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화. 아피엘가 (2)
무언가 쏘아졌고 아셀은 검을 휘둘러 그것을 막아냈다.
“대단하구나! 내 미천한 딸년하고 비교해서 너는 걸작이다!!”
“.....”
초록빛 광선.
그것이 프레스코가 쏘아내는 잘 정돈된 검기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도 잠시.
아셀은 녀석의 주변에서 무언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을 발견했다.
‘아피엘가.’
정보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애초에 용사들의 밤이라는 이벤트로 멸문하게 되는 7용사 가문.
아셀이 게임을 했을 적에 아피엘가에 대한 정보는 그곳이 ‘특별한’ 사냥터로 바뀌는 것뿐이었으니까.
“어떤가 엘프들에게 사랑을 받은 우리 일족들의 힘이!”
“그렇게 사랑을 받았으면...”
프레스코의 검강들이 마치 나뭇가지처럼 아셀을 향해 휘둘러지기 시작했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공격들.
마치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흔들거리는 것처럼 휘둘러지는 그 신비로운 공격들은 분명 완성에 가까운 무인들의 그런 것이었다.
“엘프들 좀 도와주지 그랬냐?”
카가가가강! 아셀의 검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신성력의 검강이 프레스코의 나뭇가지들을 순식간에 박살 내기 시작했다.
“?!”
설마 순식간에 자신의 기술을 박살 내며 휘둘러지는 아셀의 검에 프레스코의 눈이 크게 떠지는 것은 당연한 법.
성인도 되지 않은 아이가 자신의 기술을 깨부쉈다는 굴욕과 경악이 함께 하는 표정이었다.
“새끼.. 별 시답지 않은 수를..”
박살 내면 박살 낼수록 프레스코의 그 나뭇가지 같은 검기가 계속해서 재생되기 시작했다.
“... 피어나라.”
박살 이 나던 프레스코의 나뭇가지에서 새순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그것들이 피어오르며 나뭇잎을 만들어내는 것도 잠시.
아셀은 그 안에 담겨있는 기운들에 눈을 껌뻑이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타락을 했는데 저런 순수한 기운이라니.’
타락한 수많은 무인들.
말릭이 타락했을 적에 거대한 건물과도 같은 신성력의 검강이 마기로 물들며 유저들에게 휘둘러졌고 용들의 아름다웠던 브레스가 기괴하고 증오 가득한 마기로 물들었던 것과는 다르게.
프레스코가 휘두르는 검기들은 아직 그 순수함을 전혀 잃지 않고 있는 모습이었다.
“설마 자의적으로 타락했냐?”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구나.”
타락.
마족들이 대륙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대표적인 방법들.
말릭과 신성기사단에 페러사이드를 뿌려 천천히 자신들도 모르게 타락시키는 것과 다르게 자의적으로 마족에게 타락했던 수많은 무인들도 있던 법이었다.
“새끼가 어디서 말을 돌려. 네가 자의적으로 타락 안 했으면 기운이 아직도 이렇게 순수하겠냐?”
콰가가가강! 아셀의 말을 숨기려는 듯 갑자기 프레스코의 나뭇가지에 피어올랐던 나뭇잎들이 거대한 파공음을 내며 폭발하기 시작했다.
“우스운 소리를 하는구나 아셀 필드. 타락이라니. 너는 스스로의 근원에 충실해지는 것을 타락이라고 생각하는가?”
“.....”
“말해보거라. 네놈은 스스로의 욕망 스스로의 근원으로 향하는 것이 타락인가 아니면 진정 순수해지는 것이라 생각하는가!”
거대한 폭발음 속에 아셀의 몸에는 그 어떤 상처도 나있지 않았다.
어느새 완성된 신성의 갑옷.
그것이 아셀의 몸에 작은 생채기 하나 생기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도 안 돼.. 아버지의 기술을 맞고도 멀쩡하다니....”
지안은 그런 아셀의 모습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설마 자신의 아버지의 기술에 피 한 방울 나지 않았을 줄은 생각도 못 했으니까.
“순수? 미친 새끼.”
“무슨?!”
다시금 휘둘러지는 프레스코의 나뭇가지를 건틀릿으로 뒤덮인 손으로 박살 내며 아셀은 비릿하게 웃어 보였다.
“말은 잘해요. 그럼 네 딸 죽이려는 게 순수함의 증거냐?”
“왜 남의 가정사에 그렇게 열을 내는지 모르겠군.”
마치 광인들의 춤사위처럼.
프레스코는 지팡이를 들고 미친 듯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불가능한 방향에서 쏘아지는 녀석의 검기와 검강들.
심지어 휘둘러지는 나뭇가지에서 떠지는 나뭇잎들.
마치 거대한 나무처럼 스스로가 움직이는 프레스코의 모습은 무인이라기보다 마법사 같은 그런 것이었다.
“설마 내 딸에게 반한 것인가!? 하하.. 저것이 반반하기는...”
콰가가가가가가강!! 미친 듯한 프레스코의 춤사위가 일순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미.미친..저걸 어떻게.’
아셀을 옭매던 거대한 나뭇가지들과 검기들.
그것들이 일순간 아셀의 신성의 갑옷에서 나온 수백의 신성력의 무기들에 의해 박살이 나버렸기 때문에.
“완전무장 발키리..?”
“잘 아네.”
“그걸 네놈이 어떻게!”
각무인들 마다 저마다의 고유 기술이 있기 마련.
그것들은 다른 타인들이 절대로 따라 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이었기에.
프레스코는 말릭의 장기인 완전무장 발키리를 완벽하게 재현하는 아셀의 모습에 경악을 토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조금 말이야.”
순식간에 쏘아지는 수백의 신성력의 무기들.
검, 봉, 창, 망치 등등 아셀조차 인지하기 어려운 그 수많은 무기들이 그저 적의를 가진 존재들에게 쏘아지며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완전무장 발키리를 사용합니다.]
[그림자 재단의 유지시간이 빠르게 줄어듭니다.]
말릭과 이곳에 오며 정교해지고 다듬어진 이 사기적인 기술.
유일한 단점이라면 이것을 완벽하게 사용하는 순간 그림자 재단의 유지시간이 미친 듯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크..크아아아아아아아아!!!”
광기에 춤사위를 추던 프레스코는 자신의 모든 방어들이 말 그대로 박살 나고 찢어지는 것에 고함을 터트리며 기운을 더욱 끌어올렸다.
‘이럴 수는 없다... 이러려고 이러려고 받아들인 게 아니란 말이야!’
-제가 계획이 있습니다.
히어로즈 컵에서 자신에게 말을 건넸던 로즈의 말이 프레스코의 귓가에 갑자기 흘러들어왔다.
제안.
황금 기사단의 수장씩이나 되는 존재가 언제부터 마족들과 연관되어 있었는지.
그런 이유 따위 프레스코에게는 사소한 것이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이번 대에도 7용사 가문에서 가장 강한 존재가 ‘자신’이 되는 것.
그렇기에 로즈가 주선해준 마족과의 계약을 아무런 스스럼 없이 받아들였다.
-계획이라고 해도 네놈은 그저 나에게 주는 것뿐이다.
마왕자 벨.
자신을 그렇게 소개한 마계의 군단장과의 계약.
그것은 다른 일반적인 흑마법사의 계약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프레스코 자신이 스스로 자부하던 존재의 크기가 일반적인 흑마법사랑은 전혀 다른 격에 있었으니까.
그랬기에 그저 받기만 했다.
마왕자 벨의 마기를 아무런 대가 없이 받는 것.
그것이 분명 프레스코와 마왕자 벨의 계약이었다.
싱그러운 기운을 가득 담고 있던 프레스코의 나뭇가지에 점점 진한 마기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아.아버님?!”
마치 초록빛 나뭇잎에 검은 꽃이 피어오르는 것 같은 모습들.
아피엘가의 모든 지팡이술을 알고 있던 지안은 이런 기괴한 모습에 눈을 크게 뜨며 경악을 토할 수밖에 없었다.
“아...아....”
프레스코의 입에서 점점 인간의 목소리 같지 않음 음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짐승 수백 마리가 벽을 긁어대는 것 같은 기괴한 음성.
그 모습에 아셀은 머리를 쓸어넘기며 아르테스를 미친 듯이 휘두르며 검은 꽃들을 베어내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무슨..?!”
목소리를 시작으로 자신의 몸의 곳곳에 검은 반점이 올라오는 것을 발견한 프레스코의 눈에 경악이 튀어나왔다.
“뭐긴 뭐야.”
자신의 변화를 예상하지 못했는지 경악하고 절규하는 모습.
그와 반대로 프레스코의 의자와 상관없이 날뛰기 시작한 검은 꽃과 초록 나뭇가지는 던전을 말 그대로 박살 내기 시작했다.
“타락한 자의 최후지.”
[우.웃기지 말아라. 이 몸이 이 몸이 마족 따위에게 굴할까 싶은가!]
“야. 너 설마 진짜로 힘만 빌려준다는 말을 믿은 거냐?”
아무리 검은 꽃들이 사방으로 갑자기 날뛰며 아셀의 진격을 방해한다고 하지만, 완전 무장 발키리를 완전히 개방하고 달려가는 아셀의 진격을 막아낼 수는 없는 법.
순식가에 거기를 좁힌 아셀이 지팡이를 들어 올리며 막아내려는 프레스코의 오른팔을 단숨에 잘라냈다.
[크아아아아아아!]
“봐봐. 마기를 받아들인 인간은 말이야.”
잘려나간 프레스코의 팔에서 회색빛 털이 가득한 짐승의 손 같은 것이 튀어나왔다.
빠르게 재생된 것.
그것과 더불어 인간의 손 같지 않은 그것이 튀어나온 모습에 지안이 헛구역질을 하는 것도 잠시.
아셀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프레스코의 사지를 계속해서 베어내기 시작했다.
“인간이 아니게 된다는 상식을 몰랐냐? 음..아니지 지금은.”
[그만.. 그만!! 그만 베어다오!]
베어낼 때마다 인간의 신체가 아닌 짐승의 신체의 일부분이 나오는 것에 절규하는 프레스코를 바라보며 아셀은 그저 묵묵히 검을 휘둘렀다.
“상식이 아니려나?”
게임 초창기에 마족과 계약하는 비이상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유저들도 많았다.
마기를 얻으며 다른 유저들보다 빠르게 성장하는 치트 같은 존재들.
그러나 아셀은 그들 대부분이 종국에는 마족들의 의지에 반하지 못하고 인간의 형상을 유지하지 못해 캐릭터를 지웠던 것을 잘 알고 있는 상황.
유저들도 그랬는데 npc라고 다를 것 없었다.
거물급 npc들 중에서도 마족에게 속아 마기를 받아들이고 마족도 인간도 아닌 그저 살육에 미친 짐승으로 변한 녀석들도 수도 없이 많았으니까.
[크어..크어어어어어어..]
“아셀님. 제발. 제발 아버님을!”
점점 이성이 없어지는 것인지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를 내는 프레스코를 바라보며 지안이 울부짖으며 소리쳤다.
“아버님을 제발 구해주세요. 제발..”
“구해준다라.”
저렇게 모습까지 변해버린 존재를 다시금 인간으로 돌아가게 하는 방법은 전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저렇게까지 가능하게 하는 존재와의 계약을 파기시키는 방법조차 없었으니까.
“안식은 줄 수 있지만, 구할 수는 없어.”
“아....”
아셀의 말에 지안은 두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아피엘가의 가주가 지금은 진한 마기를 풍기며 짐승으로 변해있는 모습.
심지어 머리가 있던 자리에는 사슴과도 같은 거대한 뿔이 돋아나 있는 모습에 지안은 아셀의 말처럼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눈치챘다.
“뒤로 물러나 있어라 지안.”
아무리 짐승으로 타락했다고 하지만, 딸의 앞에서 아비의 목숨을 끊어내는 모습은 보여주기 싫었기에.
아셀은 인간의 얼굴에 거대한 회색 사슴의 모습으로 변한 프레스코를 바라보며 아르테스를 들어 올렸다.
‘나왔다.’
아피엘가.
그 7용사 가문이 멸문하고 남은 것은 눈앞 저 몬스터들뿐이었다
인간의 얼굴을 가지고 거대한 회색빛 몸통에 거대한 마기를 일으켰던 몬스터들.
몇몇 유저들은 마족들의 질 안 좋은 장난으로 만들어진 키메라라고 추측했으나 아셀은 이제 저것들이 어디서 나왔는지 정확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고맙게 생각해라.”
[크어어어어어!!]
거대한 프레스코의 두 사슴뿔에서 광선과도 같은 마기들이 쏘아지기 시작했다.
“적어도 너 하나 몬스터로 바뀌는 걸로 이번에는 끝났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