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인어들
“하하하 정말로 그렇게 말했단 말인가?”
“묘하게 즐거워 보이십니다. 주군?”
“즐겁다라.. 그저 그 아이가 했던 말이 재미있어서 웃어본 거라네 메이슨.”
가주실에 보고를 하러 온 메이슨은 진심으로 기쁘다는 듯 웃어 보이는 유론을 바라보며 피식 웃어 보였다.
솔직히 그 또한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이어진 아셀의 말에 속으로 흥미로움을 감출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알아서 싸울 테니까. 우리 서로 관심 끄자고.
-...혼자서 저것들과 상대하겠다는 말입니까?
-음.. 그래 이렇게 하지 저쪽 동쪽 성벽에는 아무도 배치하지 말아라 알았지? 저기는 내 사냥터니까.
“자기 사냥터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렇게 하게 해주게. 동쪽 성벽에는 아무도 배치하지 말게 메이슨.”
“그렇게 하셔도 되겠습니까?”
지난번 고블린들의 준동을 잘 알고 있기에. 메인슨이 우려 섞인 목소리로 물었지만, 유론은 그저 은은한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알아서 하겠지.”
“그러면..”
“가주님! 단장님 큰일 났습니다!”
갑작스럽게 벌컥 열린 가주실의 문. 그곳으로 들어오는 집사 호레인의 무례를 아무도 지적하지 못했다.
그가 가지고 온 소식이 너무나도 놀라웠기 때문에.
“페루..페루가의 기사들이 이쪽으로 도망 오고 있습니다.”
“뭐?”
“도망이라고?”
잠시 숨을 고른 후 호레인이 아직도 믿기 힘든 그 모습들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몬스터... 그 이상한 인어 같은 몬스터들에게 쫓겨 이쪽으로 도망 오고 있습니다 가주님!”
“?!”
“뭐라...?”
***
동쪽 성벽 위에서 페레와 서 있던 아셀은 저 멀리 보이는 먼지 구름들에 눈살을 가늘게 떴다.
“몬스터네.”
블러드 퀴리를 들고 무심한 말투로 말하는 페레. 그녀의 손에 은은하게 나오는 붉은빛이 블러드 퀴리를 길들이는 데 성공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2천 마리?’
투마리스의 그림자를 불러들이고 있었기에. 아셀은 저 멀리서 타락한 인어들에게 쫓기듯 달려오는 기사들의 갑옷에 새겨진 문양까지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도련님! 가주님께서 페루가 일원들을 구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한 기사가 아셀에게 달려와 지금 상황을 보고 했다.
지난번 자신에게 덤벼들었다가 2m 날아갔던 조장 파쿠라. 어째서인지 그가 아셀에게 성안에 돌아가는 상황들을 모두 알려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도련님도..”
“나는 여기만 지킨다고 했던 거 같은데?”
“아.. 알겠습니다.”
무언가 혼자서 납득하며 황급히 자리를 피우는 파쿠라를 바라보는 것도 잠시.
아셀은 300명 정도의 기사들이 마치 잡초를 베어내듯 타락한 인어들을 베어내며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저게 끝이 아닐 테지.’
고작 2천 마리라면 페루가의 기사들이 도망칠 리가 없었다.
그 자리에서 모두 섬멸하고 필드가에 달려올 정도의 힘이 남아 있을 게 분명했기 때문에.
“아셀.”
페루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아셀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다가 이상한 거 같지?”
고성 아메라.
그곳에 잔잔히 파도치고 있던 바다. 아셀은 무언가 점점 그 속에서 꿈틀대고 있은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뿌우우우!
고성 아메라에 진격의 나팔이 울려 퍼졌다.
그와 함께 절벽 위를 날아가듯 말을 몰아 달려 나가는 푸른빛 갑옷의 기사들.
아셀은 선두에서 달려 나가고 있는 아르센과 가센을 발견하고는 피식 웃어 보였다.
‘쓸데없는 짓을.’
필드가의 기사들 대부분이 성을 비우는 것과 동시에.
잔잔하기만 했던 고성 아메라 주변의 파도가 갑자기 점점 거세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마....”
투마리스의 그림자를 불러들이고 있었기에.
아셀은 시력뿐만이 아니라 청력까지 높아진 상황이었다.
그랬기에. 저 멀리서 페루가의 기사가 무어라 소리치고 있는 것까지 제대로 들리고 있는 상황.
“..오지 말라고 이 멍청이들아!”
페루가 기사의 외침이 울려 퍼지는 것과 동시에. 갑자기 거대한 파도가 고성 아메라 주변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
“뭐.뭐야!?”
“자.잠깐만 파도 속에!”
높게 일어난 파도 속에 검정색 그림자들이 가득했다.
눈썰미가 좋은 무인들은 그것이 지금 페루가의 기사들을 공격하고 있는 몬스터와 똑같음을 알아차리고는 표정이 사색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망할 함정이다!”
아르센의 외침이 아셀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파도들이 필드가의 무인들을 뒤덮듯 몰아치기 시작했다.
“망할 아메라로 돌아가!”
“선두 어서 돌아!”
갑작스럽게 달려 나가던 무인들이 방향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법.
하물며 파도 속에 있던 타락한 인어들이 덤벼드는 상황이라면!
“몬스터들이다!”
“베어내면서 앞으로 가”
“가라고 가!”
“정신 차려!”
순식간에 혼란이 필드가의 무인들 사이를 가득 채워나갔다.
파도 속에 몸을 숨기며 덤벼드는 무인들.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아셀은 이내 어깨를 으쓱거리며 사출의 주머니에서 황금활 기온을 꺼내 들었다.
“이쪽으로 슬슬 오는 거 같네.”
파도가 고성 아메라까지는 덮치지는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몬스터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쾅! 쾅! 쾅!
황금활 기온에서 쏘아진 샤인 에로우가 고성 아메라 주변의 바다를 향해 쏘아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거대하게 일어나는 물보라들.
아셀은 물보라 속에서 터져 나오는 타락한 인어들의 살점과 피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생각보다 수가 많았기에. 아셀의 두 눈이 조금 커졌다.
‘어째서 놈들이 이렇게 많이...’
아셀이 예상하던 타락한 인어들의 숫자보다 많은 것. 그가 기억하고 있던 3차 몬스터 웨이브에서 가장 많은 공격을 받았던 항구도시 [라스]에 비견되는 숫자들이었다.
“페레. 저것들 일단 막아봐.”
파도가 한번 고성 아메라 주변을 때릴 때마다 절벽 위에는 타락한 인어들이 수없이도 달라붙기 시작했다.
마치 바퀴벌레들이 가득 있는 것을 연상하는 그럼 혐오감이 느껴지는 상황.
샤인 에로우를 사방에 뿌려대던 아셀이 페레에게 말하자 그녀의 주변에 순식간에 한기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콰가가강! 순식간에 몰려든 한기가 마치 무언가를 만나 터지듯 블러드 퀴리에서 나타났다.
그와 함께 절벽 위에 달라붙던 타락한 인어들이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얼어붙는 모습들이 나타난 것.
심지어 몰아치던 파도들까지 얼어붙으며 그 안에 타락한 인어들의 모습이 보이자 아셀은 물론이고 필드가의 기사들은 놀라워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도련님이 데려온 저 여인은 누구지?”
“어떻게 바다까지 얼려버린 거야...”
‘강하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마법 한 번에 입술이 파랗게 질려버린 페레를 바라보며 아셀은 눈을 껌뻑였다.
‘이건 상상 이상인데?’
페레 특유의 재능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얼음 계열의 마법을 가능하게 한 것이 분명했다.
그 모습에서 미래의 얼음 마녀가 했던 일들이 떠오르는 것도 잠시.
아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르테스를 뽑아 들었다.
“아무래도 다시 사용하려면 시간이 있는 거 같네.”
강하고 거대한 마법. 그러나 페레의 본래의 몸이 따라주지 않고 있음을 발견한 아셀이 묻자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5분이면 회복돼.”
“쉬고 있어.”
페레에게 잘했다고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준 아셀이 얼음 위로 올라오는 새로운 타락한 인어들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막아라!”
“다른 기사들이 오기 전에 이곳을 사수한다!”
동쪽 성벽 말고 다른 곳은 이미 타락한 인어들이 올라와 기사들과 접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중 돋보이는 것은 거대한 메이스로 인어들의 머리를 부수고 있는 필드가의 기사단장 메이슨.
그 모습을 살짝 바라보고 있던 아셀이 얼음 위로 올라온 인어들을 향해 미친 듯이 새하얀 검강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키야야야야야!
마치 세이렌과 비견되는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고성 아메라에 울려 퍼졌다.
경지가 낮은 무인이라면 잠시 주춤거리게 만들 그런 비명들.
아셀의 검강에 단숨에 베어진 인어들이 동족의 죽음에 분노하며 삼지창 같은 무기를 아셀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피할 필요 없다.’
순식간에 아셀의 몸을 뒤덮은 신성의 갑옷. 그것이 나타나자 인어들의 삼지창은 아셀의 주변에조차 다가오지 못했다.
“도.도련님..”
“저것은 말릭경의 신성의 갑옷이 아닌가..”
“성인이 되지 않았는데 저런 완벽한 갑옷을 구현할 수 있다고?!”
필드가의 기사들 중 말릭을 잘 아는 무인들이 많았기에. 그들은 완벽한 신성의 갑옷을 구현한 아셀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단숨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스승님이라면.’
혼자서 얼음 위를 올라오던 타락한 인어 200마리를 베어냈을 때쯤. 아셀은 스승 말릭이라면 어떤 식으로 싸웠을지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았다.
“이런 식으로 안 싸웠을 테지.”
거대한 건물만 한 검강. 아니면 완전무장 발키리. 그것들만 있어도 인어들이 고성 아메라에 단 한 마리도 들어오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발키리는 아직 안 된다.’
재능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을 사용하기 위한 코어들이 아직 깨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비슷하게는 사용할 수 있지.”
아르테스만있는 것이 아니었다.
페레의 봉인을 풀며 얻은 세 가지 전설 등급의 무기들.
철퇴 [고대 드워프의 노여움]
장창 [바바리안들과 춤을]
대검 [고대 투우사의 노래.]
그것에다가 얼마 전 얻은 얼음 망치까지.
스승 말릭 완전 무장 발키리에서 수백 가지의 무기들이 나오는 것에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수많은 무기들을 말릭의 재능으로 휘두르는 것은 충분히 가능했다.
“흐읍!”
사출의 지팡이에서 고대 드워프의 노여움을 생각하자마자 고대 드워프들의 강철로 만들어진 거대한 철퇴가 튀어나왔다.
“터져라.”
아셀의 중얼거림을 구현하듯. 휘둘러진 철퇴들이 순식간에 타락한 인어들의 머리를 박살 내기 시작했다.
그다음에도 장창을 꺼내 들고 수십 마리의 타락한 인어들을 동시에 꾀뚫자 필드의 무인들은 아셀의 놀라운 무위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저게.. 정말로 아셀님이라고?”
“어떻게 저런 모습이..”
“허허..”
기사 단장인 메이슨마저 동쪽 성벽 위에서 수많은 몬스터들에게 물러서기는커녕 오히려 놈들을 절벽 아래로 떨어트리는 아셀의 모습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가주님의 자식들 중 가장 필드가의 피를 진하게 이어받으신 분은 아셀님이었구나.”
어느새 메이슨의 입가에는 즐겁다는 듯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오랜 세월 필드가를 섬기며 유론 이외에 또 다른 누군가를 바라보며 이런 미소를 지었다는 사실이 본인마저 놀라워하는 것도 잠시.
거대한 무기뿐만이 아니라 주먹으로 타락한 인어들의 머리를 박살 내는 아셀의 모습이 모든 필드가의 무인들의 두 눈에 새겨지기 시작했다.
“무식해.”
“효율적인 사냥 방법이야.”
더 이상 타락한 인어들은 아셀이 있는 곳으로 이전과 같은 기세로 달려들지 못했다.
마기로 물들고 이성은 대부분이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원초적인 공포심이 새어 나왔기 때문에.
꿈틀. 다시 한번 페레의 마법이 발동되려는 것도 잠시.
아셀 바닷속에 점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건....”
거대한 그림자. 그리고 점점 모습을 드러내는 그것.
아셀의 눈이 가늘어지며 조금은 놀랍다는 듯 턱을 쓰다듬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나타날 녀석이 아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