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얼음 마녀
아셀과 얼음 마녀는 잠시나마 서로를 바라보았다.
기 나긴 침묵들 속.
얼음 마녀는 무려 아셀의 스킬 쿨타임이 돌아갈 때까지 기다려주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것이 무려 3시간인데도 불구하고.
“크흠.”
말릭의 그림자를 불러들이자마자 아셀은 자신의 몸이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눈앞에서 자신을 신기하듯 올려다보는 얼음 마녀와의 자신의 격차를 진지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비슷하거나 그보다 조금 앞.’
겁에 질려 있었기에. 태산처럼 높아 보였던 것은 당연한 법.
아셀은 지금의 자신과 얼음 마녀와의 격차가 얼마 되지 않음을 정확히 알아차렸다.
“이제 준비됐어?”
아셀의 변화를 눈치채가 얼음 마녀는 빙그레 웃으며 아셀을 바라보았다.
그 미소가 너무나도 순수해 보였기에. 과연 눈앞에 있는 존재가 수만 명을 학살했던 존재인가 의구심마저 들었다.
“미안. 체력이 조금 약해서.”
“괜찮아.”
“일단은....”
잠시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얼음 마녀를 해치울까 고민했던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아셀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생각을 지워냈다.
‘대화가 통하는데 먼저 공격하는 건 악수야.’
페이크 월드에서 마구잡이로 사냥을 하는 것은 최악의 결과로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가끔 숨겨진 퀘스트. 숨은 이유들 그런 것들이 몬스터들이나 마족들에게도 존재했었으니까.
“이름부터 알아야 할 거 같은데?”
“페레스 알퀴 르마시아 포포라...”
“잠깐잠깐. 그게 설마 다 이름이야?”
“부모님이 장수하라고 지어준 이름인데..”
잠시 아셀의 머리에서 어렸을 때 TV에서 봤던 웃긴 이름들이 떠올랐다.
“그냥 페레라고 부를게. 그게 편할 거 같으니까.”
“네가 원한다면....”
잠시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어 보인 페레를 무시하며 아셀은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어디까지 기억하는지 말해줄래?”
“우선 내 이름이랑.. 그리고 분명 나는 마탑에서 마법을 배우고 있었는데...”
마탑에서 마법을 배우고 있었다는 사실에 아셀은 조금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유명한 존재가 마탑 출신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으니까.
“모르겠어... 그 뒤로는 제대로 기억이 안 나....”
“그럼 루카스는 누군데?”
아셀의 물음에 페레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내 저주를 풀어주기 위해 도와주던 친구...”
“저주?”
저주라는 말에 아셀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페레는 자신의 몸에 흩날리는 기운을 가리켰다.
“어려서부터 나는 음기가 너무나도 강했어. 코어에 얼음들이 생겨날 정도였으니까.”
“그래?”
“이대로 흐르다가는 얼마 못 가 죽는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니까....”
‘죽지는 않는데...’
놀랍게도 역사에 기록된 녀석은 수백 년간 살아오며 마족 이후로 커다란 위협으로 대륙인들에게 다가왔었다.
“주위 사람들은 물론이고 나 자신도 죽여가는 기운. 마탑에서조차 나를 실험체로 생각했던 내게 유일하게 손을 내밀어준 게 루카스야..”
‘인간에 대한 혐오는.’
페레가 어째서 인간들을 혐오하는지에 대한 근원을 아셀은 슬쩍 확인할 수 있었다.
‘분명 이후에 어떤 사건들이 더 생겨나겠군.’
잠시 페레를 바라보던 아셀은 이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존댓말부터 배워볼까?”
“존댓말?”
말투라는 말에 페레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지마, 아셀은 그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도와주는 사람도 나고 내가 나이도 더 많아 보이는데 계속 반말로 말하는 건 이상하지 않을까?”
“너 몇 살인데... 내가 이렇게 보여도 올해로 20살.....”
“오 다행이다! 너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존댓말 해 존댓말.”
아셀은 17살에 불과했다.
“알았어요...”
잠시 아셀을 노려보던 페레는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지금 자신을 도와줄 존재는 아셀 한 명 뿐이었으니까.
“좋네. 얼마나 예의 있어 보여. 이러니까 그냥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 거 같은데?”
머뭇거리는 페레를 바라보며 아셀은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우선 네가 왜 여기에 있는지 그것부터 알려줘야 할 거 같네.”
“말해줘.. 아니 말해주세요.”
‘손쉬운 방법이 하나 있지.’
기억의 혼선 그리고 방금 전까지 있던 치열한 전투들. 심지어 페레는 특수한 저주에 빠져있다는 설정까지.
아셀은 이 모든 것을 종합하여 자신에게 최적화된 이득 방법이 무엇인지 바로 떠올렸다.
“마족들 짓이야.”
부르르. 아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퀴리를 봉인하고 있던 얼음꽃이 잠시 떨렸다.
“저기 저거 보이지? 그리고 사방에 가득한 마족들의 피 냄새들. 이것들이 너를 이곳에 봉인한 거야.”
“마족들이....”
자신을 봉인했다는 사실에 큰 모멸감을 느꼈는지 페레의 몸에서 흉흉한 기운들이 터져 나왔다.
“어쨰서 나를...”
“아마 자신들에게 큰 위협이 될거라 생각했겠지. 페레 네가 말해주었다시피 너의 능력은 특수하잖아?”
“그런 거라면 이해가 가.. 아니 이해가 가요.”
아직 존댓말이 익숙하지 않은지 허겁지겁 말을 바꾸는 페레를 바라보며 아셀은 씨익 웃어 보였다.
“그리고 루카스....”
꿀꺽. 긴장감이 고조되었는지 페레가 침음을 삼키는 소리가 아셀의 귓가에 들려왔다.
“솔직히 누구를 말하는지 모르겠어. 다만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에프릴의 그림자를 불러들이며 아셀이 눈의 정령들을 소환하자 페레의 눈이 크게 떠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정령들은 처음 봐.. 아니 처음 봐요!”
“이 친구들과 계약할 때 도움을 준 재료를 들고 있던 시체와 루카스라는 존재가 동일 인물일 거라는 사실 뿐이야....”
“시체..?”
“너처럼 얼어 붙어있었어.”
얼어 붙어있다는 사실에 페레의 눈이 크게 떠졌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얼어 붙어있던 존재. 게다가 눈앞에 있는 아셀은 자신을 이렇게 봉인한 것이 마족이라고 말한 상황.
누가 보아도 루카스를 얼어 죽게 만든 존재가 마족으로 의심될 수 있었다.
마족이 풍기는 대외적인 이미지가 생각된다면 더더욱!
“아아.. 루카스...”
“이건 내 생각이지만...”
결국 두 손으로 얼굴을 파묻고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페레를 달래주는 듯한 어조로 아셀이 입을 열었다.
“아마도 너를 봉인한 것과 루카스를 얼려버린 마법은 똑같은 것이라고 생각해. 차이가 있다면 너는 자신의 특수한 능력 때문에 살아남았던 거고.. 루카스는...”
“마족이라고했.. 죠?”
“아.. 응 마족들이지 원래 못된 일들은 다 그 새끼들이 하잖아?”
다시 한번 퀴리를 봉인하고 있던 얼음꽃들이 부르르 떨렸다.
“그 말 책임질 수 있어요?”
“내가 믿고 있는 신에게 맹세할 수 있어.”
지금 아셀은 말릭의 그림자를 불러들이지 않고 있었다. 무한의 정령사 에프릴의 그림자를 불러들이고 있는 상황.
말릭의 그림자가 아니라면 아셀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 여신을 수백 번이고 팔아넘길 수 있는 성격이었다.
“고마워요...”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아셀의 물음에 페레는 고민하지 않고 단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에서 보이는 흉흉한 기운들. 그것들이 마족들에게 향해 있다는 사실에 아셀은 속으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복수할 거야.. 아니 할 거예요.”
“복수? 하지만 마족들은...”
“알아요. 마족들은 강하다는 걸.. 심지어 제가 봉인된 지 얼마나 시간이 흐른 지 알 수 없으니. 루카스에게 그 짓거리를 한 마족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도 힘들겠..죠?”
페레의 말에 아셀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당신 또한 마족들에 대한 혐오감을 품고 있고..요.”
“정확히 보았어.”
‘일이 쉽게 풀리는데?’
아셀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마족에 대한 혐오감은 진심이었기 때문에.
“그러면 당분간 당신과 함께하겠어..요.”
함께 하자는 말에 아셀은 속으로 씨익 웃어 보였다.
‘이게 첫 번째 퀘스트가 나타난 이유였구나.’
어째서 그런 종류의 첫 번째 퀘스트가 나타났는지 아셀이 단숨에 이해를 하는 것도 잠시.
그의 눈앞에 놀라운 메시지가 하나 나타났다.
[페레님이 파티를 신청했습니다.]
“?!”
파티 신청.
게임을 플레이했을 적에나 나타났던 메시지가 나타난 것에 아셀은 두 눈을 크게 쓸 수밖에 없었다.
‘이건 분명.’
게임을 플레이했을 적 아셀은 파티의 효과를 수 없이도 많이 경험해보았기에. 그것이 주는 장점과 단점을 잘 알고 있었다.
우선 다른 게임들과 마찬가지로 파티 사냥을 할 시에 모든 경험치가 기여도에 따라 나뉘었다.
‘중요한 건 이게 아니야.’
경험치의 분배 그것은 다른 게임과 똑같은 상황. 페이크월드의 파티는 다른 게임에는 없는 효과가 존재했었다.
‘호감도.’
호감도의 증가.
페이크 월드에서 파티를 맺고 같이 사냥하면 서로의 호감도가 저절로 증가하는 일이 발생 되었다.
게임을 했을 적에는 유저들끼리의 호감도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상황.
오직 거래를 했을 적에 수수료가 적게 들거나 상대방에 대한 상태창을 좀 더 쉽게 볼 수 있는 장점만이 있을 뿐이었다.
“저랑 같이 다니기 싫으신가..요?”
파티사냥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던 아셀을 바라보며 페레가 말끝을 흐리며 물었다.
어지간히 존댓말을 하기 싫어 보이는 말투. 잠시 페레와의 파티 사냥에서 오는 장점들과 단점들을 고민하던 아셀은 이내 씨익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싫을 리가 있나.”
[파티가 생성되었습니다.]
아셀은 자신의 기운과 페레의 기운이 미약하지만 무언가에 의해 연결된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게임을 플레이했을 적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것.
페레 또한 무언가를 느꼈는지 잠시 눈을 껌뻑였으나. 이내 아무것도 아닌 듯한 표정을 지으며 아셀을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야말로.”
내민 손을 잡으며 아셀은 페레를 바라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그와 함께 앞으로 페레의 능력으로 어떤 것들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행복한 상상이 가득해지는 것도 잠시.
아셀은 부서진 얼음 마녀의 봉인과 사방에 흩어져 있는 고대의 무구들을 바라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크흠, 우선 여기 있는 것들 좀 가져가 볼까?”
“가져가?”
무엇을 가져가냐는 말에 아셀은 말없이 한스의 망치를 꺼내 들며 벽면에 가득 채워져 있는 옛 장비들을 가리켰다.
“두고 가기에는 조금 아깝잖아.”
설마 저것을 가지고 가겠다는 말을 할지 몰랐던 페레가 당황하는 것과 다르게. 아셀은 어느새 벽면을 향해 망치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것도 다 돈이라고.”
그림의 떡인 줄만 알았던 장비들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아셀의 몸 안에 묘한 흥분감이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캉! 캉!
얼음의 벽면이 부서지는 것을 아셀은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전에 빠르게 메워지던 벽면들과 다르게 이번에는 그저 아셀의 망치질에 박살이 나는 벽면들.
그곳에 있던 시체들과 장비들이 만져지기 시작하자. 아셀은 빠르게 한스의 감정안으로 하나씩 확인해보기 시작했다.
‘대박.. 이건 진짜 전설 등급이네!?’
“이건 어때?”
[고대 드워프의 노여움]이라는 철퇴를 바라보며 아셀이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던 페레가 무언가를 가리키며 말하는 것도 잠시.
페레의 시선을 따라 그것을 발견한 아셀의 눈이 크게 떠졌다.
‘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