
“....기꺼이.”
생각지도 못한 말에 아셀은 질색하는 눈치로 신성 기사단의 단원 라파엘을 바라보았지만, 그의 표정은 너무나도 행복해 보였다.
“이야기를 하는 사이 도착한 거 같군요. 저곳이 바로 우리의 마을입니다.”
하미에르가 가리킨 방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아무것도 없어 보이게 만든 것이 분명했다.
아셀조차 기감을 집중하지 않는다면 그저 거대한 나무들밖에 없는 공간으로 보였을 게 분명했으니까.
점점 하미에르가 가리킨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일행들은 시시각각으로 변하기 시작한 주변의 풍경들에 감탄사를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이럴 수가..”
“대수림에 이런 공간이 있다니!”
“와아... 아름다워.”
‘놀라운걸?’
하미에르가 마을이라고 표현했고 1000명의 엘프들이 숨어 사는 곳이라고 했기에.
아셀은 이곳에 그저 피난지와 같은 허름한 곳이라고 생각한 것과 다르게 잘 닦여 있는 석조 도로와 유적지 같은 건물들이 사방에 펼쳐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분수?”
“이런 곳에 분사까지 있단 말인가?!”
심지어 마을 중앙에는 멋들어진 조각이 양각되어 있는 분수 있었으며 어린 엘프들은 그곳에서 뛰어 다니며 놀고 있는 상황.
몇몇 엘프들은 인간인 아셀 일행을 경계하는 눈초리였지만, 하미에르를 발견하고는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하르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신성 기사단 여러분.”
‘하르틴....’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애초에 대수림에 대해 아셀이 아는 것이라고는 이곳이 마수왕의 근거지라는 사실 하나뿐이었으니까.
“좋은 이름이군요.”
그렇기에 일단 칭찬부터 하는 아셀을 바라보며 하미에르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냈다.
“예. 엘프들의 마지막 피난처이지요.”
***
“이번에는 어떤 이빨들을 사용하신 거지?”
“상어.. 그리고 고래랑 거북이?”
“잠깐만 고래랑 거북이가 이빨이 있었어?”
“마수왕님께서 그런 모습이었으니까. 사용하신 거겠지.”
대수림의 어느 이면.
그곳에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수인족들은 크기가 제각각인 이빨들을 들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거 계속해야 할까...?”
“야야.. 조용히 해 마수왕님 아니지 간부들한테 들키면 넌 그날로 마수왕님의 한 끼 식사거리가 된다고.”
“그건 그렇지만. 결계를 뚫어낼 방법을 찾았다며?”
지난 수백 년간 매일 모습이 바뀌는 마수왕의 이빨을 뽑아 허공에 휘두르고 있는 것.
모두가 저 투명한 벽에 뒤에 있는 세계수로 들어가기 위함이었다.
“그랬나?”
“이런 멍청한 곰새끼를 봤나. 지난번에 간부들이 식당에서 하는 말 못 들었어? 세계수로 들어가는 방법을 찾았다고 했잖아!”
“아아아 그랬던 거 같다.”
관심이 없다는 듯 말하는 동료를 바라보며 동료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에효.. 내가 뭘 기대하겠냐. 아무튼 이 지긋지긋한 대수림 생활도 조금 있으면 끝이라고.”
“그러면 우리는 뭘 하게 될까?”
“만약 내가 마수왕님이라면 다이아 울프족들을 족치고 싶어 그것들이 고상한 척 우리한테 합류 안 하는 게 역겹거든!”
동료의 말에 곰수인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그의 입에서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 침들.
살짝 입맛을 다시며 곰수인이 동료를 바라보았다.
“다이아 울프족들 맛있어...”
“그치.. 그것들 하나 같이 강하기는 한데 맛있지.”
“빨리 저걸 뚫고 싶다.”
“기다려봐 간부들이 그러는데..”
잠시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턱을 한차례 쓰다듬던 수인이 씨익 웃으며 결계를 바라보았다.
“인간한 명만 대수림에 도착하면 저건 뚫을 수 있대!”
“인간..?”
“그래 그놈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요즘 유명한 녀석인데 생각이 나지 않네...”
***
“하르틴에서 북서쪽으로 올라가면 세계수가 있던 곳으로 도착할 수 있습니다.”
옛 엘프들의 거점 하르틴.
이곳에 어째서 이렇게 문명화된 도시와 같은 풍경이 펼쳐진 것인지 아셀은 하미에르의 설명을 듣고는 납득 할 수 있었다.
-이곳에 펼쳐진 결계들 또한 옛 엘프들이 만든 것입니다.
-가끔 길을 잃거나 아니면 감각이 뛰어난 엘프 사냥꾼들이 이곳을 공격해오는 것이 아니라면 별다른 침입자들도 없지요. 아니지. 그분들은 별다른이라는 말을 쓰기 조금 그런가요?
“가는 도중에 조심해야 할 것은?”
아셀의 물음에 하미에르는 잠시 눈을 껌뻑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없습니다. 세계수의 결계 특성상 근처에 자리 잡고 있는 종족도 없으며 몬스터들도 여러분에게 위해가 되지 않을 거 같군요.”
“......”
“그렇지 우리의 견고함을 다시 한번 알아주시는구려 하미에르경!”
“그렇지 그렇지. 우리가 누군가 바로 여신의 기사 아닌가!”
하미에르의 말에 신나하는 신성 기사단들과 다르게 아셀은 눈을 가늘게 뜨며 하미에르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아무것도 없나요?”
“예.. 뭐 독초나 가끔 이름 모를 식물들이 있기는 하지만, 혹시 무언가 걸리시는 게 있으십니까?”
아셀의 말에 하미에르는 정말로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눈을 껌뻑이고 있었다.
‘뭐지..?’
마수왕.
그것이 거닐고 있는 수많은 수인전사들.
아셀은 녀석들이 이곳에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어째서 이곳에 있는지도 알고 있는 상황.
때문에 놈들이 세계수의 결계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지 않다는 하미에르의 말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잠시 아셀은 하미에르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타락의 징조 그것이 있다면 분명 순수함의 상징인 엘프의 몸에 흔적이 남아있을 게 분명했으니까.
‘뭐지 이 새끼...’
전혀 없었다.
순수함으로 가득 차 있는 눈동자.
그것에는 그 어떤 타락의 징조도 없이 아셀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 제게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아셀님.”
“눈동자가 맑으시군요.”
“모든 엘프들은 눈동자는 맑습니다.”
잠시 말을 멈춘후 하미에르는 재미있는 것이 떠올랐다는 듯 피식 웃어 보였다.
“신께서 그렇게 만드셨거든요.”
“아셀. 엘프들에게 눈동자가 맑다고 물어보는 건 우리보고 신앙심이 깊어 보인다고 말하는 것과 같단다.”
“그게 어떻게 같습니까?”
“어..음 당연하다는 것을 어째서 물어보는지 그런 류의 질문이다만..”
아셀의 반문에 당황한 신성 기사단을 내버려 두고 아셀은 방긋 웃어 보이는 하미에르를 바라보았다.
‘이거 뭐 있네.’
타락의 징조가 없는 하미에르. 그러나 아셀은 녀석이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세계수로는 언제 떠나겠습니까?”
무언가 재촉하는 하미에르의 말. 심지어 아셀은 아까부터 하미에르가 세계수에 대한 존칭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바로가시지요.”
‘뭘 준비했는지는 몰라도..’
빠르게 4가지 그림자를 융합시킨 아셀은 하미에르를 바라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박살 내고 앞으로 나아가면 그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