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화. 그림자가 된 이유
살아남는다.
아셀은 그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내가 이 게임 속에 끌려왔을 때.’
처음 갑자기 게임 속에서 눈을 떴을 때.
이복동생의 계략에 빠져 노예로 팔려 갈 위기 속에서. 아셀의 머릿속에는 오직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 단 하나뿐이었다.
“저 사람들도.”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오늘도 생업을 위해 물건을 팔거나 철을 두드리는 상인들과 대장장이들.
그들 모두가 하루를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깊게 생각할 거 있나.”
사출의 주머니에서 무명천을 꺼낸 아셀은 눈앞에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상인의 자켓을 빠르게 만들어냈다.
[마랑 상인 길드의 비누 상인 쿨룬의 자켓을 만들었습니다.]
[하급 산수학. 낮은 자신감, 근거 없는 판단, 중급 민첩성 재능이 구현됩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재능들.
오히려 상인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녀석이 사냥꾼이나 궁수나 가지고 있을 중급 민첩성을 가지고 있었다.
‘재미있어.’
어쩐지 상인의 움직임이 기민하다 생각했는데 본인도 모르는 재능에서 나오는 움직임이 분명한 상황.
아셀은 그다음에는 옆에서 연신 투덜거리는 대장장이의 모자를 한번 만들어보았다.
[냉소적인 대장장이 하이넨의 모자를 만들었습니다.]
[섬세함. 미적감각. 약초학에 대한 재능. 농작물 재배에 대한 재능 특성이 구현됩니다.]
“네미럴 이것도 실패네 하아.. 내가 왜 대장장이 일이나 하고 있을까.”
하이넨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저 냉소적인 남자의 재능은 대장장이 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농업에 관련된 직업에 있었으니까.
“그래도 살아간다.”
투덜거리며 다른 철을 두드리는 하이넨처럼 그리고 거래에 실패했는지 낙담했지만, 다시금 빠르게 움직이는 상인의 모습처럼.
자신의 재능과 어울리지 않은 일을 하는 자들이었지만, 하루를 살아남기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살아간다 살아남는다.’
마음속으로 그들의 마음을 이해해보고 떠올려보았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자신의 재능에 맞는 그리고 원하는 직업을 가지고 살 수 있겠는가.
아셀이 게임 속에 들어오지 않았던 현실에서도 그랬다.
천직을 찾아라 이야기들 하지만, 정작 사람은 죽을 때까지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 정말로 간절히 원하는 직업이 무엇인지 대다수 몰랐으니까.
“하하... 그래 이런 게 삶이지.”
무언가 머릿속에 개운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에 씨익 웃어 보인 아셀은 어느새 보이는 사람들의 옷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암울한 경비원 푸푸리의 셔츠를 만들었습니다.]
[기분 좋은 정원사 라닌의 앞치마를 만들었습니다.]
[천재 피아니스트 콜룸의 연미복을 만들었습니다.]
....수많은 존재들의 눈에 보이는 일반인들의 옷을 만들어내며 그들의 삶을 생각해보는 것도 잠시.
아셀의 눈앞에 놀라운 메시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림자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습니다.]
“?!”
한 번도 본 적 없는 메시지가 나타났기에 아셀이 놀라워 하는 것도 잠시.
그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숨에 깨달을 수 있었다.
“직업에 대한 이해 그리고 퀘스트의 진행률이 높아진 거야.”
아셀이 깨달은 것이 맞았다.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며 그들의 옷을 만들면 만들수록 아셀이 옷을 만들어내는 속도와 정교함은 이전과는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높아지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나는...’
다른 존재들의 사기적인 재능을 탐냈기에.
그들의 그림자를 가지고 오는 동안 그림자 재단사라는 직업을 등한시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우선 나를 그리고 내 직업을 알아야 해.”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리고 오늘 하루는 어떻게 살아갔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 직업으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그러한 생각들이 아셀의 머릿속을 빠르게 관통하기 시작했다.
‘재미있어.’
이전의 게임을 했을 적과 게임 속에 빠져들어 강해지는 재미와는 다른 느낌의 즐거움이 아셀을 관통했다.
“이렇게도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구나.”
어째서 자신이 부캐를 만들 때 인터뷰에서 봤던 그 대장장이 마르쿠스가 그렇게 환하게 웃었는지.
아셀은 이제야 어렴풋이 이해가 되었다.
그 또한 지금 아셀과 마찬가지의 즐거움을 느꼈을 게 분명했으니까.
***
한스의 말대로 삼일을 투란의 도시 한가운데서 사람들의 옷을 만들어내며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고민하던 아셀은 어느 순간 머릿속에 무언가 빠르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어..?”
경지로 7성급.
높은 경지의 무인이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법.
그러나 아셀은 지금 처음으로 이기지 못할 충동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단숨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마라 평원으로 가고 싶어. 이게 그건가?”
한스 또한 갑자기 쿠틀리나 산맥으로 가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났다고 했었기에.
아셀은 지금 그때의 자신이 한스의 경우와 같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나마라 평원.”
게임을 플레이 했을 적에는 자주 찾던 장소였다.
그 드넓은 평원안에는 수많은 몬스터들이 자리 잡았으며 다른 그 어떤 지형적인 방해도 없는 그곳은 유저들의 대규모 전쟁이나 pk에 적합한 곳이었으니까.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
게임에서 자주 가본 것과는 별개로 아셀이 그곳에 가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름 또한 어린 시절 필드가에서 얼핏 들어본 것이 전부인 상황.
퀘스트의 실마리를 찾은 아셀은 씨익 웃으며 투마리스의 그림자를 불러들이며 날 듯 한스의 공방으로 달려갔다.
“스승님!”
“실마리를 찾았구나.”
아셀의 변한 분위기와 웃고 있는 모습에 한스는 자신의 제자가 안배로 도달하는 길을 찾아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마침 아르테스 또한 성공적으로 강화되었단다. 생각보다 빠르게 된 건 어쩌면 선인들이 도운 것인지도 모르지.”
한스가 건네주는 아르테스에서 묘한 한기가 느껴졌다.
“그렇습니까?”
평소라면 당장 강화된 아르테스를 확인할 법도 했건만, 지금 아셀의 머릿속에는 나마라 평원만이 가득 차 있었다.
“다녀오거라 아셀.”
자신도 저런 경험이 있었기에. 씨익 웃어 보인 한스는 아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가서 네 그림자가 무엇인지 알아 오거라.”
“예 스승님.”
***
나마라 평원으로 어떻게 이동했는지 아셀의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았다.
워프게이트를 몇 개 갈아타고 대륙의 오지에 있었기에 말을 계속해서 달린 것도 잠시.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무리해서 움직였건만, 아셀은 전혀 피로감을 느끼지 않았다.
“신기한 기분이야.”
분명 처음 오는 곳이건만, 아셀은 문득 이곳에서 익숙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는 코어가 반응하는 건가.’
그림자 재단사로 전직하며 얻은 코어.
그것이 안배에 반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라?”
한참을 걷던 아셀은 놀라움 경험을 할 수밖에 없었다.
평원에 가득한 물소형 몬스터들이 놀랍게도 아셀을 피해 길을 터주는 모습이 나타났기 때문에.
음머어어어어어! 심지어 녀석들은 아셀의 옆을 지나가며 힘내라는 듯 울음소리까지 크게 질러내는 상황.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하늘에 가득했던 7성급 비행 몬스터들은 자신의 깃털을 지상에 뿌리며 아셀이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보여주고 있었다.
‘아무리 그림자들이 이상한 능력들이 있다고는 했지만..’
이런 연출가지 할 줄은 몰랐기에. 아셀이 조금 당황하는 것도 잠시.
그는 어느새 평원의 한가운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에 무언가 있는 건가?”
사방을 둘러보아도 아무런 흔적도 없었으며 보이는 것이라고는 끝이 보이지 않는 평원뿐.
아셀이 머리를 긁적이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도 잠시.
그의 그림자가 놀랍게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이건 또 왜 이래?’
꿈틀거리며 일어나기 아셀 본인의 그림자가 사람의 모양을 만들어내는 것도 잠시.
아셀은 그것이 자신이라는 사실에 발견하고는 어처구니없는 미소를 지어낼 수밖에 없었다.
“이거 뭐야 설마 자신을 이이고 한 단계 더 발전하라는 뻔한 이야기는 아니겠지?”
[.....]
그림자로 만들어진 아셀이 그림자로 만들어진 아르테스를 뽑아내다 말고 멈칫거리는 것을 보니 그 뻔한 이야기가 맞다는 것을 아셀은 발견할 수 있었다.
“진짜였어?”
순간 눈앞의 아셀이 머쓱한 듯 어깨를 으쓱거린 것도 잠시.
아셀은 그림자로 만들어진 녀석의 몸에 거대한 신성력이 순식간에 터져 나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느낌이구나.”
콰가가강! 거대한 신성력의 검강이 아셀을 향해 내리쳐졌다.
자신이 사용하던 기술들을 직접 보니 새삼 감회가 새로워진 것.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검강을 일으켜 맞대응하자 평원의 지축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아셀은 느낄 수 있었다.
‘완벽하게 따라 한 건가?’
신성의 갑옷까지 소환해 달려든 녀석의 온몸에 아르테스를 휘두르며 아셀은 지금 눈앞에 존재가 자신과 완벽하게 동일하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
심지어 아르테스를 휘두르던 녀석이 순간적으로 망치 부분을 아셀에게 휘두른 것.
아셀은 녀석이 한스의 그림자를 단숨에 불러일으켰단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림자도 모두 사용할 수 있다라...”
놈이 휘두른 망치를 피한 아셀은 바빌리나 4세의 그림자를 불러들인 것도 잠시.
주먹을 미친 듯이 휘두르기 시작하자 주변의 공간들이 유리가 깨지듯 박살 나기 시작했다.
콰강! 눈앞의 아셀은 한스의 그림자를 사용하고 있었기에.
기동성에서 바빌리나 4세의 재능을 따라잡지 못할 게 분명한 상황.
쉽게 따라잡은 녀석의 온몸을 주먹으로 내려치던 아셀의 눈가가 가늘게 떠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
마치 태산을 두드리듯 아셀이 던진 주먹들은 모두 새하얀 갑옷에 막힌 것.
다시금 말릭의 그림자를 녀석이 성공적으로 불러들인 것이 분명했다.
“이런 재미도 있어야지.”
다시금 거대한 검강이 아셀을 향해 달려들었다.
본래의 아셀과 다르게 지금 눈앞에 그림자로 만들어진 아셀은 그림자 재단 쿨타임이 존재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말릭의 그림자를 연달아 불러들일 수는 없는 법이니까.
‘녀석과 다르게 나는 제약이 있다.’
그림자 재단.
이 사기적인 능력에도 지속시간과 다시금 사용하기 위한 쿨타임이 존재하는 것.
동일한 능력을 사용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이러한 차이는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아니야.. 이 게임이 아무리 막장이라고 해도.”
수많은 유저들을 좌절시키고 때로는 불가능이라고 여겨졌던 모든 사건들.
그러나 페이크 월드에 해결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어도 해결하지 못할 것들은 없었다.
이 게임은 철저하게 클리어가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공략법은 있다.”
바빌리나 4세의 능력으로는 저 단단한 신성의 갑옷을 뚫어낼 수 없었기에.
아셀은 순식간에 카이나의 망토를 두르며 그녀의 그림자를 불러들였다.
“이제 찾아봐야 할 뿐.”
갑자기 허공에 떠올라 수백 가지 마법을 동시에 터트리려고 하는 녀석을 바라보며 아셀이 300개 이상의 연환속사를 빠르게 쏘아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