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아버지와 아들 (3)
“..지금은 위급한 상황이니 나중에 하는 게 어떻겠느냐.”
안 하던 짓을 하려다가 하려면 어떻게든 뒤로 미루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나 오랜 세월 척을 지고 싸우던 사이가 갑자기 화해의 신호를 보낸다면 더욱더.
“지금 눈앞에 몬스터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지는 않겠지?”
더 나아가서는 윽박을 지르거나 오히려 화를 내는 상황.
유론 또한 지금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아셀이 예상한 대로 나오고 있었다.
“그럼 함께 저기서 검을 휘두르면서 말씀을 나누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유론님. 아니 아버지와 저는 그 정도는 될 거 같으니까 말이죠.”
“그건 그렇지만..”
“주군 어서 다녀오십시오! 두 부자가 함께하는 모습 이 메이슨이 보고 싶습니다!”
필드가의 미래를 위해 메이슨은 지금이 아셀과 유론 사이에 있는 해묵은 오해를 풀어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화해를 하시고 완전히 필드가에 남아계실 수도 있다.’
비파를 받았기에 아셀이 남았을 것이라 생각하기는 했지만, 괜스레 떠날 것 같은 두려움이 어느 정도 있는 상황.
메이슨은 연신 아셀에게 한쪽 눈으로 윙크를 하며 유론을 타락한 인어들 쪽으로 밀어 넣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쟤는 생각보다 충성심이 높지 않은가 본데?’
자신의 주군을 몬스터들 한가운데로 밀어 넣는 모습에 그런 오해가 생기기 충분했다.
한순간 타락한 인어들 속에서 유론의 그림자를 불러들인 아셀은 말없이 몬스터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것은 유론의 경우도 마찬가지.
갑자기 대화를 하기로 결정했지만, 막상 일이 이렇게 되니 아셀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날씨 이야기라도 해야 하나....’
어떻게 말문을 틀지 고민하던 아셀에게 놀랍게도 유론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 어쩌면 둘만 있을 때 묻는 게 좋을 거 같구나.”
“어떤걸 말입니까?”
“그림자들의 능력은 어디서 얻은 것이더냐?”
유론의 말에 아셀은 조금 놀랐다는 표정을 그를 잠시 바라보았다.
“눈치채고 있으셨습니까?”
“그렇게 갑자기 거대한 힘을 그리고 여러 종류의 힘을 동시에 사용하는데 눈치 못 채는 게 이상한 일이지.”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던데요?”
“그거야 다른 사람들은 너를 오랜 시간 지켜보지 않아서...”
잠시 어색한 말을 했는지 유론은 헛기침을 내뱉으며 침착하게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마치 거울처럼 유론과 아셀이 검을 한동안 휘두르던 것도 잠시. 아셀이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어째서 제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데 밀고도 하지 않고 잡아넣지도 않으십니까.”
7용사 가문이라면 분명 그림자들에 대한 탄압에 앞장설 존재들이었다.
아셀이 게임을 할 적에도 그림자들 토벌에 대한 퀘스트를 7용사 가문이 주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혹시 제가 그림자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필드가의 위상이 떨어지기 때문이신지..”
“너는 내 아들이다.”
순간적으로 아셀은 잡고 있던 검을 놓칠 뻔했다.
그만큼 유론의 말은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그건 무슨 말입니까?”
달려드는 타락한 인어들을 베어내던 아셀은 자신이 이렇게 얼빠진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아 그런 건가요? 아들이기 때문에 가문의 위상보다 유론이라는 거물의 위상에 누가 될까 봐..”
“못된 말만 배웠구나. 아니지 그것들 모두가 내 잘못이지.”
순간 아셀의 머릿속에 유론과 관련되어있던 재능인 부성애가 떠올랐다.
[동기화가 올랐습니다.]
유론의 심정을 조금 이해가 될 거 같기 시작하자 오른 동기화.
그것이 지금 아셀의 생각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필드가에 있을 적 아셀 본인의 기억속에 유론은 아셀에게 학대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심지어 노예로 팔려 가는 자식을 모른 척하기까지 했던 상황.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 속이었기에.
아셀의 검이 조금씩 무뎌질 수밖에 없었다.
“집중하거라. 사사로운 일에 검이 무너지라고 네 스승이 가르쳤더냐?”
“저에게는 조금 충격적인 일이라서 말이죠. 언제부터입니까?”
“무엇이?”
필드가의 검술을 모두 퍼붓는 아셀의 검이 미친 듯이 휘둘러지자 유론의 그림자 재단의 유지 시간이 단숨에 사라졌다.
‘유론의 그림자를 쓰고 싶지 않아.’
무언가가 아셀로 하여금 유론의 그림자를 사용하고 싶지 않게 만들었다.
순식간에 한스의 그림자를 불러들인 아셀이 아르테스의 망치 부분으로 타락한 인어들의 머리를 박살 내기 시작했다.
“차라리 내 능력을 따라 쓰는 것 말고 다른 것을 사용하는 게 더 강한데 어찌 그랬더냐?”
한스의 그림자에서 나오는 그림자 망치질. 거기다 가만히 있어도 근육이 붙는 몸에 타락한 인어들의 공격이 제대로 들어 올 리가 없었다.
“아직. 아버지와는 동기화가 100%가 아니라서요.”
“그건 무슨 소리?”
“그런 게 있습니다. 것보다 말씀해주시죠.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겁니까?”
“당연히 네가 태어났을 때부터...”
조금이지만, 유론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아셀은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너를 낳아준 내 아내 로즈가 너를 부탁했을 때부터란다.”
아셀의 기억하기로 낳아준 친모 로즈는 아셀을 낳자마자 세상을 떠났었다.
이런 이야기들이 흘러나오면 흘러나올수록 무언가 분풀이를 하듯 아셀의 그림자 망치질이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이만 대열로 돌아가야 한다. 아셀. 더 이상 들어갔다가는....”
“강한 녀석이 튀어나오겠죠.”
이전보다 강한 녀석들이 오고 있기는 하나. 항구도시 라스를 삼 일 만에 폐허로 만든 주력은 나타나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것들을 잡아야 조금 기분이 풀릴 거 같습니다.”
“기분이 풀려?”
“정확히는 어색함이 풀리는 것이겠죠.”
씨익 웃으며 아셀이 유론을 바라보며 입을 열자 그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것도 잠시.
아셀의 예상대로 타락한 인어들 사이로 그물망 같은 것을 질질 끌면서 걸어오는 인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가 다가 자매!’
그것들이 누군지 아셀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키예스의 자매라고 불릴만한 나가와 다가.
녀석들이 씨익 웃어 보이며 잡고 있는 그물들. 아셀은 그것에 게임 속에서 5천만 원에 거래되었던 아이템이었던 사실까지.
‘저건 무기라기보다 다른 거였지.’
그물을 무기로 사용하는 유저는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천만 원이라는 거금에 거래되었던 것은 저것을 사용하고 물고기를 잡는다면, 어떠한 경우라도 한 마리 이상 잡힌다는 사기적인 능력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간...!]
[증오한다.. 증오해!]
지난번처럼 인간의 언어를 할 줄 아는 녀석들이었다. 순식간에 거대한 마기들에 일렁이기 시작하더니 아셀과 유론을 향해 날아오는 그물들.
유론의 눈이 가늘게 떠지더니 그것들을 향해 순식간에 검강을 휘두르자 후두득 거리며 땅에 떨어지는 그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단 물러나자. 아셀 포위당하면 힘들어진다.”
“조금 강해지시면 저것들 사냥 가능하시겠죠?”
“내가 말릭과 비슷하거나 아니 그보다 조금만 약해도 가능하겠지만..”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처지를 정확히 말하는 유론을 바라보며 아셀은 씨익 웃어 보였다.
“그러면 3분만 혼자 사냥해주시지요.”
“뭐?”
“노래 한 곡만 부르면 끝나니까 걱정하시지 마시고요.”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유론을 바라보며 아셀은 어느새 케락스의 그림자를 불러들였다.
‘분위기가!’
케락스의 그림자를 불러들인 아셀의 분위기에서 무인의 그것을 전혀 찾아보지 못하게 되자 유론의 눈동자가 크게 떠질 수밖에 없었다.
“이건 마치...”
음유시인들. 그것들에게서 나오는 기운들임을 눈치챈 것도 잠시. 둘이서 막던 타락한 인어들과 나가 다가 자매들의 공격을 일순간 혼자 막게 된 유론이 다급하게 검을 휘두를 수밖에 없었다.
[누가 눈앞에 엘프에게 추파를 던지는가...]
기타에서 나오는 부드러운 전주와 순간 인어들도 멈칫거리게 만드는 아름다운 목소리.
케락스의 재능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아셀은 지금 기적의 바드 그 자체였기 때문에.
노래가 울려 퍼지는 곳에 기적과도 같은 버프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힘이...!”
유론같은 경지 높은 무인이 자신의 몸 상태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검에 쥐어지는 힘은 이전보다 강해지고 있으며 [누가 엘프에게 추파를 던지는가] 이후에도 약식으로 몇 가지 노래를 끝내자 순식간에 이전의 20% 이상 강해지는 것이 가능해지는 유론이었다.
“이건.. 이건 도대체 어떤 기술이더냐.”
“바드. 여러분들이 그렇게 배척하고 죽이고 탄압했던 비운의 그림자들의 능력입니다.”
아셀의 목소리가 마치 다른 사람의 목소리인 것 같았다.
‘이런 게 그림자들의 능력이라고?! 이건 도저히 마족과 관련된 능력이 아니야.’
유론의 머릿속이 혼란스럽게 변할 수밖에 없었다. 7용사의 가문이었기에. 그림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였다.
심지어 그의 검에 쓰러진 그림자들도 몇 있는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걸린 이 능력은 절대 마족과 관련된 것이 아님을 유론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우린 도대체 무엇과...”
유론의 검에서 여유가 생겼다.
아셀의 바드의 능력으로 버프를 받은 그의 검에 타락한 인어들을 포함해 나가 다가 자매들 또한 밀려나기 시작했기 때문에.
“가주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건가!?”
“어찌 저런 검술을!”
뒤에서 보고 있던 필드가의 기사들은 유론이 깨달음을 얻었다고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그만큼 유론은 이전에는 보지 못한 능력으로 타락한 인어들을 베어내고 있었기 때문에.
‘유론.’
왠지 모르지만, 동기화를 올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아셀의 머릿속을 관통했다.
그림자들에 대한 오해가 풀리고 있는 유론의 내면을 어째서인지 조금 닮아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으니까.
[동기화가 올랐습니다.]
[동기화가 올랐습니다.]
[동기화가 올랐습니다.]
아셀의 짐작대로 유론의 그림자를 불러들인 순간 무려 3%나 동기화가 오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속도라면.’
이번 몬스터 웨이브가 끝이나는 순간 100%의 동기화를 달성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그림자임을 알고 묵인하는 유론의 앞에서 그의 옷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
“같은 사람 같다.”
아셀과 유론이 마치 한 몸처럼 나가 다가 자매의 그물을 베어내고 순식간에 녀석들의 팔다리를 베어내는 모습에 메이슨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셀 도련님이 어찌 저렇게 빠르게 가주님의 검술을...”
같이 검을 휘두르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질수록 아셀의 검은 유론의 검과 완벽하게 닮아가고 있었다.
심지어 나가 다가 자매의 목을 밸때는 어디선가 튀어나온 비파가 은은한 아쿠아색 기운을 넘실거리며 베어낸 상황.
그것들 모두가 메이슨을 포함한 필드가 기사들의 상식에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들이었다.
“천재.. 그 이상이 분명합니다.”
“저런 분의 재능을 우리가 그동안 몰랐었다니.”
자신의 안목에 대한 탄식이 가득한 것도 잠시. 아셀이 나가 다가 자매의 그물을 들어 올리며 씨익 웃어 보이자 기사들의 함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제라도 돌아오신 게 어디야!”
“맞아 대단하십니다! 아셀 도련님!”
“가주님도 대단하십니다!”
그러나 방패를 두드리고 함성을 내지르는 기사들의 함성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우어어어어어어! 무언가 거대한 소리가 바닷속에서부터 일어났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