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화. 타락시키려고…? (2)
‘뭐지 저 병x은?’
던전 메이커의 호기로운 말과 옆에 있던 두 군단장급 마족의 웃음을 참는 모습.
아셀은 저 모습들에 순간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놀라는 것도 당연하겠지. 타락...그것은 전조도 없이 일어나는 일이니까.]
“.....”
던전 메이커의 시선이 말릭과 신성기사단 그리고 쿠이가의 옆에 있는 다섯 마리의 용에게 향했다.
“단장 저것이 왜 우리를 쳐다볼까요?”
“우리의 견고함을 견제하는 게 분명하다.”
“역시 믿음으로 뭉쳐 있는 우리를 마족도 경계하는군요!”
“...당연한 거 아니겠는가.”
[아셀 필드 자네는 옆에 있는 동료가 갑자기 타락한다면 어떤 느낌이 들겠는가?]
“빡치지.”
[... 그것을 네놈에게 경험하게 해주겠다.]
생각보다 너무나도 덤덤한 아셀의 말에 던전 메이커는 일순간 당황하는 것도 잠시.
녀석은 히죽 웃으며 손가락을 들어 올려 보았다.
[오래전 신성한 기사들을 타락시키기 위해...]
“그 미리 말해주겠는데 우물안에 있던 페러사이드는 내가 모두 없애버렸다.”
[.....뭐라고?!]
아셀의 말에 던전 메이커의 두 눈이 크게 떠질 수밖에 없었다.
페러사이드.
그것이 아셀의 입에서 나온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에.
[이봐 던전 메이커 왜 그래?]
[빨리 녀석들을 타락시키라고! 놈들의 절망 어린 표정이 빨리 보고 싶단 말이야!]
[..... 네가 그것을 어떻게 아무리 네가 미래에서 왔다고 하지만....]
불가능했다.
미래에 자신이 만들어놓은 페러사이드.
그것을 알아차릴 인간이 도대체 어떻게 있겠는가.
던전 메이커의 경악 어린 표정과 다르게 아셀의 입장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은 없지만, 이 망할 게임에는 수천만의 유저들이 있던 것.
그들이 발견해낸 게임 속 발견들은 게임 속에 빠진 아셀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었기 때문에.
‘좋아.. 좋아... 신성 기사단은 그럴 수 있다.’
신성 기사단.
그곳에 아셀 필드가 지난 2년간 머물렀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있었기에.
던전 메이커는 경우의 경우를 생각해서 자신의 페러사이드를 알아차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용은 아니지.’
용들의 타락.
그것은 자신도 파랑스가 죽기 전까지 알지 못한 것들이었다.
그랬기에 인간들이 아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들.
고귀함의 상징인 용들을 타락시키는 것이 얼마나 희열이 넘치는 일이겠는가.
상상만해도 뜨거울 희열이 던전 메이커의 몸 안에 흐르는 것도 잠시.
그는 이번에는 바로 타락시키기 위해 손가락을 튕겨냈다.
딱! 그의 손에서 피어오른 마기.
그것에 반응하여 용들의 코어 안에 있던 기생충들이 반응해 고귀함의 상징인 용들을 마룡으로 타락시켜야 했다.
[무슨...]
탁! 탁! 탁! 탁! 계속해서 손가락을 튕기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는 용들의 모습에 던전 메이커가 급기야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도 잠시.
아셀은 그 우스운 모습에 피식 웃어 보이며 놈을 바라보았다.
“설마.. 마룡이라도 기대했어?”
[놈이 아는 눈치인데?!]
[저것이 어떻게 마룡들을 아는 거야! 이봐 던전 메이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 설마 이것도 네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한 것을 던전 메이커는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참아낼 수 있었다.
설마 마룡의 계획까지 망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으니까.
[또...또 무엇을 망쳤더냐.]
“그걸 말해주면. 재미없잖아?”
순식간에 아셀의 손에서 쏘아진 거대한 얼음 조각들에 말릭과 쿠이가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아셀 자네 또 성장했다고!?”
“하하하.. 아셀 역시 너는 여신께서 보내주신 기사다!”
쏘아낸 아셀의 기운에서 그가 성장했다는 것을 단숨에 눈치챈 것.
심상치 않은 기운은 분명 10성급의 그것이었기에.
그들의 놀라움이 배가 되는 것과 동시에 세 명의 마계의 군단장이 서 있던 자리를 완전히 박살 낼 것 같은 얼음들은 어디선가 올라온 토산에 막혀 사라졌다.
[이봐.. 이봐 던전 메이커 이야기 다르잖아.]
‘지저왕!’
지저왕 카가룬.
두더지와도 같은 모습의 마계 군단장.
입맛을 다시며 자신의 토벽을 완벽히 박살 내고 결계까지 두드린 아셀의 얼음을 바라보며 카가룬은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8성급이라며 아니 못해도 9성급이라는 인간이 어떻게 10성급의 기운을 내는 거야?]
[.....]
[10.10성급이라고? 망할 마왕자 벨이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건가!?]
‘벨이 깨어있구나!’
놈들의 말에서 아셀은 마왕의 유일한 혈육 마왕자 벨이 벌써 깨어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너는 내가 직접 죽여야겠다. 아셀 필드....]
거대한 얼음 조각들이 결계에 흠집을 내며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던 던전 메이커의 머릿속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대륙의 모든 전력이 모인 이곳을 일부러 불완전한 마경으로 바꾼 것.
그것은 사실 말릭과 용들을 타락시켜 대부분의 전력을 없애버리고 인간들의 절망을 흡수하기 위함이었던 상황.
그러나 그것들이 실패한 이상 다른 수를 생각해야 했다.
‘아직.. 아직 내가 유리하다. 그걸 사용하면...!’
속이 타들어 가고 오랜 시간 준비해온 모든 것들이 저 성인도 되지 않았을 것 같은 인간의 손에 망가졌다고는 하지만, 던전 메이커가 생각하기에 전황은 자신에게 유일한 상황.
그가 손을 한번 휘젓자 마기로 이루어진 거대한 큐브가 허공에 떠올랐다.
“저런 게 있다고?”
“쿠이가님 저게 뭡니까?”
“이보게 자네는 마법사가 만능으로 아는가 갑자기 나타난 물건을 한눈에 알아맞히게 말이지?”
잠시 기사들을 바라보며 탓을 하는 쿠이가였지만, 이내 침음을 삼키며 하늘 위의 큐브를 바라보았다.
“공간전이.. 그래 이곳에 있는 모두를 떨어트릴 생각이야!”
말과 함께 쿠이가의 거대한 백색 태양이 놈들을 집어삼킬 듯 쏘아지는 것도 잠시.
놀랍게도 거대한 거울이 나타나 쿠이가의 백색 태양을 모두 삼키기 시작했다.
‘이면왕 리군!’
또 하나 알고 있는 마계의 군단장의 모습.
아셀은 저 거대한 거울이 그 어떤 공격도 다른 세계로 돌려보내는 절대적인 방어법을 지니고 있는 무구임을 잘 알고 있었다.
[떨어져라. 벌레들이여.]
무언가 다시금 번쩍이며 아셀의 발밑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불록을 쌓아가듯 움직이는 주변 공간.
그 안에서 몬스터들과 거대한 손들이 계속해서 튀어나와 아셀과 주변의 사람들을 덮치기 시작했다.
“떨어지지 말아라!”
“서로 붙어있어!”
“어디로 떨어지든 함께 있으면 막아낼 수 있다!”
갑작스러운 지형의 변화 속에서도 신성기사단과 마탑의 마법사들은 당황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자신들을 압박해오는 몬스터들과 거대한 팔들을 몰아넣고 있는 모습들.
대륙의 가장 강한 두 세력이 한자리에 있었기에 가능한 모습들이었다.
“아셀!”
“저것들이 아셀을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던전 메이커의 노림수 대로 이 모든 공격들은 아셀을 향해 온통 집중되고 있었다.
거대한 손들은 물론 경지가 높은 몬스터들까지 대거 아셀을 향해 달려들고 있는 상황.
이 혼란한 상황 속에서 아셀은 팽 카이저를 이용해 마치 거대한 얼음 요새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크하하하하 파트너! 창의성이 대단하다!]
정령왕의 도움으로 순식간에 만들어지기 시작한 얼음 요새.
그것들이 사방에서 몰아치는 몬스터들과 거대한 손을 막아내고 있어 주었지만, 잠깐뿐이었다.
“공간 변혁은 못 막는 건가?”
아무리 거대한 기운을 가진 존재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공간 자체를 간섭하는 기술 앞에서는 나약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
잠시 눈살을 찌푸리던 아셀은 투자하고 있는 거대한 마나들에 비례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냥 들어가라.”
[어..어?! 내가 없다면 도대체 어떻게 하겠는가 파트너!]
팽 카이저가 꽥꽥거리며 무어라 소리쳤지만, 에프릴의 거대한 모자를 벗어내자 녀석과의 연결이 순식간에 끊어졌다.
잠깐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기에 잠시 휘청거렸던 아셀은 이내 씨익 웃으며 카이나의 그림자를 순식간에 불러들였다.
‘어디론가 떨어지기 전에.’
놈의 얼굴에 한방은 먹여주고 싶었다.
저 거대한 대좌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며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던전 메이커의 얼굴에 한방은 먹여줘야 속이 풀릴 거 같은 상황.
아셀이 결심을 함과 동시에 거대한 파공음이 아셀의 두 발에서 터져 나왔다.
팡! 카이나. 그녀가 아직은 10성에 도달하지는 못했기에.
아셀의 지금 움직임은 카이나 이상.
공간을 접으며 앞으로 달려가고 있는 있는 아셀을 사방에서 덮쳐 오는 몬스터와 거대한 손들이 잡을 리 없었다.
“아셀이 저런 움직임을..?”
“단장. 사실 그림자가 강한 거 아닙니까?”
신성 기사단들과 마법사들은 아셀의 놀라운 움직임에 놀라워 하는 것도 잠시.
아셀은 자신을 뒤덮을 듯 쏟아지는 모래의 파도를 바라보며 그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주제넘게 어디를 올라오려고 하는 거야!]
지저왕이 만들어낸 거대한 모래의 파도.
그것은 일반적인 모래가 아닌 마기를 뒤덮은 고열의 모래였기에.
닿으면 일반적인 무인이라면 그 자리에서 미라가 될 것이 분명했다.
[말라비틀어져 버...어.어라?!]
순식간에 아셀을 뒤덮어야 했을 모래의 파도.
그러나 그것들에 속에서 거대한 파공음이 들리기 시작하더니 모래의 파도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투.투기만으로 내 유사를 소멸시켰다고!!!?]
연환속사.
10성급에 도달하며 이제는 수천 개의 권격을 동시에 토해낼 수 있는 카이나의 장기들.
그것이 동시에 터져 나오자 지저왕의 모래 파도를 순식간에 소멸시킨 것이었다.
[이.이 망할!!]
투기만으로 자신의 모래 파도를 소멸시킨 인간은 단 한 명도 없었기에.
지저왕이 눈을 부릅뜨는 것도 잠시.
계속해서 달려오는 아셀을 붙잡기 위해 이면왕이 수백 개의 거울을 하늘에 소환시켰다.
수백 개의 거울 속 그 안에 작은 광채가 떠올랐다.
그것이 눈부신 빛을 내뿜더니 이내 수백 개의 거울에 반사되어 아셀을 향해 쏘아지는 광선들.
용들의 숨결보다 강하고 파괴적이며 어디서 내려칠지 모르는 그 재앙 같은 광선들 속에서.
아셀은 인간을 뛰어넘은 불가능한 움직임을 보이며 앞으로 달려 나가고 있었다.
[죽어!! 죽어!! 죽어!!!!!]
이면왕의 광기에 차 울부짖는 소리와 다르게.
그 어떤 광선도 아셀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하고 있었다.
‘단숨에 달려 나간다.’
목표는 오직 하나였기에.
지금 저 대좌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점점 경악에 어려있는 던전 메이커에게 한방 갈기는 것.
점점 자리가 가까워지고 모래들과 광선들이 아셀을 압박해왔지만, 그의 표정에는 진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이. 이놈!!]
드디어 던전 메이커는 아셀이 무엇을 노리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두 마계의 군단장을 무시하고 자신에게만 일직선으로 달려오는 아셀이 자신을 노린다는 것은 알기 손쉬운 일이었으니까.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라!]
순간 공간이 깨지며 아셀의 사방에서 어둠이 뒤덮였다.
“그럴 거야.”
그와 함께 거대한 기운이 뭉쳐진 아셀의 오른손이 일직선으로 쭉 뻗는 것과 동시에.
아셀은 그 진한 어둠에 삼켜지며 씨익 웃어 보였다.
[크..크아아아아아아아!]
던전 메이커의 울부짖는 소리가 아셀의 귓가에 들려왔다.
자신의 일격이 녀석에게 정확히 적중한 것을 눈치채는 것과 동시에.
사방에서 어둠에 뒤덮였다.
‘다음은 죽빵으로 안 끝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