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화. 성자 (3)
거대한 모몬이라고 불린 하피 무리의 대장은 네임드 몬스터라고 불릴 만했다.
일반 하피들보다 날개가 한쌍 더있었으며 크기도 2배는 커 보이는 모습.
보통 하피가 5성급 몬스터였으니까. 최소 6성급은 되는 몬스터일 게 분명했다.
캬아아아아아아!
녀석이 공중에서 내려보며 내지른 울음소리에 주변의 하피들이 순식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수만 벌써 수백 마리.
갑작스럽게 모여든 하피들에 포르틴은 사색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적이 없었는데.. 뭔가 이상해요 기사님!”
‘의도적으로 경계하네.’
분명 아셀의 등장에 경계심이 높아진 녀석들이 튀어나온 것이 분명했다.
그런 녀석들을 바라보며 피식 웃어 보인 아셀은 잠시 사제들이 자주 사용하는 공격 기술 성화(聖火)를 사용해 보기로 결정했다.
“도망치지도 못할 게. 어라?”
포르틴의 두 눈이 크게 떠질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아셀의 몸 주변에 신성력이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주변의 하피들을 모두 불태울 것 같은 거대한 성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으니까.
[동기화가 올랐습니다.]
“성화?!”
성기사들이 성화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그리고 사용할 수 있다고 해도 사제들처럼 저런 거대한 성화를 단숨에 일으킬 수는 없는 일이었다.
캬아아아아아!
아셀의 성화에 극도로 경계심이 높아진 하피들이 순식간에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것들을 향해 쏘아지기 시작한 성화.
맨 처음 하피들 수십 마리를 불태우고 사라진 성화를 바라보며 아셀은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약해.’
순식간에 대부분의 그림자 재단의 유지 시간을 투자해서 만든 기술이건만, 기대 이하의 위력이었다.
낮은 동기화. 그것이 문제임을 알았기에 아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오랜만에 무한의 정령사 에프릴의 그림자를 불러들였다.
“정령!? 그리고 도대체 무슨 정령들이 이렇게 많이!”
에프릴의 그림자를 불러들인 것과 동시에 삼십여 마리의 정령들이 순식간에 소환되었다.
불 흙 눈 중굽정령 한 마리씩과 그 밑의 하급정령 수십 마리들.
아셀의 의지에 보답하듯 녀석들은 달려오던 하피들을 불태우고 흙에 묻어버렸으며 순식간에 얼려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캬아아아아아아아!
동족의 죽음에 분노한 모몬이 달려들었다. 거대한 날갯짓에 하급정령들의 불꽃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잠시.
아셀은 씨익 웃으며 에프릴의 모자를 만지작거렸다.
‘저 정도는 나와줘야지.’
눈의 정령들의 기운은 얼음 마녀 페레와 파티 사냥을 하면서 더욱 강해져 있었다.
그녀와의 파티 효과에서 나오는 결과물들이 분명한 상황.
날아오르기 시작한 모몬의 날개를 순식간에 얼어붙게 하자 녀석은 더 이상 하늘로 올라서지 못하고 지상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캬아...아아아..
얼어붙은 날개를 어떻게듯 해보려고 녀석이 바닥을 뒹굴수록 날개가 부서질 뿐이었다.
피조차 흐르지 않고 그저 박살 내버리기 시작한 모몬의 날개들.
순식간에 수백 마리의 하피들을 정령들로 해치운 아셀을 포르틴은 경악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말릭님의 제자분들은 모두 기사님처럼 강한 건가요?”
심지어 검을 사용하지 않은 상황. 포르틴의 말에 아셀은 그저 피식 웃어 보였다.
“내가 조금 특별한 거야.”
날개를 넘어 이제는 온 몸이 얼어붙은 모몬을 바라보던 아셀은 어느새 코어 안에 거대한 마나들이 들어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녀석이 죽은 것이 확실해졌기에.
***
아셀은 베일의 지팡이가 가리키는 곳으로 향하며 포르틴이 어떤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지도 알아보았다.
“음.. 중급힐과 스트롱스 버프 그리고 몬스터를 길들이는 테임뿐이라고?”
“네.. 죄송해요.”
“죄송할 거 같지는 없지. 아마도 네가 그것밖에 사용 못 하는 건.”
잠시 포르틴을 바라보며 턱을 쓰다듬던 아셀은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아직 자기 자신의 재능을 잘 몰라서 그런 걸 거야.”
“재능이요? 원장님은 제가 재능이 아니 믿음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그 노망난 늙은이 말은 믿지 말고 내 말을 믿어.”
‘헤스티야교의 기술들은 적성에 안 맞는 게 당연하지.’
포르틴이 적성에 맞은 신은 전쟁의 신과 자연의 신.
신성력을 사용하는 것 똑같았기에. 힐과 그나마 전쟁의 신계열의 버프 스트롱스는 사용할 수 있다고 해도 나머지는 사용하기 어려운 게 분명했다.
‘우선 자신의 재능을 자각시켜줘야겠어.’
중급힐과 스트롱스 그것을 포르틴이 사용하는 것처럼 따라 하며 동기화를 올린 아셀은 빠르게 동기화를 올리기 위해서는 꼭필요한 일들이었다.
“슬슬 도착한 거 같네.”
아셀과 포르틴이 도착한 곳은 작은 공터였다.
어째서 이곳으로 베일의 지팡이가 안내해준 건지 알아보려던 것도 잠시.
그들은 공터의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묘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 원장님께 들은 적이 있어요. 이곳에 성자 베일님의 무덤이 있다는 소리가 있다고요.”
“그래?”
무덤으로 다가간 아셀은 베일의 지팡이가 요란하게 떨리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거 왜 이래?’
마치 단숨에 터질 듯 부르르 떨리던 지팡이를 바라보던 아셀의 눈앞에 놀라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바람의 정령과 계약하겠습니까?]
[스킬 부분 가속을 얻으시겠습니까?]
[부분 가속을 선택할 시 베일의 지팡이는 파괴됩니다.]
“?!”
갑작스럽게 나타난 선택지에 아셀의 눈이 부릅떠졌다.
가끔 게임을 하다 보면 이런 선택지들이 나타나기 마련이었다.
그런 모든 것들의 공통점은 앞으로의 캐릭터의 성장을 위해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것,
잠시 두 개의 선택지를 바라보던 아셀은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잠겨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마음 같아서는 무조건 바람의 정령인데....”
일반인들이라면 바람의 정령을 선택하는 것이 맞았다.
성유물을 사용하는 것이었기에. 높은 등급의 바람의 정령과 계약할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게다가 부분 가속을 선택하면 성유물이 파괴되어 버렸으니 분명 전자를 선택하는 것이 누가 봐도 옳아 보였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경험에서 아셀은 부분 가속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 정답임을 알 수 있었다.
이 미친 게임의 특징 중 하나는 거대한 힘을 얻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희생해야 했으니까.
“후우... 어쩔 수 없지.”
고민을 마친 아셀은 씨익 웃으며 베일의 지팡이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얼굴도 모르고 이미 죽어버린 사람의 물건이잖아?’
이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진 아셀은 부분 가속을 선택하는 순간 손에 들고 있던 베일의 지팡이가 펑하는 소리와 함께 완벽하게 박살 나는 모습이 나타났다.
“앗! 교황성하께서도 가끔 안부를 묻던 베일의 지팡이가!”
“.....뭐?”
순간이지만 아셀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
[부분가속]
[마나에 비례해 단 한 번 몸의 어느 부분을 가속시킬 수 있습니다.]
부분 가속의 스킬 능력은 교황 성하에 대한 걱정을 단숨에 사라지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부웅.
잠시 일반적으로 휘둘러본 아르테스에서 나오는 기분 좋은 파공음.
아셀이 똑같은 힘으로 검을 쥐는 순간 부분 가속을 사용해보자 그는 자신의 선택이 정답이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뭐.뭐야!? 너 그런 기술은 어디서 배운 거야?”
옆에서 보고 있던 르안느마저 믿기지 못하겠다는 듯 아셀이 방금 휘두른 아르테스를 경악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일반적으로 휘둘러진 아르테스가 순간이지만 2배 정도 빨라진 것, 이것은 후에 어떤 싸움에서든 큰 변수로 사용될 것이 분명했다.
‘지금은 팔 하나에 사용했지만..’
만약 두 다리에 사용한다면 큰 위기 상황에서 잠시 동안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 분명했다.
“너는.,. 계속 앞서 나가고..”
“설마 아직도 열등감이.”
“그런 거 아니거든! 경쟁심이랑 구분도 못 하냐?”
발전한 르안느의 모습에 피식 웃어 보인 아셀은 잠시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베일 수도원을 바라보았다.
‘이제 슬슬 터질 때가.’
아셀은 베일 수도원에 도착한 후 성자 베일의 지팡이가 부서졌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수도원장 메라릭의 표정을 떠올렸다.
-부.부서졌다고...요?
수도원의 대표 성유물이 단숨에 부서진 사건.
만약 아셀이 말릭의 제자에 여명 수도원에서 촉망받는 인재가 아니라면 메라릭은 그 자리에서 검을 빼들어도 이상하지 않는 일이었다.
-이..이건 일단.. 주교님들께..알려드리겠습니다.
이를 악물고 말하던 메라릭이 마치 화를 풀 듯 포르틴을 데리고 간 것이 방금.
자신을 바라보며 도와달라는 듯 눈빛을 보낸 포르틴에게 아셀은 그저 걱정하지 말라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네놈이 잘했어야지 이 쓸모없는 놈!!”
갑자기 들린 노성에 아셀은 자신의 예상이 적중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결국 메라릭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포르틴에게 화를 풀면서 나오는 거대한 노성이 분명했다.
“어라 아셀?”
그 노성을 따라 아셀이 표정을 굳히며 걷자 그런 아셀의 표정을 본 적이 없던 르안느가 놀라워했다.
수도원장실로 가면서 들려오는 노성은 더욱 커졌다. 그와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휘두르는 파공음과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파공음의 정체가 채찍이라는 것쯤은 아셀은 단숨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원장님은 지금 바쁘셔서..”
“꺼져.”
앞을 가로막은 성기사의 난처한 표정을 발견하기도 전에 아셀의 주먹이 내질러졌다.
쾅! 성기사의 갑옷 한가운데에 새겨진 아셀의 주먹 모양. 다른 성기사들은 기절한 동료의 모습에 그저 침음을 삼키며 아셀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셀 지금 이 울음소리 설마..?”
성기사를 아셀이 두들겨 팬 것보다 르안느는 수도원장실에서 들려오는 포르틴의 울음소리에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옆에 있던 페레마저 무의식적으로 한기를 발산하는 것도 잠시.
아셀은 수도원장실 문을 있는 힘껏 발로 차버렸다.
펑! 무언가 대포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수도원장실 문에서 나타났다.
종잇장처럼 구겨진 문들 아셀은 사라진 문과 방안으로 보이는 학대의 현장에 무의식적으로 살기가 흘러나왔다.
“아.아셀 경?”
“아!”
구석에 쭈그리듯 누워있는 포르틴 그리고 메라릭이 휘두른 채찍에 여기저기 나 있는 상처.
그것들이 눈에 들어오자 르안느는 헛숨을 들이켰고 페레는 당장이라도 마법을 쏘아낼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드렸군요. 제가 훈육시간이라.. 그런데 분명 앞을 막았던 성기사들이 있던 거..”
“내가 웬만해서는 말이지.”
뚜득. 손을 풀기 시작한 아셀의 손에서 검은색 마나들이 피어올랐다.
한스의 그림자를 불러들인 것을 보여주는 상황.
터벅터벅 걸어가기 시작한 아셀은 메라릭을 바라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노인공경은 하는 사람인데 말이야. 그런데 애들 공경도 안 하는 새끼를 내가 공경할 마음이 싹 사라진단 말이지?”
“아.아셀 경 왜.. 왜 그러는가?!”
“어금니 꽉 깨물어, 아니지.. 어차피 다 부서질 거 그냥 깨물지 말아라.”
섬뜩한 미소로 메라릭을 바라보는 아셀의 주먹이 빠르게 휘둘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