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화. 이무기 (2)
[벨라투스가 죽었다..]
[?!]
[놈이 아무리 우리 중 최약체라고 하지만 도대체 누가!]
[.....]
이무기들이 모여있는 투드린 지역의 동굴.
벨가, 루카니, 팔리아, 요카리. 그들 사이에는 침통한 분위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하지. 벨라투스를 죽였다면..]
벨라투스가 최약체라고 이들 사이에서 평가받지만, 그것은 그들보다 조금 약한 정도.
실제로 격차는 얼마 없는 것임을 그들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망할! 다른 곳으로 이주해서 또 멍청한 녀석들에게 용언마법을 걸어야 하는 거 아니야?]
[맞아 맞아! 그냥 여기를 떠나자고 솔직히 용족들도 안 나오는 걸 보니 다 죽은 게 분명해!]
[어떻게 할까 벨가?]
이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이무기 벨가를 바라보며 모두가 도망치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세상은 넓고 자신들을 숨겨주고 공물을 내어줄 인간들은 많았으니까.
[....예전처럼 쉽지는 않을 거다. 세상은 평화로우니까 말이야.]
[끄응... 혼란이 가득했을 때가 좋았는데.]
[망할 이게 뭐냐고!]
그들이 얼음 매 부족을 협박했을 당시. 세상은 마왕과의 전쟁에서 끝이 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황폐했으며 천적인 용족들은 모두 은거에 들어간 상황.
그랬기에 그들은 얼음 매 부족에게 용언 마법을 거는 데 성공했으며 오랜 세월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런데 얼음 매 부족 그것들도 나쁜 녀석들이야 우리 덕분에 그렇게 강해졌는데 말이야!]
[맞아 맞아! 우리가 힘을 주지 않으면 그렇게 강한 부족이 되었겠어?!]
[우리도 양심이 있어서 반짝이는 보석 몇 개랑 어린 바바리안 다섯 마리만 요구했는데 말이지!]
그들의 둥지에는 거대한 그들의 허리까지 올라오는 보석들과 어린 바바리안의 뼈들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모두가 수백 년간 얼음 매 부족에게서 받아온 것들,
어린 바바리안들의 시체를 치우지 않은 것은 이무기들은 그것을 사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일단은 몸을 숨기는 게 좋을 거 같..]
“대륙의 어디를 가도 여러분들이 숨을 곳은 없습니다.”
[?!]
[누.누구냐!]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이무기들은 눈을 크게 떴다.
이곳을 발견한 것은 둘째치고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결계를 모두 아무런 흔적도 없이 통과했기 때문에.
[마.마족?!]
[맙소사 대륙에 마족이 있었다고?!]
나타난 존재는 머리에 작은 뿔이 솟아나 있는 젊은 남성.
연미복을 입고 있었으며 턱수염까지 멋들어지게 기른 그는 이무기들을 바라보며 방긋 웃어 보였다.
“이무기들이 대륙에 있는 것도 신기한 것인데 마족쯤이야 별거 있겠습니까?”
여유롭게 말하는 마족이었지만, 이무기들의 표정은 그렇게 밝지 못했다.
‘어떻게 하지..’
‘죽이고 도망갈까!?’
‘멍청한 소리 딱 봐도 우리보다 강해 보이잖아!’
[원하는 게 무엇인가?]
그래도 덩칫값은 한다고 벨가가 먼저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자 마족은 씨익 웃어 보였다.
“원래는 여러분들은 모두 죽이고 얼음 매 부족을 얻으려고 했지만....”
[우.우리를 모두 죽인다고!?]
[그게 무슨 말이냐!]
[미.미친!]
“조용.”
가볍게 손을 들어 올린 것뿐이었으나. 이무기들은 흠칫거릴 수밖에 없었다.
순간 마족의 몸에서 수백 마리 짐승들이 표효를 내지른 것 같은 착각이 들었으니까.
“이 마카엘의 뜻이 아니라 마수왕께서 그것을 원하셨으니 오해하지 마시지요.”
[마.마수왕?!]
[마계 군단장 마수왕이 아직도 살아있다고!?]
놀라워하는 이무기들을 바라보며 마카엘은 마치 사자가 웃는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데 왠 인간 놈 하나가 끼어들어서 제 일을 망친 게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돌아가면 마수왕께 혼날 테니 조금 방법을 바꿔볼까 합니다.”
[방법?]
벨가의 말에 마카엘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들이 얼음 매 부족들을 모두 죽여주세요.”
[?!]
[하.하지만 거기에는...]
무서운 인간이 있다는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
아무리 겁먹었다고 하지만, 인간에게 겁을 먹었다고 대놓고 말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에.
“그건 걱정하시지 마시지요.”
무언가 이무기들의 몸을 타고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마기?!]
[이런 사악한 기운을 어째서?!]
[어.어라? 무언가 힘이 넘치는데?]
“그럴만한 힘은 제가 드릴 테니까. 말이죠. 아참 그리고 여러분은 인간을 상대할 필요가 없습니다.”
말을 잠시 멈춘 후 마카엘은 빙그레 웃음 지었다. 이번에는 마치 고양이가 나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은 모습.
그가 점점 마기에 둘러싸이는 이무기들을 바라보았다.
“아셀 필드는 제가 죽일 거니까 말이죠. 허어.. 이거 계획인 몇 번이나 바뀌는지 모르겠네. 마수왕께서.”
잠시 말을 멈춘 후 마카엘은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듯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제 보고를 받으실 때 온순한 동물이셔야 할 텐데...”
***
“그나마 조심해야 하는 건 벨가다. 놈의 기운은 다른 이무기들보다 조금 강한 정도니까.”
아셀이 직접 이무기들을 잡으러 간다는 사실에 모든 얼음 매 부족이 동의했다.
“조금 더 강하다는 건?”
“별거 아니다 덩치가 조금 더 크고 기운이 조금 더 강하니까. 지금 그대 아셀이라면 분명 손쉽게 사냥할 수 있을 거다.”
자신감을 가지고 말하는 카이나가 자연스럽게 아셀의 손을 붙잡았다.
‘왜 이리 자연스러운 스킨쉽이?’
조금 당혹스러웠지만, 호의적으로 내민 손을 거절할 수는 없는 법.
카이나는 아셀을 바라보며 방긋 웃어 보였다.
“강해졌다. 그대 아셀.”
“덕분에.”
“그래. 지금 그대 아셀은 마치 나와 한몸인 것 같다.”
맞잡은 손위의 피부를 살짝 찔러본 카이나는 놀라운 탄력에 빙그레 웃음 지었다.
카이나에게 망토를 만들어주고 동기화가 100%가 된 것.
그것의 대표적인 효과가 인간을 초월한 피부의 탄력이었으니까.
“내 보물이다. 이제 이건.”
“마음에 들어 해서 다행이다.”
카이나의 어깨에는 이제 푸른색 망토가 걸려있었다.
그저 푸른색이 아닌 설원을 배경으로 하는 모습들이 그려져 있는 망토.
잠시 자신과 아셀의 어깨에 걸려있는 망토를 바라보던 카이나는 수줍은 얼굴로 아셀을 바라보았다.
“이게 커.커플룩을 넘어 부부룩인가 그대 아셀?”
“미첬니?”
진심을 담아 아셀이 표정을 찡그리며 말하자 카이나는 억울하다는 듯 아셀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대 아셀이 이미 나를 허락하지 않았던가!”
“내가 언제? 우리 아직 싸우려는 거 한 300번은 더 남지 않았어?”
“하지만 하지만! 내 어깨를 토닥여 주지 않았는가! 그대 아셀! 분명 책에서는 그다음에 뽀..뽀까지 하고 사랑의 결말을 맺는...”
“.......”
다시 돌아온다면 아셀은 맹세코 카이나의 방안에서 저 거지같은 소설들을 모두 불태우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카이나 정말 그게 여기에 없어?”
“맹세코 그대 아셀이 말한 물건은 들어본 적이 없다.”
‘이상하네 분명 얘네가 가지고 있던 재료인데.....’
둥지로 떠나기 전 아셀은 카이나에게 [얼어버린 별]에 대해 물어 보았다.
한스가 알려준 아르테스의 강화 재료.
아셀은 저 얼어버린 별이 카이나의 목에 걸려있던 것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기에.
분명 얼음 매 부족에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미래에 얻는 건가?’
카이나가 대륙의 후방을 기습하는 것.
그것은 앞으로 조금 먼 훗날의 일이었기에.
“그런데 그걸 어째서 묻는 건가 그대 아셀. 만약 원한다면 이곳의 모든 부족원들을 노예로 잡아서라도 구해내겠다.”
“......”
카이나의 말에 그녀의 뒤에 있는 사천왕들을 필두로 바바리안들의 결의에 찬 표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높아진 호감도.
그것과 더불어 벨라투스를 사냥한 업적이 아셀에 대한 존경심과 경외심을 품게 만들었으니까.
“아냐 됐어 내가 직접 찾아보면 돼.”
“그런가.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대 아셀.. 나는 못난 아내구나.”
“..결혼 아직 안 했다니까?”
잠시 무언가 더 핀잔을 주고 싶었지만, 우선 이무기들이 중요했기에.
아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무기들을 점검했다.
“그대 아셀이 돌아오면 모든 도축이 완료되었을 거다.”
카이나의 말에 아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무기의 시체는 한스와 쿠이가에게 반반씩 보내야겠어.’
둘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벌써 상상이 되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것도 잠시.
아셀은 자신의 심장에 있는 7개의 코어를 바라보았다.
‘한스가 말한 조건이 충족되었다.’
안배.
그림자들의 후인을 위한 안배에 접근하기 위해 한스는 최소 7성급 무인에 도달해야 한다고 했다.
“뭐가 있을지 기대가 되네.”
***
카이나가 알려준 곳을 다가간 아셀은 놀랍게도 거대한 산에 다섯 개의 구멍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게 있을 줄은 몰랐는데.”
거대한 구멍을 보고 말한 것이 아니었다.
미래에 발견되는 용족들의 레어는 저것보다 더욱 거대했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흘러나왔었으니까.
아셀이 발견한 것은 마치 자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 연미복을 차려입은 마족 마카엘이 서 있었으니까.
“오셨습니까. 아셀님.”
“식사라도 하자는 거냐?”
마키엘의 뒤에는 레스토랑 테이블과 잘 익은 스테이크를 슬쩍 바라보며 아셀이 입을 열자 마키엘은 마치 수달이 웃는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최후의 만찬을 즐기시는 건 어떠신지요? 이 집사 마키엘 자비는 없을지언정 매너는 있는 마족입니다.”
“지랄은.”
마키엘.
군단장 수인왕의 부하.
아셀은 저것과 상대해본 적은 없지만, 게임 속에서 녀석을 잡아내는데 고생했다는 유적들의 이야기는 많이 들어보았다.
“저런... 애써 만들어둔 자리인데 아쉽게 되었군요.”
탁! 녀석이 손가락을 튕기자 놈의 뒤에 있던 테이블은 마치 무언가에 먹히는 것처럼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수왕.. 마수왕이라..’
모든 군당장급 마족들이 그렇듯. 까다로운 능력을 사용하는 존재들.
아셀은 눈앞에 있는 마키엘은 마오치치보다 강하다는 것을 단숨에 알아차렸다.
“이무기들은 어디에 있냐? 혹시 벌써 죽였니?”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이곳에 절대로 있으면 안 되는 존재.
마수왕의 부하가 이곳에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본래의 역사라면 녀석이 이무기들을 모두 죽이고 얼음 매 부족을 얻어냈겠네.’
아셀이 벨라투스 하나를 죽이고도 그렇게 거대한 신뢰들을 얻었던 것을 떠올리면 다섯 이무기 모두를 죽였을 때 얼음 매 부족 전체가 충성을 보여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상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아셀님.”
쾅! 거대한 소음과 함께 문득 불길한 예감이 아셀의 몸안을 관통했다.
“어째서 제가 이무기님들을 모두 죽였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네놈.. 설마?”
하마처럼 푸근한 표정을 지으며 웃어 보이던 마키엘이 이번에는 하이에나 같이 비열한 눈동자를 만들며 아셀을 바라보았다.
“쓸만한 장기말들을 제가 어째서 그냥 죽이겠습니까?”
“누네스!”
아셀의 그림자에 숨어있던 누네스가 황급히 모습을 드러내며 마키엘에 단검 수십 개를 던져냈다.
“오 그림자들! 역시 아셀님은..”
그와 함께 마치 독수리와 코끼리를 합처 놓은 모습으로 변한 마키엘이 아셀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달려왔다.
“그림자들이셨군요?! 불쌍하신 분. 동족혐오의 대상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