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테일라스
“그러니까 사위.”
“누가 사위입니까?”
테일라스의 머릿속에는 자신의 아들을 반병신 만든 존재에 대한 복수심은 사라진 것이 분명했다.
고성 아메라에 도착하자마자 유론을 찾아가는 것이 아닌 아셀의 옆에서 계속 사위 타령을 했었기 때문에.
“나한테 딸이 3명있는데 모두 페루의 삼진주라고 하네.”
“삼진주든 삼신기든 삼총사든 관심이 없는데요.”
“내가 말하면 주책인 줄은 알지만, 세 명 모두가.. 그런데 조금 추워진 거 같지 않나?”
테일라스가 아셀의 옆에서 계속 말할수록 그들이 서 있는 공간에 한기가 가득했다.
심지어 벽면 어딘가에는 서리까지 생기는 상황.
그것들이 모두 무표정으로 있는 페레가 흩뿌리는 기운들임을 눈치챈 아셀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은 사위니 뭐니 하는 것보다 몬스터가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몬스터 중요하지. 하지만 사위와 내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자신의 가슴을 팡팡 두드리며 외치는 테일라스를 바라보며 아셀은 어처구니가 없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 아들에 대한 복수심이 없어진 것처럼 주변에 대한 몬스터들에 대한 위협마저 없어진 것이 분명했다.
“잊으신 거 같아서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테일라스님의 아드님을 반병신으로 만들었는데요?”
“언젠가는 성격을 고칠 필요가 있는 아이였네.. 그렇지 그것이 처남에게 당한 거라면 모두가 납득하고 오히려 아름다운 일화라고 대륙에 알려질 거 같구만.”
“전혀 아름답지도 아무런 교훈도 없었는데요?”
“그건 주는 사람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사람이 생각하는 거 아니겠는가. 사위.”
아셀이 무언가 말하려고 하자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메이슨이 헛기침을 내뱉었다.
“테일라스님. 우선 가주님을 만나 뵈는 게 어떻습니까? 앞으로의 일들이든 혼약이든 우선 유론님을 뵈는 게 맞을 거 같습니다.”
“아.. 그게 좋을 거 같군. 메이슨 고맙네!”
황급히 메이슨을 따라 어디론가 향하는 테일라스의 머릿속에 아셀에 대한 생각뿐이 가득해 보였다.
“허어.. 자네 가주님이 저렇게 열의를 띄우는 걸 본 적이 있는가?”
“사냥이랑 고기라며 가끔 저런 표정을 지어 보이시기는 했던 거 같은데..”
“아무튼 놀랍구만. 가주님이 먼저 혼인 이야기를 꺼내실 줄은 몰랐는데.”
페루가의 기사들이 처음 보는 테일라스의 모습에 수군거리는 것과 다르게 아셀은 그저 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뭐가 끼었나. 이상한 녀석들만 꼬이는 거 같단 말이지.’
“정말로 혼인할 거야?”
“....너까지 왜 그러냐.”
페레의 물음에 아셀은 진심으로 왜 그러냐는 듯한 표정을 그녀를 바라보았다.
“앞으로 날 도와야 하는데 가정이 생기면 그게 힘들 거 같아서 그렇지.”
“당분간은 전혀 그럴 예정도 없고 가정이 생겨도 네가 기억을 되찾을 때쯤 생길 거 같으니까 걱정하지 말아라.”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젓는 아셀을 바라보며 페레의 눈꼬리가 미세하지만 만족스럽다는 듯 올라갔다.
“흐음.. 그러면 됐어. 아까 그 덩치 조금 귀찮게 할 거 같은데 양팔을 얼려버릴까?”
“제발... 그러지 말아라 페레.”
진심으로 그럴 거 같은 페레를 바라보며 아셀은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셀의 말과 시선에 그저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페레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순간 그녀가 방금 말한 것이 진심이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 농담으로 한 말이지?”
***
한동안 유론이 머물고 있던 응접실에서 무언가 고성이 터져 나왔다는 소문이 고성 아메라에 흘러나왔다.
모든 사용인들이 지금 이 상황 속에서 분열이라도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과는 다르게.
응접실에서 나온 테일라스의 얼굴이 너무나도 밝아 보였다는 목격담이 흘러나온 상황.
모든 사용인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과 다르게 동쪽 성벽 위에서 쉬고 있던 아셀은 관자놀이에 손을 올리며 긴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바로 대상난무이니라.”
“와 정말 대단하십니다. 일단 기술 이름부터가 정말 대단한 거 같구요.”
“그렇지? 역시 사위가 보는 눈이 있구만 그래.”
“방금 비아냥거린 건데. 설마 못 알아차리신 겁니까?”
“이 대상난무를 펼칠 때 하체가 중요한데 말이지.”
“제 말을 듣고 계시지 않는 거 같은데요?”
“역시 팔을 얼려버려야 해. 얼려서 깨부수는 거야.”
섬뜩하게 중얼거리는 페레와 대놓고 귀찮음을 나타내는 아셀을 무시하며 거대한 베틀 엑스를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테일라스.
그 둘을 겨우 무시하며 아셀은 잔잔하게 파도치는 고성 아메라 앞의 바다를 바라보았다.
‘내일이면 아마도.’
오늘보다 더 크게 몰아칠 게 분명했다.
아셀이 기억하기로 대륙의 가장 큰 항구도시 라스가 단 삼 일 만에 폐허로 변했었으니까.
‘라스는 그 뒤 그저 좋은 사냥터로 전락했지.’
고성 아메라가 후에 던전으로 변하던 것처럼.
폐허가 되었던 항구도시 라스는 그 아름다움을 잃고 몬스터들의 서식지로 변하는 것.
아셀은 그곳에서 몇 번 사냥을 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잘 알고 있는 일들이었다.
“원래 이곳에 나타나지 않아야 했던 몬스터.”
본래라면 라스에 나타난 타락한 인어들에게 말도 안 되는 버프들을 걸어주었을 키에스가 이곳에 나타난 것.
아셀은 그것이 어떻게 된 것인지 이미 모두 파악한 상황이었다.
‘분명 이곳에 있는 쥐새끼 짓일 테지.’
아셀의 등장으로 무언가를 느낀 쥐새끼의 짓이 분명한 상황. 그는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누가 마족의 끄나풀일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우선 페루가의 기사들은 절대로 아니다.’
페루가의 기사들이 쥐새끼일 리가 없었다.
페루가안에 마족의 끄나풀은 있을 수는 있어도. 그것들이 유론을 중독시키는 게 가능하지 않았을 테니까.
“환장하겠네. 등을 맡길 수 있는 게 페루가 사람들 뿐이라니.”
“오오 사위 드디어 우리를 인정하는 말이구만 그렇지 우리 페루가의 사람들이 든든하기는 하지 하하하하!”
“아셀... 말만 해줘. 저 영감이 더 이상 너를 귀찮게 하지 않게 해달라고 말이야.”
“흐음.. 이 아가씨는 아까부터 나를 아니꼽게 보는 거 같은데. 뭐 잘생긴 얼굴이니 이해는 하겠네.”
“하아.. 안 되겠다. 아셀 나 못 참겠어.”
페레의 지팡이에서 거대한 한기들이 순식간에 모여드는 것을 바라보던 아셀은 긴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막아섰다.
“괜히 마력 낭비하지 마.”
“하지만 저 영감이 아까부터 너를.”
“마력을 사용할 데는 많으니까 말이야.”
달래듯 말하는 아셀의 말에 페레는 결국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흐흐.. 우리 사위가 여자를 휘어잡는 방법을 아는 것 같구만. 내가 우리 딸들을 맘 편히 보낼 수 있겠어. 이런말하면 조금 그렇지만. 우리딸들이 성격이 조금 강하거든.”
“테일리스님도 그만하시지요.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정말로 오해하겠습니다.”
“오해가 아니라 자네 아버지 유론도 허락한 일일세.”
“유론님이요? 그럴 자격이 없다고 보는데요?”
아셀의 냉담한 눈동자에 잠시 흠칫거린 테일라스가 황급히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그런가? 아무튼 유론은 자네 마음대로 하라고 하긴했는데.. 이보게 사위 오늘내일할 거 같은 부모님에게 결혼하는 모습을 보여 마지막 길 효도하는 게 좋지 않겠나.”
“흐음.. 테일라스님은 두 가지 착각하고 계십니다.”
“두 가지?”
손가락 두 가지를 펴보며 아셀은 씨익 웃어 보였다.
“우선 제가 유론님에게 효도할 일은 없을 거 같군요. 그런 사이가 아니라서 말이죠. 그리고..”
잠시 말을 멈춘 아셀이 씨익 웃으며 테일라스를 바라보았다.
“유론님은 죽지 않습니다. 이건 제가 장담하죠.”
***
잠시 쉬겠다며 자신에게 배속된 방 안으로 들어온 아셀은 말릭과 케락스의 그림자를 융합시켰다.
‘후우....’
두 가지 그림자의 융합으로 잠시나마 한 단계 이상의 경지가 올라간 상황.
6성급 무인의 경지에 내공심법(하)로 7성급의 달하는 출력을 낼 수 있는 아셀이 그림자를 융합시킨다면 일순간이지만, 8성급의 기운을 방출할 수 있는 법이었다.
‘그랬다가는 몸에 무리가 엄청 가겠지만.’
6성급과 7성급의 차이가 크듯. 7성급과 8성급의 차이는 더욱 큰 법이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몸으로 8성급의 기운을 사용한다는 것은 분명 몸에 큰 무리가 올 게 분명했다.
“우. 우선...”
필드가에 왔더니 다시금 겁쟁이 재능이 발현되어 말을 떠는 자신에게 한숨을 내쉬던 아셀은 침대에 누우며 억지로 눈을 감았다.
‘조금 쉬어야겠어.’
앞으로 지금 같은 휴식을 누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기에.
아셀은 잠시나마 몸을 푹 쉬어주기로 결정했다.
땡! 땡! 땡!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성안을 가득 울리는 종소리에 눈을 번쩍 뜬 아셀은 창밖에 해가 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왔다!”
종소리와 함께 바다 위 가득히 나타나기 시작한 타락한 인어들. 황급히 투마리스의 그림자를 불러들인 아셀이 5층 높이의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아셀 도련님?!”
“놈들이 몰려옵니다. 도련님!”
아셀을 발견한 기사들이 말을 거는 것을 무시하며 빠른 속도로 동쪽 성벽으로 달려간 것도 잠시.
아셀은 전원 무장한 페루가의 기사들과 페레 그리고 테일라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 여기서 싸우실 겁니까?”
“이곳만 기사들이 없는 거 같아 내가 직접 방어하기로 했네. 나만 믿게 사위!”
“아.... 그건 조금.”
솔직히 아셀은 혼자서 싸우는 것이 더 좋았다.
이렇게 많은 숫자들이 함께 한다면 코어 안을 채워넣을 마나들을 나눠 가지게 되었으니까.
‘이거 마치 자리 잡고 사냥하고 있는 자리에 누군가 온 것 같은 느낌인데.’
말을 해도 들을 사람이 아니거니와 쫓아내기 위해 힘을 쓸 시간도 없었기에.
아셀은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앞으로 나섰다.
“내가 얼려버릴까?”
“일단 인어들부터 얼려.”
‘2만 마리 정도.’
한눈에 들어오는 몬스터들은 총 2만 마리 정도였다.
그것들 모두가 괴성을 질러 보이는 것도 잠시.
아직까지 키에스와 자매들이 탄 유령선이 보이지 않음을 아셀은 발견할 수 있었다.
“같잖게 머리를 쓰네.”
놈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단숨에 눈치챈 아셀은 그저 혀를 차며 황금활 기온을 꺼내 들었다.
“오오 사위 아까부터 궁금했네. 자네가 어떻게 하면 그런 활을...”
쾅!
테이라스의 뒷말은 황금활 기온에서 나오는 거대한 소음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말릭과 케락스의 그림자를 융합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이전에 보여주었던 샤인 에로우와는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의 거대한 기운을 담고 있는 늑대 형상의 황금빛 오러가 쏘아진 것.
그 거대한 화살이 쏘아지자 타락한 인어들은 물론이고 주변의 기사들마저 눈을 껌뻑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미친... 사위 자네 정체가 뭔가?”
타락한 인어들 한가운데에 떨어진 샤인 에로우가 마치 거대한 폭탄을 터트린 것처럼 주변 일대의 인어들을 순식간에 처리하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자네를 처음 봤을 때 보여준 것이 진짜 실력이 아니었단 말인가?! 도대체 내 눈을 어떻게 속인 건가 사위!”
놀람은 환희로 바뀐 테일라스가 기뻐하는 눈으로 아셀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자신이 아는 그 어떤 무인들도 아셀의 나이에 저런 경지에 올라서지 못했었기 때문에.
아니 그 어느 역사 속에서도!
‘7용사의 재림인가?!’
테일라스의 환희에 젖은 목소리와 더불어 응접실 창밖에서 이 모든 모습을 보고 있던 유론의 손이 꽉 쥐어졌다.
“아셀... 너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