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화. 쿠훌 마리우스
갑작스럽게 끝이 났다.
동기화를 8%까지 올리고 아셀의 손에서 거대한 번개들이 몰아치는 순간.
사방의 공간들이 산산히 박살 나기 시작하더니 아셀은 던전 메이커가 만든 기술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망할 새끼가.. 갑자기 죽어버리냐 어떻게.’
아셀과 라이언 마리우스가 서로 부딪치며 터트린 뇌기.
그것이 사방의 모든 존재들을 지워나갈 때 그 안에 있던 던전 메이커를 죽인 것이 분명했다.
그랬기에 아셀도 인지하지 못한 사이 퀘스트가 완료되었고 그의 코어에는 거대한 마나들이 한순간에 들어왔기 때문에.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퀘스트가 완료되었다는 말을 아셀은 조금 아쉬운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좀만 더 라이언 마리우스를 자극한다면 동기화를 5% 정도는 올릴 수 있었을 게 분명했으니까.
“아셀! 무사했더냐!”
“자네.. 그런데 이게 무슨...?”
“어떻게 마리우스가의 뇌기를 자네가 다룰 수 있게 된 건가?!”
한순간 수많은 질문들이 아셀을 향해 쏘아져 내렸다.
생존자들.
그제서야 살아남은 사람들을 발견한 아셀은 살아남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말릭과 쿠이가가 살아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대륙의 7용사 가문의 가주들 반 이상이 보이는 상황이었다.
“이보게 아셀 필드라고 했나?”
쿠훌 마리우스는 떨리는 눈빛으로 아직까지 남아있는 아셀의 회색빛 뇌우들을 바라보았다.
“자네 도대체.. 도대체 어떻게 라이언님의 뇌우를 사용할 수 있는가?”
“아.. 이거요?”
살아있는 전설 쿠훌 마리우스의 말에 아셀은 그저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냥 안에서 배웠습니다.”
“안에서 배워? 그게 무슨....”
눈을 껌뻑이는 쿠훌 마리우스를 바라보며 아셀은 던전 메이커가 만든 환상 속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안에서 어떤 환상들이 펼쳐졌으며 또 어떻게 자신이 라이언 마리우스의 그림자를 흡수했는지 알려주며 아셀은 퀘스트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빼고 모두 쿠훌 마리우스에게 설명해주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그런 기술을 만들었단 말인가?”
“자네 정말로 운이 좋았네 아셀... 만약 다른 사람들이 그런 곳에 끌려들어 갔다면 죽었을 거야.”
던전 메이커가 어떻게 일을 벌였는지 들은 무인들은 놀라움과 경외심 가득한 눈빛으로 아셀을 바라보았다.
‘잠깐만... 던전 메이커가 죽었으니까.’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턱을 쓰다듬고 있는 쿠훌 마리우스와 점점 현세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을 바라보며 감격하는 7용사 가주들.
아셀은 그들을 바라보며 단 한 가지 사건을 벌써 막아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7용사의 밤은 막아낸 건가?”
7용사의 밤.
대륙의 7개의 용사 가문이 한날한시에 멸문한 사건.
던전 메이커가 300년간 공들여 만든 함정에 의해 타락하고 스스로 멸문했던 7용사 가문.
아셀은 그것을 던전 메이커를 잡아내며 막아낸 것이었다.
“아셀 필드 자네에게 부탁이 있네.”
살아남은 7용사 가문의 일원들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에 잠겨있던 아셀은 쿠훌 마리우스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탁이라면?”
“라이언님의 창을 우리에게 알려줄 수 있겠는가?”
창을 알려달라는 말에 아셀은 잠시 눈을 껌뻑이는 것과 다르게 주변의 무인들은 쿠훌의 말에 경악하는 표정을 지어낼 수밖에 없었다.
“가문의 비전을 외부인에게 알려달라니..?!”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설마.. 마리우스가의 시조가 창술을 남기지 않았단 소문이 사실이란 말인가?!”
놀라워 하는 주변 무인들과 다르게 아셀의 표정은 덤덤했다.
‘녀석의 성격이라면...’
던전 메이커가 만든 환상 속에서 라이언 마리우스의 모습을 떠올린 아셀은 녀석이라면 자신의 창술을 직접 전수하지 않았을 것임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실제로 마리우스가에 남아있는 창술은 대부분이 라이언 마리우스의 창술을 본떠서 만든 것.
쿠훌의 천재성 가득한 눈썰미와 무에 대한 이해지식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단절되었을 게 분명한 창술들이었다.
“흐음... 그건 어렵지가 않은데요.”
“그게 정말인가?! 자네가 전수해준다면 원하는 건 뭐든지 다 이루어주겠네!”
아이처럼 활짝 웃어 보이는 쿠훌 마리우스와 마리우스가의 사람들이 아셀에게 우르르 달려오기 시작했다.
특히나 평소에 아셀을 존경하고 있던 빅터는 직접 창술을 배울 기회라는 사실에 티가 나게 흥분해있는 상황.
아셀은 잠시 그들을 멈추게 한 후 헛기침을 한번 내뱉었다.
“크흠.. 뭐 같은 7용사이자 대륙의 위기 속에서 서로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그.그렇지?”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쿠훌의 본능을 가로질렀다.
수없이 많은 악과 싸워왔던 쿠훌이었기에.
지금 아셀의 모습에서 잠시 그 악을 발견한 것도 잠시.
아셀은 그저 씨익 웃으며 빅터의 허리춤에 걸려있는 단창을 바라보았다.
‘마리우스가의 보물 들소의 단창.’
라이언 마리우스가 직접 사용했던 그 단창.
7용사 가문의 보물중 하나이며 무지개 세트 무구 중 하나.
저것을 얻는다면 아셀은 용사 가문의 무구를 총 세 가지 얻는 것이었다.
“그 무구 하나만 빌려주시죠. 이 모든 전쟁이 끝나면 바로 돌려드리겠습니다.”
“무구 어떤 것인가? 아! 우리 3대조께서 사용하신 장창이 하나 있는데 푸른색이라 자네와 잘 어울릴 거 같은데.”
“크흠..”
“장창이 별로구만 이건 어떤가 내가 사용하는 단창인데 그 옛날 마계 군단장 로이카르스의 심장을 꿰뚫은 것도 바로 이..”
“크흠.. 크흠...!”
지금 상황 속에서 갑은 아셀이었다.
아셀이 변덕을 부린다면 다시는 라이언 마리우스의 창술을 배울 수 없었기에.
쿠훌은 아셀의 모습에 눈치를 살피며 가문의 무구들을 빠르게 떠올려보았다.
“자네 아들이 조금 부끄러운 거 같은데...”
“인성은 내가 가르치지 않았네.”
아셀의 갑질 모습에 유론은 그저 다른 가주들의 시선을 회피했다.
300년 전 영웅의 앞에서 헛기침을 계속해서 내뱉으며 눈치를 주는 모습은 아무리 아들이라고 하지만 부끄러운 모습이었으니까.
“그.. 자네가 원하는 무구는 없는 거 같은데..”
가문의 신기라고 불리는 무구들을 모두 읆었지만, 계속 헛기침만 내뱉는 아셀의 모습에 쿠훌은 억울한 듯 아셀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없습니까?”
“없다니까. 이제 남은 건 라이언님이 사용하시던 뇌신창하고 들소들의 단창밖... 잠깐 자네 설마 라이언님의 무구를 빌려달라는 것인가?”
“크흠!”
“설마 진짜로 그건가? 이보게 자네는 양심이란 게 있는가 어느 누가 용사 가문의 무구를 다른 사람에게 쥐어준다는.”
“아.. 이거 제가 바쁠거 같습니다. 던전 메이커가 만들어둔 함정이 생각보다 대륙에 많아서 말이죠.”
뒤돌아 가려는 아셀의 모습에 쿠훌은 잠시 깊은 고뇌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가문의 신기를 바라는 아셀, 만약 이곳에서 놓친다면 다시는 라이언 마리우스의 창을 배울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신기이냐 창술이냐.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던 쿠훌 마리우스는 이내 긴 한숨을 토해내며 아셀을 바라보았다.
“한 가지...”
“예?”
“신기 중 한 가지는 빌려줄 수 있겠네.”
“크흠. 뭐 그러시다면야. 제가 확인차 말씀드리는 건데 저는 강요하지 않은 겁니다? 이건 쿠훌님과 저의 정당한 거래에요?”
“.......”
“아셨죠?”
떫떨음하게 입술을 깨무는 쿠훌과 다르게 아셀은 씨익 웃으며 빅터의 허리춤에 걸려있는 들소들의 단창을 가리켰다.
“저걸 저한테 주시죠.”
“들소들의 단창을..? 장창이 아니라?”
장창이 아닌 단창을 달라는 말에 쿠훌은 조금 놀라워 할 수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번개를 낼 수 있는 장창과 다르게 단창은 그러한 능력은 없는 물건이었으니까.
“그게 필요합니다.”
***
던전 메이커를 잡아내고 소왕국 뇌린이 말 그대로 폐허가 되었지만, 본래의 역사에 일어난 피해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작은 규모라고 말할 수 있었다.
‘실제로 여긴 움직이는 마경이 되었지.’
수만 개의 마경이 서로 얽히고설키며 수백만 마리의 몬스터들을 만들어내고 소왕국 뇌린에서부터 사방으로 퍼져 나갔던 과거.
그것을 막기 위해 수십만의 유저들이 죽어 나갔었으며 너무나도 강대해진 몬스터들 때문에 죽어 나갔던 npc들과 멸망했던 왕국들.
아셀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우선 몬스터 웨이브도 몇 가지 막아냈고...’
던전 메이커를 잡아낸 것.
그것은 앞으로 일어날 몬스터 웨이브를 최소 3개 이상은 막아냈다고 보아도 되었다.
특히나 녀석이 만들어냈던 마병들은 더 이상 생산하지 못할 것이니 곧 있으면 다가왔을 마병들의 습격 또한 미연에 방지한 상황.
고민에 잠겨 있던 아셀이 쿠훌 마리우스에게 받은 들소들의 단창을 빙글빙글 돌리고 있을 때였다.
“아셀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옆을 바라보면 아셀은 하마터면 자신이 들고 있던 단창을 떨어트릴 뻔한 것은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참아낼 수 있었다.
“지안?”
“리안이라고 불러주세요. 본명은 아시잖아요?”
리안 아피엘.
본래 야누스의 목걸이로 남성으로 성을 바꾸었던 그녀가 여성의 모습으로 아셀의 앞에 서 있었다.
짧았던 머리와 다르게 허리까지 오는 초록빛의 머리와 생긋 웃어 보이는 모습들.
영락없이 여성의 모습이었기에 아셀이 놀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들이었다.
“목걸이를 벗었구나?”
“예. 이제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으니까요.”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리안 아피엘은 품에서 야누스의 목걸이를 꺼내 보였다.
“이건 아셀님 드릴게요.”
건네준 야누스의 목걸이를 바라보며 아셀은 아쉬운 듯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게 현실에서는 30억인데...’
게임을 했을 적에 저것이 30억에 거래된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하지만 이제는 게임이 현실이 되었기에.
이것을 30억에 팔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음..”
아셀이 야누스의 목걸이를 사출의 주머니에 넣는 모습을 바라보던 리안 아피엘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피식 웃으며 아셀을 바라보았다.
“고마워요. 아셀 경.”
“...응?”
아셀 경이라는 낯선 호칭에 아셀의 눈동자가 잠시 껌뻑여질 수밖에 없었다.
“저를 도와준 것 그게 너무나도 감사드려요.”
“뭘 도와줬다고. 괜찮아 나도 살려고 그랬던 거니까.”
프레스코의 공격 속에서 구해준 것을 감사하는 것이라 생각한 아셀이 피식 웃으며 손사래를 치자 리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제가 저로서 있게 만들어주신 거. 그게 가장 감사합니다. 아셀 경.”
“아...”
상상하지 못했던 감사의 표현이었다.
설마 저런 말을 하며 고개를 숙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상황.
아셀이 잠시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뒷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을 바라보며 리안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냈다.
“그때 던전에서 하신 말씀...”
“내가 뭐라고 했던가?”
“제가 필요하시던 말 꼭 이루어드릴게요.”
“?!”
무언가 반박을 하기도 전에 리안 아피엘은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아셀의 곁에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