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화. 말콤 (2)
“그거 효과 있는 거야?”
“조용히 좀 해봐 집중해야 하니까.”
누네스의 미심쩍어하는 시선에 아셀은 그저 눈살을 찌푸리며 바닷속을 돌아다니며 삼지창 포세이돈을 나침반처럼 찔러보고 있었다.
‘분명 반응이 나와야...’
롱메티시에서 벗어나 인어들을 찾기로 결정한 아셀이었기에.
곳곳에서 숨어있던 인어들을 찾기 위한 일들. 또한 그는 퀘스트에서 나온 마오치치를 떠올리고 있었다.
‘놈은 분명.’
심해왕 마오치치.
심해왕이라는 거창한 이명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녀석은 그저 그런 마족이 아니었다.
심지어 녀석이 터전으로 잡고 생활하는 곳은 아셀이 꼭 들어가야 할 곳인 상황이었으니까.
‘심해어 투드린.. 녀석의 뱃속에 존재하잖아 마오치치는.’
심해어 안에 있는 월석 혜나. 그리고 마오치치.
아셀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퀘스트에 대한 불만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기로 경정했다.
“찾았다.”
몇 차례 삼지창 포세이돈을 들고 다니던 것도 잠시.
아셀은 처음으로 이것이 부르르 떨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발견한 곳은 수많은 해초들이 자란 곳.
확실히 몸을 숨기기 좋은 장소라 떠올린 아셀이 씨익 웃으며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치이익! 무언가 물보라가 아셀을 향해 날아들었다.
거칠게 진동하는 물보라였기에.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분명한 상황. 갑작스러운 기습이었지만, 수색을 위해 투마리스의 그림자를 불러들이고 있던 아셀에게는 손쉽게 피할 수 있는 공격이었다.
“!?”
“이번에는 공격을 피한 녀석이에요!”
“망할 작전대로 도망쳐!”
다급한 목소리들. 아셀은 자신이 인어들을 제대로 찾아냈음을 알아차렸다.
“여러분 진정을..”
“도망쳐! 도망쳐! 잡히지 말고 어서!”
“엄마.. 엄마!”
“내가. 내가 뒤를 막겠네 젊은이들은 어서!”
순식간에 혼돈에 휩싸인 인어들의 목소리에 아셀은 대화로 이들을 멈춰 세울 수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긴 한숨을 내쉰 아셀이 누네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녀석들의 발을 묶어놓으라고 말하는 것과 동시에.
아셀은 사출의 주머니에서 지난번 나가 다가 자매를 해치우고 얻은 그물을 꺼내 들었다.
“물고기는 물고기겠지.”
나가 다가의 그물.
게임 속에서 무려 5천만 원에 거래되었던 이 그물은 던지는 순간 무조건 한 마리 이상의 물고기를 잡아들게끔 되어 있었다.
슈이이익! 한 손으로 던진 그물이 해초들 사이로 떨어지자 아셀은 직감적으로 그물 안에 인어들이 걸려든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물이다!”
“흐아아아아 엄마! 안 돼!”
‘뭔가 악역이 된 거 같은 기분이야...’
비명소리를 들으며 아셀은 양심에 무언가 계속해서 찔리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다 너희들을 위해서 그러니까 제발 얌전히 잡혀라.”
그물을 당기며 아셀은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그... 정말입니까?”
해초속에 숨어있던 인어들은 모두 10명이었다.
노인부터 아이들까지. 그들의 몸에 가득한 잔상처들과 푸석해진 머리카락이 이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려주는 상황.
포르틴의 그림자를 불러들이며 이들의 상처를 치료해던 아셀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에게 말을 건 노인 인어 마카록스를 바라보았다.
“이 삼지창 보이시지요?”
“오오... 포세이돈. 분명 왕께서 가지고 계셨던 왕가의 상징이!”
“정말로 우리를 구하러 오신 거구나!”
“엄마. 이제 우리 집에 다시 돌아갈 수 있어요?”
100번 말하는 것보다 아셀은 삼지창 포세이돈을 한번 보여주는 것으로 인어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니 저만 믿고 따라오시면 됩니다. 치료 다 되었단다. 애야 엄마한테 가보렴.”
“.... 감.감사합니다.”
신뢰를 얻었다고는 해도 인어가 아닌 인간의 몸으로 있었기에. 아직까지 완벽한 신뢰를 받을 수는 없는 법.
잠시 그들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더니 마카록스가 아셀을 향해 다가왔다.
“저어.. 아셀님. 정말로 인어들을 구해주실 겁니까?”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
잠시 무언가 고민하던 마카록스는 이내 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다른 인어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드릴 테니 꼭 구해주십시오.”
“원래 그러려고 했으니까 너무 고개 숙이시지 않아도 돼요.”
“하지만...”
‘무언가 있구나.’
머리를 쓸어넘기며 마카록스를 바라보던 아셀은 그의 말에서 다른 인어들이 있는 곳에 무언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말씀하시지요.”
“저희들은 사실 수용소에서 도망친 인어들입니다.”
“수용소?”
수용소라는 말에 아셀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도 잠시.
그는 이어지는 마카록스의 말들에서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예. 마족들과 인간 흑마법사들.. 인어들의 도시가 모두 폐허가 되는 순간 그들이 나타나 타락하지 않은 동료들을 모두 잡아갔습니다.”
“아아... 사.살려줘.”
“진정하거라! 이곳에는 흑마법사들이 없어!”
‘그것들이 여기에 있다고?’
마족들이 있을 줄은 알았지만, 설마 흑마법사들까지 바닷속에 들어와 있다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심지어 흑마법사라는 말에 발작하듯 온몸을 부르르 떠는 인어들을 보아하니 좋은 꼴은 못 본 것이 분명했다.
“그곳이 어디입니까.”
인어들이 가득 모여있고 마족과 흑마법사들이 모여있는 곳.
분명 큰 위협이 될 수 있는 곳이었지만, 동시에 큰 이득으로 다가올 수 있는 장소였다.
‘그 역겨운 녀석들을 죽이고 들어오는 마나들은 기분이 좋거든.’
아셀의 말에 노인 인어 마라록스는 떨리는 손으로 해초들 너머를 가리켰다.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동굴이 하나 있습니다.”
***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동굴은 신비하게도 어느 순간부터는 물이 들어오지 못하는 공간이 있습니다.
-물이?
-예. 그곳에서 흑마법사들이 모여 하루에도 수백번 동족들을 가지고.. 시.실험을..
마라록스의 말을 되뇌고 있던 아셀은 드디어 그가 말한 동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곳이..’
평범해 보이는 동굴. 그러나 아셀은 그곳에서 일어나는 진한 마기들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많이도 모인 거 같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마기들로 인해 따끔거리는 피부에 눈살을 찌푸린 아셀은 사출의 주머니에서 필드가의 가보 비파를 꺼내 들었다.
우우우웅. 바다 근처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하는 비파는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저절로 부르르 떨고 있는 상황.
빨리 자신을 휘둘러달라는 듯한 녀석의 모습에 아셀은 씨익 미소 지으며 유론의 그림자를 불러들였다.
‘마나들이 빠르게 들어오네.’
확실히 필드가의 조상들이 바다에서 왔음을 증명해주는 모습이라 생각한 것도 잠시.
빠르게 동굴로 들어가기 시작한 아셀은 입구를 지키던 마족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인간?!]
[도대체 이곳에 어떻게!]
하급 마족들. 놈들이 놀란 것처럼 아셀 또한 이것들이 대륙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놀라울 뿐이었다.
“요즘 들어 내가 말이야.”
비파에서 일어난 은은한 푸른빛 오러들이 상어와 인간을 합친듯한 마족들의 창끝을 거꾸로 돌리기 시작했다.
[으억! 창이.. 창이!]
[왜 앞으로 안 나가지?!]
하급 마족답게 지능은 낮아 보이는 모습들 비파에서 일어난 은은한 푸른빛 오러들이 창끝을 돌리는 것도 모자라 놈들의 온몸에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으..으아아아아아!]
[아파! 아파!]
놈들의 비명이 동굴 안을 가득 울리기 시작했다.
“게임을 잘못 플레이하고 있던 게 아닌가 싶어. 이렇게 내가 모르는 것들이 많았었으니까 말이야.”
놈들의 비명소리에 동굴 안에 있던 마족들이 이쪽으로 오는 것이 느껴졌다.
모두가 아셀이 노리고 있던 것들.
하나하나 찾으러 다니며 놈들을 죽이는 것 보다. 한꺼번에 처리하는 것이 빨랐기 때문에.
쿵쿵거리며 무언가 부산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아셀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와 함께 나타나는 수십 마리의 마족 무리들.
상어, 고래, 게, 심지어 고등어 모양의 모습까지. 바다와 관련되어 있는 녀석들의 모습에 아셀은 헛웃음을 지어낼 수밖에 없었다.
[침입자!]
[인간이야!]
[어떻게 인간이 여기에!]
경악 어린 마족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전 아셀이 휘두른 비파에 의해 녀석들의 머리가 터져 나가는 것이 빨랐다.
[으.으악!]
[뭐야! 이게!]
[조심해!]
실타래처럼 풀어진 비파의 작은 기운들이 순식간에 마족들을 해치우기 시작한 것.
아셀은 사방에서 들려오는 마족들의 비명소리와 코어 안으로 들어오는 마나들에 씨익 미소 지었다.
‘여기서 뭘 하는지 물어볼 녀석들은.’
지능이 낮은 마족들보다 안쪽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을 흑마법사들에게 물어보는 게 더 빠른 법.
아셀이 앞으로 나아가는 사방에 마족들의 시체들만이 흩뿌려질 뿐이었다.
***
“흠....”
오랜만에 지상의 공기를 마셔본 아셀은 큰 숨을 들이쉬며 물에서 올라왔다.
‘이런 곳이 있었을 줄이야.’
이곳을 탈출한 인어들의 말이 맞았다. 동굴 안쪽에 물이 차오르지 않는 공간이 있다는 말.
아셀은 공기와 함께 코끝으로 들어오는 혈향들에 눈살을 찌푸리며 빠르게 앞으로 달려가는 것도 잠시.
그는 동굴 안에 감옥과도 같은 철장들이 수십 개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죽..죽여줘..”
“엄마...엄마..”
“하하..하하하하하”
철장 안에 있는 인어들의 상태는 그리 좋지 못했다. 영양 상태도 그렇거니와 그들의 몸에 가득한 고문의 흔적들 때문에.
아셀이 이빨을 까득이며 이 모든 원흉인 존재들을 향해 나아가는 것도 잠시.
그는 거대한 공간에서 무언가 의식을 하고 있는 흑마법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계의 공작 듀드란님에게 순결한 제물을 바치니...]
“미x놈들.”
“치.침입자다!”
“망할 밖에 마족들은 뭘 한 거야!”
일부러 기척을 내자 녀석들이 황급히 일어나며 아셀을 향해 여러 가지 저주들을 쏘아내기 시작했다.
즉각 반응하는 것이 생각보다 녀석들의 실력이 나쁘지 않음을 보여주는 모습들.
그러나 그것들 모두 비파가 은연중에 뿌려대는 실타래와 같은 기운들을 뚫어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비파!”
“아셀 필드 놈이 여기까지 도착했다!”
자신의 정체를 알아차린 흑마법사들의 말에 아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달아나?”
비파에 의해 놈들을 베어내며 아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뭐 한 명만 살려두면 되지.”
비파와 유론의 그림자.
그 두 가지를 동시에 사용하면 놈들을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는 상황.
하지만 그것은 아셀이 바라는 것이 아니었기에. 그는 말콤의 그림자를 불러내며 삼지창 포세이돈을 뽑아 들었다.
‘동기화는 16%.’
낮은 동기화. 그러나 사기적인 재능과 고강한 창술이 눈앞에 있는 흑마법사들과 싸울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바.바닷물이?!”
“저.. 저 창은 뭐야!”
“잠깐 저거 인어왕의 창 아니야!?”
삼지창에 모여들기 시작한 바닷물들이 작은 회오리를 만들어 내며 흑마법사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우선 니들.”
콰가가가가강! 회오리가 움직일 때마다 동굴 안쪽이 모두 박살 나기 시작하며 흑마법사들의 약한 육체들 또한 박살 나는 상황.
그때마다 아셀의 그림자 재단의 유지 시간 동안 빠르게 줄어나갔지만, 놈들을 모두 사냥하기에는 충분했다.
“좀 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