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화. 기사단 없애기 (1)
마계 군단장 중 하나이자 뱀파이어 로드 퀴리를 죽인 것.
아셀은 그것이 앞으로 대륙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잘 알고 있었다.
“저.정말로..”
“마계 군단장을 잡아낸 건가?”
믿지 못하는 수많은 투란의 주민들.
심지어 한스마저 두 눈을 껌뻑이며 자신의 앞에서 소멸한 퀴리의 흔적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셀.. 네가 참.. 대단하구나. 어떻게 어떻게 우리가..”
가장 오래 살아남은 그림자 중 하나였기에.
그동안 당해왔던 서러움이 가슴속에 맺힌 것.
지금 아셀이 퀴리를 사냥한 것으로 그림자들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바뀔 것임을 한스는 눈치채고 있는 것이었다.
“감동의 시간을 방해해서 죄송하지만,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스승님.”
“으..응?”
퀴리의 잔해 속에서 무언가 빠르게 사출의 주머니에 넣은 아셀은 한스에게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그림자들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되든. 가만히 있으면 우리는 다 죽은 목숨이거든요.”
“......”
아셀의 말에 한스는 그제서야 뒤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신성 기사단과 워 메이지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모두들 지금 상황 속에서 아셀을 잡아야 할지 아니면 가만히 내버려 둬야 할지 고민하는 기색이 가득한 모습들.
한스는 그 모습에 안타까움 가득한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네 말이 맞다.. 조금은 인식이 바뀌어도 근본적인 문제는 바뀌지 않는 법이니까.”
한스의 말처럼 그림자들의 인식이 조금은 바뀌었고 사람들의 머릿속에 의구심이 생겨날 뿐.
그림자라는 존재들이 인간들을 배신하고 마족들에 들러붙었었다는 오해는 완벽하게 풀리지 않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억울함을 알아도 죽이려는 녀석들도 있으니까.’
황금 기사단.
그 고귀한 잡것들은 그림자들에 대한 억울함을 잘 알고 심지어 속삭임의 파랑스 또한 숨겨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로즈... 황금 기사단 단장이라면 아마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습니다.”
“아.... 맞다. 그것은 매번 너를 눈엣가시처럼 보고 있었으니.”
대륙의 그 어떤 존재들보다 아셀이 그림자라는 사실에 쌍수를 들며 환영할 존재가 바로 로즈였다.
말릭에 밀려 대륙 최강의 자리를 처음으로 놓친 로즈의 열등감.
게다가 이번 대에 이르러 말릭의 제자가 자신의 제자를 압도하는 상황에 놓인 지금.
아셀을 제거할 명분이 생긴 것을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거냐 아셀. 아무리 퀴리를 죽였다고는 하지만, 황금 기사단은..”
퀴리.
그것을 잡아내고 뱀파이어들을 막아냈다고는 하지만, 황금 기사단은 300년 가까이 대륙 최강의 기사단으로 군림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스승님의 걱정도 이해가 갑니다.”
퀴리를 잡아냈을 때 보다 더 힘든 싸움이 계속될 게 분명한 상황.
심지어 이번에는 마탑과 신성 기사단의 도움을 받지도 못할 게 분명했다.
“도움을 줄 원군이 그렇게 없는 것도 아니고요.”
“원군? 아...”
누군가를 말하나 싶었던 한스의 얼굴이 잠시 펴졌지만, 금세 시무룩해질 수밖에 없었다.
“바빌리나 4세를 말하는구나. 하지만 바빌의 황제가..”
황금 기사단의 전력을 압도할 전력이 있느냐 라는 뒷말을 한스는 삼킬 수밖에 없었다.
“괜찮습니다. 스승님.”
그런 한스의 두려움을 달래듯 아셀은 그저 씨익 웃어 보였다.
“모두 잘될 거예요.”
***
드래곤 벨리.
황금 기사단의 본거지이자. 골드 드래곤이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냈던 곳.
거대하게 세워진 성과 그앞을 거닐고 있는 화려한 갑옷의 기사들은 황금 기사단이 얼마나 대단한 위용을 지니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크흡.. 크하하하 크하하하하하하!”
[그리도 좋은가?]
요새의 심부 단장실.
일반 기사단의 단장실이 아닌 마치 성주나 황제의 옥좌처럼 만들어진 그곳에서 황금 기사단의 단장 로즈는 참을 수 없다는 듯 광소를 터트리고 있었다.
그녀의 성격을 알고 있는 자들이라면 놀라워할 만한 일.
그러나 옆에서 거대한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는 한 마족은 몇 번이라도 봐왔던 모습이었기에 그리 놀라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당연히 좋지. 자네는 좋지 않은가 파랑스?”
속삭임의 파랑스.
마계의 군단장이며 대륙 각지의 불화를 만들고 그림자들을 탄압했던 장본인.
그 거물급 마족은 로즈의 말에 그저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글세... 우선 오랫동안 알고 있던 친우의 죽음에 대놓고 기뻐할 수는 없는 일이지.]
“그건 기만인가 아니면 진실인가?”
[진실이라네. 뱀파이어 로드 퀴리의 죽음은 우리 마족들에게 충분히 비극으로 찾아오는 소식이거든.]
퀴리의 말에 로즈는 그저 씨익 웃어 보일 뿐이었다.
“그런가? 관점의 차이군.”
[하기야 그대들 입장에서는 군단장급 마족이 죽은 것이 큰 이득이겠구만.]
“이득뿐이겠는가. 아셀 필드.. 그 아이가 참으로 재미있는 일들을 벌여주셨어.”
자리에서 일어나자 옥좌를 중심으로 거대한 황금빛 기운들이 저절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흐음.. 언제나 봐도 신기하단 말이야. 어떻게 기사단들이 이렇게 심오한 마도 공학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 말이지.]
로즈의 권자에서 피어오른 황금빛 기운뿐만이 아니었다.
밖에서 훈련을 하고 있는 몇몇 기사들의 손과 발에는 마도 공학으로 만들어진 정교한 의수들이 장착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제 마족들은 숨으려야 숨을 수가 없지.”
[그렇겠지. 퀴리 그 멍청한 친구가 자신들의 존재를 대륙 각지에 퍼트렸으니까 말이야.]
히어로즈 컵을 뱀파이어와 손을 잡은 오릭스가 습격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오랜 세월 세상에서 없어졌다고 하는 마계 군단장급의 마족이 대규모 군을 이끌고 세상을 침공한 것.
300년 전의 마족들에 대한 공포를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 대륙인들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지 로즈는 잘 알고 있었다.
‘이전처럼 흘러가지는 않을 거다.’
히어로즈 컵에서의 사건 이후.
마족에 대한 토벌 그리고 대륙의 수호에 대한 기대감은 신성 기사단에게 쏠릴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는 대륙 제일의 기사이자 완성의 무인 말릭이 있었기 때문에.
300년 동안 대륙을 수호했던 황금 기사단이 뒷전으로 밀린 것은 역대로 처음이었던 상황.
그랬기에. 마키헬에 보낸 용자 또한 황금 기사단의 단장 자신이 아니라 신성 기사단의 단장 말릭이었다.
그때의 굴욕감을 아직도 가슴에 지니고 있던 로즈는 이번 사건이 그 어느 때보다 황홀하게만 느껴졌다.
“아마도 아셀 필드 그 아이는 그때 모든 능력을 사용했겠지.”
[그건 짐작 아니었나?]
파랑스의 말에 로즈는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
“나를 바보로 생각한 거야 아니면 방금은 시험한 거야?”
[....]
“이봐 기생충. 요즘 들어 갑을 관계가 이상해진 거 같아서 말하는데.”
로즈의 허리에 걸려있는 황금색 레이피어 드라콘이 그녀의 기분에 맞추어 밝게 빛을 내기 시작했다.
“너는 그저 우리가 알고 싶은 정보만 말하면 되는 거야. 알겠어?”
[..실언했군. 오래 살다 보면 헷갈리는 게 있어서 말이지.]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는 파랑스의 모습에 로즈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드라콘으로 파랑스의 어깨를 꿰뚫었다.
주루룩. 그와 함께 새어 나오는 검은 피들.
마계의 군단장이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검을 받고 있다는 놀라운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심지어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지 로즈와 파랑스 둘 다 무덤덤한 모습.
검은 색피가 대전 한가운데까지 흘러가는 것을 무심하게 바라보던 로즈가 드라콘을 거두며 피식 웃어 보였다.
“실언이라.. 좋아 용서해주지.”
[고맙군.]
“아무튼 놈이 능력을 모두 사용했다면 그림자라는 사실이 들키지 않을 리가 없어.”
파랑스가 가져다주는 정보들과 로즈 본인이 직접 나서 아셀의 뒤를 조사했기에.
그녀는 어렴풋이 아셀이 그림자라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는 중이었다.
“하하.. 제 발로 죽어주겠다고 나서주다니 이거 얼마나 좋아? 안 그래?”
[우리로써도 좋다. 특이점들은 없애는 편이 좋거든.]
묘한 미소를 띠고 있는 파랑스를 바라보며 로즈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망할 마족 새끼.’
300년 전 초대 황금 기사단 단장과 파랑스가 맺은 맹약에 따라.
마계의 군단장인 속삭임의 파랑스는 황금 기사단의 단장에게 대대로 묶여 있는 상황.
어떻게 보아도 노예와 비슷한 신세이건만, 가끔 무언가를 꾸미는 듯한 놈의 표정을 발견할 때면 로즈는 참을 수 없는 혐오감 비슷한 것이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신성 기사단은 난리가 났겠어?”
[교황이 직접 그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마탑은?”
[묘하게 조용하더군.]
“침묵하기로 결정했군.”
여명 수도원과 마탑의 대응 방안들에서 로즈는 그들이 아셀을 어떻게 할지 어렴풋이 눈치채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제일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말이지....”
드라콘의 검병을 매만지던 로즈는 아셀의 푸른빛 머리카락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유론 필드.. 그 남자는 어떻게 나올까?”
[글쎄다.... 아마도.]
파랑스가 무언가 답을 하기도 전에.
갑자기 대전이 벌컥 열리며 기사 한 명이 다급하게 들어왔기에 로즈는 파랑스의 대답을 듣지 못했다.
“단장님!!”
“.....”
자신 외에는 그 어떤 누구에게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파랑스였기에.
로즈가 파랑스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는 것도 잠시.
그녀는 자신의 제자 라무스의 사색이 되어있는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슨 일이더냐 라무스.”
“침공 침공입니다!”
“뭐..?!”
300년.
그 기나긴 시간 동안 몬스터 한 마리 덤벼들지 못했던 황금 기사단 요새의 침공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에.
“도대체 누가!”
“아셀 필드... 녀석이 그림자들을 이끌고 지금 요새 앞에 나타났습니다!”
“.....?!”
***
로즈.
그 망할 것이 이끌고 있는 황금 기사단.
대륙의 적폐 중 적폐.
어찌나 패악질을 일삼았는지 유저들이 가장 많은 암살 시도를 했던 npc 1위.
그러나 아셀은 자신이 마지막으로 게임을 했을 때까지도 로즈와 황금 기사단은 건재했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녀석들이 패악질을 드러낸 건 마족들과의 전쟁이었으니까.’
마족들과의 전면전에서 유저들은 황금 기사단이라는 거대한 세력을 없애는 것에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놈들이 가진 거대한 세력은 마족들과의 전투에서 어쨌든 도움이 되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심지어 마왕의 부활과 망해버리는 대륙의 상황 속에서도
황금 기사단들은 놀랍게도 건재한 세력을 구축하기까지 했다.
“...우린 침묵하겠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인 거 같구만 아셀.”
오랜만에 만나본 쿠이가는 수십 년은 더 늙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의 지친 얼굴 속에서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하는 기색을 발견한 아셀은 그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정도 도와주셨으면 거의 공범 아닙니까?”
“으하하하하! 역시 아셀. 자네는 대담한 면이 있어 어쩌면 그런 게 바로 화산과도 같은 포부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싶은데?”
바빌리나 4세.
아셀은 쿠이가의 도움으로 이곳까지 날아온 그를 바라보며 그저 피식 웃어 보였다.
“이 상황에서 농담이라..하아. 그런데 자네는 정말로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
쿠이가는 바빌리나 4세가 그림자들이었다는 사실에 놀란 것도 잠시.
그가 무려 500명이나 되는 그림자들을 데리고 심지어 그들을 정예화했다는 사실에 두 눈이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심지어 아셀은 그런 500명만 데리고 황금 기사단의 요새를 무너트리겠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
어떻게 보아도 자살 행위 같은 모습에 쿠이가는 더 이상 놀라워할 힘도 나지 않았다.
“불가능하죠.”
“뭐..?”
“지금은 불가능하죠. 아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저기 오는군요.”
무슨 말이냐는 듯 쿠이가가 눈을 갸웃거리는 것도 잠시.
그는 저 멀리서 다가오는 두 존재들을 바라보며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저.저들이 어떻게 여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