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로렌시 (2)
“물 가지고 왔습니다!”
“내가 목마르다고 했지 물 가지고 오라고 했어?”
깽그랑 아셀은 방금 전 물을 가져온 용병의 앞에서 물컵을 집어 던졌다.
“아직도 눈치가 없나 보네?”
‘길드장님이..!’
‘아셀 저것이 어떻게 저렇게 강해진 거지?!’
‘설마 복수하러온 건가..’
아셀의 앞에 로렌시의 용병 길드 소속의 용병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모두의 얼굴에 상처들이 가득한 모습.
무릎을 꿇은 그들에게 아셀은 놀랍게도 주먹 한 번씩 갈겨주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왜 우리를 때린 거야? 무릎 꿇으면 안 죽인다고 했잖아.’
‘진짜로 죽기 싫으면 가만히 있어! 그래도 얼굴만 때려준 게 어디야!’
“여기서 본인이 레드스컬 소속이다 손 들어.”
잠시 주변을 둘러보며 아셀은 자신을 바라보며 검을 뽑을 것 같은 충동을 일으키는 용병 몇몇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아셀이 수도 없이 죽여온 레드스컬 용병들.
그것들이 동료들의 피 냄새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제.제가 레드 스컬 용병단의 소속이지만 말단이라 그렇게 신경은 쓰지 않습니다. 아셀 도련님.”
“저는 입단한지 얼 되지 않아 소속감이 없습니다!”
“저는 조만간 탈퇴하려고 했습니다.”
징벌자도 이길 수 없는 것이 아셀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용병 특유의 비굴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난 녀석을 물끄러미 보던 아셀이 피식 웃어 보였다.
“그렇단 말이지? 좋아. 원래는 너희들 대가리를 다 부수려고 했는데 말이야.”
아르테스의 망치 부분을 빙글빙글 돌리는 아셀의 모습에 용병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침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밖에 나가서 레이나, 미첼, 켄. 이 잡것들 먼저 잡아 오는 녀석들은 살려줄게.”
“제가.. 제가 먼저 잡아 오겠습니다!”
“그것들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순식간에 수십 명의 용병들이 앞다투어 길드에서 뛰쳐나갔다.
레이나 미첼 켄.
녀석들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아셀은 입가에 진한 미소가 나타났다.
그것도 그럴 것이 녀석들은 자신을 속이고 털보와 함께 노예로 팔아넘기려고 했던 잡것들이었으니까.
‘우선 그것들은 쟤네들한테 넘기고.’
하급용병을 전전하고 있던 녀석들이었기에. 분명 얼마 지나지 않아 용병들의 손에 잡혀올 게 분명했다.
아셀은 자신의 눈치를 보며 옆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길드장을 바라보았다.
“이 도시에 가장 오래되고 유서 깊은 대장간이나, 푸줏간, 미용실, 주점 같은 것들이 어디에 있어?”
갑작스러운 아셀의 말에 길드장 렌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도시 관광이라도 하시려는 겁니까?”
“묻는 말에만 대답해줬으면 좋겠는데?”
굳은 얼굴로 아셀이 째려보자 렌은 헛기침을 내뱉으며 황급히 머리를 굴려보았다.
“우선 로렌시의 대장간은 피립스 대장간이 가장 오래되었지요. 기사들 대부분이 그곳에서 장비를 사곤합니다.”
그다음으로 렌이 말해주는 가게들을 머릿속에 기억하며 아셀은 속으로 씨익 웃어 보였다.
‘그중 몇 개는 걸리겠군.’
게임에서도 그랬다. 유서깊은 음식점, 푸줏간 이런 일반적인 npc들이 하는 곳은 높은 확률로 그림자들과 연관되어있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게다가 아셀은 그림자들의 옷을 만들어 보는 것으로 녀석들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조금 빠르게 이동해봐야겠네.”
밖으로 나간 용병들이 돌아오기 전 아셀은 도시를 한번 둘러보기로 결정했다
***
“아아... 끝이 났구나.”
펑! 바위로 막아둔 동굴의 입구가 거대한 기운에 박살 나는 것을 발견한 다이아 울프족들은 황급히 그들의 성지인 [수렵동]으로 몰려 들어갔다.
“투마리스.. 그 아이가 정말로 해낸 거야?”
“맙소사.. 족장님께서 설산늑대가 아니라 헬혼 울프를 잡아 왔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2년 동안 도대체 얼마나 강해졌을까.”
2년이 조금 넘어가는 시간.
투마리스가 다이아 울프 부족원으로서 진정한 인정을 받고 그녀가 수렵동에서 수련한 시간이었다.
“나온다!”
한 다이어 울프의 말에 그들은 동굴 입구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투마리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2년 전보터 확실히 커진 키. 그것에 더불어 머리색은 놀랍게도 진한 은색으로 바뀌어 있었으며 걷기만 해도 나오는 황금빛 기운은 그녀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알아차릴 수 있는 모습이었다.
“어찌...”
“하하.. 미치겠군. 역시 족장님의 딸이라 이 말인가.”
몇몇 수인족들의 중얼거림들이 들려오는 것도 잠시.
아셀이 만약 이 모습을 보았다면 경악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가 기억하는 10년 뒤의 투마리스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기에.
원래의 게임의 흐름보다 빠르게 설산늑대를 잡고 그보다 높은 등급의 헬혼 울프를 잡아 왔기에.
투마리스가 본래의 얻어야 할 경지보다 높은 성취를 얻은 것이 분명했다.
“투마리스..”
수인족들의 부족장이자. 다이아 울프인 메차쿤은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의 딸아이를 바라보았다.
‘나도 저 아이 나이대에는 못 이룬 성취이거늘..’
심지어 모든 수인족들의 지원을 받았던 자신과 다르게 혼혈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던 딸아이였다.
역경을 이겨내고 얻은 성취가 더 빛나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에. 메차쿤은 진심으로 감격스러워 할 수밖에 없었다.
“아! 아버지!”
“오냐 내 딸 그래 여기 이 아비가 있다!”
자신부터 찾는 딸아이의 모습에 메차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을 주르륵 흘려낼 수밖에 없었다.
“나 이제 수련도 끝났으니까 아셀을 찾으러가야 겠어!”
“아.아셀?”
잠시동안 아셀이 어떤 몬스터인지 고민하던 메차쿤의 머릿속에 2년 전 딸아이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밖에서 아셀이라는 잘생긴 제자가 있었어요! 그 아이도 함께 왔었으면 좋았을 텐데...
-잘생겨? 딸아 잘 듣거라. 남자는 말이다. 이 아비 빼고는 다 몬스터 새끼들이란다.
-아셀은 몬스터도 반할 정도로 잘생겼는걸요?
“설마 인간 남자아이를 말하는 게냐?”
“헤헤 다녀올게 아버지!”
메차쿤이 말리기도 전에 투마리스는 근처에 있던 전사들의 활과 화살을 눈 깜짝할 사이에 빼앗고는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 안 돼 투마리스!”
따라갈 생각도 하지 못한 메차콘의 비명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흐음.. 여기도 아니었네.”
[폭식의 도축사]라는 이상한 직업을 가지고 있던 도축사였지만, 그림자가 아니었기에. 아셀은 자신이 만들어둔 가죽 자켓을 아무 곳에나 던지며 머리를 긁적였다.
렌이 말해준 가게들 모두 특이한 직업들을 가지고 있었다.
일반적인 대장장이가 아닌 [거품 대장장이] [폭식의 도축사] [정령 요리사] 같은 특이한 직업들.
일반적이지 않은 그런 직업들이었기에. 분명 이 거대한 자유도시 안에서 오랜 세월 버텨온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림자들은 아니다.’
군신 마르스는 분명 이곳에서 그림자들을 찾아 구하라고 했었다.
모종의 이유로 이곳에 있는 그림자들이 위험에 빠질 게 분명한 상황. 아셀은 마지막으로 [라라플라 미용실]을 가 보기로 결정했다.
“어서 오십시오! 라라플라가 운영하는 라라플라 미용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셀이 들어서자마자 중년의 포마드 머리를 하고 있는 미용사가 황급히 다가왔다.
앞치마에 가득한 가위들 그리고 굳은살이 가득한 손까지.
오랜 세월 가위를 만져 본 것임을 단숨에 알 수 있는 모습이었기에. 아셀은 이 기회에 머리라도 조금 다듬자는 심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어떻게 잘라드릴까요 손님?”
“그냥 정리만 해주세요.”
“아... 손님은 짧은 머리가 어울리실 거 같은데. 그래도 원하시는 대로 해야죠.”
“아참 할 일이 있어서 그런데 손 좀 사용해도 되죠?”
고개를 갸웃거리는 라라플라를 무시하며 아셀은 검은색 천으로 그가 입고 있는 앞치마를 만들기 시작했다.
“소.손재주가 대단하신 거 같습니다.”
미용사인 자신보다 빠르게 옷을 만들어내는 아셀의 모습을 라라플라는 도저히 믿기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자신의 옷에 나 있는 작은 얼룩과 구멍까지 바느질로 재현하는 놀라운 모습에 순간 가위를 놓칠뻔한 것도 잠시.
갑자기 아셀의 입가가 씨익 올라간 것을 발견한 라라플라는 순간 흠칫거릴 수밖에 없었다.
‘뭐지 갑자기 한기가...’
“미용사 선생님도 손재주가 좋으신 거같군요.”
“저야 평생 이것만 해와서 익숙해진 거겠지요.”
순간 들었던 이상한 예감을 애써 무시하며 아셀을 아쿠아색 머리를 다듬기 시작한 라라플라를 보며 아셀은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그림자들을 발견했습니다.]
[그림자 미용사 라라플라의 앞치마를 만들었습니다.]
[고급 손재주. 날카로운 미적감각. 유연한 사고방식. 민첩함 특성이 구현됩니다.]
[동기화 15%]
[원단의 재질로 동기화가 10% 올라갑니다.]
[그림자 미용술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림자 미용술?’
잠시 이것이 무엇인가 고민하던 아셀은 스킬들에 대한 설명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두 눈이 크게 떠질 수밖에 없었다.
[그림자 미용술.]
[상대방과 머리를 비슷하게 자르면 그 상대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사용시 모든 그림자 재단의 유지 시간이 소모됩니다.]
‘이건 쓸만하잖아?’
굳이 동기화를 올리지 않아도 아셀은 쓸만한 스킬이 들어왔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방과 비슷하게 머리를 자르면 모습을 바꿀 수 있는 기술의 활용도가 얼마나 대단할지는 단숨에 알아차릴 수 있었기 때문에.
“다되었습니다.”
“완벽하군요.”
무려 2골드나 라라플라에게 쥐여주자 그의 두 눈이 경악하듯 크게 떠질 수밖에 없었다.
“소.손님 이렇게 많은 돈은 받지 못합니다! 넣어주십시오!”
“괜찮습니다. 서로 좋은일 한 건데 팁이라고 생각해주세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아셀이 가게 밖으로 나가자 라라플라는 한동안 손에 쥐어진 2골드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뭐지... 이 불길한 예감은?’
***
라라플라의 가게에서 나온 아셀은 투마리스의 그림자를 불러들이고 한동안 그곳에 숨어있었다.
‘많이 오기도 한다.’
괜스레 명소가 아니라는 듯 귀족들을 포함해 수많은 고객들이 라라플라의 가게에 들락거리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것도 잠시.
아셀은 그가 영업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을 조심히 미행하기 시작했다.
‘분명 무언가..’
대놓고 라라플라의 앞에서 그림자 재단을 사용해보았으며 무려 2골드나 되는 돈을 쥐여주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의구심을 가지고 무언가 해야 할 것이 분명한 상황.
심지어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음?”
아셀의 짐작대로 녀석은 자유도시 로렌시의 수많은 빈민들이 모여 사는 판자촌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잘나가는 미용사가 갈 곳은 전혀 아닌 것이 분명한곳.
자신의 직감이 맞았음에 아셀이 씨익 웃어 보이며 조용히 기척을 죽이며 따라가고 있던 것도 잠시.
그는 미로처럼 이어진 길 속에서 어느 순간 라라플라의 모습이 마치 공간이동 마법을 하는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게 무슨....”
믿기지 않는 듯 아셀이 두 눈을 껌뻑이는 것도 잠시.
갑자기 아셀의 그림자에서 무언가 솟아 올라오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