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말콤 (1)
갑자기 자신을 올려다본 인어들의 왕 시체.
아셀은 두 눈이 파여 아무것도 없는 시체의 기괴한 모습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게 이런 적이 있었나?’
없었다. 이곳에 대한 정보가 가끔 들어오고 이곳을 방문한 유저들이 영상을 올렸을 때마다 이 시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을 뿐이었으니까.
‘둘 중 하나다.’
자신에게 무언가 반응한 게 분명했다.
일반 유저들에는 반응하지 않던 것이 자신에게 반응한 상황.
아셀은 어렵지 않게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것에 반응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림자. 그리고 용사 가문의 핏줄.’
둘중 무엇이 반응한 것인지 아셀의 고민은 이어진 시체의 반응에서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림자들...어째서.. 어째서 지금에야.]
‘그림자들에 반응한 거구나.’
원망 어린 목소리. 그리고 그림자들을 찾는 말투에 아셀은 녀석의 말에 미안하지만 조금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대륙에서 탄압이란 탄압은 다 받았는데 도와주기는 개뿔. 인어들도 그림자들 도와줬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구만. 이거 양심 없는 놈이구만?’
인어들의 왕이 양심도 없는 호로 새끼처럼 보이기 시작하는 아셀의 눈은 녀석에 대한 우호적인 시선들이 모두 사라져 있었다.
[우리는 그대들과의 맹약을 지키기 위해... 맞서싸웠거늘..]
“어.. 그래 고생했다.”
[그대들은 우리의 모든 것이 거품이 되어야 나타났구나.]
슬쩍 녀석을 바라보니 발끝에서부터 거품으로 변하며 사라지는 것을 아셀은 발견할 수 있었다.
‘뭐야. 그때까지 남아있던 건 원망하려고 남아있던 거였어?’
무려 10년 후 동안 시체가 남아있던 것. 심지어 지금 녀석은 마족들의 저주에 의해 시체가 썩지 않는 저주까지 받은 상황이었다.
‘이거 완전 독한 녀석이구만?’
얼마나 그림자에 대한 원망이 가득한지 알 수 있는 모습들이었다.
혀를 차며 녀석을 바라보던 순간 아셀은 인어들의 왕 시체의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도.. 그래도 이렇게 왔으니.. 맹약을 지키게.]
“뭔 개소리.....”
개소리야 라고 외치려던 아셀은 인어들의 왕이 손에 쥐고 있던 황금빛 삼지창이 저절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발견하고는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개소리로 들릴 수 있었겠지만. 내가 좀 바빴어서 이제라도 맹약을 지켜내기 위해 온 거 미안하다.”
황급히 사과하며 아셀은 자신에게 다가온 황금빛 삼지창을 바라보았다.
‘이거 무조건 전설 등급 이상이다.’
자세한 건 감정안으로 봐야 확인할 수 있겠지만, 오랜 경험에서 아셀은 지금 눈앞에 있는 황금빛 삼지창이 전설 등급 이상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니... 바다에 남은 인어들 구해주고. 우리의 복수를..]
“그래 그래. 내가 무조건 해줄게.”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뒷말을 삼키며 아셀이 인어들의 왕 삼지창을 잡는 순간 그의 눈앞에 놀라운 메시지들이 나타났다.
[인어들의 억울함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마족들에 의해 흩어진 인어들에게 새로운 터전을 만들어주고 그들을 멸망에 이르게 한 심해왕 마오치치를 처리하세요.]
[퀘스트가 완료되기 전까지는 바닷속에서 나갈 수 없습니다.]
[보상1: 인어들의 호감도가 그 어떤 경우보다 높아집니다.]
[보상2: 인어 왕가의 보물들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보상3: 바닷속에서 얻은 모든 마나들 x2]
“........”
일순간 아셀은 뇌정지가 오는 것을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겨우 참아냈다.
‘이건.. 이건 안 돼.’
[그렇다면.. 그대만 믿고.]
“아니.. 야. 진정해봐.”
[우리는 믿고 눈을 감겠네.]
“너 감을 눈도 없잖아. 잠깐 기다려봐. 이거 못하겠다.”
[그림자의 후인이여.]
“나 용사 가문의 후손이야.”
[부탁하네..]
“부탁하지마.”
눈을 부릅뜨며 황급히 황금색 삼지창을 녀석의 손에 다시금 쥐여주려고 했지만, 어느새 거품으로 변해 사라진 녀석의 손에 쥐여줄 수는 없는 법이었다.
“.......”
허망하게 바다 위로 점점 사라지는 인어들의 왕.
아셀은 잠시 그것을 노려보며 속으로 계속 욕설을 되뇔 수밖에 없었다.
“망할.. 이거 똥 밟았다.”
손에 쥐어진 황금색 삼지창. 아셀은 더 이상 이 물건이 탐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
페이크 월드를 플레이했을 적 제약이 걸린 퀘스트는 수도 없이 많았다.
퀘스트를 완료하기 전까지 성안을 나갈 수 없다. 퀘스트가 완료되기 전까지 로그아웃할 수 없다. 같은 유저들을 괴롭히게 만드는 제약들.
아셀은 깊은 바닷속에 갇혀버린 자신의 처지에 긴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이건 퀘스트를 취소할 수조차 없다.’
npc가 살아있다면 어떻게 설득하면 운 좋게 그런 퀘스트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거품이 되어버린 인어들의 왕 시체를 다시금 가져와 저 자리에 앉힐 수는 없는 법.
아셀은 머리를 긁적이며 황금색 삼지창을 바라보았다.
‘그냥 준 게 아닐 거야.’
어쩌면 퀘스트를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쥐어지는 보상일 수도 있으나. 아셀은 높은 확률로 이것이 퀘스트를 해결하는 단서임을 알 수 있었다.
[삼지창 포세이돈.]
[인어들의 왕가에서 대대로 왕에게 물려주는 삼지창입니다.]
[내구도 321/321]
[공격력 600/600]
[전설 등급.]
[근처에 인어들이 있으면 반응합니다.]
[바닷속에서는 파괴가 불가능합니다.]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파도가 나옵니다.]
[초대 인어의 왕 형상을 볼 수 있습니다.]
‘?!’
높은 공격력에 아셀은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파괴불가의 속성과 근처에 있는 인어들에 반응한다는 효과.
이것들은 분명 앞으로 인어들을 찾아 나서야 할 아셀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게 분명했으니까.
“그리고 이거.”
초대 인어의 왕 형상을 볼 수 있다는 말에 아셀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도 잠시.
그가 형상을 보겠다고 굳게 결심하자 포세이돈이 부르르 떨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수많은 거품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후인이여 내 창법을 보아라.]
놀랍게도 거품으로 나타난 인어. 아셀은 거대한 풍채에 황금빛 창을 들고 있으며 머리에는 커다란 왕관을 쓰고 있는 인어를 바라보며 놀라운 듯 눈빛을 반짝였다.
‘마치 살아있는 거 같다.’
[그대의 의문처럼 나는 살아있대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
자신의 생각을 읽은 듯한 초대 인어들의 왕의 말에 아셀이 놀라워하자 놀랍게도 녀석은 씨익 웃으며 창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내 이름은 초대 인어들의 왕. 말콤. 인어가 아닌 인간에게 내 창술을 보여주는 것은 처음이로다.]
“뭐. 뭐야..!”
말콤이 삼지창을 휘두를수록 놀랍게도 주변의 바닷물들이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어 내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경지가...’
스승 말릭이 미래에 도달할 그것에 필적하는 것을 확인한 순간. 아셀의 머릿속에는 단 하나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이거 잘하면... 진짜 잘하면...”
본래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죽은 존재의 그림자를 가져오는 것은 불가능했으니까. 때문에 워메이지들의 단장 켈린은 그림자를 가져오지 못하고 생체 꼭두각시로 만들었지 않았던가.
그러나 눈앞에 있는 말콤의 존재는 달랐다.
실제로 살아있는 듯한 모습의 기운을 뿜어내는 것. 녀석은 자신의 입으로도 자신의 경우가 특별하다고 했으니까.
[으음? 어째서 내 신묘한 창술을 보지 않고 옷을 만드는.... 어라? 그건 내 토가잖아?]
아셀은 말콤이 입고 있는 토가를 황급히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빠른 아셀의 손재주에 말콤 마저 눈을 껌뻑이며 감탄의 눈동자를 짓는 것도 잠시. 말콤은 헛기침을 내뱉으며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지금은 내 창에 집중하게 다음에 나를 볼 수 있는 것은 다시금 해가 뜰 때니까 말이야.]
말콤의 말에서 아셀은 하루에 단 한 번 말콤의 형상을 불러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도 잠시.
그가 말콤의 토가를 만들어 냄과 동시에 고동치는 심장의 소리가 그의 귓가에까지 들려왔다.
‘제발... 제발.’
[이봐 자네 계속 이러면 창술을 ...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하하... 하하하. 이거 진짜 미치겠군.”
말콤이 경악하는 것도 잠시. 아셀은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에 미친 듯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전설의 인어 말콤의 토가를 만들었습니다.]
[그림자 재단의 효과가 발동됩니다.]
[원단의 효과로 8% 동기화가 올라갑니다.]
[바다의 신이 사랑한 존재. 신급 창술. 바다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들에 대한 지배력. 바다를 사랑하는 코어 특성이 구현됩니다.]
[동기화 7%.]
[유지 시간 1시간]
[스탯이 재분배됩니다.]
말도 안 되는 재능들이었다. 이런 재능들은 아셀이 게임을 했을 적에 발견하지 못했었으니까.
말콤의 그림자를 제대로 가져온 것을 증명하듯 그의 코어속에 빠르게 마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치 바다에서 제발 자신들의 마나를 가져가 달라고 하는 듯이.
[이런 건 입력되지 않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
말콤은 눈을 껌뻑이다가 이내 그저 자신의 삼지창을 계속해서 휘두르는 모습을 아셀에게 보여주었다.
아마도 본래 삼지창에 들어가기 전에 입력된 대화의 내용만이 말하게 가능하게 분명한 상황.
아셀은 말콤의 옆에서 그가 하는 대로 창을 휘둘러보기 시작했다.
“이게 신급 창술...”
분명 처음 삼지창을 다뤄보는 것이건만 아셀의 자세에 그 어떤 어색함도 없었다.
말콤이 휘두르는 창술의 묘리가 저절로 머릿속에 들어오고 저절로 몸이 따르는 상황.
동기화가 낮음에도 불구하고 나오는 자신의 모습에 아셀은 절로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오.. 대단해! 정말 대단하구나!]
[동기화가 올랐습니다.]
[동기화가 올랐습니다.]
말콤이 삼지창을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아셀은 녀석과의 동기화가 올라갔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마나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며 삼지창을 휘두르면 더욱 효과적이란다.]
[동기화가 올라갔습니다.]
말콤이 자신의 창술에 대한 힌트를 주면 줄수록 그것을 단숨에 이해한 아셀의 동기화가 올라가는 상황.
그가 씨익 웃으며 즐겁게 말콤과의 동기화를 높이고 있는 것도 잠시.
창술을 보여주고 있던 말콤이 다시금 거품으로 변해 사라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1시간인가?”
그와 동시에 아셀은 말콤의 그림자를 유지시키는 것이 끝났음을 알 수 있었다.
하루에 단 1시간 그리고 스킬 쿨타임은 하루.
이것들을 머릿속에 그려본 아셀은 그림자 속에서 누네스를 불러들였다.
“누네스. 오랜만에 대련 한번 하자.”
갑자기 불러내며 대련을 하자는 말에 누네스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단검을 두 개 들어 올리며 아셀을 바라보았다.
“신기해 물속인데 몸이 땅 위에서 움직이는 거 같아.”
“그런 아이템이니까.”
이미 인어 거품의 숨을 누네스에게 먹였기에. 그녀 또한 물속에서 아셀과 마찬가지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상황.
그녀가 그림자들을 타고 빠르게 달려오는 것과 동시에 아셀의 삼지창이 말콤의 초식을 펼치며 휘둘러지기 시작했다.
“?!”
거친 파도가 자신의 눈앞에서 나타나는 모습에 누네스는 진심으로 놀라워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처음보는 창식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것도 잠시.
아셀은 씨익 웃으며 지금 자신의 모습에 즐거움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대박이네...”
생각지도 못한 대박 그림자를 얻었기에. 그는 이미 자신에게 이런 퀘스트를 쥐여준 인어들의 왕에 대한 원망은 거품처럼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