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화. 비시어스
‘아.아셀 저 아이가..’
‘대체 왜 저런.’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이중에 용족을 직접 만난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지금 골드 드래곤에게 똑바로 말하고 있는 아셀을 바라보며 경악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못 들으셨어요? 그걸 네가 왜 가져가시냐니까요?”
[가져간다면.. 혹시 드라콘을 말하는 것인가?]
골드 드래곤 비시어스는 눈앞의 인간의 당당함에 당황했지만, 이내 감탄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이거 믿기지 않는군. 용들 앞에서 당당한 인간이라니.....’
300년 전 용들과 인간이 함께 했을 적에도 용들 앞에 당당했던 인간은 없다고 해도 무방했던 상황.
심지어 7용사 가문의 시조들마저 용족들에게는 최소한의 경의는 표했었다.
‘재미있어.. 그러니 파랑스를 잡아낸 건가?’
호기심이 점점 일어나기 시작했다.
긴 세월을 살아오며 얻은 용족들의 호기심은 인간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집착과도 같은 것.
그랬기에 옛 이야기에는 용족이 인간을 도우며 죽을 때까지 옆에서 지켜봤다는 이야기가 많은 것이었다.
“그건 내 전리품입니다.”
[......전리품이라.]
“아셀. 그래도 예의는 조금 갖추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아셀이 반말인지 존댓말인지 애매한 말투를 사용하는 것을 바라보며 놀랍게도 바빌리나 4세가 예의를 입에 담았다.
‘황제가 미쳤나?’
예의를 말하며 주의를 주는 바빌리나 4세의 낯선 모습에 아셀이 그를 잠시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래 그 말도 맞지. 허나 아셀이여.]
비시어스는 잠시 말을 멈추며 아셀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자네가 위대한 업적을 이룩하고 우리 용족들을 잠에서 깨웠는데 고작 드라콘 하나로 되겠는가?]
“?!”
비시어스의 말에 아셀의 눈빛이 반짝이는 것과 동시에 줄곧 보고 있었던 의문 가득한 퀘스트 보상 2의 물음표가 단숨에 사라졌다.
[보상2: 용족들이 긴 잠에서 깨어납니다.]
‘용족들이 나왔다!’
파랑스가 죽고 용족들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
게임을 했을 적에는 마족의 대대적인 침공에 맞서 나타났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물들이었다.
[위대한 업적을 이룩하고 용족들을 다시금 대륙에 나타나게 한 용사에게 드라콘 같은 검은 그리 값어치가 없을 거 같은데 말이지?]
“위대한 드래곤께서 그렇게 말하신다면.”
[.....]
바로 바뀌는 아셀의 태도에 비시어스는 잠시 눈을 껌뻑이다가 이내 피식 웃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좋은 태도다 용사라면 응당 그래야지.]
[드래곤으로부터 용사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전 스탯 10이 증가합니다.]
[드래곤들이 당신을 존중합니다.]
‘용사 칭호라고?’
게임을 했을 적 용사 칭호를 얻은 존재는 단 두 명이었다.
복수귀 하나 술라와 희망의 마리우스.
그 둘이 용사 칭호를 가지고 얼마나 대단한 업적들을 세웠던 것을 떠올리면 대단한 상황.
심지어 그들 또한 용족들에게서 용사 칭호를 얻은 것이 아닌 인간들에게서 얻은 것들이었기에.
아셀은 그들보다 더 값어치 있는 칭호를 얻은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부정한 검은 그대에게 줄 수가 없다.]
로즈의 몸에서 드라콘을 흡수한 비시어스는 잠시 눈을 감고 무언가를 집중하는 것도 잠시.
그의 입에서 진한 마기들이 슬그머니 피어올랐다.
[이거 보거라 파랑스 그것의 기운이 잔뜩 묻어있지 않더냐.]
“확실히...”
확실히 골드 드래곤 비시어스의 말이 맞았다.
오랜 세월 황금 기사단을 뒤에서 조종하고 있던 파랑스가 드라콘에 아무런 장치를 해놓지 않을 리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네게 나를 주겠다.]
“예?”
무슨 말이냐는 듯 아셀이 비시어스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도 잠시.
그의 몸이 잠시 번쩍이더니 황금빛으로 감싸인 무언가가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내 갈비뼈 중 하나이니라. 그대들 중에 좋은 대장장이가 있는 거 같으니. 분명 좋은 물건이 나올 게 분명하구나.]
“어... 어?”
“아.아셀 당장 저걸 내게 가져오너라!”
드래곤 본.
심지어 골드 드래곤 비시어스의 뼈.
아셀은 그것에 한스의 실력이 더해진다면 과연 어떤 물건이 나올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그림자들을 수호하는 빛이 되겠다. 아. 이건 그대들의 허락을 받는 게 맞겠군.]
“자.잠시만 드래곤이시여!”
“저희를 버리시는 겁니까?!”
“드래곤이시여 저희를 버리지 말아주십시오!”
갑작스러운 비시어스의 선언에 황금 기사단들은 바닥에 엎드리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그들로서는 300년 만에 돌아온 수호룡이 갑자기 떠난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기 때문에.
[이미 300년 전 그대들에게 실망해 떠났던 것을 잊었는가. 아니지. 그대들과 마족에 의해 쫓겨난 게 맞겠지.]
‘아하..이제 모든 것이 이해가 되는군.’
아셀은 어째서 용족들이 파랑스가 죽으면서 깨어났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용족들 또한 속삭임의 파랑스에 의해 은거에 들어간 것이 분명한 상황.
그랬기에 파랑스가 죽지 않고 깨어난 후에는 녀석이 설치한 함정들에 의해 모두 타락해 마룡이 되었던 게 분명했다.
[그러니 그대들의 수호룡이 될 수 없다. 다가오는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그대들은 이미 너무 타락하기도 했구나.]
“그.그것은 모두 드래곤님을 위해서..”
[더 이상 추해지지 말거라 발터가의 라무스여.]
“아...”
마지막으로 발악하는 라무스에게 묘한 중압감을 내리는 비시어스를 바라보며 아셀은 자연스럽게 지금 드래곤과 자신의 거리를 가늠해보았다.
‘멀다.’
당연하게도 멀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용은 용족들 중에서도 최상위권의 전투력을 지닌 존재였으니까.
“금방 따라잡을 수는 있지만.”
마계 군단장 둘을 잡았기에. 코어가 차오르는 속도는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상황.
심지어 아셀은 지금 8성급의 경지를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다시 한번 제안하겠네. 그림자들이여. 내가 그대들의 수호룡이 되어도 되겠는가? 그렇다면 대륙에 흩어진 자네 동료들 또한 내가 앞장서서 모아줄 수도 있다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아셀이 나서서 모으는 것도 아닌 비시어스가 직접 그림자들을 모으고 보호해주겠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전혀 없는 상황.
아셀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위대한 분께서 그렇게 헌신하겠다면. 받아들이지요.”
[고맙구나.]
[비시어스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골드 드래곤 비시어스가 그림자들을 앞으로 보호합니다.]
[대륙의 무언가가 크게 뒤틀렸습니다.]
“이건 또 뭐지?”
비시어스가 다른 그림자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잠시.
아셀은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별건 아니겠지 뭐.”
용족들의 자연스러운 부활.
무려 대륙을 멸망 직전까지 몰아갔던 7차 몬스터 웨이브를 미연에 방지했다는 것과 다름없었기에.
아셀은 그 어느 때보다 진심으로 한시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점점 내 미래 설계가 완벽해지고 있네.”
***
-아셀 나는 부족으로 돌아가겠어.
-갑자기?
-대륙이 이렇게 혼란스러워지는데 우리들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
드래곤을 보고 무언가 결심했는지 투마리스는 부족으로 돌아가겠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헤헤헤 그럼 다음에 만날 때는 우리 아빠랑도 같이 볼 수 있겠다!
-?!
뭔가 그냥 흘러듣기 힘든 이야기를 하고 투마리스는 떠났다.
[강한 기운이 이곳으로 오는구나.]
비시어스의 중얼거림과 함께 아셀은 무너진 요새의 성문을 넘어 걸어오고 있는 말릭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말릭..?!”
“여명 수도원의 말릭이 이곳에 왔다고!”
“도망가야 하나?”
그림자들에 대한 오해가 대륙에 풀렸다고는 하지만, 아직 이곳에 남아있는 그림자들은 대륙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자세히 모르는 상황.
그들이 대륙 최강의 검을 경계하는 것도 잠시.
아셀은 피식 웃으며 자신과 비시어스를 번갈아 바라보는 말릭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입니다. 스승님.”
“아셀... 너란 아이는 대체..”
무언가 목구멍을 통해 치솟았기에.
먹먹해지는 말릭을 대신해 아셀은 그저 어깨를 으쓱거렸다.
“속이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뭐 어떻게 하다 보니까 이렇게 되었습니다.”
“.....”
“그런데 스승님 어째서 이곳에 오신 겁니까?”
“아.. 그게...”
말릭의 머뭇거림을 바라본 아셀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씨익 웃어 보였다.
“설마 제가 그림자라서 직접 죽이려고 오신 건 아니시겠지요?”
“....”
“허어.. 정말이었습니까? 스승님이 아끼시던 아셀을 정말로 직접..”
“아니 아니 그게 아니다 아셀! 우선 내 말 좀 들어보거라!”
단번에 자신이 어째서 여기에 왔는지 알아차린 제자를 바라보며 말릭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일단 네 말대로 그런 목적으로 이곳에 오기는 했는데 나는 절대로 너를 죽일 생각이 없었단다.”
“그건 무슨 소리신가요?”
“그러니까. 잘 들어봐라 아셀 내가 말이지...”
한동안 계속되는 변명 하는 말릭을 바라보며 주변의 무인들은 놀라움에 눈을 껌뻑일 수밖에 없었다.
‘말릭이 저런 모습이 있었다니..’
‘마치 식은 화산 같은 모습이다.’
‘역시 대협.. 대륙 제일의 검도 비굴하게 만드시는군요!’
[강한 인간이여.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림자들의 억울함은 내가 증명할 테니.]
“하하... 드래곤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하지만 이 말릭 제자를 단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이는 말릭을 바라보며 아셀을 눈을 가늘게 떴다.
“여신께 맹세하실 수 있나요?”
“아셀 내게 예전부터 말하지만, 여신의 이름은 함부로 걸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란다.”
“가르시아 주교님은 잘도 거시던데요?”
“그러고 보니 아셀 네가 로즈를 무인으로서 압도한 거겠구다. 참으로 대단하다.”
“스승님 방금 제가 한 말은 무시하시는 건가요?”
“그건 그렇고 황제께서도 그림자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제를 넘어가는 말릭을 바라보며 아셀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가장 큰 시름은 놓은 거지.’
자신을 전적으로 믿어준 스승 말릭. 아셀은 이 망할 세상에 떨어진 이후 의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을 그동안 속인 것에 대한 죄책감을 조금은 가지고 있던 것이었다.
“유론 자네는 근데 아셀이 그림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나?”
“...당연하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네.”
“역시 아버지란 존재들은 대단하군.”
아셀과 관련된 일에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듯 유론의 태연스러운 거짓말에 아셀은 너털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었다.
[아셀이여. 이제 그대는 어떻게 할 것인가?]
“흐음..”
많은 것이 함축되어 있는 말이었다.
용들의 등장과 대륙의 거대 단체 중 하나인 황금 기사단의 몰락.
게다가 마족의 존재가 대륙에 숨어있다는 것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상황.
이제부터 어떻게 할지 묻는 골드 드래곤의 말에 아셀은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선택지는 많다.’
용족과 그림자들의 부활로 현재 미래에 닥칠 수많은 사건들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게 되었다.
‘용사들의 밤. 그리고 던전 메이커.’
7용사 가문의 몰락. 그 시작인 용사들의 밤.
솔직히 아셀의 입장에서는 용사 가문들이 모두 망하는 것이 미래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들 또한 바바리안들과 마찬가지로 오해가 있을 수도 있는 상황.
아셀은 좀 더 그들에 대해 알아보기로 결정했다.
“다른 마계 군단장 하나를 잡아야 할 거 같군요.”
[자네는 대륙에 마계 군단장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듯한 말투로군?]
흥미로워 하는 비시어스의 말에 아셀은 그저 어깨를 으쓱거렸다.
“동생이 알려준 겁니다.”
우선 던전 메이커.
그것을 잡고 마경으로 변할 소왕국들을 구해내기로 아셀은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