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화. 아버지와 아들 (2)
비파형 동검.
아셀은 비파를 처음 보자마자 생각났던 것은 현실에서 배웠던 그것이었다.
그것의 수십배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의 대검 비파. 아셀은 비파가 점점 푸른빛을 내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치 거대한 부채처럼 거대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키에에에에!
달라진 비파의 모습에 어디선가 있던 키에스가 마치 보기 괴로운 듯 비명을 내지르는 것이 들려왔다.
“저게 뭐야..”
“필드가의 가보가 이상한 힘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저런 식일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처음 보는 검의 모양에 페루가의 기사들이 놀라워하는 것은 당연한 법.
비파를 쥐고 있던 아셀은 자신의 손이 점점 덜덜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기운.’
거대했다. 높아진 아셀의 경지. 그리고 코어 강화 심법과 그림자 융합으로 얻은 보너스 경지까지.
그것들로도 제대로 다루지 못할 만큼 변형된 비파 안에 있는 기운들은 거대하고 강렬했다.
“흐읍!”
마치 거대한 부채를 휘두르는 것처럼. 사방에서 달려오는 타락한 인어들을 향해 아셀이 변형된 비파를 휘둘렀다.
그 어떤 초식도. 필드가의 고명한 검법도 아닌 그저 휘두르기.
비파가 움직이는 것에 맞추어 은은하게 일렁거리던 아쿠아색 기운이 마치 파도를 몰아치듯 타락한 인어들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
“가.가주님!”
그 모든 모습을 보고 있던 필드가의 기사들. 특히나 유론과 메이슨은 아셀의 모습에 경악했다.
비파가 저렇게 순수한 기운을 그리고 아직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저런 거대한 기운을 내는 것은 처음 보았기 때문에.
“나 또한... 비파를 다루기 위해 10년이 걸렸거늘...”
가주가 되기전 비파를 얻은 유론이라는 천재마저 10년이 걸려 비파를 제대로 다룰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너는 대체 어떤...”
뒷말을 잇지 못했다. 만약 그것을 말했다가는 이곳에 있는 모든 무인들에게 아들의 비밀을 폭로하는 것이 되었으니까.
콰가가강!
휘둘러진 비파에서 나오는 은은한 기운들의 모습과 다르게 타락한 인어들을 순식간에 터트리듯 사라지게 만드는 모습에서 거대한 소음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지축을 뒤흔들 만했으며 동시에 아셀의 코어 안에서 있는 마나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게 만들기 충분한 상황.
“미친.....”
순식간에 사라지는 타락한 인어들의 모습보다 아셀은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들에 저절로 욕설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비파의 파초폼이 형성됩니다.]
[경지에 맞지 않은 일입니다.]
[동기화가 빠르게 줄어듭니다.]
그 어떤 기술을 사용했을 때보다 빠르게 그림자 재단의 유지 시간이 줄어들었다.
특히나 완벽하지 않은 유론의 동기화에 의지해 사용하는 기술이었기에. 얼마 못 가 그림자 재단의 유지 시간이 풀릴 게 분명한 상황이었다.
‘일단 정비해야 한다.’
한번의 휘두름으로 수백 마리의 네임드 몬스터라 불리는 존재들을 도륙냈다.
그랬기에 생겨난 공백들. 아셀이 남은 동기화를 바라보며 미친 듯이 사방에 비파를 휘두르자 거대한 초승달같은 푸른 검기들이 사방으로 쏘아지기 시작했다.
키에에에에에!!
키아아아아아아아아!!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소리들이 아셀에게 들리는 것도 잠시.
타락한 인어들의 포위망에서 벗어난 아셀은 간신히 페루가의 기사들이 있는 전선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사위! 이거 하나 어서 먹게!”
페루가의 기사들의 전선으로 들어온 것과 동시에 모든 그림자 재단의 유지 시간이 풀려버린 것도 잠시.
우악스러운 테일라스의 손아귀에서 아셀 본인이 벗어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 어...”
“원래 쓴 약이 입에 잘 맞는 거니까. 꼭꼭 삼켜 먹어야 하네.”
테일라스의 악력으로 벌어지는 입과 섬뜩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의 손에서 들려 있는 호랑이 불x로 만들어진 환약.
아셀은 자신의 입으로 천천히 들어오는 환약을 바라보며 눈빛이 흔들렸지만, 본인의 재능으로 돌아온 지금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 수밖에 없었다.
‘아.안 돼!’
천천히 입안으로 들어온 환약. 기절할 것 같은 쓴맛이 아셀의 몸 안을 관통하는 것도 잠시.
그의 눈앞에 믿기 힘든 메시지가 나타났다.
[페루가의 호환구를 섭취했습니다.]
[최대 체력이 100 증가합니다.]
‘이거 진짜였어?’
변화된 비파의 모습보다 아셀은 지금 눈앞에 있는 메시지를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 바라보았다.
***
“옳지 옳지 잘 먹는구만 우리 사위.”
호환구는 총 세 번.
아셀의 최대 체력을 100씩 증가시켜주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걸 왜 먹어?”
“아셀 도련님 이런 말하기는 뭐하지만.... 그걸 먹으시는 건.”
말은 안 하지만, 심지어 유론마저 오랜만에 아셀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이거 황가에서도 귀한 거라며...’
씨익 웃고 있는 테일라스에게 속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아셀은 전혀 내색하지 않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셀.. 미안한데 다른 곳에서 한숨 쉬어줄래? 이상한 냄새가 입에서 나오는 거 같아서.”
“.....”
페레의 말에 아셀은 눈앞에 달려드는 타락한 인어들 속에 그냥 뛰어들까 하는 충동이 진심으로 일어났다.
“사위 그것 말고 다른 환약도 있는데 혹시 관심 있나?”
이런 아셀의 사정도 모르고 약장수처럼 무언가를 들이미는 테일라스. 아셀은 잠시 눈앞에 있는 환약을 모두 먹어볼까 하는 충동이 일어났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욕구를 털어냈다.
‘그것보다 우선은.’
아셀의 예상처럼 타락한 인어들은 전혀 물러섬 없이 끊임없이 고성 아메라를 향해 달려들었다.
만약 다른 귀족들이나 왕국이었다면 금세 무너져버렸을 것이 분명한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셀이 그림자 재단을 회복할 여유가 있는 것은 이곳에 무려 7용사 가문 중 두 개의 기사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론과의 동기화를 올려야 한다.’
비파.
그것의 사기적인 능력을 일회성으로 낭비하기는 싫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파를 사용 가능한 시간을 늘려야 하는 상황.
아셀은 그것이 유론과의 동기화를 올리는 데서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슬쩍 유론의 그림자를 다시금 불러들이며 아셀은 비파를 사용하지 않고 아르테스에 아쿠아색 검기를 불어넣었다.
“좀더 쉬는 게 좋지 않겠나 사위.”
“충분히 쉬었습니다. 다른 기사들을 쉬게 하시는 게 좋을 거 같군요.”
“이번에는 나도 함께하겠네. 저것들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는 거 같구만.”
테일라스가 등 뒤에 걸려 있는 거대한 베틀 엑스를 꺼내 들며 씨익 웃어 보였다.
그것과 타락한 인어들을 향해 달려 나가는 둘이 미친 듯이 사방으로 무기를 휘두르자 동쪽 성벽 가득히 타락한 인어들의 시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안올라.’
코어 안에 끊이지 않고 들어오는 마나들에도 불구하고 아셀은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다른 성벽에서 검을 휘두르는 유론처럼 검을 휘두르고 있건만, 동기화가 전혀 오르지 않은 상황.
이 경우는 단 하나였기에. 그의 표정은 심각하게 굳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외적인 것은 모두 채워진 게 맞구나.”
어쩌면 당연한 일이 었다.
아셀이 이곳에서 가출하기 직전 유론에게 수십 년간 검술을 배웠을 게 분명했기 때문에.
다른 존재들의 그림자들처럼 외적인 동기화는 한계까지 올라간 것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은 건 하나야. 어째서 그림자 재단사로 전직하기 전에 경험한 것이 동기화에 투영이 됐다는 말이지.’
슬슬 타락한 인어들의 행동 모습이 익숙해졌기에. 아셀은 어느새 고성의 성벽을 넘어 놀랍게도 근처에 있는 유령선까지 올라가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셀 도련님!”
“사위 너무 앞서나갔네!”
수백척의 유령선 중 단 한 척에 올라 미친 듯이 몬스터들을 향해 아쿠아색 검강을 휘두르는 아셀의 모습에 고성 아메라에 있는 모든 무인들이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키에에에에!
‘혈연적인 무언가 때문인가.’
유론의 그림자로 필드가의 모든 검술을 사용하자. 순식간에 사방에 있던 타락한 인어들이 아셀의 검에 쓰러졌다.
혈연.
이성적으로 모든 것이 설명이 되지 않자. 아셀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유론과의 혈연에서 오는 무언가라고 생각될 수밖에 없었다.
“저건?!”
“마치 보스몬스터 같은데?!?”
상념에 잠겨 있던 아셀이 검을 휘두르던 것도 잠시.
아셀은 자신을 향해있는 거대한 살의와 함께 무언가 공간을 가로지르는 파공음을 들을 수 있었다.
팡!
‘유론의 그림자로는 위험하다.’
미완성의 그림자 재단으로는 지금 날아오는 무언가를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었다.
순식간에 말릭의 그림자를 불러들이는 것도 잠시. 아르테스에서 일어난 거대한 신성력의 검강으로 날아오는 것을 후려친 아셀은 자신의 두 손이 저릿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
거대한 무언가를 던진 것은 남성형 인어였다.
아셀의 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그것은 인어들 특유의 새하얀 피부 대신 검정색 피부에 근육질인 상황.
아셀은 천천히 자신에게 걸어오는 녀석과 자신이 튕겨낸 삼지창을 바라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좋은 녀석이 들어왔네.”
키에스와 자매들이 가장 높은 마나를 주는 사냥감임은 분명했다.
그러나 다른 몬스터 웨이브처럼 이번에도 그 밑에 있는 수많은 중간급 보스 몬스터가 존재할 게 분명한 상황.
아셀은 자신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는 녀석이 그것들 중 하나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너는 강하다.]
순식간에 둘만의 대결이 펼쳐지듯 타락한 인어들이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그 같잖은 태도에 그저 어깨를 으쓱거린 것도 잠시.
아셀은 녀석이 가슴을 팡팡 두드리며 타락한 인어들의 함성을 유도하는 모습에 피식 웃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네놈을 죽이고 나 와나펭이 더욱 높은 존재로... 꾸엑.]
몬스터가 하는 소리 중 퀘스트와 관련된 것이 아니면 끝까지 듣는다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인 법.
아셀은 호응을 유도하는 녀석을 향해 그저 거대한 검강을 휘두르자 녀석은 괴상한 소리를 내며 픽하고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어... 저건 조금 비매너 아닙니까?”
“아무리 몬스터라고 하지만..”
기사들마저 아셀의 행동에 놀라는 것도 잠시. 그는 그런 시선들과 중얼거림을 무시하며 쓰러진 녀석을 가슴에 검을 꽂아 넣었다.
“뭐라는 거야 바보들이.”
***
유령선에서 한동안 난리를 피우며 마나들을 얻어낸 아셀은 그림자 재단의 유지 시간이 끝나기 전에 고성 아메라로 돌아왔다.
“어째서 여기에 온 것이더냐?”
그러나 이번에는 동쪽 성벽이 아닌 유론이 있는 서쪽의 성벽으로 자연스럽게 다가온 상황.
아셀이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에 유론이 그저 눈을 껌뻑이며 묻자 아셀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유론을 바라보았다.
“할 말 없으면 서둘러 네 자리로 돌아가서...”
“아버지.”
“너 지금 뭐라고?”
아셀이 보여준 놀라운 무위보다. 유론은 지금 자신에게 아버지라고 하는 아셀의 말에 진심으로 놀라워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아셀 도련님이 아버지라고 한 거야?”
“맙소사.. 이거 무슨 일이래?”
기사들이 숙덕거리는 소리를 무시하며 아셀은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하아... 어쩔 수 없어 동기화를 올리기 위해서야.’
“이야기 좀 나눠 보실래요..?”
“이.이야기?”
무언가 어색함이 부자 사이를 관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