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북방으로
지난번 아르테스를 만들 때와 같은 놀라운 모습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역시 대단하다!’
한스의 군더더기 없는 망치질에 아셀은 다시 한번 그의 높은 경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한스 또한 6번째 코어가 만들어지고 신체 재구성 또한 완벽하게 마친 아셀의 망치질에 몇 차례나 놀라워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인간들 뭐지? 인간들이 맞는 건가?’
둘의 작업을 따라가며 토니는 문득 자신이 따라가기 급급하다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전문적인 대장장이가 아니라 전사 계열의 왕족이라고 하지만, 드워프 왕자인 자신이 인간들의 작업을 따라가지 못한 것이었다.
‘이게 그림자들의 힘인가?!’
문득 선조들이 해준 그림자들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토니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가기 시작했다.
망치에서는 당연하게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심상을 구현하는 그림자 망치질 특유의 모습들만 가득한 상황.
심지어 방 안 가득한 검은색 마나들은 주변의 환경마저 바꾸는듯한 착각마저 일으키기 충분했다.
마치 바위가 쪼개지듯 아르테스를 감싸고 있던 검은색 마나의 덩어리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작업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려주는 모습들.
지난번 따라가기 벅찼던 작업과 다르게 자신이 완벽하게 한스와 합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에 아셀은 큰 만족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잘했다 아셀.”
더 이상 망치를 내려치지 않아도 되었기에. 한스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아셀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잘했어. 솔직히 완벽하게 따라올 줄은 몰랐단다.”
“스승님이 잘 가르쳐 주신 덕분이지요.”
“저어.. 토니도 조금 거들었습니다만?”
어느새 대장간 안에 가득했던 모든 그림자가 일순간 아르테스 안으로 모여드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런 건.’
처음이었다. 수많은 아이템들 심지어 전설 등급의 아이템을 강화하는데 성공해본 적이 있던 아셀조차 이런 요란스러운 모습으로 강화가 완료되었다는 것은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성공이구나.”
한스의 미소와 함께 환한 빛을 내며 나타난 아르테스의 모습에 아셀은 황급히 감정안으로 확인해보았다.
[아르테스+1.]
[전설등급]
[내구도 300/300]
[그림자 대장장이 한스가 오리콘으로 만든 미완성 작품입니다.]
[두 가지 모드가 있습니다.]
[성장형 무기입니다.]
[사용자의 경지에 따라 공격력이 달라집니다.]
[현재 공격력 452]
[그림자 계열의 오러를 자연스럽게 흡수할 수 있습니다.]
[수르트의 심장으로 강화되었습니다.]
[도신과 망치 부분에 수르트의 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마나에 비례해 사용시 용암을 터트릴 수 있습니다.]
‘기운을 불어넣어?’
용암을 터트리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다.
옆에서 아르테스를 바라보며 눈빛을 반짝이는 토니가 원래 보여주었던 모습들이었으니까.
하지만 기운을 불어넣는 것은 알지 못하던 것.
“쥐어보거라 아셀.”
빨리 검을 휘두르고 싶은 아셀의 마음을 읽었던 한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강화된 아르테스를 쥐어본 아셀은 이전과는 변함없는 외형이지만 그 안에 있는 놀라운 기운들을 단숨에 느낄 수 있었다.
“수르트의 기운.”
아셀의 중얼거림에 화답하듯. 아르테스의 도신에 용암과 같은 주홍빛 기운이 단숨에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고열?!’
고열로 코딩이 된 아르테스의 모습.
아셀이 별생각 없이 모루에 슬그머니 내려치자 한스의 모루가 버터처럼 잘려 나가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
“이 정도일 줄은...”
평생을 사용한 모루가 버터처럼 녹으며 두 동강 된 모습이었지만, 한스의 눈에는 희열만이 가득했다.
“하하.. 이 한스가 저것을 만들어냈다 이 말이다!”
“스승님 덕분입니다.”
‘고열로 가열되어 이런 모습을 보여준 건가?’
아셀은 앞으로 향할 곳에서 추가된 아르테스의 능력이 큰 도움이 될 것을 직감했다.
얼음 속성은 분명 수르트의 기운과 상극일 게 분명했으니까.
“하하 대협! 축하드립니다. 이거 오늘 맥주 한잔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토니의 말이 맞다. 아셀 오늘은 마시고 즐기자꾸나!”
아이처럼 활짝 웃는 한스를 바라보며 아셀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그래도 될 거 같군요.”
마음 같아서는 몇 날 며칠을 술을 마시고 즐기고 싶을 심정이었다.
그만큼 아르테스의 추가된 능력은 아셀을 기쁘게 하기 충분했기 때문에.
‘게다가 앞으로 다른 재료들을 가지고 온다면..’
강화에 실패하지만 않는다면, 오늘 같은 놀라운 모습들이 펼쳐질 것이 분명했기에.
아셀의 입가에는 진한 만족감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
오늘 하루라고 말했던 잔치는 무려 이틀에 걸쳐 진행되었다.
-영감 뭔가 만든 거 같은데?
-이봐 영감 우리도 대장장이라고!
투란에 있는 모든 대장장이들이 한스의 공방에서 터져 나온 아르테스의 기운을 느끼고 모여들었기 때문에.
그들은 한스의 대장간에 도착하며 새로운 용광로와 아셀의 손에 쥐어진 아르테스를 발견하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게 무슨 용광로야..?!
-영감. 혹시 이거 우리도 사용하면 안 되나?
아카신을 필두로 한 드워프 대장장이들이 한스의 새로운 용광로에 더욱 눈독을 들이는 것을 아셀은 놓치지 않고 발견했다.
‘내 예상이 맞다면.’
전날 아카신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던 토니의 모습을 떠올렸던 아셀은 자신의 예상대로 흘러가는 것 상황 속에 빙그레 미소 지었다.
‘드워프들은 이곳에 모일 수밖에 없다.’
고대 드워프들의 용광로.
그것이 여기에 있는 이상 지하세계에 있는 드워프들이 투란에 모여들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에.
“3년이면 충분하지.”
3년.
그 안에 아셀은 대장장이 마을 투란이 본래 드워프들의 왕국으로 탈바꿈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왜 그렇게 바라보십니까 대협...?”
그리고 그 중심에 있을 토니를 바라보며 아셀이 탐욕스러운 눈빛을 보내자 토니는 자신도 모르게 온몸에 소름이 돋아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게 있다. 것보다 나 없는 사이에 스승님 보좌 잘해라.”
“제가 도와드릴 게 있을지나 모르겠네요.”
아셀의 말에 토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생각보다 기분이 좋은지 숙취로 고생하고 있는 한스는 이제 슬슬 떠나려는 아셀의 배웅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아셀형. 이번에 가면 언제 오실 거예요?”
“이번 일은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니까. 조금만 기다리렴.”
“알았어요! 대신 다음 모험은 저도 데리고 가주세요!”
케락스가 눈빛을 반짝이며 말하는 모습에 아셀은 녀석의 안에 있는 자유로운 영혼이 슬슬 깨어나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좀 더 강해지면 데려가 주마.”
“약속이에요. 그리고 형.. 이건 그동안에 써본 악보들인데 한번 봐주시겠어요?”
수줍어하며 케락스가 건네준 악보들.
아셀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자작곡까지 만들 수 있는 건가?’
미래에 상황에 맞게 자작곡들을 만들어 사기적인 버프를 주었던 케락스의 모습이 잠시 떠올랐던 아셀은 케락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고맙다. 케락스.”
어느새 자신의 가슴까지 키가 자란 케락스에게 몇 가지 조언을 해준 후 아셀은 슬슬 자신이 목적으로 했던 곳을 향했다.
‘얼음 마녀만 제대로 봉인하면 당분간 문제없겠어.’
얼음 마녀가 봉인에서 풀려나고 거기에 겹쳐 제 3차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한 것.
아셀은 그 당시의 혼란과 수없이도 무너져내렸던 많은 왕국들을 떠올렸다.
‘이번에는 막아내야지.’
자신의 편안한 미래를 위해.
얼음 마녀는 앞으로 몇백 년은 더 갇혀 있어야 했다.
***
대륙의 북쪽.
있는 거라고는 눈과 그에 걸맞는 몬스터들. 이곳에 살아가는 존재들은 자연에 순응하며 변화된 바바리안들뿐이었다.
‘걔가 이 근처에 있었는데.’
바바리안들을 떠올리던 아셀은 불새 망토를 여미며 투신 카이나를 떠올렸다.
지금쯤 바바리안들을 통합하고 있을 카이나.
언젠가는 재능을 흡수해야 할 그녀였지만, 아셀은 아직 때가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재능을 쿠이가처럼 빠르게 얻을 사건이 얼마 후면 일어나기 때문에.
“조금 춥네.”
불새의 망토 같이 화속성 강화아이템을 두르고 있었기 때문에.
아셀은 얼음 마녀가 봉인되어 있는 빙하 대륙 [투드란]에 도착해서도 추위에 느끼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벌써 사라진 지 오래였다.
“분명 이 길을 따라가면 나오는데.”
얼음 마녀가 봉인되었던 장소.
그것은 후에 유저들에 의해 발견되었던 곳이었다. 봉인되었던 자리에 있던 거대한 빙하 덩어리.
그것이 박살 나 사방에 펼쳐져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이질적이고 경이로워 순식간에 유명해졌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온전한 모습으로 있으려나.’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아셀은 점점 더 거세지는 눈보라를 마주칠 수 있었다.
그것이 얼음 마녀의 봉인에 점점 가까워지는 것임을 아셀이 눈치채고 있는 것도 잠시.
그는 서 있고 있던 빙하가 우지끈거리며 순식간에 터져 나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빙하 사자..”
바다사자를 닮은듯한 모습의 몬스터들. 빙하 속에 살아가고 있던 녀석들이 아셀을 기습하기 위해 바닥에서 튀어나온 것이었다.
그 수만 5마리. 심지어 이것들은 모두 6성급 몬스터임을 아셀은 잘 알고 있었다.
크아아아!
녀석들이 괴성을 지르는 것과 동시에 눈보라 속에 모습을 감추고 있던 얼음 덩어리들이 아셀을 향해 쏘아지기 시작했다.
막을 수 있는 것은 어느새 수르트의 기운이 넘실거리는 아르테스로 막아내며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한 아셀의 몸 주위에는 불새 망토에서 터져 나오는 화염들로 가득했다.
“흐읍!”
말릭의 그림자를 불러들이고 있었기에. 순식간에 빙하 사자들에게 접근한 아셀이 검을 내려쳤다.
빙하 속에서 살아가는 몬스터들답게 단단한 자신의 가죽을 믿고 있던 빙하 사자들은 눈앞에서 단숨에 두 동강이 나버린 동료의 모습에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다.
치이이익. 잘려 나간 빙하 사자의 몸에 무언가 타는듯한 냄새와 소리가 났다.
수르트의 기운이 상극인 얼음 속성 몬스터에게 추가적인 피해를 입힌 것.
6성급 몬스터를 신성의 갑옷도 사용하지 않고 일격에 사냥한 아셀은 피식 웃으며 주춤거리는 빙하 사자들을 바라보았다.
“다른 녀석들도 빨리 튀어나오면 좋겠네.”
추가된 아르테스의 기능을 사용하는 지금. 아셀에게 이곳은 더 없이도 좋은 사냥터였기에.
6성급에 올라 제대로 채워지지 않고 있는 마나들을 순식간에 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일 것이 분명했다.
“마나 좀 빨리 올려야 하니까 말이야.”
몇 마리가 겁먹고 도망가는 것이 아셀의 눈에 들어왔지만, 눈앞에서 사냥감을 놓칠 아셀이 아니었다.
뒤돌아 도망치는 녀석들보다 빠르게 아셀이 빙하 사자들을 향해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아!
빙하 사자들의 비명소리가 가득해지는 것도 잠시.
아셀이 서 있는 곳에 더 강한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마치 그의 접근을 막으려는 듯.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벌이는 것처럼.
‘좀 더 추워지고 있는 거 같은데?’
빙하 사자를 향해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던 아셀 또한 점점 바뀌는 풍경에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