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화. 몰이 사냥
이죽 웃으며 말하는 아셀을 바라보며 카이나의 머릿속에 수만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
“수호신을 죽이겠다고?”
당황스러워하는 사천왕들과 카이나를 바라던 아셀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고민할 게 뭐 있어. 좋은 기회 아니야?”
“.. 아니 그대 아셀 그건 불가능하다.”
다시 그대 아셀이라고 불러주는 카이나를 바라보며 아셀은 그녀의 기분이 조금은 풀린 것을 알 수 있었다.
“불가능?”
“우리라고 그걸 생각해 보지 않았겠는가. 얼음 매 부족의 선조들 중에는 나보다 강했던 분들도 계셨는데?”
카이나는 잠시 쓴웃음을 지으며 아셀을 바라보았다.
“옛 선조가 맺은 약속 때문에 우리는 수호신을 공격할 수가 없다.”
“약속?”
약속이라는 말에 아셀의 머릿속에 무언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용언 마법?’
최소 수백 년 전에 맺었던 약속을 후손들에게 강제하는 것.
그런 것이 가능한 기술은 이 세상에 몇 개 없었으니까.
‘그거라면 가능하다.’
용언 마법을 경험한 유저들과 사례들을 잘 알고 있기에.
“그러니 불가능하다. 제 아무리 뛰어난 전사라고 해도 수호신 앞에서는 평범한 바바리안으로 돌아가니까 말이다.”
“그래?”
“그대 아셀이 직접 수호신을 죽이겠다고 말할 거 같아서 하는 말이지만, 아직 그대의 경지는 수호신들을 감당하기 조금 부족한..”
“조금 부족하니까 올리면 되겠지?”
아셀의 말에 카이나의 두 눈이 껌뻑여졌다.
“그대가 넘어야 할 무인의 벽이 조금 남아있지만, 그것은 몇 년이 지난 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카이나는 현재 아셀의 코어 안에 있는 마나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6성급 후반.
이제 조금 있으면 7성급으로 나아갈 그 거대한 마나들을.
“너희들만 도와주면.”
잠시 주변을 둘러보며 아셀은 씨익 웃어 보였다.
“며칠이면 가능해.”
“말도 안 되는 그 어떤 천재들도 그런 식으로 갑자기 강해질 수 없다 그대 아셀!”
“나는 가능하다니까. 몬스터만 나한테 몰아줘.”
“몬스터?”
갑자기 무슨 말이냐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카이나에게 아셀은 씨익 웃어 보였다.
“몬스터를 잡으면 마나가 오르거든.”
“그런 능력이 있다고!?”
카이나의 경악 어린 표정을 바라보며 아셀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 수호신들이. 그대의 등장에 깨어난 건지 이제는 조금 알 거 같다....”
“역시 나 때문에 잠에서 깼었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얼음 매 부족의 그 어떤 전사도 공격할 수 없는 존재들.
그런 존재들에게 아셀 같이 거대한 힘을 가진 존재의 등장은 위협으로 다가올 게 분명했으니까.
“하지만. 당장 5일간 어떻게 시간을 번단 말인가.”
“애들을 바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데?”
말을 멈춘 카이나 대신 청룡이 앞으로 나오며 입을 열었다.
“옛 기록에 따르면 부족 내에 남자 5, 여자 5만 남기고 모두 죽입니다.”
“.... 그게 근데 왜 수호신이야?”
어이없어하는 아셀이 혀를 차자 카이나는 자신의 손에 회색빛 기운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이런 힘을 준다. 혐오스러워 사용하기 싫어하지만 말이다.”
회색빛 기운은 이질적이고 기묘한 기운이었다.
하지만 카이나 본인의 거대한 기운에는 한 줌에 불과한 능력들일 뿐이었다.
“남은 시간이 5일이라..”
기지개를 피며 아셀은 포르틴의 그림자를 불러들이며 자신의 몸에 힐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렙업하려면 빠르게 움직이자고.”
***
평상시라면 어린 바바리안 누구를 희생할지 정해야 했을 얼음 매 부족 바바리안들.
그들은 갑자기 내려진 명령에 북방 투드란 지역을 쏘다니기 시작했다.
-몬스터를 몰아와라!
-그 어떤 몬스터든 부족 근처까지 몰고 오는 거다!
-숨통은 끊지 말아라!
사방으로 퍼진 사천왕들의 인솔하에 수많은 바바리안들이 흩어진 것.
얼음 매 부족에서 완벽한 준비를 마친 아셀은 점점 다가오는 몬스터 무리에 입꼬리를 씨익 올려보았다.
“눈꽃 소다. 4성급 무인이라면 충분히 잡을 몬스터인데..”
“알아 많이 사냥해봤거든.”
4성급 몬스터를 잡아도 많은 양의 마나를 주지 않으나 그것이 수백 마리라면 다른 법.
이미 말릭과 케락스의 그림자까지 융합시킨 아셀은 손목을 풀며 달려오는 수백 마리의 소들을 바라보았다.
‘이거 쩔에, 몰이 사냥에 미치겠네.’
사방에서 몬스터를 데리고 오는 얼음 매 부족의 전사들.
게다가 저런 수많은 몬스터를 잡고도 아셀은 죽거나 다칠 일이 없었다.
자신의 옆에서 카이나가 지켜주고 있었으며 데리고 오는 몬스터들 모두가 숨통이 끊어지기 직전의 녀석들이었으니까.
‘오릭스. 그리고 프로즌.’
아셀의 중얼거림에 그가 서 있던 자리가 부르르 떨더니 오릭스의 생체 골렘과 예티 모양의 골렘 프로즌이 소환되었다.
“그대 아셀 이런 능력도 가지고 있던가?!”
나타난 골렘들에 눈을 반짝이던 카이나가 놀라워하는 것도 잠시.
아셀은 두 골렘을 4성급 눈꽃 소 무리로 보냈다.
“빠르게 강해질 필요가 있으니까.”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달려간 오릭스가 눈을 껌뻑일 때마다 무기를 바꿔가며 몬스터들을 사냥했으며 프로즌은 냉기 마법으로 눈꽃 소들을 말 그대로 학살하는 것도 잠시.
아셀은 자신의 코어 안으로 제대로 들어오는 마나들에 씨익 웃어 보였다.
“허어 백호 저것은 몬스터를 유인해왔구나. 얼음 히드라를 데리고 있을 줄이야.”
8성급 몬스터.
머리가 8개 달린 얼음 히드라의 등장에 아셀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심지어 백호가 몰고 온 것은 총 다섯 마리였으니까.
“경험치가 알아서 걸어들어오네.”
“경험치? 그게 무슨 말인가?”
카이나의 말에 대답하기 전에 아셀은 순식간에 얼음 히드라 쪽으로 달려들었다.
“서.설마 지금까지 내게 경지를 속인 건가?! 그대 아셀?!”
말리과 케락스 그림자 융합을 카이나에게 보여준 적이 없었기에.
그녀는 일순간 아셀의 움직임에서 나타난 거대한 마나의 파장에 놀라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그렇다고 혼자서 다섯 마리를 상대하는 건 위험하다 그대 아셀!”
“증오 그리고 걱정과 연민.”
눈앞에 몬스터를 카이나가 용족들을 증오하는 마음가짐을 떠올리며 증오하기 시작했다.
몬스터를 유인하기 위해 고생한 바바리안들을 걱정하고 연민하는 마음까지 가지기 시작하는 것도 잠시.
아셀은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기분 좋은 메시지에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동기화가 올랐습니다.]
[동기화가 올랐습니다.]
순식간에 올라가는 동기화들.
가장 먼저 아셀은 얼음 히드라에 근처에서 미친 듯이 도끼를 휘두르는 백호의 옆에 나타나 권격을 쏘아내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아셀님!”
설마 자신을 도와 보조할 줄은 생각도 못 한 백호가 놀라워하는 표정을 짓는 것도 잠시.
아셀은 그 근처에서 조금이라도 위협에 빠질만한 바바리안 모두를 구해내기 시작했다.
“원래 저런 분이셨습니까?”
“그건 아니었던 거 같은데..”
“솔직히 우리를 싫어하지 않았던가?”
아셀의 갑자기 달라진 모습에 바바리안 전사들은 눈을 껌뻑였다.
그렇게 모든 바바리안들은 안전하게 뒤로 물린 아셀은 수많은 바바리안들의 몸에 작은 상처하나 생기지 않은 것을 발견하며 깊은 안도감을 저절로 느끼게 되었다.
[동기화가 올랐습니다.]
무려 8성급 몬스터 다섯 마리의 추격에서 바바리안들을 지켜낸 것.
모든 바바리안들이 아셀의 움직임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그는 이번에는 깊은 증오심을 가지고 얼음 히드라들을 향해 권격을 쏘아내기 시작했다.
[동기화가 올랐습니다.]
‘역시!’
카이나와 수없이 싸웠기 때문에.
아셀은 그녀의 내면을 저절로 느끼고 알게 되었다.
그랬기에 미친 듯이 올라가는 동기화들.
점점 그녀와의 동기화가 올라갈수록 아셀은 빨라졌으며 육체는 8성급 몬스터의 일격을 제대로 맞아도 멀쩡할 정도로 강체가 되어가고 있었다.
“카이나님?”
사천왕 백호마저. 아셀의 움직임에서 카이나를 발견할 정도.
아니 얼음 매 부족의 모두가 아셀의 인간을 초월한 움직임에서 카이나를 발견하고 있었다.
“이거 중독될 거 같아.”
모든 바바리안들이 끌고 오는 몬스터들.
마치 경험치 이벤트를 받은 것처럼. 아셀은 미친 듯이 쌓여가는 마나들과 동기화에 진한 미소를 띨 수밖에 없었다.
“다음!”
어느새 아셀이 얼음 히드라 다섯 마리중 하나의 머리를 완전히 박살 내며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에.
바바리안들은 문득 자신들의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자네들도 그런가?”
“전사의 혼을 울리는데?”
“허어.. 아셀님이 대단한 분인지는 알고 있었는데 말이야.”
“저런 투쟁의 모습을 보여주실 줄은 몰랐는걸?”
[얼음 매 부족의 일원들과의 호감도가 최대치로 상승했습니다.]
“.......이건 또 뭐야?”
***
삼일.
아셀이 미친 듯이 얼음 매 부족들이 데리고 오는 몬스터들을 몰살하는 사이.
거대한 기운이 얼음 매 부족으로 다가오는 것을 아셀은 느낄 수 있었다.
“어.어째서 지금....”
옆에서 카이나가 오슬오슬 떨고 있는 모습이 아셀의 눈에 들어왔다.
심지어 몬스터들을 몰고 오고 있던 바바리안들 또한 자리에 주저앉으며 하늘을 올려다 보는 것도 잠시.
아셀은 태양을 가리고 점점 모습을 드러내는 녀석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저게 용족이라고?’
모습은 용족이 맞았다.
거대한 회색빛 몸과 거대한 날개.
외형은 용족이 분명했으나 아셀은 점점 모습이 드러내고 있는 녀석이 용족이 아님을 단숨에 눈치챌 수 있었다.
[카이나여. 재미있는 짓을 하고 있구나.]
“베.벨라투스님...”
[어째서 이 인간에게 몬스터들을 몰아주고 있는 것이더냐. 설마 네놈들의 새로운 유희더냐?]
“그것이..그것이..!”
벨라투스라고 불린 회색 용은 카이나가 떨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즐거운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니면 설마 이 인간을 키워서..]
“야 도마뱀 새끼야.”
[..... 뭐?]
자신을 올려다 보며 대뜸 욕설을 내뱉는 인간의 말에 벨라투스의 사고는 잠시 정지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나한테 그런 천박한 말을 한 것이더냐?]
“아직 애새끼한테 내가 욕도 못 할까?”
[애새끼?]
수백 년을 살아왔던 벨라투스였기에.
그는 자신을 애새끼라고 부르는 아셀의 말에 황당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보기에 네놈에게 애새끼라는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 말이다.]
“용도 되지 못한 새끼가 애새끼지 무슨.”
[.....!?]
아셀의 말에 벨라투스의 눈에 경악이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오랜세월 바바리안들에게 지켜온 자신들의 비밀을 단숨에 간파했기 때문에.
[네놈.. 어떻게 우리들을.]
“내가 말이야.”
카이나와의 그림자는 아직 100%가 되지 않았기에.
놈과의 싸움에는 제약이 많았다.
“용족들도 많이 만나보고 많이 죽여봤어.”
[뭐라?]
농담이 아니었다.
지금은 세상에서 거의 존재를 감춘 용족들.
마족과의 전쟁이 시작되자 그들이 대륙을 보호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냈을 때.
아셀은 그들과 함께 싸웠으며 후에 마룡으로 타락해 대륙을 공격했을 때는 녀석들을 수없이도 베어봤었기에.
그랬기에 알 수 있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저 건방진 도마뱀은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라는 사실을.
“사실 나도 너 같은 새끼들은 처음 보는데 말이지.”
용은 고결하고 완벽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녀석들은 용이 되지 못한다.
수많은 유저들이 용들과 교류하며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랬기에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들은 어디 하나씩 문제가 있는 녀석들.
보통 그런 이무기들은 다른 용족들에 의해 죽임을 맞이하거나 자연스럽게 죽어버렸다.
“너는 경험치를 얼마나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