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오릭스 (3)
생체 꼭두각시.
아셀의 품 안에 있는 켈릭의 피로 만들어진 그것은 주변의 흙을 뭉쳐 만들더니 이윽고 거대한 함성을 내지며 소환되었다.
[우어어어어어!]
’이건 또 왜 소리를 질러?‘
오랜만에 소환하기는 했지만,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녀석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린 것도 잠시.
아셀의 의지에 부합하듯 켈린의 생체 꼭두각시는 날아오는 수백 개의 검기들의 힘을 빠르게 반감시키기 시작했다.
“!?”
본래 투사체의 모든 형태의 공격들을 막아낼 수 있는 켈린의 능력.
그것이 생체 꼭두각시로 변하며 심한 너프를 받았지만, 힘을 빼는 것은 가능한 법.
아셀은 약해진 수백 개의 검기들을 빠르게 쳐내며 오릭스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 없네.]
용왕 신기를 유지하고 있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
아셀이 삼지창 포세이돈을 거칠게 휘두르자 파도가 일어나듯 그것들이 오릭스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망할 그림자들!”
눈앞에 자신의 검기들의 위력을 반감하는 저 꼭두각시. 그리고 이질적인 힘을 사용하는 아셀 필드.
그것들 모두가 그림자들의 특이한 능력임을 오릭스는 잘 알고 있었다.
캉! 캉! 캉! 오릭스는 놀랍게도 메이스를 사용하며 아셀의 삼지창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크흠...”
오릭스와 접전을 치르면 치를수록 8성급 기운을 계속해서 뿜어내야 했기에.
아셀의 코어는 그 어느 때보다 거칠게 진동했으며 거대한 고통은 아셀의 온몸을 퍼져 나갔다.
’죽는 것보다는 낫지.‘
피식 웃어 보인 아셀은 삼지창 포세이돈에 의해 온몸에 피가 주르륵 흐르는 오릭스를 바라보았다.
“그것도 얼마 가지 못하겠구나.”
오릭스가 수많은 잔 상처를 입은 것처럼.
아셀 또한 크고 작은 상처들이 몸 안에 가득한 상황이었다.
“그래 이제 끝이다.”
말콤이 거품의 형태로 점점 포세이돈에 흘러들어가기 시작했다.
용왕 신기가 끝나기 시작한 것.
그 반동에 한 번 크게 휘청거린 아셀을 오릭스가 놓칠 리가 없었다.
“그만 죽어라!”
상처 입은 사자가 거칠게 달려들었다.
녀석이 움직이는 순간 마치 거대한 붉은 사자가 달려드는 것 같은 모습이 나타나는 것도 잠시.
오릭스가 아셀의 가슴에 검을 찔러넣으며 승리를 자신하고 있던 순간이었다.
캉! 무언가 오릭스의 검을 후두려 때린 것을 알아차리는 것도 잠시.
그는 그것이 방금 전까지 휘청거리던 아셀의 손에 쥐어있는 검은색 기운을 가득 담은 망치라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뭐..?”
“힝 속았지?!”
’말도 안 되는!‘
수많은 전장을 돌아다녔던 오릭스였기에. 상식이 통하지는 않는 이 세상에서 불변의 진리는 하나 있었다.
모든 존재는 아무리 체력이 좋고 마나가 많아도 힘을 사용하면 지치기 마련.
그러니 방금 전까지 숨을 헐떡이며 쓰러지려고 하던 아셀 필드는 분명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하고 쓰러져야 할 게 분명했다.
눈앞에 멀쩡한 모습으로 거칠게 망치를 휘두르는 모습이 아니라!
“그림자들도.. 절대로 이런....”
캉! 캉! 두 번의 그림자 망치질이 오릭스를 박살 내려는 듯 달려들었다.
검과 망치가 맞을 때마다 검은 뒤로 크게 젖혀지며 오릭스의 방어에 틈이 있는 상황.
그곳을 놓치지 않고 품 안의 망치를 던지기 시작했다.
“커헉! 이. 이자식이!”
“어라... 오릭스님. 하하.. 오릭스님으로도 부족했나?”
점점 검은색 안개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뱀파이어 리쿠아가 오릭스의 패배의 분위기가 조금 흘러나오자 도주를 시작한 것.
그것에 오릭스가 분노할 수도 없었다.
지금 눈앞에 자신을 박살 내려는 듯 망치를 휘두르는 아셀에게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으니까.
’아직은 여유가 있다.‘
숨겨둔 수는 누구나 있는 법.
특히나 오릭스 같이 오랜 세월 전장을 누비던 용병들에게는 이런 접전을 뒤엎을 비장의 수가 있었다.
“대가리! 대가리!”
뒤로 밀려나는 오릭스의 머리에 한스의 그림자를 불러들이고 있던 아셀은 그림자 망치질을 적중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걸 버텨내?‘
분명 머리가 터지는 심상을 굳게 했건만, 오릭스의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리며 잠깐 휘청거리기만 하는 모습.
놈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강체를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으음?”
뒤로 물러난 오릭스의 기세가 바뀐 것을 발견한 아셀은 눈살을 찌푸리며 품 안의 모든 망치들을 순식간에 던져댔다.
우우우우우우웅! 무언가 심상치 않음이 확인된 것은 오릭스의 몸 주변에서 거칠게 일어나는 붉은색 기운들이 아셀이 던진 망치들 모두를 박살낸 것.
기운에 힘입어 솟아오르기 시작한 머리카락들은 이제 살아있는 듯 주변의 모든 것을 박살 내기 시작했다.
“크하아아아아아아!”
사자가 울부짖듯. 오릭스는 거대한 함성을 내지르며 아셀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전보다는 2배는 빠르고 거대한 기운을 가득 담은 것 같은 모습.
심지어 본능으로 움직이는지 조그마한 도법도 있던 녀석의 검술은 마치 짐승처럼 아셀을 향해 미친 듯이 휘둘러지기 시작했다.
’크흠...‘
그 미친듯한 연격에 아셀은 주르륵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온몸에 흘러내리는 피들은 이미 바닥을 적시고 있는 상황.
위급한 상황이었지만, 아셀은 피식 웃으며 사출의 주머니에서 황금활 기온을 꺼내 들었다.
“거리가 안 닿으면 그만.”
순식간에 투마리스의 그림자를 불러들이고 나무 위로 올라간 아셀이 황금활 기온에서 샤인 에로우를 쏘아대기 시작했다.
“마.말도 안 되는.. 활이라고?!”
황금색 늑대 모양의 거대한 기운들을 맨손으로 박살 내며 앞으로 달려드는 오릭스는 점점 거리를 벌리며 자신에게 활을 쏘아내는 아셀을 보며 이빨을 까득였다.
’시간이 없다!‘
온몸의 기운을 억지로 끌어올리는 [사자호환]
일시적으로 거대한 기운과 신체 능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켜 주지만, 이런 기술들이 모두 그렇듯 유지 시간이 길지 않았다.
“어라? 조금 지친 거 같은데 혹시 그거 유지 시간 짧냐?”
그것을 눈치챘는지 나무 위에서 히죽 웃으며 연달아 샤인 에로우를 쏘아내는 아셀의 모습에 오릭스는 분통이 터질 것 같은 상황.
그가 나무째로 박살 내며 앞으로 전진해도 아셀은 그저 사냥꾼의 놀라운 움직임으로 다음 나무로 황급히 이동하면 되었다.
콰가가강 콰가가강! 연달아 쏘아낸 샤인 에로우들에 오릭스는 이제는 자리에 멈춰서 방어만 하기 급급한 상황.
그의 기술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이제 바닥을 보이기 시작함이 분명했다.
’끝내자.‘
아셀 또한 연달아 그림자 재단을 사용했기에. 투마리스의 그림자를 유지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건.. 말도 안 돼..”
아셀의 공격이 멈춘 틈에 어떻게든 그에게 거리를 따라잡으려고 달려들던 오릭스는 갑자기 아셀의 주변으로 모이기 시작한 거대한 마나들에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마법?!”
오랜 세월 용병 일을 했기에. 눈앞에 존재가 거대한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알아차린 것.
그가 허망한 듯 두 눈을 뜨며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순간.
아셀의 요정목 지팡이 미네르바 위에 거대한 백색의 태양이 만들어졌다.
“네놈. 정체가 무엇이냐.”
죽음을 체감한 오릭스가 덤덤한 눈빛으로 아셀을 바라보았다.
“재단사. 아셀이다.”
“그런가? 역시 그림자들은...”
오릭스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하늘 위에서 떨어진 거대한 백색의 태양이 그를 집어삼키기 시작했으니까.
그와 함께 아셀의 코어 안으로 그 어느 때보다 거대한 마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8성급 후반의 무인을 이기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하... 망할.”
코어는 터질 듯 쿵쿵거리고 있었으며 싸움이 끝나자 긴장감이 풀린 아셀이 자리에 풀썩 주저앉으며 온몸을 덜덜 떨고 있는 것도 잠시.
그는 바닥에 있는 오릭스의 장비 몇 개와 혈액들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음 지었다.
’그러고 보니 다시 사용할 수 있는데.‘
그린 드래곤 라온의 서.
생체 꼭두각시를 만들 수 있는 이 희대의 사기 스킬의 쿨타임은 무려 1년이었다.
아셀이 마탑의 일을 해결하고 난 지 1년이 지났기에.
그는 드디어 새로운 생체 꼭두각시를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하하... 좋은 보상인걸?”
***
검은 안개들이 점점 걷히며 안으로 들어갈 거대한 공간이 나오는 것도 잠시.
이변을 먼저 알아낸 사람은 바빌의 황제 바빌리나 4세였다.
“저기를 보시오!”
그가 휘두르는 거대한 주먹에 터져 나가는 검은색 안개들. 그와 함께 허공에 나온 전광판에 대륙의 모든 강자들이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아셀 필드 : 99999999.....]
점수가 끝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올라가 있는 상황.
주변의 모든 가주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단숨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안에 있는 흉수를 잡았구나!”
“도대체 어떤 존재이길래 저런 점수를..”
“설마 진짜로 바질리스크라도 잡은 건가?!”
전설의 몬스터 바질리스크를 잡았다면 분명 저런 점수를 받는 것도 가능한 일이었다.
‘오릭스를 이겼다고?!’
오직 안에서 어떤 상황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아피엘가의 가주만이 아셀이 오릭스를 죽인 것임을 알아차리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곳에 있는 그 어떤 가주들과 거대 단체들의 수장들이 오릭스에게 지지 않을 것은 분명했다.
녀석이 아무리 강자라고 하지만, 그저 용병대의 단장에 8성급 후반의 무인이었으니까.
‘그걸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녀석이 해냈단 말인가!’
아피엘가의 가주는 검은 안개를 몰아내는 것도 주저할 만큼 아셀에 대한 경계심이 극도로 높아졌다.
“같은 생각을 하나 봅니다.”
문득 자신의 지팡이를 지긋이 바라보던 아피엘가의 가주는 들려온 목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대라면 나한테 말을 걸 줄 알았소.”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황금 기사단 단장 로즈가 어떤 성격인지는 대륙의 모두가 잘 알고 있었으니까.
말릭에 이어 이번에도 대륙 최고의 기사 자리를 빼앗긴다면 그것만큼 황금 기사단에게 수치스러운 일도 없으리라.
“제게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아피엘가 가주님.”
잠시 아피엘가의 가주는 로즈의 말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고 말았다.
얼마 전 저렇게 말하다가 목숨을 잃은 존재가 있었기 때문에.
“그래. 자네는 무슨 생각이 있는가?”
로즈가 아피엘가의 말뜻에서 무언가 알아차린 듯 빙그레 미소를 짓는 것도 잠시.
아이들을 발견한 무인들이 여기저기서 소리치기 시작했다.
“발터가의 둘째께서 이곳에 계십니다!”
“오오오 우리 아들 무사했구나!”
“페루가의 장남분도 여기에 계십니다!”
“망할 녀석 한심하게 기절해있다니!”
놀랍게도 다친 사람은 있을지언정 죽은 존재는 아무도 없던 것.
오릭스의 목표가 오로지 아셀이었으며 뱀파이어들이 노린 것도 오직 아셀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어! 단장님 아셀입니다! 녀석이 저기서 걸어옵니다!”
신성 기사단들 또한 아셀을 발견하고는 황급히 소리치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아셀에게 닿을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은 오직 아셀뿐이었기에.
“비키게.. 아셀!”
“내 아들 어디에 있더냐!”
유론과 말릭이 황급히 뛰쳐나간 것도 잠시.
그들은 일순간 아셀을 발견하고 흠칫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 그건?”
“주웠습니다.”
“...내 딸 하나?”
“비.빅터가 어째서 저기에?!”
아셀의 양손에 기절한 빅터와 하나가 질질 끌려왔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