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화. 마키헬에서
[...파랑스가 죽었다.]
[아....그 두꺼비가 죽어버렸어요?]
[하하.. 이거 퀴리에, 파랑스에. 혹시 7용사들이 관뚜껑이라도 열고 다시 나타났답니까?]
마키헬.
대륙에서 쫓겨난 마족들이 살고 있다는 섬.
그곳에 가장 높은 탑인 [소고라]에 6명의 수정구가 떠 있었다.
[마수왕]
[파리왕 움바차]
[이면왕 리군]
[지저왕 카가룬]
[던전메이커]
[마왕자 벨]
세상에 남은 마계 군단장들.
300년 전 용사들에게 토벌 당하고 대륙에 [깨어]있는 마계 군장의 수가 6명뿐이라는 소리였다.
[파랑스가 죽으면 계획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던전 메이커가 놈이 하고 있는 일을 이어받으면 그만 아닌가.]
[말은 쉽게 하는군. 누구처럼 내가 놀고만 있는 줄 아는가?]
[그만.. 그만 이 자리는 서로 싸우기 위한 자리가 아니지 않는가. 다들]
마왕자 벨.
유일하게 마키헬에서 기거하고 있는 마계 군단장.
그렇기에 수정구에서 음성만 들리는 다른 군단장들과 다르게 그는 칠흑 같은 머리에 미남자의 몸으로 자리에 앉아 있는 중이었다.
[후우.. 계획이 망가지고는 있지만, 큰 그림은 충분히 그려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300년간 몬스터들의 개체수를 인위적으로 조절했던 결과들이 생각 이상으로 나오고 있는 게 그 증거 아니던가.]
몬스터 웨이브.
지난 300년간 마족들이 인위적으로 몬스터들의 개체수를 조절하거나 거대한 집단을 타락시켜 만든 웨이브.
게임에서 유저들이 생각 이상으로 잘 막아낸 것과 다르게 지금은 그렇지 않은 상황.
그렇기에 대륙에는 수많은 피해가 일어났고 그것들 모두가 마족들의 계획을 빠르게 진행시키고 있던 것이었다.
[이곳의 마법사들의 말에 따르면 던전 메이커 네가 마경을 만들어내는데 성공만 한다면 단숨에 50%까지 부활률이 높아진다고 했다.]
[?!]
[5.50%까지 말입니까?]
50%의 부활률이라는 말에 암울하기만 했던 마계 군단장들의 말투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그래.. 마왕님만 부활한다면..]
[다른 군단장 녀석들까지 부활하는 건 시간문제다!]
[크하하하하 이거 생각보다 일이 빠르게 진행되는 거 같습니다!]
군단장들의 광소가 잠시 울려 퍼지기를 기다렸던 마왕자 벨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비록 용족. 그리고 그 더러운 그림자들이 부활했다고는 하나 대륙에 7용사와 비견되는 인간은 말릭과 쿠이가뿐이다.]
[마왕님께서 부활하신다면 그것들이 무슨 걱정이겠습니까?]
[맞습니다! 더러운 7용사들마저 마왕님을 완전히 소멸시키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셀 필드 그 인간이 조금은 걸립니다.]
던전 메이커의 침음 섞인 말에 다른 군단장들은 일순간 입을 열지 못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인간입니다. 처음 필드가에 설치한 제 던전을 찾아낸 것부터 최근에는 퀴리와 파랑스를 죽인 것까지. 마치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할지 미리 알고 대비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불가능해..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가장 큰 그림은 벨님 말고는 아무도 모르거늘!]
[그러니까 말이 되지 않다고 하지 않나. 도저히 우연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일이네.]
던전 메이커의 말에 벨은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과연.. 그것도 이해가 된다. 만약 우리가 마경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놈이 이미 눈치챘다면 분명 놈은 그곳으로 향하겠지?]
[지나친 억측이지만. 눈치채지 못할 것도 없겠군요. 놈의 동생이 제정신을 차리고 무엇을 말했는지 알 수 없으니까 말이죠.]
쓴웃음 가득한 던전 메이커의 목소리에 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곳에서 놈을 처리하게 던전 메이커. 리군과 가카룬을 붙여주겠다.]
[?!]
군단장급 마족을 둘이나 붙여준다는 벨의 말에 던전 메이커를 포함한 다른 마족들은 놀라워할 수밖에 없었다.
[아셀 필드가 그 정도 위협이라는 말입니까? 마경으로 바뀐 그곳에서 분명 놈은 죽을 텐데..]
[방심들 하지말아라. 그 누가 마왕님께서 300년 전에 인간들에게 토벌될 거라 생각했던가? 이것은 감이지만...]
잠시 말을 멈춘 후 벨은 300년 전 인간들의 무기에 무참히 살해당한 자신의 아버지 마왕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쩐지 아셀 필드를 떠올릴 때마다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놈은 분명 이보다 더 성장할 거야.]
‘벨님이 불안감을 느끼신다니..’
‘대체 그런 인간이 어떻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300년 전 7용사들을 상대로도 불안감 따위 느끼지 않으셨던 분이거늘..’
벨의 말에 경악하는 마계 군단장들이 각자 침음을 삼키는 것도 잠시. 벨은 탁자를 툭툭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 던전 메이커. 자네가 책임지고 그놈을 그곳에서 죽여야 하네.]
***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바빌에서 지내겠다.
-드래곤께서 함께해주신다면 큰 영광입니다.
골드 드래곤 비시어스와 바빌리나 4세는 바빌로 돌아갔다.
그동안 수많은 그림자들을 보호했던 바빌이었기에.
그곳이 앞으로 그림자들의 근거지가 될 것은 분명한 상황.
그랬기에 비시어스가 그곳으로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들이었다.
“투란을 떠나는 건 내키지 않구나.”
캉! 캉! 캉! 아르테스를 강화하며 한스는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곳만큼 망치질하기 좋은 도시는 없는 것 같으니 말이다.”
“맞는 말입니다 한스님! 그곳은 이제 대협도 놀라실만한 드워프들의 성지가 될 겁니다!”
한스와 토니 그리고 아셀은 남들이 다 떠나고 남은 요새에서 골드 드래곤 비시어스가 남긴 드래곤 본으로 아르테스를 강화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강화 재료가 아닌데 강화가 가능한 겁니까?”
“감이었다.”
“예?”
한스의 자신만만했던 말과는 다르게 감이라는 애매모호한 말이 나오자 아셀은 하마터면 망치를 떨어트릴 뻔한 것을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참아낼 수 있었다.
“그럴 때 있지 않더냐? 재료에서 목소리가 들려올 때 말이다. 나는 이 골든을 처음 봤을 때 내게 아르테스에 강화시켜 달라는 목소리를 분명 들었단다.”
“드래곤 본에 이름을 붙혀준건 둘째치고 목소리가 들리셨다고요?”
“흐음.. 아셀 명장들이 가끔 재료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것은 나도 들어본 이야기다.”
옆에서 셋의 작업을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던 말릭이 한스의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치겠군.. 점점 사람들이 이상해지는 거 같아.’
처음 한스를 만났을 때 침묵의 대장장이라는 이명에 걸맞게 장인다운 품격을 보여준 것과 다르게.
지금은 재료의 목소리가 들렸다며 무작정 아르테스를 두드리는 모습이 진심으로 낯설게만 느껴지는 아셀이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아셀 분명 내가 재료의 목소리를..”
“어라 한스님 여기 조금 갈라집니다요!”
“.....”
“.....”
한스의 자신만만해 하는 목소리와 다르게 아르테스의 검면에 균열이 조금씩 일어나자 모두가 숨을 크게 들이쉴 수밖에 없었다.
“조금 집중하자꾸나. 이제부터 잡담은 금지다.”
“재료가 말을 걸어도 답해주지 않는다면 놈이 삐지지 않겠습니까?”
“.....입 닥치거라 아셀.”
***
마탑.
그 거대한 기관은 지금 혼란이 가득했다.
“그림자들이 이렇게 억울했을 줄이야...”
“그나저나 쿠욘 시대에 그림자를 탄압한 것에 대한 보상이 발표될 거라는 소리가 있더군.”
“허어.. 어떻게 마탑에 이런 일이....”
마법사들의 혼란이 가득해지고 있는 가운데 탑주실에서 수염을 쓰다듬고 있는 쿠이가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날지 모르고 있었다.
“기분 좋은 일이 있으신가 봅니다. 탑주님.”
“기분 좋은 일은 무슨. 누가 들으면 내가 아셀 그 친구를 너무 걱정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저는 아셀님을 단 한 번도 거론하지 않았는데요?”
“..... 아니야 자네는 분명 거론했다네. 내가 누구를 걱정할 거 같은 사람인가? 고고함의 대가이자 심연을 바라본 마법사인 내가?! 웃기는 소리!”
“정말로 안 했는데..”
“안 했다면 자네 속마음을 내가 읽은 게지.”
“제 속마음을 읽어요?”
“나 정도 되는 마법사라면 그런 잡기술 하나 능숙하게 할 수 있다네.”
층장 퍼거슨은 쿠이가의 말이 정말로 장난인지 진심인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 늙은 마법사는 농담 같은 일들을 진짜로 만드는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흐흐.. 다행이야. 정말로 다행이야.’
겉으로는 아셀에 대해 무관심한 척 말하지만, 내심 아셀에 대한 걱정이 가득했던 쿠이가였다.
때문에 아셀을 황금 기사단의 요새 드래곤 벨리까지 이동시켜주는 데 도움까지 주었던 것.
모든 그림자들의 오해가 풀리고 혼란에 빠진 대륙의 상황에 쿠이가는 진심으로 기쁠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대륙 공의회에는 언제쯤 출발하실 겁니까.”
“흐음... 가긴 가야겠지.”
대륙 공의회.
드래곤들의 재등장과 그림자들의 부활 그리고 더 이상 대륙에 숨어있던 마족들에 대한 토벌 문제까지.
이러한 거대한 사건들이 연달아 터져 나왔기 때문에. 대륙의 유력자들은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7용사 가문의 수장들 그리고 두 황제... 아니지 바빌의 황제는 이제 그림자들의 대변자인가 이거 참 헷갈리는구만.”
“겸직한다고 들었습니다.”
바빌리나 4세가 골드 드래곤 비시어스의 가호를 받으며 그림자들의 대표가 된 것은 벌써 대륙의 곳곳에 퍼진 상황이었다.
“아셀 그 친구가 대표자가 될줄 알았는데. 아니지 아셀이라면 그런 귀찮은 자리 맡지 않을 수 있겠어.”
잠시 무언가 고민이 있다는 듯 수염을 쓰다듬던 쿠이가는 공의회에 참석해달라는 공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공의회 장소가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유라시아 제국의 황제가 대륙 중앙에서 모이자고 적극 추천한 결과라는데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대륙의 유력자들이 모이는데 소왕국 [뇌린]이라니..”
히어로즈 컵의 개최도 그렇고 대륙의 유력자들이 모이는 자리는 최소 7용사 가문의 영지 이사이었던 것.
그것과 다르게 소왕국 뇌린에 모이라는 공문은 쿠이가를 의구심에 빠지게 할 수밖에 없었다.
“흐음... 무언가 있는 거 같은데..”
수염과 함께 자신의 지팡이를 만지작거리던 쿠이가가 생각에 빠진 것도 잠시.
갑자기 열린 탑주실의 문에 그의 두 눈이 다시 한번 찡그려질 수밖에 없었다.
“탑주님!! 이거 대박입니다! 대박이 터졌어요!”
“탑주의 권위가 또 한 번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구나 퍼거슨. 이제는 층장도 아닌 그냥 마법사들이 탑주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더니 저런 품격없는 말까지 하는 거 보니까 말이다.”
“탑주님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마탑을 마법으로 날려버린 것보다는 예의 있다고 생각하는데 말입니다.”
“..... 권위가 떨어졌어 권위가..”
예전 자신이 마탑에서 했던 일들이 있었기에.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내쉬는 쿠이가에게 수십명의 마법사들이 우루루 몰려들었다.
“그래 망할 마법사들아 무슨 발견을 했길래 이리 천박하게 달려온 것이더냐?”
“탑주님 방금 말투가 너무 품격 없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제발 닥쳐주게 퍼거슨.”
숨을 고르는 수십 명의 마법사들의 모습에서 그는 이놈들이 놀라운 마법을 발견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 봐야 내가 이미 발견하거나 비슷한 마법이겠지.’
그동안 이렇게 아이들처럼 흥분하며 탑주실로 달려온 마법사들이 한둘이 아님을 잘 알고 있는 쿠이가가 마법사들을 한껏 비웃으며 조언을 주기 위해 표정을 가다듬던 것도 잠시.
마법사들의 입에서 튀어나온 놀라운 말에 그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할 수밖에 없었다.
“드.드래곤들께서 오십니다!”
“뭐..?”
“마탑을 세우신 드래곤분들 중 다섯 분이 마탑으로 돌아오고 계신단 말입니다 탑주님!”
“이런.. 미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