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강화
-6번째 코어를 만들 때 나는 어떤 거대한 손길이 휘감았었단다.
-그리고요?
-그리고 끝이었지. 이전처럼 코어를 늘려나갈 때는 전혀 경험해보지 않은 기억이었단다. 코어만이 바뀐 것이 아니라 많은 것이 바뀌었거든.
‘스승..’
아셀은 자신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고통스러움에 스승 말릭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6번째 코어를 만들 때 어떤 일이었는지 지나가면서 말했던 기억들.
말릭은 그저 한순간에 모든 것이 끝이 났다고 설명했었다.
‘이건,,’
코어는 6개가 만들어졌다.
처음 아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거대한 소음과 함께 코어가 6개의 코어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상한 것은 그것에서 나오는 거대한 마나들이 아셀의 의지는 상관없이 거칠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사실들이었다.
‘조절해야 해!’
눈을 번쩍 뜨며 아셀은 어떻게든 코어에서 터질 듯 나오는 마나들을 통제하려고 노력했다.
이대로 마나들이 아셀의 몸 안에서 미쳐 날뛴다면 그의 몸은 산산조각 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흐읍!’
미처 통제하지 못한 마나들 중 하나가 아셀의 오른팔을 완전히 박살 냈다.
뼈들이 순식간에 잘게 부서지는 고통에 일순간 정신을 잃을 뻔한 아셀은 입술을 씹으며 고통을 참아냈다.
‘치료하면 돼.’
뼈가 잘게 부서졌지만, 치료하면 된다는 자기암시로 아셀은 마나들에 통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마나들은 마치 아셀과 같았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아셀은 자기 자신과 싸우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다채롭다.’
어쩔 때는 강하게 나오던 것이 한순간 유연한 움직임을 보여주며 아셀의 통제를 벗어나려고 하는 모습이 나타났기 때문에.
점점. 아셀은 자신의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그림자 재단을 유지하고 있는 유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데서 온 것을 알아차린 아셀은 이빨을 까득일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흘렀단 말이야?’
쿠이가와의 동기화가 98%였기에 하루종일 그림자 제단을 유지해도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건만, 벌써 그림자 재단이 끝나간다는 것에서 아셀은 시간이 생각 이상으로 흘러감을 알 수 있었다.
‘이러면...’
차라리 통제하는 마나들을 한곳에 집중시켜 완벽하게 소멸시키자는 생각이 아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신체 중 어느 한 곳은 완전히 박살날 것이 분명했지만, 목숨만은 건질 수 있을 게 분명했으니까.
‘망할.. 편안하게 살려고 하는 내 계획이!’
게임 속에 들어오며 세웠던 계획이 머릿속에서 떠오른 것도 잠시.
아셀은 박살 났던 오른팔들의 뼈들이 일순간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뼈들이 자리를 잡고 그 안에 통제하지 못한 마나들이 마치 코팅을 하듯 덮는 모습.
아셀은 자신의 오른팔의 뼈들이 이전에는 느끼지 못한 유연함과 강인함 두 가지 모두를 가지게 되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신체의 재구성?’
들어보지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셀은 스승 말릭이 6코어를 만들고 변한 것을 이야기했을 때의 기억을 다시금 떠올렸다.
‘코어가 바뀐 것이 아니라 많은 것이 바뀌었다.’
코어가 새로 생긴 것보다 다른 많은 것이 바뀌었다는 것.
아셀은 자신처럼 말릭 또한 신체를 재구성하는 것을 경험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차이점이 있다면 말릭의 무의식 속에서 고통 없이 끝난 반면 아셀은 모든 고통을 느끼며 신체를 재구성 해야하는 상황이라는 점뿐.
‘이렇다면.’
코어 안에는 아셀이 겨우 통제하고 있던 마나들이 가득했다.
이것을 일순간 풀어준다면 사방으로 날뛰며 오른팔에 했던 것처럼 박살 내고 다시 만들 것이 분명한 상황.
아무리 아셀이라고 하지만 전신이 박살 나는 고통 속에서 정신을 잃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심지어 직감은 여기서 아셀이 정신을 잃게 된다면 박살 난 뼈들은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을 것을 예감해주고 있었다.
‘우선 왼팔이다.’
그렇다면 하나씩. 아셀은 마나들을 왼팔로 이동시키자 마나들은 아셀의 왼팔의 모든 뼈들을 박살 내기 시작했다.
‘버틴다!’
어느새 아셀의 눈에는 독기가 가득했다.
이것을 어떻게든 버티겠다는 의지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나갔기 때문에.
***
그 이후로 몇 시간이 흘렀는지 몰랐다.
확실한 것은 아셀은 자신의 몸 안에서 터질 듯 넘실대던 마나들이 어느 순간 잠잠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라?”
[신체 재구성을 완료했습니다.]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가 아셀이 신체의 재구성을 마쳤다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손을 쥐었다 펴본 아셀은 이전보다 더 거대한 기운들이 저절로 손안에 모여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심지어 지금은 그 어떤 그림자도 사용하지 않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신체의 재구성이 게임에서 처음 설정한 재능들을 이겨낸 것이 분명했다.
“재능은 바뀐 게 없어.”
본인의 상태를 확인하던 아셀은 처음 설정했던 재능들에서 변한 게 전 혀없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손에 힘이 들어가고 미약하지만 마나들이 흐르는 것.
이 상태에서 그림자를 운용한다면 분명 거대한 기운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재구성 그렇구나. 어째서 유연함과 강함이 동시에 존재하게 되었는지 알겠다.’
슬쩍 투마리스의 그림자를 불러일으켜 본 아셀은 자신의 몸이 그것에 맞춰 저절로 긴장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양한 재능들을 이용했기 때문에. 몸을 재구성할 때 거의 대부분의 장점들이 들어간 것이 분명했다.
‘사용해보고 싶다.’
고통이 가득했던 기억은 어느새 이 새로운 몸을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셀이 느끼기에도 지금 자신의 몸상태는 그 어느 때보다 최고였으니까.
“그전에 여기부터 치우는 게 좋겠지?”
잠시 주위를 둘러보며 어깨를 으쓱거린 아셀은 쿠이가의 그림자를 불러들였다.
마법의 도움으로 청소와 샤워 정도는 간단히 해결할 수 있었으니까.
***
“어.어라?!”
“와아 아셀형! 뭐에요. 정말 형 맞아요?!”
아셀이 한스의 공방에 다가가자 로니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주먹밥이 가득 담겨있던 쟁반을 놓칠 수밖에 없었다.
“아.아셀 오빠 정말 오빠야?”
로니는 아셀에게 가까이 다가와 살펴보기 시작했다.
원래도 잘생겼다고 말할 수 있는 얼굴이었지만, 신체를 재구성하니 피부는 엘프들처럼 새하얗게 변했으며 염색되어 있던 머리는 다시금 윤기 있는 아쿠아색으로 변한 상황.
게다가 이목구비 또한 뚜렷해졌기에. 로니는 아셀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나지 그럼 누구게. 스승님하고 토니는 안에 있는 거지?”
“어.. 어 어제 용광로가 만들어졌는데 삼 일 동안 오빠가 안 나와서 다들 걱정하고 있었어.”
‘삼 일인가.’
아셀은 자신이 삼 일 동안 방안에 가만히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간 것을 느끼자 급격하게 배가 고파진 아셀이 땅에 떨어진 주먹밥을 자연스럽게 주우려고 하자 로니는 놀란 눈으로 허겁지겁 아셀을 바라보았다.
“내가 내가 다시 해줄게! 더러워진 거 먹지 마!”
“괜찮은데.”
“안 돼! 영감이랑 드워프 아저씨랑 얘기 좀 하고 있어 금방 만들어줄 테니까!”
일손이 부족한지 눈을 반짝이며 아셀을 바라보던 케락스를 끌고 부엌으로 향하는 로니의 얼굴이 어쩐지 조금 붉어진 것을 아셀은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거 미치겠군... 대협 혹시 삼 일 동안 성형 마법이라도 펼친 겁니까?”
“대단하구나 아셀.”
공방 안에서도 한스와 토니는 아셀을 바라보며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토니는 외형을 보고 놀란 것이라면 한스는 아셀의 몸 전체에 퍼진 마나들에 놀란 것이었다.
“선인들께서 너를 보면 자랑스러워할 거다.”
“기대에 부합해야죠.”
어느새 아셀이 한스의 그림자를 불러들이자 그의 손에서 자연스럽게 한스의 마나들이 새어 나왔다.
이전에는 의지에 부합하여 코어에서 마나들을 뽑아냈다면. 지금은 몸과 코어가 하나라도 된 듯 자연스럽게 새어 나온 것.
‘이거 불편한데.’
모든 그림자들의 고유마나와의 친화력이 미친 듯이 높아졌지만. 아셀의 입장에서는 조금 다듬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아셀이 그림자를 불러들일 때마다 이렇게 고유한 마나들이 새어 나온다면 상대는 단숨에 아셀이 그림자라는 사실을 눈치챌 게 분명했기 때문에.
“이게 용광로입니까 스승님?”
“토니의 덕이 컸다.”
그새 말을 놓은 것인지 한스가 토니를 칭찬하자 토니는 잠시 우쭐하는 표정을 아셀에게 지어 보였다.
“어떠십니까 대협. 뭐 지하세계에 있는 드워프들의 용광로에는 조금 못 미치지만, 그래도 인간들이 사용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게 분명합니다.”
“글쎄다.”
지하세계에 있는 용광로, 그러나 아셀은 지금 용광로 안에 있는 고대 드워프들의 용광로 정수가 제대로 힘을 발휘하는 순간 토니는 분명 자신의 말을 후회할 것이 분명하다고 자신 할 수 있었다.
“작업은 바로 시작하실 겁니까?”
“기다릴 필요가 있겠느냐. 어서 아르테스를 강화하자꾸나.”
“이번에도 이 토니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어서 새로 만든 용광로를 사용해 아르테스를 강화하고 싶은 열망에 차 있는 한스가 어린아이 같은 눈으로 아셀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아셀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아르테스를 올려두며 근처에 걸려있는 망치를 들어 올렸다.
“스승님께서 먼저 지도해주시지요. 보조하겠습니다.”
아셀에 말에 고개를 끄덕인 한스가 용광로에 불을 지피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공방 안에 용암 속에 온 듯한 열기가 가득해졌다.
“어.어라 어떻게 이런 화력이 나올 수 있는 거지!?”
그 모습에 용광로를 설치한 토니는 믿기지 못하고 두 눈을 크게 떳다.
단숨에 나온 화력은 지하세계에 있는 드워프들의 용광로 그 이상이었기 때문에.
“놀랍구나...”
한스마저 느껴지는 열기에 감탄하듯 중얼거린 것도 잠시.
그는 용광로 안에 수루트의 심장을 넣으며 그것이 녹기를 기다렸다.
‘토니는 저걸 자신의 무기에 장착했었지.’
한스처럼 가공하지 않고 그저 무기에 붙인 것만으로도 무기가 휘둘러질 때마다 용암이 터졌으며 바닥에 내려치면 거대한 용암이 솟아올랐었다.
아셀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저것이 가공되어 아르테스에 부여될 능력이 어떤 것일지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빨리 끝나겠구나.”
한스가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녹아 내려가기 시작한 수르트의 심장이 주홍빛 용암의 형태로 축출되기 시작했다.
“정신들 집중하거라.”
그 모습에 머리를 묶으며 한스는 어느새 명장의 눈빛으로 변해있었다.
“잘못하다가는 아르테스가 고철이 될수 있을 테니까.”
“?!”
한스의 말에 아셀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잠깐만 그러고 보니까..’
페이크 월드.
유저들의 뒤통수를 제대로 치는 스토리 말고도 이 게임은 장비 강화 성공확률이 극악일 정도로 낮다는 것이 유명했다.
오죽하면 몇십억짜리 아이템이 산산조각 났다는 동영상이 수천 개나 인터넷상에 존재했을 지경이었기 때문에.
‘아니겠지?’
아르테스를 녹일 듯 그 위에 쏟아지기 시작한 수르트의 심장.
한스가 그림자 망치술을 펼치기 시작하자 공방 안이 순식간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스승이 진심을 내기로 결정한 것에 조금 안심하며 아셀 또한 자신의 망치를 들어 올렸다.
“손 안 미끄러지겠지...?”
“대협 왜 그런 불길한 말을 중얼거리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