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8화. 던전 메이커
던전 메이커.
아셀은 녀석의 말에 그 어떤 장난기도 없다는 것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역시 저 녀석은..’
위험했다.
저런 유연한 사고. 그 어떤 존재가 아셀이 미래에서 왔다고 상상조차 할 수 있겠는가.
“위험해 위험해...”
[역시나! 미래에서 왔구나 네놈은!?]
호기심이 풀린 것에 대한 환희가 한순간 던전 메이커의 몸을 관통했다.
그와 함께 부르르 떨리기 시작한 녀석의 몸. 그것에 맞추어 녀석의 몸이 점점 검은색 마기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어떤가 미래에서는?]
“아 네놈이 어떻게 되냐고?”
놈의 물음에 아셀은 그저 씨익 웃으며 아르테스를 뽑아 들었다.
그와 함께 자연스럽게 나오는 황금빛 작은 입자들.
비시어스의 뼈로 강화된 아르테스의 새로운 모습들이었다.
“빌빌 기더라 살려달라고. 눈물 콧물 오줌 뭐 다 쏟아내면서 살려달라고 빌빌대는 모습이 얼마나 우스운지 네가 직접 봤어야 했는데.”
[......]
“뭐 걱정하지 마 이번에도 네놈은 그렇게 될 거니까.”
가볍게 휘두른 아르테스에 아셀의 검기 말고 황금빛 기운이 같이 쏘아졌다.
수르트의 심장은 용암과 고열의 검신을 만들어냈으며 월석 혜냐는 아르테스를 거의 파괴불가 수준으로 만들어냈던 상황.
그것들과 다르게 비시어스의 뼈는 아르테스에 무려 추가 공격력 20%를 붙여주는 사기적인 옵션을 붙여주었다.
콰가가가강! 검기가 녀석의 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한두 개가 아닌 쏘아낸 수십 개의 검기들.
신성력과 황금빛 기운이 함께 하고 있는 그 기묘한 검기들은 대전을 박살 내기 시작했으며 마기로 뒤덥이고 있는 던전 메이커의 온몸을 조금씩 박살 내기 시작했다.
[영악한 놈..]
계속 쏘아지는 아셀의 검기에 던전 메이커의 입술이 기괴하게 비틀렸다.
[일을 화려하게 저지르고 다른 사람들을 부르려는 것이더냐?]
“잘 아네.”
던전 메이커 녀석의 모습을 대륙의 모든 존재가 본다면.
적어도 지금처럼 의미 없는 회의만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막타는 내 거지.’
녀석을 잡아낸다면 8성급으로 단숨에 성장하는 것도 문제가 아닌 상황.
아셀의 코어는 서둘러 저 녀석을 먹어 치우고 성장하라는 듯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네 실수다 아셀 필드.]
무언가 아셀의 본능에 경종을 울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눈치채기도 전에 아셀은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대전의 모습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크하하하 네가 보고 온 미래에도 이런 모습을 보았더냐?! 말해주거라 아셀 필드!]
‘마경.’
검은 마기들이 스쳐 지나가는 자리에 이질적인 모습들이 보여지기 시작했다.
화려했던 스테인드 글라스는 유황과 화산이 불타는 것 같은 모습으로 바뀌었으며 던전 메이커의 모습조차 점점 사라지기 시작하는 상황.
이 공간 자체가 이계로 바뀌고 있는 것이었다.
[네가 상대해야 할 건 수천 개의 던전. 그것을 뚫고 내게 도달할 수 있을까?]
“수천 개라고!?”
눈을 크게 뜨는 아셀을 바라보며 던전 메이커의 입술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아무리 네놈이라고 하지만, 수천 개의 던전은...]
“야이 새끼야 수만 개 던전 만들던 새끼가 무슨 수천 개야!!”
[......]
“야야.. 다시 만들어 갑자기 만들게 돼서 부족했으면 시간 좀 더 줄 테니까.”
[미친게냐?]
던전 메이커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저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으니까.
“하.. 이러면 실망인데..”
수만 개의 던전.
마경으로 바뀌고 몬스터 웨이브에 비견되는 수많은 몬스터들이 튀어나오는 곳.
아셀은 그곳에서 미친 듯이 사냥을 하고 빠르게 경지를 올릴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기에.
그때보다 10분의 1로 줄어버린 던전 규모에 큰 실망감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이러면 기다려준 의미가 없지 않냐 메이커야.. 심지어 나는.”
던전으로 바뀌고 있던 수많은 공간이 갑자기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푸른빛 거친 마나들이 던전 메이커의 마기들을 완전히 박살 내는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쿠이가?]
마탑주 쿠이가.
그가 아셀의 말을 듣고 이곳 소왕국에 미리 설치해둔 마법진이 발동되고 있던 것이었다.
“이걸 반으로 줄여버릴 계획을 세웠었단 말이야.”
씨익 웃어 보인 아셀의 미소를 바라본 던전 메이커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겁을 먹었다고?’
반으로 줄어든다고 해도 수백 개의 던전.
그곳을 저 인간이 돌파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절대로 들지 않았다.
심지어 그것을 돌파한다고 해도 아셀을 기다리는 것은 세 명의 군단장급 마족들. 게다가 던전 메이커는 최후의 수단마저 이미 준비해둔 상황이었다.
[허세 부리지 마라..]
그렇기에 저 여유로운 아셀의 표정이 모두 허세라고 생각했던 던전 메이커의 모습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네놈은 지금 허세를 부리는 거야.]
“허세는 무슨...”
‘랜덤으로 떨어지던가?’
마경으로 바뀐 뇌리 왕국.
그곳에 있던 수많은 유저들의 증언에 따르면 수만 개의 던전에 자신들의 위치가 랜덤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조금 기다리고 있어라.”
순간 거대한 마기들이 쿠이가의 마법진을 깨부수고 뇌린의 수도를 뒤덮기 시작했다.
마경화.
그것이 시작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바로 대가리 깨부숴주러 가줄게.”
묘한 부유감. 유저들의 증언처럼 어디론가 전송되기 시작한 아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도 잠시
그는 마치 고대의 신전과도 같은 공간에 떨어진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선 여기에 떨어진 건가?”
이곳이 어디인지부터 알아보기로 결정한 아셀이 바로 움직이려는 때였다.
“여.여긴 어디지? 어라? 아셀님?”
“.....”
목소리가 들린 곳.
그곳에는 아피엘가의 장남이자 야누스의 목걸이의 주인인 지안 아피엘이 눈을 껌뻑이며 서 있었다.
‘쟤는 왜 여기에 있는 거지?’
***
야누스의 목걸이.
목걸이 계열의 아이템 중 최고가에 팔린 아이템.
최고가에 팔린 것과는 다르게 저것의 능력은 간단했다.
‘대상자의 성별을 바꿔준다.’
사용자의 성별을 바꿔주는 것.
환상처럼 속이는 것과 다르게 야누스의 목걸이는 말 그대로 완벽하게 성별을 바꿔주었다.
그랬기에 아셀은 자신의 앞에서 남자들의 연미복을 입고 있는 지안 아피엘이 사실은 여자임을 이미 잘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셀님.. 이건 혹시 마족들의 짓인가요!?”
“그럴지도..”
“아아.. 이런 망할 녀석들! 후우.. 그래도 아셀님과 같이 있으니 조금은 안심이 되는 것 같습니다.”
“......”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지안이었지만, 잠시 자신의 표정이 너무 여성스럽다는 것을 깨닫고는 황급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야누스의 목걸이의 주인들은.’
아셀이 기억하는 저 목걸이를 소유하고 있던 녀석들 중에 제정신인 녀석이 드물었다.
몇몇 녀석들은 대놓고 여성으로 속인 다음 수많은 유저들에게서 상납을 받았던 적도 있었으니까.
그랬기에. 나오는 좀비와도 같은 몬스터를 무참하게 베어내며 아셀은 지안과 조금은 거리를 두고 있었다.
“와아....”
죽은 기사들이나 신관들.
그런 류의 좀비들. 아셀은 6성급 몬스터가 끊이지 않고 자신을 향해 달려왔기에.
지안에 대한 생각을 떨처내며 사냥에 집중할 수 있었다.
“대단해요. 아셀님 만약 제가 아셀님처럼 강했다면..”
무언가 생각났는지 잠시 입을 벌리고 아셀의 무위에 감탄하던 지안은 다시 한번 고개를 흔들며 상념을 떨처냈다.
“후우.. 아니에요. 저도 아셀님처럼 강해지겠습니다!”
“음...”
아셀의 입장에서는 왜 혼자 저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게 결의를 하는 녀석을 바라보며 굳이 마음에 있는 말을 내뱉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래도 다른 녀석들보다는 낫다.’
아셀이 지금껏 함께해왔던 개성 넘치는 녀석들보다는 그래도 묵묵히 자신의 앞에 있는 몬스터를 사냥하는데 집중하는 지안이었기에.
그나마 정서적으로는 안정이 되는 아셀이었다.
“그런데 이런 건 누가 이런 짓을 벌였을까요?”
“던전 메이커.”
“예?”
“그런 마족이 있어.”
잠시 쉬는 동안 아셀은 지안의 지팡이를 직접 수리해주고 있었다.
“아무리 마족이라고 하지만.. 대륙의 전력이 집중된 이곳에서 일을 벌일 줄이야..”
지안의 말이 맞았다.
대륙의 전력이 집중된 뇌린.
심지어 말릭과 쿠이가까지 있는 이곳에서 일을 벌인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으니까.
‘아니지. 오히려 역습의 좋은 기회였어.’
상식적으로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기에.
습격을 하기에는 최적의 상황.
만약 아셀이 놈이 이곳을 마경으로 바꿀 것을 미리 알지 못했었다면 수천 개의 던전들에 의해 말릭과 쿠이가는 무사해도 다른 무인들이 큰 피해를 입었을 게 분명했다.
“아셀님 충분히 쉰 거 같은데 다시 앞으로 가시죠.”
“벌써?”
한동안 지안과 함께하며 아셀은 그가 아니 그녀가 자신을 쉴 새 없이 채찍질하는 것에 의아함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왜지? 하나 술라와 마리우스에 뒤처지지 않는 녀석인데?’
지안 아피엘.
본래는 히어로즈 컵의 우승자.
아셀은 그녀가 보여주는 무위와 재능에 조금은 놀라워하고 있었다.
설마 미래의 용사들과 비교해서 전혀 꿀리지 않는 재능을 가지고 있을 녀석이 또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
“조금 더 쉬어도 돼. 방금 던전을 두 개나 클리어했잖아?”
말을 하며 아셀은 떨리고 있는 지안의 손을 바라보았다.
결의에 찬 그녀의 말과 다르게 그녀의 몸은 지금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으니까.
“아니에요. 아셀님. 저도 아셀님처럼 훌륭한 기사가 되려면 잠시라도 쉴 수 없습니다.”
“음.. 난 엄밀히 말하면 기사는 아닌데?”
“... 훌륭한 무인이라고 하죠.”
재촉하는 지안을 물끄러미 바라보자 그녀의 볼에 홍조가 올라왔다.
“그.. 어째서 그렇게 지긋이 바라보시는 건지?”
“음... 잠시만.”
어째서 저렇게 자신을 채찍질하는지 궁금했기에.
아셀은 그녀가 입고 있던 연미복을 빠르게 만들어 보았다.
[숲이 낳은 리안 아피엘의 연미복을 만들었습니다.]
[그림자 재단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신급 지팡이질, 불안정한 정서, 숲의 사랑을 받는 존재, 엘프들의 가호를 받는 존재. 특성이 구현됩니다.]
[원단의 효과로 동기화가 10% 증가합니다.]
[마구엘의 수선 세트의 효과로 동기화가 20%에서 시작합니다.]
[아피엘가의 지팡이술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용시 그림자 재단의 유지시간이 1시간씩 줄어듭니다.]
“미친...”
“아.아셀님 제가 뭐 잘못했나요? 그런데 어째서 제 옷을..?!”
지안의 아니 본래의 이름인 리안의 옷을 만든 아셀은 욕설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신급 지팡이술? 아니 거기다 엘프들의 가호를 받는 존재라고?’
하나 술라와 마리우스에 비견되는 재능. 아니 아셀은 개화에 따라 카이나 말릭 쿠이가 같은 거인들과 비슷한 재능을 가졌다고 판단했다.
“리. 아니 지안 아피엘.”
“예..예?”
생각을 마친 아셀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머리를 쓸어넘겼다.
“너는 살아야겠다.”
“예..예?! 갑자기 왜 그런 말씀을?”
놀라워 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아셀은 씨익 웃어 보였다.
“내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선 네가 필요하겠어.”
“어...어?!!”
갑작스러운 아셀의 말에 지안의 얼굴이 터질 듯 붉어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