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화. 변화된 투란
“그대들이 우리를 투란까지 데려다줄 수 있다고 하던데...”
“이런 잡놈이 감히 우리들에게!”
“이봐 드워프야.”
“아... 젠장 마차에 타라 편안하게 모셔줄 테니까.”
“망할. 우리 레드 스컬 용병대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아인 사냥.
용병들의 용돈벌이 수단이었던 그 짭짭한 수입원이 사라진 지금.
놀랍게도 레드 스컬 용병들은 드워프들을 투란으로 책임지고 데려다주고 있었다.
“들었나? 모두들 타지.”
“이럴 수가 우리가 인간의 마차에 타보다니!”
“살아생전 처음이군요?”
“.... 저것들도 구해야 하냐?”
드워프만 투란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었다.
엘프들과 수인 혼혈들. 그들까지 드워프를 필두로 마차에 올라타 투란으로 이동하는 것.
점점 수많은 아인들이 투란에 끊임없이 모여들고 있었기에.
현재 투란의 모습은 대륙의 그 어느 도시들보다 이질적이고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요새 아닙니까 스승님?”
올려다본 투란의 모습은 실로 거대했다.
우선 성벽은 그 어떤 도시 아니 심지어 얼마 전 봤던 제국 바빌의 수도의 성벽과 비견될 정도로 단단했으며 그 위에 달려있는 공성무기들은 충분히 낮은 경지의 무인들에게도 위협적인 것들.
게다가 성벽 위에 순찰을 돌고 있는 레드 스컬 용병들은 놀랍게도 군기라는 것이 잡혀있는 모습이었다.
“이곳에 워낙 재주가 좋은 친구들이 많아서 어쩔 수 없지 않느냐.”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는 한스였지만, 그의 얼굴에는 만족감이 가득 새겨져 있었다.
‘모두가 드워프들의 작품..아니지 여기에 인간 대장장이도 많으니까.’
모든 것이 드워프들의 작품은 아니었다.
고대 드워프들의 용광로를 사용하기 위해 모인 것은 드워프 대장장이를 제외하고도 유명한 인간 대장장이들도 많으니까.
‘칼립토, 나사, 바쿠니.. 설마 그런 거물들까지 이곳에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게임을 하면서 들어봤던 유명한 대장장이 npc들.
아셀은 그들이 투란에 공방을 차렸다는 사실에 조금 놀라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두 가지 재료를 가지고 온다고 했는데 하나만 가지고 왔구나?”
얼어붙은 별.
한스는 그것을 가져온 아셀을 보자마자 한숨을 내쉬었었다.
진짜로 이렇게 빠르게 아르테스의 강화 아이템을 가지고 올 줄은 몰랐으니까.
“생각보다 급해서요.”
“그런 거 같구나. 아르테스의 강화 아이템보다 나는 너의 그 미친 성장력이 놀랍구나 아셀.”
한스는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듯 아셀을 바라보았다.
지난번 만났을 때보다 강인해진 육체와 늘어난 코어.
심지어 7개의 코어가 가슴에서 반짝이고 있지만, 풍기는 은은한 기세는 8성급이라는 사실에 한스는 감탄사만 낼뿐이었다.
“언제나 놀라게 하구나... 그리고 이제 너도 선인들의 안배에 갈 자격이 생겼어.”
“?!”
선인들의 안배라는 말에 아셀의 눈에 눈웃음이 지어졌다.
애초에 이곳에 온 이유는 아르테스의 강화도 있지만, 한스가 말한 안배라는 것에 가야 했기 때문에.
‘도대체 어떤 걸까?’
바빌리나 4세도 그렇고 한스도 그렇고 종종 안배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떠올린 것은 게임 속 2차 전직.
몇 가지 특수한 능력을 지닌 직업들이 가지고 있는 2차 전직 퀘스트가 떠올랐지만, 아셀은 그림자들이 2차 전직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알려진 것도 몇 가지 없고....’
“그 안배라는 것이 뭡니까 스승님? 바빌리나 4세도 스승님처럼 안배에 대해 이야기를 넌지시 했었는데..”
“황제도? 그건 놀랍구나. 아니지... 대대로 그림자 집안이라면 안배를 나보다 더 잘 알겠구나. 그래.. 그건 그런 존재지.”
알 수 없는 말만 되풀이하는 한스를 바라보며 아셀이 차분히 기다리는 것도 잠시.
한스는 묘한 미소를 띠며 아셀을 바라보았다.
“내가 안배를 발견한 건 우연이었단다.”
“우연이요?”
“그래.. 아니지 지금 생각해보면 운명인 게 분명하구나.”
한스는 잠시 말을 멈추며 그때의 기억을 회상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검에 미쳐있던 나는 대륙의 모든 금속을 이용해 검을 두드리고 싶었단다.”
“그래서요?”
“여정을 떠났지. 너처럼 북방의 바바리안들을 만나 조언을 구했고 드워프들의 지저세계 근처까지 가서 교류를 했으며 대륙의 유명한 대장장이들이 사용하는 금속들을 살펴보았지.”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한스는 너털거리며 웃어 보였다.
“그런데 놀라운 게 뭔지 아느냐 아셀?”
“뭡니까?”
“그때의 나는 그림자라는 사실에 자각이 없었다.”
“!?”
한스의 말에 아셀의 눈동자가 미묘하게 흔들렸다.
‘확실히... 그럴 수도 있어.’
그림자들의 후인들은 케락스처럼 자신의 근본을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인 법.
한스라고 다르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저 남들보다 망치질이 수월했고 남들과 비교해서 묘하게 온몸이 대장장이 일에 특화되게 성장되는 줄 알았단다.”
“그림자 망치술은요?”
“그건 안배에서 발견했지. 어쨌든 몇 년을 그렇게 대륙을 돌아다니다가 문득 쿠틀리나 산맥으로 가고 싶은 욕망이 생겨나더구나. 나는 그 산맥을 가본 적도 자세히 들어본 적도 없었는데 말이지.”
망치를 만지작거리며 한스는 묘한 미소를 지어냈다.
“그때만큼 갑작스럽게 나타난 충동도 그리고 참을 수 없던 욕망도 없었단다. 어째서인지 쿠틀리나 산맥을 가지 않으면 안 될 거 같다는 그런 느낌 말이다.”
‘조건...’
안배를 찾기 위한 조건이 저절로 발동된 것.
아셀은 한스가 어째서 저런 조건과 충동을 느꼈는지 단숨에 눈치챘다.
“그곳에서 발견했단다. 아셀 내 선인이자 조상들이 남긴 대장장이 그림자들의 안배들을 말이지.”
[그림자들의 안배에 대한 정보를 얻었습니다.]
[선인들의 안배를 찾아라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그림자 재단사와 관련된 안배를 찾아내시오.]
[보상1: 아직 완벽하지 않은 그림자 하나의 동기화를 100%까지 올려줍니다.]
[보상2: 안배 속에서 확인하시오.]
“?!”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에 아셀의 눈이 껌뻑여졌다.
‘동기화를 100%까지 올려준다고!?’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그림자중에 100%가 되지 않은 그림자.
에프릴, 말릭, 쿠이가, 포르틴, 말콤.
이 다섯의 그림자들의 동기화를 단숨에 100%까지 올려준다는 사실에 아셀의 눈이 크게 떠졌다.
‘심지어 두 번째 보상은...’
안배 안에서 확인하라는 것에 무언가 있음을 아셀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림자 속의 그림자. 내가 줄 수 있는 힌트는 이것뿐이구나.”
묘한 미소를 짓는 한스는 믿겠다는 눈빛으로 아셀을 바라보았다.
“어려운 일이지만, 아셀 너는 잘할 거라 생각한단다.”
“예. 벌써 조금은 감이 잡히는걸요?”
“그래? 역시 너는 영특한 아이야.”
한스의 말에 아셀은 이번 퀘스트를 어떻게 진행해야 안배에 도달할 수 있는지 모두 알아차린 상황이었다.
‘내 그림자의 욕망. 그것을 달성해야 한다.’
한스가 검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온 대륙을 돌아다니며 망치질을 했던 것처럼.
아셀 또한 재단이라는 행위로 자신의 욕망을 위해 미친 듯이 몰두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재단으로 무언가라....”
턱을 쓰다듬으며 아셀은 자신의 그림자인 재단사에 대한 능력을 떠올렸다.
그림자 재단사.
이 사기적인 직업은 상대의 옷을 만드는 것으로 대상의 재능을 흡수한다.
‘내가 이 직업을 선택한 이유...’
살아남기 위해.
갑자기 이 거지같은 게임에 빠져들었던 그때 살아남고 대륙의 그 어느 존재들보다 높은 존재가 되기 위해.
아셀은 사기라고 평가받은 이 직업을 선택한 것이었다.
“재단으로 강해지고 재단으로 군림하고.”
한스가 검이라는 물건에 미친 것처럼.
아셀 또한 강함과 위상에 미치기로 결정했다.
애초에 그가 그림자 재단사를 선택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감을 잡은 거 같구나.”
눈빛이 달라진 아셀의 모습을 바라보며 한스는 흐뭇하게 웃어 보였다..
그의 제자가 단숨에 안배로 도달하기 위한 길을 찾아냈기 때문에.
***
“옷을 만드시겠다고요?”
“..어째서?”
아셀이 우선적으로 옷을 만들기로 결정한 것은 레드 스컬 용병단의 원로들이었다.
‘투란 안에서 스승님을 제외하고는...’
한스를 제외하고는 이녀석들이 투란 안에서 가장 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
아직 새로 들어온 드워프들을 모두 만나보지는 않았지만, 아셀은 우선 강하다고 생각한 녀석들의 옷부터 만들어볼 생각이었다.
“가.가만히 있어.”
“어째서 말을 더듬으시는 건지?”
“부끄러우신 건가?”
“......”
옷을 만드는 과정에서 아셀은 다른 그 어떤 그림자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가 마음에 담아야 하는 것은 살아남는 것과 강해져야 한다는 다짐.
그것을 가장 쉽게 담아낼 수 있는 것은 본래의 재능이었으니까.
“어라? 벌써 제 바지를?”
“뭐야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옷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겁니까?”
“대단해..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보다 좋잖아?”
순식간에 만들어낸 옷들을 바라보며 원로들이 놀라워하는 것도 잠시.
아셀은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들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비열한 용병 카카미의 조끼를 만들었습니다.]
[뒤통수의 용병 라구레의 바지를 만들었습니다.]
[살아남은 자 아우솔의 셔츠를 만들었습니다.]
“너희들 나한테 이름부터 제대로 안 말했냐?”
“?!”
“그.그게 무슨 소리신지?!”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원로들이 아셀에게 알려준 이름과 눈앞에 나타난 정보들이 알려준 이름이 전혀 다른 것.
심지어 녀석들의 재능은 하나같이 음침함과 속임수, 비열함 같은 것들이 섞여 있었다.
“됐다. 어차피 사회의 쓰레기들에게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순간 한스의 그림자를 불러들이며 녀석들의 뚝배기를 깰까 고민했던 아셀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망치를 내려두었다.
“그.그렇지요?”
“하하 맞습니다. 쓰레기들인 저희가 어떻게..”
“웃어?”
“.....”
살짝 노려본 후 아셀은 눈앞에서 녀석들의 옷을 불태우며 씨익 웃어 보였다.
“처신 잘하라고. 앞으로 또 나한테 거짓을 고했다간.”
쾅! 살짝 휘두른 아셀의 망치가 용병길드의 기둥을 박살 내자 원로들이 사색이 되어 아셀을 바라보았다.
“기붕 부서지는 것처럼 부서질 테니까.”
“하.하하 그럼요!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겠습니다!”
“저도입니다!”
“지금부터 드워프들을 마을 아니 도시로 데리고 올까요?”
식은땀을 흘리는 원로들을 내버려 두며 아셀은 건물 밖으로 나갔다.
“흐음... 단순히 강하다는 건 도움이 안 되는데...”
단순히 강하다는 기준으로는 아셀의 마음을 대변할 수 없었다.
게다가 투란 안에 있는 강자들이라고 해봐야 전혀 아셀의 눈에 들어 올 리 없는 상황.
그는 대륙 각지에 흩어져있는 유명한 무인들을 찾아 나서야 하는 게 아닌가 고민을 하는 것도 잠시.
도시의 주민들을 보며 머릿속에 무언가 빠르게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자자자 오늘만 오는 날입니다! 50% 세일이요!”
“비키세요! 빨리 배송 가야 합니다!”
“누가 못 좀 가지고 와 봐 여기 무너지려고 하잖아!”
“새로 발견된 던전에 철광석이 나온다는데?”
“여기는 어딜 가나 철광석이 나오잖아 이것들아.”
“그런가 하하하하”
“요즘 살만한 거 같아 도시가 이렇게 발전하니 말이야.”
‘설마....’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그들의 치열함 속에서 아셀의 머릿속에 무언가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