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그냥 넘어가긴 힘들어서
부웅. 순간이지만, 아셀의 손이 마치 두 개가 되어 보였다.
오른손을 내지르다가 부분 가속을 사용했기에. 일시적이지만, 나오는 착각 같은 것.
그렇게 가속해서 내질러진 아셀의 주먹은 포르틴의 그림자를 불러들이고 있는 와중임에도 불구하고 메라릭을 허공에 붕 뜨게 만들기 충분했다.
“커.커헉! 어..째서?”
단 한 번 일격을 명치에 허용한 메라릭은 도저히 지금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아셀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누구인가? 아무리 작은 수도원이지만, 수도원장쯤 되는 존재 아니던가!
“심해..”
구석에서 웅크리며 지금 상황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바라보는 포르틴의 상처를 치료해주며 르안느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아셀.. 자네 지금 이러고도 무...”
다시 한번 메라릭의 얼굴이 완전히 반대로 돌아갔다.
그와 함께 녀석의 입에서 나오는 이빨 몇 개와 흘러내리는 피.
거대한 고통이 수반되었기에. 순간 메라릭의 머릿속에는 공포라는 것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이. 이자식 나를 죽일 생각이야!’
“튼튼하네? 아닌가 지금 내 주먹이 약해서 그런가?”
좋은 걸 많이 처먹었는지 메라릭의 몸은 생각보다 튼튼했다.
거기에 지금은 포르틴의 그림자를 불러들이고 있었기에 주먹이 평소보다 약한 것은 당연한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분 가속 스킬이 일반적인 구타로 이어지게 만들기 충분했다.
“이.일단 진정하게 내가 다 설명해줄 수 있으니까!”
“일단 치료 좀 해줄게, 아직 끝내기는 아쉬우니까.”
포르틴이 사용할 수 있는 중급힐을 메라릭에게 사용했다.
“자.자네 어떻게 이런 치유 능력을.. 아니지 잘 들어보게 아셀.. 내 말을 들어주게!”
“오 성능 확실하구만.”
느리지만, 말끔하게 치료된 메라릭을 향해 아셀이 다시 한번 주먹을 내질렀다.
“저 아이에게는 악마가 깃들어있단 말일세! 나는 그걸 정화하기 위해.. 커헉.”
“악마는 무슨 너도 잘 알고 있을 거 아니야.”
이번에는 발에 부분 가속을 사용하며 메라릭의 명치를 가격하자 놈은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포르틴에게 어떤 존재들이 깃들어 있는지 말이야. 아니면 그걸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신앙심이 낮은가?”
“시.신성 모독이다! 대 말릭 경의 제자리는 놈이 감히 여신을 제외하고 다른 것들을 신이라 생각하는가!”
“미x놈.”
“제게 있는 것들이요?”
아셀의 말을 들은 포르틴이 두 눈을 껌뻑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리 와봐 포르틴.”
순간 당황했지만, 포르틴은 조심스럽게 아셀의 옆에 다가왔다.
“이거 들고 저거 후려쳐.”
“이건 채찍인데요 기사님?!”
“당했으면 갚아줘야지. 분명 너한테 깃든 녀석도 그걸 기뻐할 거야.”
“지.지금 뭐 하는?”
“아참 포르틴 너는 아직 근력이 약하니까 스트롱스도 사용하는 게 좋겠다.”
한참을 고민하던 포르틴은 이내 무언가 결심했는지 자신의 몸에 스트롱스를 걸기 시작했다.
[동기화가 올랐습니다.]
그와 함께 올라가는 동기화. 아셀 또한 스르통스를 걸고 근처에 떨어진 다른 회초리 하나를 들어 올렸기에. 나오는 메시지인 것이 분명했다.
“자 하나 둘 셋 하면 휘두르는 거야 알았지?”
아셀의 말에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포르틴의 눈가에 진한 신성력이 번쩍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저건 설마 신내림?”
르안느가 믿기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 것도 잠시.
아셀은 씨익 웃으며 포르틴을 바라보았다.
[동기화가 올랐습니다.]
포르틴의 재능을 개화시켜주는 것에 신들도 감사하게 느껴졌는지 동기화를 올려주는 상황.
“하나. 둘 셋 힘껏 휘둘러!”
힘껏 휘둘러진 아셀과 포르틴의 회초리와 채찍이 메라릭을 향해 미친 듯이 휘둘러지기 시작했다.
“커헉.. 그. 그만!”
“어째서.. 원장님은 어째서 저한테!”
무언가 분풀이를 하듯 눈물까지 글썽이는 포르틴의 모습. 분명 수도원에서 당했던 학대들이 떠오른 게 분명했다.
“너.너를 위해서였단다 포르틴. 네 안에 있는 그 잡것들을..!”
“이 새끼가 아직도 개소리를 하네. 잘 봐 프로틴. 이렇게 숨이 헐떡일 때 치료해주면 더 때릴 수 있어 알았지?”
아직도 개소리를 하는 메라릭을 향해 휘두르던 회초리를 멈추고 아셀은 씨익 웃으며 중급 힐을 사용했다.
그와 함께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마찬가지로 중급 힐을 사용하는 포르틴.
함께 메라릭의 몸을 치유해주며 아셀의 눈앞에 기분 좋은 메시지들이 계속해서 나타났다.
[동기화가 올랐습니다.]
[동기화가 올랐습니다.]
[동기화가 올랐습니다.]
‘오 이거 완전 꿀이네?’
치료해주고 때리고. 두 가지밖에 하지 않는데 동기화는 미친 듯이 계속해서 올라가는 상황.
아셀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씨익 웃어 보였다.
“잘했어 포르틴. 아주 잘했어.”
***
“아..아.....”
동기화를 40%까지 올리고 나서야 아셀과 포르틴의 매타작은 끝이 났다.
‘무언가 눈빛이 바뀐 거 같은데?’
옆을 슬쩍 바라보니 눈빛이 날카로워지고 눈동자 속에 지난번 마르스가 깃든 것처럼 황금빛 기운이 일렁이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 후련해진 거 같아요. 이게 만족감 그런 거겠죠?”
마치 아셀처럼 씨익 웃어 보인 포르틴은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며 아셀을 바라보았다.
“그래 그 감정 잘 기억하고 있어 알았지?”
“기억은 무슨.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아무리 작은 수도원이라고 해도 수도원장을 저렇게 만들어놨는데?”
르안느의 말처럼 원장실 한가운데서 혼이 빠진 듯 간헐적으로 몸을 부르르 떠는 메라릭이 눈에 들어왔다.
장시간 이어진 구타로 정신이 무너진 것이 분명한 상황.
아셀은 그저 어깨를 으쓱거리며 별거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럴 만한 놈이었어.”
“그렇긴 하지만.. 으아 일단 스승님이랑 가르시아 주교님한테 빨리 알려야겠어!”
수도원장실 앞에 모여 있는 베일 수도원의 사제들과 성기사들을 해치고 빠르게 어디론가 향하는 르안느도 잠시.
그는 그동안 포르틴의 학대를 방관한 녀석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꺼져. 그리고 다시는 헤스티야교의 이름을 네놈들이 파는 게 내 눈에 들어오면.”
이번에는 말릭의 그림자를 불러들이며 단숨에 신성의 갑옷으로 완벽하게 무장한 아셀이 아레트스를 뽑아들었다.
“그때는 여신님이 어떻게 생기셨는지 네놈들에게 확인시켜 줄게.”
살기어린 말에 뒷걸음질 치며 도망치듯 사라지는 사제들과 성기사들.
아셀이 진심으로 혐오스럽다는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것도 잠시.
그의 눈앞에 놀라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높은 존재가 당신을 주목합니다.]
“?!”
‘이건 또 뭐야.’
높은 존재의 주목. 아셀은 지금 프로틴의 그림자에서 오는 재능과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를 곰곰이 떠올려 보았다.
“강림.”
어떤 신인지 모르나 아셀은 이대로 계속한다면 분명 프로틴처럼 강림과 신내림이 가능하게 될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거 좋네.”
씨익 웃어 보인 아셀은 눈빛이 날카로워지고 주먹을 꽉쥐고 있는 프로틴을 바라보았다.
***
르안느가 여명 수도원에 지금 상황을 알리고 스승 말릭이 직접 이곳에 온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
아셀은 프로틴과 계속해서 시간을 보냈다.
“무언가 들리는 게 있니?”
“그런 건 없고...”
어울리지 않게 메이스를 들고 있는 프로틴. 아셀은 미래에 프로틴이 전쟁의 신 마르스의 강림을 받고 메이스로 마족들의 머리를 박살 내던 것을 직접 보았기에.
그에게 메이스를 쥐여준 것이었다.
“어떻게 휘둘러야 하는지 뭔가.. 뭔가 알 것 같아요.”
몇 번 휘두르더니 이윽고 능숙하게 메이스를 휘두르는 포르틴의 모습에서 아셀은 자신의 직감이 정확했음을 알 수 있었다.
‘좋아.’
그와 마찬가지로 메이스를 휘둘러본 아셀은 계속해서 올라가는 동기화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분명 한계는 온다.’
아쉽지만, 포르틴과의 동기화를 100%에 맞추려면 신내림, 강림과 같은 수단이 필요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저 50%의 동기화만 올릴 수 있는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셀은 50% 만으로 조만간 자신 또한 포르틴과 마찬가지로 신내림이나 강림 둘 중 하나를 받을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타고난 재능은 어디 가는 게 아니니까.”
어떤 신인지는 모르나 아셀에게 관심을 주는 존재가 있는 것. 게다가 50%지만 포르틴의 재능으로는 분명 더욱더 아셀에게 관심을 주게 만들기 충분했으니까.
“그 메이스 마음에 들면 너 가져도 좋아.”
“이.이걸 저 주셔도 되는 건가요?”
“그냥 만들어 본건데 뭐.”
“감사합니다. 기사님..”
소중하게 메이스를 끌어안는 포르틴의 모습에서 그가 아셀에 대한 호감도가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아셀 스승님이 조금 있으면 이곳에 오신대!”
슬슬 포르틴과의 동기화가 50%가 넘어갔을 때쯤 르안느가 황급히 달려오며 소리쳤다.
***
오랜만에 만난 스승 말릭은 전혀 달라져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겉모습뿐, 아셀은 게임 속에서 기억했던 그의 경지 보다 지금의 경지가 월등히 높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도 저렇게 될 테지.’
그것을 보고 부럽거나 감탄은 나오지 않았다. 어차피 말릭과의 동기화는 100%에 근접해 있었으니까.
언젠가 그림자들에 대한 오해가 풀리고 그에게 옷을 만들어준다면.
저 모든 놀라운 재능들이 모두 아셀의 것이 되는 것이었다.
“강해졌구나. 빛의 기사.”
“스승님...”
단번에 아셀의 경지가 높아졌음을 눈치챈 말릭은 눈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빛의 기사라는 이명에 진심으로 싫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아셀에게 말릭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대단하구나. 나도 네 나이대에 신체를 재구성해보지는 못했는데.”
“운이 좋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한다면 분명 질투심에 너를 죽이려 들지도 모른단다.”
말릭은 아셀을 잠시 바라보며 제자가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성장할 수 있더 것인지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당장 떠오르는 게 없구나.... 그저 재능이라는 것뿐.’
“그건 그렇고 일 하나를 저질렀구나.”
잠시 주변을 둘러보니 이 작은 수도원에 있던 사제도 성기사도 있지 않았다.
아셀이 모두 쫓아냈기 때문에.
잠시 아셀은 말릭이 자신을 자책하는 게 아닐까 고민했지만, 그의 부드러운 미소를 보는 순간 그럴 일은 없을 거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아셀 너였어도 똑같은 일을 벌였을 거다. 아니 오히려 나는 단칼에 손 하나를 잘라냈을 수도 있겠지.”
“아...”
“그 어떤 경우에도 미래의 새싹을 짓밟는 일을 하면 안 되니까. 그것이 여신님의 뜻을 대변하는 자라면 더더욱!”
“처음으로 스승님의 말에 감동했습니다.”
진심으로 아셀이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자 말릭은 이것에 뒷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어..음 그럼 지금까지는 내 주옥같은 명언들에 감동하는 척만 했던 거냐?”
“수도원장을 반병신 만들었는데 칭찬까지 해주셨으니 제자의 다른 잘못도 그냥 넘어가 주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셀. 내가 예전에도 말하지만, 너는 가끔 너무 뻔뻔할 때가 있단다. 물론 여신의 뜻을 대변하는 기사라면 당당한 것도 좋지만....”
“부숴버렸습니다.”
말릭은 자신의 말을 끊으며 말한 제자의 말에 두 눈을 껌뻑일 수밖에 없었다.
“부.부숴? 그.. 메라릭의 오른팔이나 사지 중 하나를 말하는 거겠구나 아셀. 괜찮다. 그런 것쯤은 그만한 죗값을 치러야 하는 놈이기도 했거니와.”
“성유물. 성자 베일의 지팡이를 부숴버렸습니다. 스승님.”
부릅. 아셀은 말릭이 그 같은 표정을 지을 수 있는지 처음으로 알 수 있었다.
“...그걸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