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정화 (3)
아세르이 단검이 마치 수십 개가 동시에 휘둘러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빠르게 휘둘러진 단검이 가능하게 해주는 모습.
신기에 가까운 놀라운 모습에도 불구하고 가일과 막시무네는 막아내며 심지어 아셀에게 반격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성기사라는 녀석이 잔재주나 부리다니!”
“네 스승 말릭이 땅을 치고 후회하겠구나!”
“새끼들...”
휘익 부분 가속을 사용하자 두 개의 잔상을 남기고 아셀의 단검이 가일의 가슴에 쏘아졌다.
인지를 넘어선 속도와 이런 속도가 나왔다는 것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변수.
그것이 가일의 가슴에 긴 자상을 남기는 데 성공시켜 주었다.
“커헉..”
“가일!”
“좋으면서 말이 많아.”
긴 자상을 남기는 것에 성공했지만, 가일은 순식간에 반격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정도로 쓰러진다면 오히려 그것이 실망감을 주는 일이었기에.
아셀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자신을 향해 무서운기세로 휘둘러지는 검들을 피해 그림자 속으로 들어갔다.
“이놈!”
“그림자를 조심하게 가일!”
서로 등을 맞대며 최대한 그림자 속을 주시하던 것도 잠시.
거친 파공음과 함께 그들을 향해 무언가 쏘아지기 시작했다.
부웅! 허공을 가르는 듯한 그것. 가일과 막시무네는 저것을 맞는 순간 위험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저게... 뭐야?”
“쟁방?!”
둘이서 황금빛 검강을 만들어 내 겨우 막아낸 그것이 고작 쟁반이라는 사실에 믿기지 않아 하는 것도 잠시.
그런 그들을 향해 계속해서 쟁반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정체가 뭐야!”
“이것도.. 이것도 그 변절자들의 기술인가!”
캉! 캉! 놈들은 자리에서 주르륵 밀려나기 시작했으며 놈들이 만들었던 견고한 검강들이 빠른 속도로 박살나기 시작한 순간.
그림자 속에서 쟁반을 수도 없이 던지고 있던 아셀은 슬슬 이것들을 끝내야 될 때임을 눈치챘다.
‘슬슬 마무리 짓자.’
자신의 옆에 있는 누네스를 제외한 그림자들이 슬슬 자신의 말에 따라 행동을 계시하고 있을 게 분명한 상황.
아셀은 검정색 후드를 뒤집어 쓰며 사출의 주머니에서 아르테스를 꺼내 들었다.
“헉... 헉..”
“놈도 지쳤을 거네. 그러니 그때...”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온 아셀의 모습을 발견한 가일과 막시무네는 얼굴이 창백해질 수밖에 없었다.
검정색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놈은 전혀 지쳐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말도 안 돼...”
“숨도 거칠게 쉬지 않는다고?!”
이렇게 큰 기술들을 계속해서 사용했건만, 체력이 전혀 떨어지지 않은 것은 물론 아셀이 아르테스에 물러 일읔키는 거대한 신성력의 검강은 그의 코어에서 마나들이 전혀 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너희들은 알고 있지?”
그림자 속을 통하지 않고 천천히 걸어오며 아셀은 섬뜩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림자들의 억울함을 말이야.”
황금 기사단이 그림자들에 대한 억울함을 모를 리가 없었다.
게임을 플레이하면서도 몇몇 장치들에서 그림자들에 대한 억울함을 은연중 알고 있는 듯한 행동을 했었기 때문에.
“개소리 하지 말아라!”
“사악한 힘을 취하더니 정신도 나간 거 같군!”
“사악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에 끌려오기 싫었는지 일반인들이 저항했던 흔적들과 고문 기구들 그리고 수많은 핏자국.
아셀의 노골적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가일과 막시무네는 당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대의를 위해서 악을 처단할 때 희생은 나오는 법이다.”
“네놈들이 처음부터 나왔다면 희생되지 않았을 고귀한 목숨들이다! 이 위선자 놈!”
“x친놈들. 빙신이었나 하는 네놈 단장 밑에서 그런가?”
진심으로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아셀은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다.
애초에 말이 통하지 않는 녀석들이다.
게임을 했을 적에도 온갖 부정을 대의와 악에 대한 싸움으로 포장하고 넘어갔던 녀석들이었으니까.
‘저것들은 남아있을 필요가 없어.’
마족들과의 다가올 싸움에 황금 기사단 같은 거대한 단체들이 있으면 도움이 될 거 같겠지만, 통제되지 않은 아군. 그리고 어쩌면 이득을 위해 아군의 등을 찌를 수 있는 녀석들은 전혀 필요가 없었다.
“너희들은 빠져라.”
무슨말을 하는지 가일과 막시무네가 이해를 하기도 전에 아셀이 빠른 속도로 달려와 미친 듯이 검강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마.말도 안 돼..”
“별절자가.. 사악한 힘을 쓰고 있는 자식이 어떻게 이런 거대한 검강을!”
지쳐있던 자들이 아셀의 거대한 검강을 막아낼 수 있을 수는 없는 법.
처음 몇 차례 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점점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하고 온몸에 상처가 생기기 시작한 녀석들이 손발이 꼬이기 시작했다.
“커헉!”
“가일! 이 개자식이!”
처음 가일의 가슴에 거대한 검강을 꽂아주고 녀석이 쓰러지자 막시무네가 눈을 부릅뜨며 달려들었다.
“죽어!”
분노가 막시무네의 검을 움직이게 만들었지만,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법.
팔 부분만 신성의 갑옷을 만들어 낸 아셀이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놈의 검을 막아내자 경악하는 막시무네의 표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너희들은 언제나 그렇지.”
아르테스의 망치 부분으로 놈의 손을 박살내자 괴로움에 바닥에 쓰러진 막시무네를 바라보며 아셀은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자신들이 정의라는 착각에 빠져 타락하고 있는 것도 모르고 말이야.”
“흐아아아아아!”
발악하듯 다시 일어나려는 녀석의 머리를 아르테스의 망치 부분으로 후려치자 막시무네는 실이 끊긴 인형처럼 쓰러지기 시작했다.
‘마족들이 타락시킨 것과 다르다.’
마탑에서 마탑주 큐온이 마족들에 의해 타락해 종국에는 익면조로 바뀐 것. 그리고 게임 속에서 대륙 제일의 기사 말릭이 페러사이드에 감염되어 타락한 것.
모든 타락에는 마족들이 있었으나 황금 기사단 녀석들은 자신들 스스로가 타락했다.
“고인물들.”
쯧 하고 혀를 차고 있던 아셀이 검을 집어넣는 것과 동시에 누네스가 그림자 속에서 올라왔다.
“준비 끝났어.”
“그래.”
어째서인지 상기된 표정을 짓고 있는 누네스가 아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네가 말했던 그것들이 오고 있어.”
“벌써?”
누네스의 말에 아셀이 눈을 번쩍거렸다.
설마 이렇게 빠르게 황금 기사단의 지원군이 내려오고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
“그리고 로즈... 황금 기사단의 단장이 직접 오고 있어.”
“?!”
생각 이상의 거물이 내려오고 있다는 소식에 아셀의 눈이 번쩍였다.
***
“도. 도망쳐!”
“망할 망할.. 도시에 그림자가 있었다니!”
“우선 도시를 떠나야 해 모두 도망쳐!”
황금 기사단의 기사들이 죽었다는 사실에 자유도시 로렌시에 거주하고 있던 모든 주민들이 빠르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정화라는 명목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고문하고 있던 그들이 그림자들의 손에 죽었기에.
조금만 생각을 해보아도 앞으로 도시에 어떤 보복이 닥칠지는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잠깐만 무슨 기름 냄새 안 나나?”
성문으로 황급히 도망치고 있던 몇몇 주민들은 자신들의 코를 자극하는 기름 냄새에 눈을 껌뻑이는 것도 잠시.
그들의 의심을 증명하듯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부.불이야!”
“불이 났다!!”
“모두 빨리 도망쳐!”
이미 사람들이 떠나버린 중심부로 거대한 불길이 올라서고 있었다.
그것이 어찌나 강한 불길인지 순식간에 건물들을 불태우고 무너트리는 모습.
거대한 연기가 하늘 높이 솟아오르자 몇몇 주민들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는 것도 잊어버리고 주저앉았다.
“아..아..”
순식간에 번져 나간 불길은 어느새 피난하고 있던 사람들 근처까지 빠르게 몰려오기 시작했다.
‘죽는...’
불에 타 죽음을 직감한 순간.
눈을 감았던 남자가 눈을 뜨는 순간 그는 눈앞에 펼쳐진 놀라운 광경을 발견할 수밖에 없었다.
“어.어라?”
“자네도?”
“이봐 여기서도 사람들이 솟아 나!”
분명 도시에서 불타 죽기 일보 직전인 사람들이 갑자기 땅 위로 솟아오르기 시작한 것.
몇몇 눈썰미 좋은 사람들은 그들이 그림자 속에서 나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게 무슨.”
“누가 마법을 사용한 건가?”
***
“단장님!”
자신의 직속 부하들 10명만 데리고 빠르게 로렌시로 내려가고 있던 로즈는 저 멀리서 불에 타고 있는 로렌시를 발견하고는 이빨을 까득였다.
‘불에 태운다고?’
불에 타고 있는 도시.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녀는 손쉽게 알아차렸으니까.
‘실패한 건가?’
도시가 불타는 것은 그녀의 입장에서 사소한 일에 불과했다.
오히려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자신의 명령으로 로렌시에 보냈던 부하들이 임무에 실패했다는 사실이었으니까.
그녀가 빠르게 도시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수많은 사람들이 허망한 듯 불타오르는 도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저건?”
“단장 저길 보십시오!”
부하들이 말하기 한참 전부터 로즈는 검은색 후드를 뒤집어쓰고 도시의 성벽 위에 올라서 있는 존재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림자들..”
“저것들이 모습을 드러냈단 말인가.”
“이게 도대체 얼마 만에...”
모든 기사들이 놀라워 하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사이.
그녀는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제법 거대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 있는 곳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제법 머리를 썼구나.’
도시를 완전히 불태우고 일부러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준 것.
이로써 황금 기사단은 로렌시에 남은 일반인들에 대한 정화를 쓸 명목이 없어졌으며 당분간 모든 시선은 지금 성벽에서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그림자들에 쏠릴 것이 분명했으니까.
“구심점은.”
스스릉. 그녀의 허리춤에 걸려 있는 황금색 레이피어 [드라콘]이 뽑혀져 나왔다.
골드 드래곤 신체의 일부로 만들어진 대륙에 손꼽히는 명검.
그것이 나타나자 주변의 공기가 일렁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없애버려야 한다.”
만약 저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림자들이 대거 모여들기 시작한다면?
앞으로 황금 기사단의 앞길에 불이익이 될 게 분명했다.
그림자들의 부활은 새로운 강자들의 등장을 의미했으니까.
완성에 가까운 그녀였기에 사전의 준비도 없이 거대한 기운을 일순간 그림자들을 향해 쏘아냈다.
일점.
마치 레이저가 쏘아지듯 쏘아진 황금빛 기운은 그저 일점이라고밖에 보이지 않았다.
오랜 로즈의 깨달음이 담겨있는 일검.
평범한 찌르기였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기운과 깨달음은 평범한 무인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캉! 그러나 로즈가 평생의 깨달음을 담은 그 일격은 그림자들에게 닿지 못했다.
가운데에 있던 아셀이 휘두른 그림자 망치술에 의해 공중에서 거대한 소리를 내며 사라졌기 때문에.
“단장의 일격이!”
“맙소사.. 도대체 저걸 누가 막았단 말인가!”
황금 기사단들이 경악하며 로즈의 일검을 막아낸 아셀을 바라보는 것도 잠시.
아셀은 박살난 망치를 저 멀리 던지며 속으로 욕설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시x 존x 아프네!’
손아귀에 흐르는 피. 로즈 같은 완성에 가까운 무인의 진심 어린 일격을 받아낸 것에 따른 대가치고는 작은 상처들이었다.
‘그래도..’
단 일 합이라 할지라도 아셀은 로즈의 검을 막아낸 것에 속으로 씨익 웃어 보였다.
“조금은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