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화. 타락시키려고…? (1)
몬스터로 변한 프레스코.
아셀은 놈이 쏘아대는 거대한 마기들을 모두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아피엘가는 사냥터가 되었었다.’
필드가는 불가살이 생겼으며 좀비 같은 몬스터와 리치 한 마리가 상주하게 되었었다.
아피엘가는 저렇게 사람의 머리와 짐승을 섞어 넣은 몬스터로 전락하게 되는 것.
아셀은 마족들이 인간을 상대로 어떤 일을 벌이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크오오오오오오오!]
프레스코의 두 눈에 붉은 피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아직 이성이 남아있어 7용사 가주였던 자신이 몬스터로 전락한 것에 대한 괴로움인지 아니면 그저 몬스터로서 괴로움의 표시인지는 알 수 없는 상황.
어느새 다가온 아셀이 미친 듯이 아르테스를 휘둘러 놈의 온몸에 상처를 낼 뿐이었다.
‘몬스터 자체는 약하다.’
기운이 거대할 뿐 사냥 가능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인간이었던 시절의 모습이 더 까다로웠던 것.
한참을 놈을 베어내던 아셀은 녀석의 높은 체력에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시간 다 되어 가는데...”
완전 무장 발키리를 계속해서 사용했기 때문에 말릭의 그림자 재단 유지 시간은 얼마 남지 않은 상황.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엇을 사용할까 고민하던 아셀은 이내 씨익 웃으며 에프릴의 모자를 썼다.
[오오오오오오 파트너 네가 드디어 나를 사용해주는구나!]
“저.정령?!”
모자를 쓰는 것과 동시에 팽 카이저가 그 거대한 모습을 드러냈다.
불러내기 까다로운 다른 정령왕과는 다르게 본인 스스로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모습을 드러낸 것.
아셀과의 계약도 있지만, 팽 카이저 본인의 성격 때문에 가능한 모습들이었다.
[파트너 말하거라 이 몸의 첫 번째 임무가 무엇인가!]
“...저것 좀 어떻게 해봐라.”
녀석의 우렁찬 목소리에 잠시 머리가 지끈거렸던 아셀이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지끈거림을 털어낸 것도 잠시.
아셀은 북방 투드란 지역에서나 불 것 같은 폭풍이 던전 안에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악이여 소멸해라!]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꼭 그런 낯뜨거운 말을 해야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거냐?”
[파트너는 뭘 모르는구만!]
거대한 폭풍은 프레스코의 온몸을 박살 내기 시작했으며 그 안에 숨겨져 있던 거대한 얼음 조각들은 프레스코의 온몸에 박혀드는 모습들.
마치 자연재해와도 같은 그 기술들은 정령왕의 격이 분명했다.
[이런 거야말로 마음가짐이다. 모든 힘은 마음가짐에서부터 나오는 거 모르는가 파트너는?]
“... 몰라. 알고 싶지도 않고.”
[흐음.. 이상하구만 파트너. 나는 파트가 나를 잘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그건 또 뭔 개소리야?”
순식간에 박살 나기 시작하는 프레스코를 바라보던 아셀은 팽 카이저의 말에 어처구니 없다는 듯 녀석을 올려다 보았다.
[파트너도 그 멋진 이명들을 생각하며 가끔 전의를 불태우지 않는가.]
“...뭐?”
[그런 표정 짓지 말게 파트너. 자신을 부정하는 것은 나약하다는 증거이니까. 이 몸은 파트너와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몸. 그러니 파트너보다 파트너를 잘 알고 있다고 알 수 있지.]
“그러냐? 그러면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한 번 맞춰 봐.”
[이렇게 고생한 팽 카이저님에게 어떤 보상을 내릴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모습이구만, 너무 걱정은 하지 말게 본래는 전설급 아이템 하나이지만, 이번에는 그저 아이스크림인가 뭔가 하는 그 먹을 것으로 퉁쳐주겠으니까 말이야.]
“대단하구나 팽 카이저..정확히 틀려버렸어. 나는 방금 너와 계약을 끊고 예전에 나한테 계약 제안을 주었던 다른 정령왕과 계약할까 심각하게 고민했거든.”
[그.그게 무슨 파렴치한 소리인가 파트너! 나처럼 쉬운 정령이 어디 있다고!]
꽥꽥거리는 팽 카이저의 품위 없는 모습과는 반대로.
녀석의 힘은 진짜였기에. 폭풍이 지나가고 남은 자리에는 형상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는 프레스코의 몸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대단하네. 그걸 맞고도 살아있다는 게 말이야?”
코어 안에 거대한 마나가 들어오지 않았기에.
아셀은 녀석이 아직 살아있음을 알아차렸으나 그것도 이제 금방일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살아남은 김에 마지막으로 쟤한테 사과할 기회를 줄게.”
[크어,,크어어어어.]
무어라 중얼거리는 프레스코. 그 모습에 뒤에 있던 지안은 두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어린 시절부터 학대를 당하고 방금 전에는 자신의 목숨을 앗아가려고 했던 아버지라고 하지만, 저런 비참한 최후는 생각지도 못했으니까.
“뭐라는지.”
팽 카이저와 연결되어 있기에.
아셀의 손에 빙산과도 같은 거대한 얼음이 순식간에 만들어지는 것도 잠시.
그것은 천천히 프레스코의 몸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전혀 모르겠다.”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애초에 녀석에게 베풀어줄 자비는 죽음으로써 끝내주는 것뿐이거니와 자의적으로 마족에게 타락한 녀석을 구제하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아....”
모든 싸움이 끝나자 뒤에서 털썩 주저앉은 지안과 다르게 이 모든 것을 보고 있던 팽 카이저는 흥미로운 눈으로 아셀을 바라보았다.
[파트너.. 내게 들어오는 마나의 양이 급격하게 많아졌다. 이건 정말로 흥미롭구만.]
“그래.”
무덤덤하게 말은 하고 있지만, 아셀은 속으로 진한 만족감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8성급.’
지난번 로즈와 파랑스를 잡아내고 얻은 거대한 마나들.
그것로 인해 경지가 높아지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건만, 이곳에서 수많은 몬스터를 사냥하고 프레스코 같은 거물을 잡아내며 어느새 코어가 8개로 늘어났기 때문에.
[파트너 지금의 너는 신기하구나. 완성에 한 발자국 남은 무인 같기도 그리고 두 발자국 세 발자국 남은 무인 같기도 하니까 말이야.]
팽 카이저의 말이 맞았다.
본래의 아셀의 코어는 8개.
그러나 코어 강화 심법으로 9개의 코어에 해당하는 출력을 낼 수 있으며 또한 말릭과 케락스의 그림자를 융합한다면 완성의 바로 아래인 10개의 코어에 해당하는 출력을 낼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대륙에 너 같은 특별한 무인이 또 있을까? 하하하. 역시 이 몸이 고르고 고른 계약자다 파트너! 예전 동료들이 말했던 존버는 승리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겠구나!]
“그런 말은 도대체 어디서 배운 거냐?”
팽 카이저의 어딘가 이상한 말에 아셀이 눈살을 찌푸린 것도 잠시.
그는 자신의 코어를 바라보며 씨익 웃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라면.’
10개의 코어.
이 특별한 경지에 도달한 무인은 대륙의 역사상에서도 얼마 존재하지 않은 상황.
아셀은 자신의 경지가 얼마나 높은지 다시 한번 떠올릴 수 있었다.
“레벨 200도 상위 0.1%에 해당하는 녀석들이었지.”
[응? 파트너 그게 무슨 말인가?]
“그런 게 있다. 그런 게.”
10개의 코어.
그것은 게임에서 레벨 200에 해당하는 경지에 준하는 수준이었다.
수천만 유저들이 함께하는 게임에서 상위 0.1%의 경지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누구나 알 수 있는 법.
아셀은 그 안에 자신이 들어갔다는 사실에 이내 기분 좋은 미소를 띨 수밖에 없었다.
‘하위 1%에서 여기까지 올라선 건가.’
캐릭터를 잘못 만들고 여기까지 성장했던 지난 세월이 눈에 보이는 것 같은 것도 잠시.
아셀은 프레스코가 죽은 자리에 갑자기 거대한 나무가 생기며 그 안에 문 같은 것이 만들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이건?”
프레스코의 시체 곁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던 지안은 갑자기 나타난 나무의 모습에 놀라는 것도 잠시.
아셀은 머리를 긁적이며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초대라도 하나 보네.”
“초대 말인가요?”
누가 초대했는지는 이미 뻔한 일.
어딘가에서 이 모든 일을 지켜보고 있을 던전 메이커가 아셀을 초대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더 이상 던전이 없는 것일 수도 있고.’
500여 개의 던전.
그리고 대륙의 모든 강자들이 한자리에 있는 상황.
그것들 모두가 클리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 없는 것이었기에.
아셀은 던전 메이커가 저렇게 나오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다.
“지안. 아니 리안 이건 내가 가져간다.”
“어.어떻게 제 이름을?!”
자신의 본명을 알고 있는 아셀을 바라보며 리안은 진심으로 크게 놀라워할 수밖에 없는 것도 잠시.
그녀는 아셀의 손에 들려있는 초록빛 귀걸이를 바라보며 두 눈을 껌뻑일 수밖에 없었다.
“그건..”
“아피엘가의 숲의 숨. 너네 가문의 보물이지만 이건 나한테 있는 게 더 잘 어울려. 대신 이건 너 줄게.”
프레스코가 사용하던 지팡이.
많이 망가져 있지만, 수리한다면 예전 위용은 드러낼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이로써 7용사 세트가 두 개나 들어왔다.’
목에 걸려있는 필드가의 아메라의 눈물.
이제 귀에 걸려있는 숲의 숨까지.
무지개 무구 세트가 두 개나 손에 들어왔기에 아셀의 눈이 호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숲의 숨과 아메라의 눈물이 상호작용합니다.]
[무지개 무구 세트의 효과가 나타납니다.]
[전 스탯 30이 증가했습니다.]
[숲과 바다 근처에서 마나가 한계까지 들어 올 수 있습니다.]
[숲과 바다에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
설마 벌써 이렇게 무구의 효과가 나올 줄은 몰랐던 아셀의 두 눈이 번쩍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알고 있던 녀석은.’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아셀은 무지개 무구를 3가지 지니고 있던 녀석을 알고 있었다.
그때 녀석이 그것들의 상호작용 효과로 얼마나 스탯이 오르며 어떤 능력을 보여주었는지 제대로 보여주었던 것.
그랬기에 아셀은 최소 세 가지 이상 무구를 소지해야 서로 상호작용이 나올 줄 알았기에.
뜻하지 않은 효과들에 기분이 배로 좋을 수밖에 없었다.
“리안 너는 여기 남아있어라.”
던전의 대부분이 소탕되었다면 리안 혼자서 이곳에 남아도 괜찮았다.
오히려 눈앞에서 아버지가 몬스터로 변해 죽음을 맞이한 상황 속에서 정신이 나가버린 녀석을 데려가는 것이 더 위험한 상황.
아셀의 배려를 눈치챘는지 리안은 뚝뚝 흘리고 있던 눈물을 닦아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쪽에서 역겨울 정도로 사악한 기운들이 느껴진다 파트너...]
팽 카이저의 말을 증명하듯 다가가기만 해도 진한 마기들에 아셀의 피부가 따가워질 지경인 상황.
그럼에도 아셀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안쪽으로 걸어들어갔다.
잠깐의 부유감.
어디론가 이동하는 것을 눈치챈 것도 잠시.
아셀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던전 메이커와 눈을 마주치며 피식 웃어 보였다.
“준비한 건 끝났냐?”
[충분히 즐기지 못한 눈치구나 아셀 필드.]
“기대한 것 이하였어.”
[그런데 정령왕이라... 역시 자네는 대단해.]
호선을 그리며 웃어 보이는 던전 메이커의 표정.
아셀은 놈의 여유 속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는 것도 잠시.
거대한 파공음을 내며 사방의 공간이 박살 나기 시작했다.
“쿠이가님이 마족을 처단하러 왔다!!!”
“아셀 무사하더냐!”
쿠이가와 말릭이 등장한 것도 잠시.
그들을 바라보며 던전 메이커의 눈빛이 번쩍였다.
[가장 신뢰하는 동료가 타락하면 어떤 느낌이겠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