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화. 퀴리와 그림자 (3)
놀랍게도 유형화된 거대한 투기들을 퀴리는 여유롭게 블러드 엠페러를 휘두르며 박살 내기 시작했다.
[크하하하! 더 날뛰어봐라, 더 날뛰어봐!]
처음의 굴욕 가득했던 표정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광증이 가득한 눈빛으로 아셀을 향해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기 시작하는 퀴리.
아셀은 그런 녀석을 바라보며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무식한 새끼.”
다른 군단장급 마족이었다면 아셀이 두드린 거대한 투기들에 의해 죽지는 않을지언정 최소 중상 정도는 입었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이 멀쩡한 것은 뱀파이어 특유의 거대한 생명력 때문인 것이 분명한 상황.
곡예를 부리듯 놈의 검을 피하던 아셀은 바닥에 떨어진 요정목 지팡이 미네르바를 들어 올렸다.
“몰아쳐라.”
순식간에 쿠이가의 그림자를 불러오는 것과 동시에.
아셀을 향해 미친 듯이 쏘아지던 피의 검기가 허공에서 산산조각 나기 시작했다.
[?! 마법.. 그래. 이제는 그 어떤 것이 나와도 놀랍지가 않구나.]
“뭘 새삼스럽게 그래.”
다른 뱀파이어들마저 퀴리와 아셀의 싸움을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자신들의 주군이자 마계군단장의 경지에 있는 뱀파이어 로드의 검을 피하며 허공에 거대한 마법 수십 개를 만들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저.저건 뭐야!?”
“태양!?”
“뜨..뜨거워!”
“들은 적 있어 이건 마탑의...”
“백색 태양.”
쿠이가의 장기이자 그의 가장 거대한 마법인 백색 태양이 악을 징벌하듯 허공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9성급에 이른 거대한 기운은 이전에 소환했던 백색 태양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와 기운을 가진 마법을 소환한 상황.
퀴리마저 허공에서 떨어지는 마법에 조금 놀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하.. 하하하하! 대단해.. 대단해!]
“도.도망쳐”
“망할! 몸이..몸이 불탄다!”
“으아아아아아아!”
퀴리에게 집중되었을 거대한 마법은 녀석의 주변에 있던 뱀파이어들 수백 마리를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들기 충분했다.
“죽어줬으면 좋겠는데?”
퀴리에 집중되어 쏘아진 백색 태양. 코어에 들어오는 거대한 마력들이 수많은 뱀파이어들을 사냥한 것을 증명해주는 상황.
그러나 아셀은 이 거대한 마법을 직격으로 맞고도 퀴리가 아직 건재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섭섭한 소리를.. 그나저나 대단하구나 아셀 필드. 너는 내가 만났던 그 어떤 인간들보다 재미있다.]
백색 태양에 녹았다가 다시 복구되는 퀴리의 모습의 괴상한 모습에 살아남은 뱀파이어들은 믿기지 못하겠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로드의 육체가...’
‘훼손되다니!’
‘이건 300년 전 그 용사들이나 보여주었던 일 아닌가!’
300년 전 용사들을 상대로나 신체가 훼손되었던 퀴리의 모습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들은 아셀의 모습에서 300년 전 그 재앙과도 같았던 용사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위험하다....’
백색의 불꽃이 꺼져가며 주변의 뱀파이어들의 공포심을 단번에 알아차린 퀴리는 인상을 찌푸리며 아셀을 바라보았다.
[다시는 너 같은 인간이 나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거늘...]
300년 전.
마왕이 인간들에 손에 토벌당한 충격적인 사건.
모든 마족들은 그때의 인간들이 특별한 것이지 다시는 그런 초인적인 녀석들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도 300년 동안 뒤에서 대륙을 조종하던 그들은 그때만큼의 강자들이 나타나지 않았음에 안도했었기 때문에.
[말릭에.. 쿠이가 게다가 너까지. 하하... 이거참.. 우리의 대계에 위험해....]
그때 7용사에 비견되는 강자들.
어느새 몸을 회복한 퀴리는 아셀을 바라보며 머리를 쓸어넘겼다.
“그냥 뒤져줬으면 서로 편하지 않을까?”
단번에 경지를 초월한 수십 개의 마법을 사용했기에. 쿠이가의 그림자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 상황.
아셀은 몇 가지 마법을 더 사용해 퀴리를 향해 날렸다.
“그랬으면 서로 편했을 거 아니냐.”
[편해? 나는 죽음을 맞이한다만?]
“대륙에 암적인 존재가 없어지면 치유가 되는 거 아니야?”
사출의 주머니에서 아르테스를 꺼내든 아셀은 씨익 웃으며 놈을 바라보았다.
“허어...어찌 그림자가..”
“저리도 여신님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정말로 그림자는 우리가 아는 변질자들이 맞는 것인가?”
순신간에 신성의 갑옷으로 무장한 아셀을 바라보며 신성 기사단 소속의 성기사들은 탄식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아셀....’
퀴리를 향해 달려들며 거대한 신성력의 검강을 휘두르는 아셀을 바라보며 르안느는 피가 새어 나올 듯 입술을 깨물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해....”
저 거대한 신성력의 검강을 보며 그 어떤 누가 여신에 대한 믿음을 의심하겠는가.
아니 오랜 세월 옆에서 봐왔던 아셀의 영웅적인 모습에서 어떻게 그가 변절자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특히나 르안느는 아셀에게 품고 있는 개인적인 마음에서도 지금 눈 앞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부정하고 싶었다.
***
블러드 엠페러에서 뿌려지는 진한 혈향과 아셀의 거대한 검강이 허공에서 계속해서 부딪쳤다.
마계의 군단장을 상대로 뒤로 물러서지 않고 계속해서 검을 휘두르는 것.
만약 정신을 차린 투마리스와 페레 그리고 한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상황들이었다.
[흡!]
처음으로 아셀의 검강이 놈의 몸에 상처를 내는 데 성공하는 모습이 나타나자 그의 눈빛이 반짝일 수밖에 없었다.
‘약해지고 있다!’
본래라면 불가능한 일들.
아셀은 편법으로 제약을 푼 녀석의 힘이 점점 사라지고 있음을 놈에게 난 상처들로 단숨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심지어 바로 회복되었던 괴물 같은 재생력 또한 이전과 비교해서 천천히 회복되는 상황.
눈을 가늘게 뜨던 아셀은 입가에 호선을 그리며 아르테스를 미친 듯이 휘두르기 시작했다.
“마계 군단장이...”
“밀린다고?”
“하하하! 역시 아셀 대단해!”
사방에서 감탄사가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르세트에서 나오는 거대한 용암들과 빙하들에 주춤거리는 퀴리의 모습을 그 누구도 상상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하... 하하.. 마수왕.. 그 짐승 새끼가 수지타산에 맞지 않은 제안을...]
처음으로 퀴리의 가슴이 아셀의 검에 의해 반쯤 잘려 나가는 것도 잠시.
아셀은 무표정한 얼굴로 놈의 상처에 남아있던 크고 작은 신성력의 십자가들을 일순간에 터트렸다.
[크아아아아아아아!]
“로.로드!”
“안 돼! 모두 로드를 도와라!”
가슴에서부터 시작한 거대한 신성력들을 폭발.
아셀은 그것들이 모두 한꺼번에 터지며 부서졌다가 천천히 회복되는 퀴리의 몸에 여유를 두지 않고 계속해서 아르테스를 휘둘렀다.
‘전과 똑같다.’
게임을 했을 적에도 퀴리 이 잡것의 레이드가 마무리될 때도 지금과 비슷했다.
수많은 유저들과 npc들에의해 회복할 생명력이 없게 된 녀석의 몸이 점점 수복되지 못하는 것.
게다가 로드의 위기에 등을 돌려 이쪽으로 달려오는 뱀파이어들까지.
모든 것이 그때와 똑같은 상황이었기에. 아셀은 지금 레이드가 이제 끝이 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나는... 나는 마계의 군단장...]
“아셀 놈이 주문을 외우는 거야!”
‘알아.’
페레의 다급한 외침에 대답할 새도 없이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던 아셀의 손에 어느새 삼지창 포세이돈이 들려있었다.
[이건..이건 위험하다 아셀!]
어느새 말콤의 그림자를 소환하고 용왕신기까지 사용하고 있는 아셀의 머릿속으로 말콤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지금 퀴리가 어떤 마법을 사용할지 먼저 알아본 것.
녀석의 다급함을 증명하듯 삼지창 포세이돈이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을 내기 시작했다.
“알고 있어. 저게 어떤 건지.”
자폭.
마계 군단장답지 않게 놈은 최후의 순간 자폭을 해 수많은 유저들을 단숨에 죽였던 것.
아셀은 당시에 직접 그것을 경험하고 목도했기에 잘 알고 있는 사실들이었다.
[막을 수가...]
[있어.]
어느새 말콤의 목소리와 동일하게 울려 퍼지는 아셀의 목소리에 그동안 발견할 수 없었던 위엄이 느껴지는 것도 잠시.
점점 자신의 피에 의해 육체가 부서지기 시작한 퀴리의 온몸에서 거대한 마기들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피와 피로 이루어진 이 비루한 생명을 담보로 파멸의 길을..]
검게 어두워져 있던 하늘이 박살나는 것 같은 모습들이 사방에 펼쳐지는 것도 잠시.
그것이 퀴리가 발산하는 거대한 마나들이 공간을 박살 낸다는 것을 알아차린 몇몇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 털썩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아.안 돼..”
“저걸 어떻게 막아..”
“아....아...”
하늘이 박살 나고 퀴리가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마력들.
모두가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다 생각하고 있던 순간 허공을 가르며 거대한 파도들이 자폭하려는 퀴리를 향해 몰아치기 시작했다.
[아셀 뭐 하는...]
이해할 수 없는 아셀의 행동에 말콤의 당황 가득한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저런 거대한 자폭기를 막으려는 움직임이 아닌 오히려 저것을 없애버리겠다는 듯한 행동.
잘못 건드려서 저것의 자폭을 앞당긴다면 도망칠 수 있는 시간마저 없애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이게 정답이야.]
[뭐..뭐라고?]
아셀이 일으키는 거대한 파도들이 퀴리의 온몸을 휘감을 때마다 놈이 발산하는 마기들이 점점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매개는 퀴리 본인.’
퀴리의 자폭기에 당한 이후.
수많은 마족들이 저런 방식으로 유저들에게 큰 피해를 입혔기에.
많은 공략법들이 나온 상황.
그때 나온 유일한 해법인 자폭하기 전 놈의 목숨을 끊는 것이었다.
[으...아....]
점점 놈의 이성이 없어지는 것을 증명하듯 놈의 입에서 어눌한 말이 나오고 있었다.
그와 함께 일어나는 거대한 마기들은 점점 사방을 박살 내며 주변에 모여든 뱀파이어들조차 찢어발기는 상황.
그 기괴하고 거대한 마기들 사이로 점점 아셀의 푸른빛 마나들이 커져나가는 것이 사람들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이게 뭐야?”
“바다 냄새?”
“이런 마나가 있다고?”
말콤 특유의 푸른빛 마나에서 나오는 소금기 가득한 바다 냄새가 점점 퀴리의 혈향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와 함께 점점 먹구름 가득했던 하늘에 태양빛이 들어오는 것이 보이는 상황.
여명 수도원 소속의 신성기사단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그 장엄한 모습에 무릎을 꿇고 성호를 그을 수밖에 없었다.
“여신이시여...”
“어찌 저자가 변절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아...”
[믿기지 않는군...]
주변의 웅성거림과 말콤의 믿지 못하는 목소리가 아셀의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것도 잠시.
그는 어느새 자신의 삼지창 포세이돈이 퀴리의 가슴을 관통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무아지경.
놈을 죽이고자 하는 거대화된 집중력이 퀴리의 몸에 결국 무기가 닿게 만든 것..
점점 사라지는 녀석의 진한 혈향과 마기들.
아셀은 눈 앞에 나타난 메시지와 코어 안으로 들어오는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마나들에 자신도 모르게 씨익 웃을 수밖에 없었다.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퀴리..]
그 저주받을 뱀파이어 로드이자 마계 군단장.
그것을 잡아내는 데 성공했다는 신호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