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인생 역전
여명 수도원에 있을 적 아셀은 스승 말릭과 수도 없는 대련을 했었다.
-아셀 너는 정말로 천재구나.
몇 번의 검을 섞을 정도. 그것을 느낀 말릭이 어찌나 기뻐하며 대견해 했던 것인지 아직도 기억이 났다.
‘스승님은 손속을 두신 거지.’
대결이 아닌 가르침이었기에. 그것은 지금 로즈가 내지른 일검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로즈의 검을 받아냈다고?!’
‘괴물인 줄은 알았지만...’
‘도대체..’
황금 기사단들 또한 놀란 것이 아닌 주위의 그림자들 또한 아셀의 무위에 놀라워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지금은 정체를 숨긴다고 무기인 아르테스를 사용하지 않고 있는 상황.
만약 아셀이 다른 그림자로 불러들이고 아르테스까지 사용했다면. 손아귀에 피조차 흘러내리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
“다.단장 지금 당장 잡아들여야 합니다!”
“명을 내려주십시오!”
로즈의 검을 막아낸 존재. 그것의 등장은 곧 위기감으로 다가왔기에 주위의 기사들이 다급하게 외쳤지만, 그녀는 살기 어린 눈으로 아셀을 바라볼 뿐이었다.
‘잡을 수 없겠군.’
이미 거리는 떨어져 있고 도시는 불타고 있었다.
자신이 놈들의 발을 잡고 도주로를 막으려고 해도 자신의 검을 막아낸 존재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상황.
혀를 차며 로즈는 그저 주변 부하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놈들을 놓칠 수는 없었으니까.
“...쫓아라.”
말이 떨어지자마자 거센 불길이 솟아오르고 있는 로렌시로 황금 기사단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이제 슬슬 돌아가자.”
가기전 아셀은 씨익 웃으며 로즈와 한번 눈을 마주쳤다.
‘조금만 기다려라.’
불과 이곳에 떨어진 지 2년 조금 넘은 시점에 로즈의 검과 맞닿을 정도까지 성장했었기에.
그는 조만간 다시 로즈와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대할 수 있었다.
‘그때가 되면...’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며 황급히 이곳에서 몸을 빼내고 있던 아셀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나타났다.
“옛날처럼 트롤짓 못하게 없애 버려줄게.”
아셀과 그림자들이 있던 곳으로 거대한 황금빛 검강들이 내려치는 것도 잠시.
거센 불길들마저 단숨에 사라지게 만든 황금빛 검강들이 내려처진 자리에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근처에 있을 거다 쫓아라!”
“망할 기사단의 위상을 위해 빨리 쫓아!”
***
-...뭐라고?
거친 파도 소리가 아셀의 귓가를 자극하고 있었다.
절벽 위에 부딪치는 파도에서 나오는 소리들. 절벽위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아셀은 로렌시에서 나와 필드가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어 보였다.
-아들 친구들이니 잠시 신세 좀 지게 해주시지요.
-친구?
로렌시를 떠나 아셀이 그림자들을 맡긴 곳은 필드가였다.
가주 유론은 아셀이 그림자들임을 알고도 묵인하고 오히려 지지하는 입장이었으니까.
-이게 도대체 어떤 일인지는 아는....
아셀이 데려온 그림자들.
무려 7대 용사 가문에서 앞장서서 잡아들여야 하는 녀석들을 데려온 것이었기에. 유론은 혈압이 갑자기 뛰어올라 정신을 잃을뻔한 것을 겨우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참아낼 수 있었다.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세요.
-투자?! 투자아아? 네놈이 드디어 미쳤구나. 이게 투자라고 하는 걸 보면 말이야.
-하아.. 그러면 밖에 있는 제 친구들을 다 죽일까요? 아니지 아니지 그냥 자수하겠습니다. 제 친구들만 따로 죽으면 외로울 테니까 그냥 황금 기사단에 가서 제가 로렌시도 불태우고 그림자들도 데리고 도망갔다고 자수할게요.
-뭐.뭐라고? 네가 뭘 불태워 이.이 망나니 새끼야!
유론이 참지 못하고 책상 위에 있던 모든 물건들을 아셀에게 던졌었지만, 그는 그저 히죽 웃으며 역정을 내는 유론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니까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버지. 아들을 위해 시원하게 가문의 규약 따위 무시하시지요.
그뒤로 도망치듯 필드가에서 빠져나온 아셀은 고성 아메라에 울려 퍼지는 비명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우선 그림자들을 그곳에 맡기고.”
누네스를 제외한 모든 그림자들을 필드가에 있었다.
어떤 이유에서 인지 누네스는 아셀의 그림자에 들어가 계속해서 따라가기를 원했으니까.
‘녀석들은 내 세력이 되어야 해. 아니 앞으로 다른 그림자들 모두가.’
게임을 했을 적 사냥당했던 그림자들의 존재들을 떠올리며 아셀은 씨익 웃음 지었다.
그 특별한 능력을 지녔던 녀석들이 자신의 세력이 된다면 앞으로 있을 수많은 재앙들 속에서 그림자가 아닌 빛이 될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리고 우선은.”
넘실거리는 파도들 아셀은 그것들을 바라보며 품 안에서 인어 거품의 숨을 꺼내 들었다.
[인어 거품의 숨.]
[소모형 아이템입니다.]
[삼키는 것으로 물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지속 시간 24시간.]
인어 거품의 숨. 아셀은 물속에서 하루동안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아이템이 지금 수백 개 가지고 있었다.
모두 지난 3차 몬스터 웨이브의 보상으로 받은 물건들.
아셀은 이것의 활용 방법을 이미 잘 알고 있기에 그는 바닷속을 바라보며 씨익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다.
‘깊은 바닷속 잠들어 있는 보물들..’
게임을 했을 적 한 유저가 저 아이템을 가지고 폐허가 되었던 인어들의 도시에서 수많은 보물들과 아이템을 가지고 나와 인생을 역전한 것을 아셀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어째서 그때 그 생각을 못했는지 수도 없이 배가 아팠으니까.
“이제는 내 거지.”
게다가 아셀은 인어들의 보물 말고 인어들의 도시를 넘어 심해까지 들어가기로 결정한 상황.
그곳에 있는 수많은 몬스터들과 월석 혜나는 아셀의 아르테스를 강화시키는 아이템이었기 때문이었다.
꿀꺽 인어 거품의 숨을 삼키자 아셀은 자신의 목이 칼로 베이는 듯한 화끈한 통증이 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그와 함께 아셀은 자신이 공기 중의 숨을 들이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이거 설마?!’
황급히 바다로 뛰어들자 기다렸다는 듯 들어오는 공기들.
아셀은 자신이 마치 물고기들처럼 바다 위에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한다는 사실에 놀라워할 수밖에 없었다.
“놀랍네.”
입을 벙끗 리자 부르르 올라가는 거품들을 바라보며 아셀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분명 어두워야 할 바닷속이었지만, 지금 아셀의 눈에는 대낮과도 같은 곳이었다.
심지어 바닷속이건만 지상과 별 차이 없이 빠르게 이동까지 가능한 상황. 그랬기에 아셀은 자신이 목적으로 했던 곳으로 빠르게 다가갈 수 있었다.
‘인어들의 도시 롱메티시.’
한때는 인어들의 가장 큰 도시 롱메티시. 지금은 폐허로 변했을 그곳에 다른 그 어떤 곳보다 많은 보물들이 아셀을 기다리고 있을 게 분명했으니까.
꾸륵?
롱메티시로 빠르게 달려가는 중 바닷속에 있던 몇몇 몬스터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셀에게 다가왔다.
꾸르르르!
인간이 어떻게 여기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 그러나 이내 가끔 바닷속으로 빠져 사고를 당한 인간이라고 생각한 녀석들이 공격해 들어왔다.
“마나들!”
몬스터들이 아셀을 한 끼 식사라고 생각한 것과 마찬가지로 아셀 또한 몬스터들을 코어 안으로 들어 올 마나들이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아쿠아 블라스트.]
요정목 지팡이 미네르바를 꺼내 들고 순식간에 쿠이가의 그림자를 불러들인 아셀의 주변으로 바닷물들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펑! 펑! 펑! 물속이었기에. 더욱 강해진 마법들은 주변의 몬스터를 단숨에 터트리기 충분한 상황.
빠르게 코어 안으로 들어온 마나들에 아셀의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좋아.”
이대로 사냥을 좀 더 하고 코어에 마나를 쌓을까 하는 욕구까지 일어났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곳에 몬스터는 많았고 아셀의 마법 또한 강해졌기에. 코어 안의 마나들은 순식간에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안 돼 안 돼.. 우선순위를 명확하게 하자.’
서둘러 이곳의 인어들이 남긴 보물들을 챙기고 월석 혜나를 챙겨야 했다.
이제 슬슬 가르시아 주교가 아셀의 우승을 원하는 히어로즈 컵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뿐이겠어? 월석 혜나를 가지고 하는 아르테스의 강화가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데?”
수르트의 심장으로 강화했을 적에도 생각 이상의 시간이 흘렀었다.
그리고 나온 결과는 현재 아무렇게나 휘둘러도 단숨에 조각나는 몬스터들의 모습에서 나오는 상황.
아셀은 피 냄새를 맡고 달려오는 상어형 몬스터 수십 마리를 베어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점점 아셀은 롱메티시에 다가가는 것과 동시에. 거대한 진주 모양의 도시를 발견 할 수 있었다.
“저것이...”
게임을 플레이했을 적에도 아셀은 이곳에 도착해보지 못했다.
거액의 금액을 들여야 할 수 있는 인어 거품의 숨을 사용해서만 이곳에 올 수 있었기 때문에.
게다가 아셀이 게임을 했을 적에는 이미 이곳에 있는 모든 보물들은 지상에 올라갔던 때였기 때문에.
몇몇 할 것 없던 고인물들이나 거액의 돈을 들이고 바닷속을 탐방했었으니까.
“허어.. 미치겠군.”
진주 모양의 도시 주변에는 그 어떤 물고기도 몬스터도 지나가지 않았다.
마치 원래 그곳은 들어가지 못하는 것으로 인식한 것처럼 들어가지 못하는 것.
아셀은 그곳을 들어가자 사방에 펼쳐진 진주들에 눈을 번쩍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니 인생을 역전했지.”
온갖 진주들이 발에 챌 정도로 많았다.
아셀이 걸어 다닐 때 미처 피하지 못하고 밟아 부숴버리는 진주들까지 있었으니까.
‘진주만으로 가방을 채워 넣을 순 없지.’
사출의 주머니 그리고 아셀은 마탑에서 나오기 전 가져온 아공간 주머니 수십 개를 꺼내 들며 히죽 웃어 보였다.
‘앞으로 돈 걱정은 이제 끝이구만.’
길을 걸으며 아셀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수만 개의 진주들 중 크기가 크고 색이 아름다운 것들 위주로 줍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반복. 얼마 지나지 않아 제일 작은 아공간 주머니가 가득 차올랐지만, 사방에 떨어져 있는 진주들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
도시의 심부에 가면 갈수록 조개 모양의 집들과 진주들이 가득한 것을 아셀은 발견할 수 있었다.
“흐음.. 그래.”
심부에 가면 갈수록 진주 말고 전투의 흔적들도 가득했다.
마치 무언가 거대한 것들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떨어진 수백 개의 삼지창들.
그중 몇가지는 큰 보석이 박혀 있는 것이 고위직 인어들이 사용했음을 아셀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
삼지창에 박힌 보석들을 모두 회수해 주머니 속에 넣고 있던 아셀은 도시의 정중앙에 위치한 왕좌를 발견하고는 눈을 껌뻑였다.
그동안 이곳에 오면서 봤던 조개 모양의 집들. 그중 가장 거대한 조개의 위에 있는 황금빛 두 개의 왕좌.
황금으로 만들어졌기에 단연 눈에 띈 왕좌였지만, 아셀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그곳에 앉아 죽음을 맞이한 인어의 시체였다.
“이게 인어들의 왕인가?”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아셀은 온몸에 가득한 상처들 그리고 씌워진 왕관과 꽉 쥐고 있는 황금빛 삼지창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게 있다고는 들었지.’
죽음을 맞이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인어들의 왕의 시체는 절대로 썩지 않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마족들이 자신들에게 저항한 대가로 절대로 부패하지 않는 저주를 내렸기 때문에.
“불쌍한 녀석.”
게임을 플레이했을 적 고성 아메라에 있던 죽지 않던 살덩어리. 그것이 잠시 떠올랐기에 아셀이 혀를 차는 것도 잠시.
갑자기 푹 숙이고 있던 인어들의 왕 시체가 고개를 들어 올리며 아셀을 바라보았다.
“?!”
순간 아셀은 진심으로 놀라 자리에 풀썩 주저앉을 뻔한 것을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참아낼 수 있었다.
심지어 지금은 무려 말릭의 그림자를 불러들이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뭐. 뭐야 이거 왜 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