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3화. 수호신들
페이크 월드.
유저들의 뒤통수를 치기 좋아하는 이 지랄 맞은 게임 속에서도 절대 선과 절대 악이라는 게 존재했다.
마족이 악의 대표라면 선의 상징은 용족들.
아셀은 마룡으로 타락해 대륙을 멸망 직전까지 몰아가기 전 용족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도저히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불가능해...”
아무리 생각을 해도 아셀은 지금 상황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책임감으로 뭉친 용족들.
일족을 희생해 얼음 마녀를 막았던 백룡들 6차 몬스터 웨이브에서 대륙 각지의 터져 나오는 화산들을 자신의 몸으로 막아내던 적룡.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주변을 둘러보니 바바리안들은 체념의 눈빛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투드란 지역의 통일 하기 직전인 전사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수호신들은 5년에 한 번씩 어린 바바리안 10명을 요구합니다.”
“5년?”
“예.... 그래서 이상한 겁니다. 어째서 벌써 수호신들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으니까 말이죠.”
청룡의 말에 아셀은 볼을 긁적이며 말도 안 되는 지금 상황을 천천히 정리해보았다.
‘5년마다 어린 바바리안들 10명을 요구하는 용족들이라..’
“어린 바바리안들은 어떻게 되는데.”
“그건...”
잠시 말을 멈칫거리던 청룡의 눈빛에서 아셀은 어린 바바리안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단숨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됬어. 내가 직접 알아볼게.”
“알아본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셀의 말에 두 눈을 껌뻑이는 청룡을 바라보며 아셀은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
“역겨운 짓거리를 하는 애들을 보며 참지 못해서.”
***
카이나가 돌아오고 난 후 얼음 매 부족은 눈에 띄게 침울한 분위기가 나타났다.
아셀과 하루에도 수십 번 넘게 싸우던 대련도 겨우 세 번인가에 그칠 지경.
게다가 카이나의 마음이 흐트러져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아셀의 연환속사가 놀랍게도 그녀의 몸에 적중하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크흠....”
높아진 동기화를 증명하듯.
아셀의 연환속사를 맞은 카이나의 눈가가 작은 고통으로 찌푸려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주군이...”
“맙소사. 아파하시는 모습을 내가 살면서 보다니!”
당장 용족들에 대한 생각이 없어질 만한 충격적인 모습.
잠시 아셀의 연환속사에 맞은 부위를 바라보던 카이나 마저 두 눈을 껌뻑였다.
“이렇게 빨리 성장했다고?”
[동기화가 올랐습니다.]
‘드디어 50%.’
그녀와의 외적인 부분은 모두 동기화를 가져오는 데 성공한 상황.
이제 내적인 부분만 채운다면 아셀은 카이나의 모든 재능을 흡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대 아셀.. 대체 정체가 뭐지?”
흔들리는 눈동자.
아셀은 자신을 바라보는 카이나의 시선과 모습에서 수호신들이 빠르게 깨어난 것에 자신도 연관되어 있음을 알아차렸다.
‘본래 같으면...’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카이나가 칭찬하거나 계속해서 대련을 이어나갔을 게 분명했으니까.
“이건 천재라는 범주를..”
“그냥 재단사.”
“재단사?”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겠다는 듯한 카이나를 바라보며 아셀은 그저 씨익 웃어 보였다.
“앞으로 200번 더 싸워서 나를 이기면 말해줄게.”
두 주먹을 말아쥔 아셀이 카이나를 바라보았다.
‘내적인 것.’
바바리안 우선주의자.
그런 카이나가 어린 바바리안들이 희생되어 온 것을 그냥 받아들이고 있을리 없었다.
‘용족에 대한 증오.’
처음으로 먼저 달려온 카이나의 권격을 받아내며 아셀은 마음속에 용족에 대한 증오심을 키워나갔다.
[동기화가 올랐습니다.]
“이게 무슨...”
“어떻게 점점 주군과 비슷한 모습이 되는 거지?!”
“모습만이 아니야. 아셀님의 기세가 주군과 비슷해지고 있잖아!”
동기화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카이나의 움직임이 점점 눈에 들어왔다.
“방금 그걸 어떻게 막았어 그대 아셀?”
“보였어.”
대충 말하지만 아셀의 이마에는 점점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 내려왔다.
‘이거 이거..’
아무리 동체 시력이 좋아져 카이나의 움직임을 포착한다고 해도 동기화는 60%도 되지 않았기에.
점점 몰아치는 카이나의 공격에 아셀은 뒤로 밀려나거나 온몸에 수많은 주먹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대단해. 나랑 대련이 끝나고도 그대 아셀은 몸을 단련하는 거야 마치 바위처럼 몸이 단단하잖아?!”
“..... 아파.”
“원래 대련은 아픈 거야!”
한순간 수호신에 대한 걱정은 사라졌을 정도로 카이나는 만연의 미소를 띠며 아셀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용족에 대한 증오..’
몸에 내려치는 카이나의 주먹을 보며 용족들에 대한 증오심을 새겨나가며 아셀이 반격을 점점 시도하자 카이나의 입가에 호선이 걸렸다.
“그대 아셀도 무언가를 증오하는구나?”
주먹을 타고 느껴지는 아셀의 마음을 느낀 것인지 카이나는 아셀의 주먹을 맞대응하며 입을 열었다.
“증오. 그래 그것은 빠르게 성장하는데 원동력이 되지.”
“?!”
순간 카이나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녀와의 높아진 동기화로 인해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동체시력을 가지고 있는 아셀이 그녀의 움직임을 일순간 놓친 것이었다.
“하지만. 아셀 증오의 대상이..”
팡! 공기가 터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아셀은 자신의 옆구리를 파고든 카이나의 면장에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으..음속?!’
공기가 터지나 맞은 충격보다 늦게 들려온 소리.
아셀은 카이나의 움직임과 면장이 음속을 넘어섰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어쩌지 못한 상대라면.”
팡! 팡! 팡! 연달아 터져 나오는 음속을 초월한 면장과 주먹들.
아셀은 끊어질 것 같은 정신을 겨우 잡아내며 황급히 사방으로 연환속사를 뿌려댔다.
“주군의 공격을 저렇게 받고도 서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몸은 이미 우리들을 초월한 거 같다.”
“믿기지 않는군 바바리안들보다 강인한 몸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라니!”
“그런데 저렇게 계속 맞으면 죽지 않을까?”
뒤에서 우려섞인 목소리로 말하는 사천왕들에게 걱정되면 제발 빨리 튀어나오라고 아셀은 소리치고 싶었다.
‘진정하자 용족들에 대한 증오심과 바바리안을 사랑하는 마음. 두 가지를 마음속에 투영하는 거야.’
음속에 가까운 면장과 주먹을 날리지만, 그것들 모두가 급소는 피해 가며 내질러지고 있었다.
아셀 또한 카이나가 다치기라도 하면 안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연환속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동기화가 올랐습니다.]
“체념을 하게 돼, 그대 아셀. 그러니 증오심으로 강해지려고 하지 마. 체념은 무인을 주저앉게 하니까.”
아셀은 주먹을 날리는 모습으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자신의 품 안으로 들어온 카이나의 손바닥에 가슴 한가운데에 닿아있었기 때문에.
“... 원래 이런 멋진 말을 하고 품 안에 들어오면 안아준다고 하는데?”
“........”
진심 어린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카이나를 바라보던 아셀은 입가에 주르륵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냈다.
“걔네는 이렇게 복날에 개 패듯이 사람을 때리지 않았겠지.”
“아앗! 그러면 혹시 때리지 않고 멋진 말을 한다면 그대 아셀은 나를 안아줄 수 있는 건가!?”
무언가 깨달았는지 깍깍거리며 좋아하는 카이나를 바라보던 아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입을 열었다.
“야 카이나.”
“서. 설마 지금 이 자리에서 안아주려고?! 이거참 부끄럽구만 내 충신들이 보고 있는 자리에서 이런 남사스러운 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
조심스럽게 얼굴을 붉히며 다가오는 카이나의 이마를 툭 치며 밀어낸 아셀은 진한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카이나 그리고 얼음 매 부족은 제거해야 할 녀석들이지만..’
그곳에 어린 바바리안들이 있지 않았다.
아셀이 노리는 것은 후에 마족들과의 싸움에서 연신 후방을 노렸던 카이나와 그녀를 따르는 얼음 매 부족의 전사들이었으니까.
“수호신 그것들이 대체 뭐냐?”
“아..”
아셀의 입에서 수호신이 나올 줄은 생각지 못했는지 카이나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대. 그대 아셀은 몰라도 되는 일이다. 그리고 그리..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걱정은 무슨. 말해줘 카이나. 그게 도대체 뭔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니까!”
소리치며 일어난 카이나는 잠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셀을 바라보았다.
“후우. 미안하다. 그대 아셀 아무래도 조금 흥분했 나보다. 그리고 이미 수호신들에 관한 문제는 거의 해결단계니...”
“애새끼들을 희생시켜서?”
“.... 그대 아셀.”
순간 진한 살기들이 아셀을 향해 집중되었다.
역린.
얼음 매 부족의 치부를 드러내는 듯한 아셀의 말에 주변 바바리안들이 흉흉한 기세를 피워 올렸기 때문에.
“내 말이 틀렸어? 왜 다들 그렇게 정색하고 있는 거지?”
“아무리 내가 그대 아셀을 아끼고 내 인생의 동반자로 여기고 있다고 하지만, 방금 그 말은 우리에게 실례되는 말이다. 사과해라 그대 아셀.”
“실례?”
코웃음을 치는 아셀의 모습에 사천왕들은 당장이라도 터질듯한 기세를 뿜어냈다.
“실례는 너희들이 아이들에게 하는 거고.”
쾅! 이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경험하지 못했던 거대하고 강한 기운이 아셀을 향해 쏘아졌다.
“네가 뭘 안다고!”
카이나가 진심으로 쏘아낸 권격.
그것의 거대한 크기와 빠르기에 놀라웠던 것보다 어느새 삼지창 포세이돈을 꺼내들고 힘겹게 막아낸 아셀의 모습에 사천왕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어떻게!”
“주군의 진심일격을 막아낸 거지!?”
“저창... 저것의 힘인가?!”
‘쓰읍... 뭐가 이렇게 아파?’
미리 대비하지 않고 있었다면 아셀은 전신의 모든 뼈들이 박살 났을 거라는 것에 자신의 오른팔을 당당히 걸 수 있었다.
“우리들이라고 좋아서 아이들을 바쳤겠어?!”
쾅! 쾅! 쾅! 연달아 쏘아지는 거대한 권격들.
말콤의 그림자를 넘어 용왕신기까지 사용하는 아셀로서도 막아내며 뒷걸음만 치게 만드는 일격들이었다.
[도망치지 않으면 죽을 거다.]
머릿속에서 말콤의 목소리가 현 상황을 내정하게 평가하고 말해주었다.
지금 상태로는 어떤 기적 같은 일을 수십 번 보여주어도 카이나를 이길 수도 없었으니까.
“우리가 얼마나 피눈물을 흘리고 아이들을... 그리고 친구들을 바치고 살아남았는지 알기나 하고...”
이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카이나는 수백 개의 거대한 기운을 가득 담은 연환속사를 아셀을 향해 동시에 쏘아냈다.
마치 분풀이를 하는 것처럼!
“주.주군!”
“이건 위험합니다!”
아무리 아셀이 무례를 저질렀다고는 하지만, 갑자기 진심으로 죽일 듯이 공격하는 것은 또 다른 법.
사천왕들이 나서서 막아내려고 하는 것 보다. 아셀이 포세이돈을 빙글빙글 돌리며 거대한 파도들을 연달아 만들어내는 것이 더욱 빨랐다.
“물이 없는 곳에서 저 정도의 물을!?”
파도를 터트리고 갈라내고.
파도 속에 있는 포세이돈이 만들어낸 소용돌이를 박살 내면서도 기세를 잃지 않는 카이나의 연환속사.
아셀은 저 놀라운 재능과 기술에 피식 미소를 띄워냈다.
“내 거야.”
저 모든 재능과 기술이 조금 있으면 모두 자신의 것이었으니까.
“카이나.”
말콤의 그림자를 불러들이고 용왕 신기까지 사용하고 있었건만.
카이나가 날려댄 모든 연환속사를 막아낼 수는 없었기에.
아셀은 오른팔은 기괴한 방향으로 꺾여있었다.
“악순환은 끊어내라고 있는 거야.”
“뭐라고?”
“내가 도와줄게.”
입가에는 피가 주르륵 흘러나오고 한쪽팔은 완전히 박살 난 상황임에도 아셀은 웃으며 카이나를 바라보았다.
“그 정신 나간 도마뱀 새끼들을 죽이는 거 내가 도와줄게.”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