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화. 연환속사
“오늘로써 몇 번째지?”
“133번째였던가 134번째였던가. 이제는 벌써 헷갈리기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그냥 객기인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러게 100번이 넘어가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감탄밖에 들지 않더구만.”
콰가가가가강! 얼음 매 부족의 한 공터에 거대한 구멍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것들 모두가 카이나가 아무렇게나 던진 주먹들에 생긴 것들.
그녀와 마찬가지로 카이나의 망토를 두르고 있던 아셀은 본래라면 나오지 못할 움직임과 속도로 그것들을 모두 피해내고 있었다.
“오늘은 조금 버티는데?!”
[동기화가 올랐습니다.]
지난번 대련에서 보여준 카이나의 움직임을 따라 하니 동기화가 저절로 오른 것.
아셀은 지난 1주일 동안 100번이 넘는 대련을 통해 점점 자신이 카이나의 움직임을 비슷하게 가져올 수 있게 됨을 발견했다.
‘이쯤에서!’
심지어 그녀의 사소한 습관까지 어느 정도 파악한 순간.
아셀이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의 주먹을 지긋이 바라봤을 때.
인지도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아셀을 향해 쏘아졌다.
‘연환속사!’
처음에는 이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40번 정도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하고 기절했던 아셀이 어느 순간부터 카이나의 주먹에서 무언가 빠르게 쏘아지는 것을 느낀 것.
10번 더 저것에 맞아 기절하니 이제는 저 인지를 넘어선 기술의 발동 타이밍을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되었다.
쾅! 허공에서 보이지 않은 파공음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카이나가 쏘아대는 연환속사에 맞춰 아셀 또한 연환속사를 쏘아대기 시작한 것.
점점 들려오는 거대한 파공음들에 대련을 지켜보던 바바리안들의 두 눈에 경악이 물들 수밖에 없었다.
“말도 안 돼!”
“주군의 기술을 따라 한다고!?”
“그 어떤 바바리안들도 하지 못했던 기술을 인간이?!”
‘따라하기는 무슨...’
아직 동기화는 30%밖에 되지 않는 상황.
처음 50번 정도의 대련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기절만 했었기에 나온 수치들이었다.
그랬기에. 카이나가 쏘아대는 연환속사 하나에 무려 세 개의 연환속사를 날려야 막아낼 수 있었다.
“이건.. 좀 의외인데?”
시종일관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던 카이나는 자신의 연환속사까지 따라 한 아셀의 모습에 눈을 가늘게 떳다.
자신의 오리지널 기술이자 자신만의 독특한 신체능력에서 나올 수 있는 기술 연환속사.
인지를 넘어 쏘아대는 권격은 인간의 몸으로 행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으니까.
“아셀 역시 너는...”
“?!”
하나씩 던지던 카이나의 주먹에서 점점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아셀은 흠칫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지금 무언가가...’
본능.
카이나와의 동기화가 올라가며 점점 예민해진 감각은 지금 눈앞에 있는 거물이 무언가 펼칠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게 해주었으니까.
“내옆에 구속시켜 놔야겠어.”
“또 이상한 소설에서 들은...”
이제는 카이나가 삼류 연애소설에서 배운 말들을 자신에게 하는 것을 잘 알기에.
아셀이 헛웃음을 지으며 방어를 하려는 것도 잠시.
그는 자신을 강타한 무언가에 뒤로 밀려났다.
“커헉!”
‘서.설마 이거?!’
복부에 정확이 들어온 카이나의 연환속사. 단번에 기절하지 않은 것은 그녀와의 높아진 동기화로 강화된 육체에서 나온 것.
아셀이 언제 맞았는지 떠오르는 것도 잠시.
그의 몸 위로 수많은 권격들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하나씩만 던질 수 있는 게 아니었어?!’
연환속사.
카이나의 대표적인 기술.
아셀은 이것을 게임에서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후방에서 대륙을 위협했던 카이나를 마주했던 적이 없었으니까.
“미.미친...”
주르륵 입가에 흘러내리는 핏방울들이 내상까지 입었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도 잠시.
아셀은 자신이 최소 수백개의 연환속사를 단숨에 맞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너.. 그 기술 한 번에 수백 개 날릴 수 있는 거냐?”
숨을 헐떡이며 어렵게 카이나를 올려다본 아셀은 자신을 바라보며 방긋 웃고 있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늑골 세 개는 부러졌고 양팔은 올라가지도 않네.’
그래도 처음 기절했던 것과는 다르게 점점 버티는 시간이 늘어난 것에 아셀은 만족했다.
“컨디션만 좋으면 수천 번 쏘아내는 것도 가능하지.”
“수천 개라...”
단 한 번에 수천 개의 권격을 쏘아낼 수 있는 기술.
아셀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새어 나오자 카이나는 놀랍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역시 이상해... 어떻게 매번 그렇게 처참하게 지는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낼 수 있는 거지?”
“좋잖아.”
“서.설마 이 몸과 이렇게 단둘이서 주먹을 나누어서 그런가?! 그대 아셀?”
혼자서 이상한 상상을 하는 카이나를 무시하며 아셀은 바바리안 부족 치료사들의 치료를 받았다.
“점점 강해지는 게. 좋잖아.”
“허어.. 그대 아셀. 대단하다. 솔직히 이 대륙에서 나를 제외하고 그렇게 투지를 발산할 수 있는 존재가 있을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셀의 말에 카이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치료가 끝나면 다시금 나에게 덤빌 건가 그대아셀?”
하루에도 수십 번.
아셀은 몸을 회복하고 그림자 재단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된 순간. 카이나에게 덤벼들었다.
“당연하지.”
“허참... 이제는 모르겠군.”
“처음에 주군께서 부군으로 삼으신다고 했을 때는 정말 이상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전사의 심장을 가진 존재라고 말이야.”
얼음 매 부족의 그 어떤 바바리안들도 카이나에게 수백 번 덤벼들지 못했었다.
덤비면 덤빌수록 그녀와 자신들의 격차만 더욱 실감할 뿐.
열등감과 패배감도 느끼지 못할 그 격차에 그들은 저절로 카이나에게 충성을 맹세할 수밖에 없었다.
“좋은 마음가짐이다. 그대 아셀.”
오직 아셀만이 높아지는 동기화에 만족스러워하며 덤벼들 뿐.
그는 카이나가 내민 손을 맞잡으며 씨익 웃어 보였다.
“그.그거 아나 그대 아셀?”
“왜 또 그런 표정을.”
“그대 아셀과 내가 처음으로 손을 잡은 거 말이다. 이전 대련들에서는 그대 아셀이 매번 기절을 하거나 내 손을 뿌리쳤었는데...”
수줍게 말하는 카이나의 모습에 아셀은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손잡은 게 뭐가 대수라고.. 주먹까지 나눴는데 손잡은 게 그렇게 큰일인가?”
“그대 아셀! 너는 대륙에서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이런 사건을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건가!”
“행동과 다르게 입과 생각은 정말 유교적이구나?”
“유교 그게 무엇인가?”
“있어 그런 게.”
아셀이 헛웃음을 지어내며 카이나의 손을 놓자 그녀는 잠시 아차 하는 표정을 지으며 아셀을 바라보았다.
“그.그렇다고 손을 놓을 필요는 없지 않는가 그대 아셀...”
“씻고 올 건데 손을 어떻게 계속 잡냐.”
“어.어차피. 서로 모든 것을 공유할...”
“........ 컨셉 하나만 잡아라. 제발.”
***
그날 하루에도 수십 번의 대련을 나누었던 아셀은 점점 카이나와의 동기화가 빠르게 올라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제는 단번에 기절하지 않고 점점 카이나와의 움직임을 따라 할 수 있는 데서 나오는 결과들.
그와 함께 아셀은 자신의 피부가 이전과는 전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탄력이 생기고 단단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다들 밥 먹자!”
“얼음 매 부족 만세!”
“바바리안들이여 영원하라!”
얼음 매 부족의 식사 시간.
모든 부족원들이 모여 산더미처럼 쌓인 음식들을 뷔페처럼 먹는 방식.
처음 아셀이 이곳에 왔을 때는 수많은 바바리안들이 인간이 있는 것에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으나. 이제는 오히려 아셀을 챙겨주거나 열정 담긴 눈으로 아셀을 바라보았다.
“뭘 그렇게 꼬라보냐?”
“전사의 심장을 가진 아셀님에게 감탄했었습니다.”
“......”
또 이상한 이명이 생기는 게 아닌가 걱정하던 사이. 카이나의 사천왕 중 하나인 청룡은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표정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우리 사천왕들조차 아셀님처럼 주군에게 덤비지 못합니다.”
“그거야 너희들이 카이나에게 충성을 맹세해서...”
“그게 아닙니다. 전사들이란 항상 투쟁을 가슴속에 담아야 하는 법. 다른 모든 존재들에게는 그 뜨거운 투쟁심이 담겼으나..”
잠시 말을 멈추며 청룡은 마유주를 아셀에게 따라주었다.
“주군처럼 거대한 분께는 그런 투쟁심마저 사라지기 마련이었지요. 단 한 번의 대련에 말입니다.”
“그래?”
솔직히 말해서 관심도 없었다.
이 녀석들이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던 차가운 이성을 가지고 있던.
아셀은 미래에 녀석들이 대륙에 끼치는 패악질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저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었으니까.
‘말릭과 르안느처럼 모종의 이유로 타락하는 녀석들도 아니야.’
마족들에 의해 타락한 그들과 다르게 녀석들은 본연의 모습으로 대륙을 위험에 빠트렸던 것.
아셀은 자신을 호감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바바리안들에게 코웃음을 칠뿐이었다.
‘카이나의 재능을 흡수하고 빠르게 7성급까지 올린 다음 아직 남아있는 바바리안들을 규합하면...’
할만하다. 라는 생각이 떠올라 아셀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생기는 것도 잠시.
갑자기 천막이 젖히며 카이나의 사천왕 중 현무가 다급하게 들어왔다.
“주군!! 그것이.. 그것이 나타났습니다!”
시끄러웠던 식사 자리가 순식간에 조용해진 것도 잠시.
몇몇 바바리안들은 당황한 듯 딸꾹질을 했으며 옆에 있던 청룡은 믿기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껌뻑이는 것이 아셀의 눈에 들어왔다.
“분명 아직 시간이 남아있었거늘.. 어째서.”
‘뭐야 분위기 왜 이래?’
갑자기 변환 분위기와 무언가 숨기는 것이 있는 듯한 모습.
심지어 호탕하게 웃으며 바바리안 전사들과 무용담을 나누고 있던 카이나는 처음 보는 살기 어린 표정을 지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어디에서 나타났는가 현무.”
“서쪽 마라린 산맥에서.. 그것들이..”
“어째서!”
“이상합니다 주군! 분명 아직 2년 정도 시간이 남아있는데 어째서 녀석들이 벌써!”
“아아... 이번에는 도대체 누가 희생되어야 한단 말인가..”
몇몇 바바리안들은 어린아이들을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이는 것이 아셀의 눈에 들어왔다.
그런 모습에 그의 머릿속에 무언가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것도 잠시.
카이나는 자신의 망토를 두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녀석들을 만나고 오겠다.”
팡! 하는 소리와 함께 빠르게 어디론가 사라지기 시작한 카이나.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셀은 침울함 가득한 바바리안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나타났길래 저러는 거냐?”
“외지인은 알 필요가.. 아.. 아니지 아셀님이라면 아셔야겠군요.”
잠시 주변을 바라보며 눈치를 살피던 청룡은 아셀의 귓가에 속삭이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부족의 수호신들이 깨어나셨습니다.”
“그러면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니야?”
“그분들은 어린 바바리안들을 공물로 바치기를 원하시지 않는다면 무조건 환영했겠지요.”
“미친.. 어떤 정신 나간 수호신이 어린애들을 요구해?”
아셀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 청룡을 바라보자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용족분들입니다.”
“뭐?”
“얼음 매 부족의 수호신이진 회색 용족 라트리안들이...”
“말도 안 되는....”
용족들이 어린 바바리안을 요구한다는 사실에 아셀은 머리가 어질어질 해지는 것 같았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