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창고
아셀의 마나들이 쿠이가의 코어 안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10개의 거대한 코어에 비하면 미미한 정도의 마나들.
그러나 익면조와의 힘겨루기가 팽팽한 와중 들어온 아셀의 마나는 균형을 단숨에 뒤집기 충분했다.
‘아셀.. 자네..’
묻고 싶은 말이 가득한 눈빛으로 쿠이가는 집중하고 있는 아셀을 바라보았다.
단순히 마나를 타인에게 불어넣는 것은 손쉬운 일이었다.
밀크에 중독된 중독자들의 약 기운을 마나를 몸 안에 불어넣는 것으로 잠시나마 약 기운을 몰아냈으니까.
그러나 타인의 마나를 코어 안에 흡수해 사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
쿠이가는 그러한 것이 가능한 몇 가지 마법들을 알고 있었으나 그것들 대다수가 흑마법과 관련되어 있거나 지금 아셀이 하고 있는 것처럼 단순히 마나를 보내는 것처럼 간단한 것들이 아니었다.
‘당연한 거지 이건.’
혼란스러워 하는 쿠이가와 다르게 아셀의 표정은 평온하기만 했다.
애초에 쿠이가의 그림자를 가져와 그의 재능을 사용하고 있기에.
아셀에게 모여드는 마나들의 형태와 코어에서 뿜어내는 마나들 모두 쿠이가의 것과 전혀 다르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에.
[이..럴.. 수가...]
점점 자신을 꿰뚫기 위해 다가오는 쿠이가의 마력광선을 바라보는 익면조가 처음으로 인간의 목소리를 냈다.
그 목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난 쿠이가는 지팡이를 잡고 있는 손에 더욱더 힘을 주며 익면조를 노려보았다.
“네놈에게 놀아난 지난 300년. 마탑의 자긍심을 드디어 회복하겠다.”
[대계가... 새로운 세상이 눈앞이거늘...]
쿠이가의 마력 광선이 익면조의 머리를 관통하는 것과 동시에 이마에서 주르륵 흘러내린 검은 피들이 마치 녀석이 우는듯한 모습을 아셀에게 보여주었다.
[대계가... 마법의 세상이...]
마지막으로 세상에 목소리를 내었던 익면조 아나 쿠욘은 그 명성에 걸맞지 않을 정도로 허무하게 쓰러졌다.
‘이건 다르지 않나.’
미동도 하지 않는 쿠욘과 마치 자신이 잡은 것처럼 단숨에 코어 안을 가득 채운 마나를 바라보며 아셀은 턱을 쓰담었다.
게임을 플레이했을 적 속삭임의 파랑스를 토벌할 때 익면조는 그저 중간 보스격 몬스터 그뿐이었다.
유저들의 손에 죽은 익면조를 보고 속삭임의 파랑스가 분노를 터트렸던 것만 기억에 남은 것.
아셀은 잠시 익면조의 시체를 바라보며 피식 웃어 보였다.
‘너도 속은 거야.’
대륙의 존재들이 파랑스의 간계에 속아 그림자들이 탄압받는 것처럼.
쿠욘 또한 속삭임의 파랑스의 꼬드김에 넘어가 결국 이성을 잃고 한낱 몬스터로 전락한 게 분명했다.
“아셀.”
모든 싸움이 끝이 났기에. 묻고 싶은 말이 가득한 눈빛으로 쿠이가는 잠시 아셀을 바라보았지만 이내 씨익 웃으며 아셀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자네 덕분에 마탑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네.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는군.”
쿠이가의 말에 아셀은 마탑이 가지고 있는 사기적인 아티펙트 몇 가지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월광? 아니지 아니지 새벽의 나룻배? 그걸 벌써 여기서 만들었던가?’
“뭘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역시 대마법사의 자질 충분하구만 자네는.”
잠시 얼굴에 드러나는 욕심을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아낸 아셀은 헛기침을 내뱉으며 쿠이가를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저거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익면조의 시체를 가리키며 아셀이 묻자 쿠이가는 조금 슬픈 눈동자를 지어냈다.
“마법사답게 조사해야겠지.”
“그런가요?”
마법사답게 조사.
아셀은 몬스터들의 사체를 어떻게 마법사들이 조사하는지 잘 알고 있기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냈다.
‘어쩌면 빠르게 일이 진행되겠어.’
속삭임의 파랑스. 유저들이 녀석에게 속은 존재들을 알아차리는 것.
게다가 후에 세상을 멸망 직전까지 내몰았던 마룡들의 침공.
그것들의 원인을 알아차릴 수 있던 것은 익면조의 시체를 조사하고 나온 결과물들이었으니까.
“저것에서 원히는 물건들은 자네에게 우선적으로 주겠네.”
“그럼 심장을 주시죠.”
자신의 제안에 단숨에 대답하는 아셀을 바라보며 쿠이가가 피식 웃어 보였다.
무려 10성급 몬스터의 사체 중 가장 값어치가 나가는 심장을 달라고 한 것.
그 모습에 쿠이가는 아셀이 어디 가서든 손해 보고 살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약속은 약속이니..”
“아참 그리고 마탑에 아티펙트 저장소 있잖아요. 이따 거기도 들어가 보고 싶은데 말이죠. 그리고 약초들 기르던 곳이 지하였나요? 거기랑 광석을 희귀 금속류가 3층이었나...”
“.....”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마탑의 귀중품 보관소를 아셀의 모습에 쿠이가는 점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아니지 제가 좀 이따가 목록을 정리해서 올려드릴게요. 그러면 주시는데 더 편하실 거예요.”
“어.. 음. 자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나는 그냥 일개 공방장이라...”
“에이 이 난리를 치셨는데 설마 아직도 공방장으로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아니면 저한테 그깟 아티펙트 약초 희귀 금속 주시기가 싫으셔서 그런 건가요?”
아셀이 진심으로 서운하다는 눈빛으로 쿠이가를 바라보자 쿠이가는 허리까지 기른 수염을 부드럽게 쓸어넘기며 아셀을 바라보았다.
“혹시 자네 마탑을 거덜내려고 하는 겐가?”
자신의 진지한 물음에 그저 히죽 웃기만 하는 아셀을 보며 쿠이가는 진심을 걱정되기 시작했다.
‘내가 괜한 말을 했나?’
어떻게든 보답하겠다는 자신의 말이 이렇게 다가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쿠이가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졌다.
“아니지?”
***
쿠이가가 마탑의 층장들과 뒷정리를 하는 와중.
아셀은 마탑의 보관소 앞에 서 있었다.
‘뭘 가져가야 하지?’
그의 입가에 침이 흘러내리려는 것을 참아내며 아셀은 굳게 닫혀 있는 거대한 문을 바라보았다.
-금속이나 약초는 얼마든지 가져가도 좋지만. 아티펙트는 두 가지로 허락하겠네.
이곳에 오기 전 층장들과 아셀에게 어떤 보상을 줄지 고민하던 쿠이가는 결국 마탑이 보관하고 있는 아티펙트 두 가지를 아셀에게 주기로 결정했다.
‘사실 하나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지.’
게임을 하면서 마탑이 얼마나 퀘스트 보상에 인색한지 잘알고 있던 아셀이었기에.
그는 단 하나의 아티펙트를 쿠이가가 허락할 거라 예상했었다.
그러나 그보다 두 배인 무려 두 가지.
수많은 유저들이 마탑의 퀘스트를 해결하고 이곳에 왔을 때 하나 이상의 아티펙트를 가지지 못했기에.
아셀은 지금 자신이 얼마나 많은 특혜를 받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거 멋지네.”
아셀이 게임을 플레이했을 때도 이곳에 들어온 적이 딱 한 번 있을 정도.
쿠이가가 건네준 보관소 출입증을 거대한 문에 가져다 대자 문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수많은 자물쇠들이 풀리기 시작했다.
철컥. 수만 개에 달하는 자물쇠 중 겨우 마지막. 아셀은 맨 위층에 있는 가장 큰 자물쇠에서 나오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과 동시에. 활짝 열린 문 사이로 나온 풍경에 아셀은 결국 참지 못하고 침을 뚝뚝 떨어트리고 말았다.
“하하... 이거 이건 노도의 정령학! 이거 가지고 있으면 무조건 번개의 정령왕과 계약인데!.”
“와아 이게 벌써 만들어졌었어? 뇌검 우르스?! 이게 아마 7성급 번개 마법들을 담고 있던 검이었나?”
거대한 벽면들 가득히 수많은 마탑의 아티펙트들.
아셀은 게임을 플레이했을 적에 알고 있던 아티펙트들 몇 가지를 직접 사용해보았다.
“흠.. 어떤 게 좋을까.”
아셀은 어느새 한스의 그림자를 불러들인 상태였다.
한스의 감정안.
그것이라면 게임 속에서라도 미처 알려지지 않았을 아티펙트를 찾아낼 수 있을 게 분명했으니까.
‘분명 그럴 거야..’
마탑의 퀘스트를 해결하고 이곳에 들어온 유저들의 수는 적었기에.
아셀은 분명 자신이 예상한 대로 세상에 미처 알려지지 않은 아티펙트를 찾아낼 것이라고 확신했다.
“우선.”
그중 아셀은 이곳에 오기전 이미 확정적으로 생각해둔 아이템 하나를 찾기 위해 두 눈을 번뜩였다.
잠시 수많은 아티펙드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던 아셀은 자신이 가지려고 했던 아티펙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 있네 [사출의 주머니.]”
한쪽에 아무렇게나 버려지듯 놓여있는 작은 포댓자루 같은 주머니.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고 있는 아이템이었지만, 아셀은 저것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 잘 알고 있었다.
[사출의 주머니.]
[왕급 아이템.]
[이름조차 사라진 실력 있는 마법사가 만든 아공간 주머니입니다.]
[사용자의 의지에 부합해 내용물을 토해냅니다.]
아공간 주머니.
그것 자체라도 이미 희귀한 아티펙트이며 값비싼 아티펙트였다.
그럼에도 사출의 주머니가 더욱 특별한 것은 이것은 내용물을 사용자의 의지에 부합해 토해내기 때문.
수많은 무기들과 옷들을 사용하거나 입어야 하는 아셀에게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한 아티펙트였다.
‘어디 한번..’
사출의 주마니에 황금활 기온과 신검 아르테스를 아셀이 집어넣자 들어갈 것 같지 않은 작은 주머니 안에 두 가지 모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온.’
안에 내용물이 들어간 것을 확인한 아셀이 마음속으로 황금활 기온을 떠올리는 것과 동시에 주머니가 활짝 열리며 황금활 기온이 튀어나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괜찮은데?”
아티펙트가 제대로 작동되는 것을 확인한 아셀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무기들을 모두 한번 주머니에 넣고 시험해 보았다.
역병의 할버드, 기타. 신검 아르테스. 한스가 챙겨준 망치들.
모두 아셀이 바라는 대로 단숨에 나왔기에.
그는 앞으로의 싸움에서 사출의 주머니의 활용 방법을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럼 다음에는 어떤 게 좋으려나...”
이 안에 들어있는 아티펙트들만 해도 수만 개가 넘었다.
마탑에서 만든 것들이 대다수지만 마법사들이 그동안 대륙을 떠돌며 얻은 아이템들도 존재하는 상황.
그중 아셀은 게임을 플레이하며 얻은 정보들을 토대로 사기적이라 평가받던 아이템을 추려보기로 했다.
“거석의 도끼. 그리고 라딘의 양탄자...”
대지의 기운을 품고 있는 거석의 도끼와 평범해 보이는 양탄자.
하나는 내려칠 때마다 바위들이 터져 나오는 무기였으며 라딘의 양탄자는 비행선들보다 빠른 탈 것이었다.
‘고민되네...’
이것 외에도 진실의 거울. 우라노스의 건틀릿. 야마타의 신궁. 같은 사기적인 아이템들을 나열하며 아셀이 고민에 잠겨 있던 것도 잠시.
그는 14-B라고 적힌 팻말을 지나치던 중 자신의 코어가 미약하지만 움찔거린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응?”
마치 무언인가에 끌리듯 코어가 움찔거린 것.
처음 격는 일이었기에. 아셀이 호기심을 가지고 천천히 14-B 안에 있는 아티펙트들을 살펴보았다.
“뭐가...”
감정안으로 살펴본 결과 사용할만한 것은 요정목으로 만든 바이올린뿐.
잠시 착각한 것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던 와중 아셀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검은색 부츠를 발견한 순간 자신의 코어가 미친 듯이 회전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어?”
아셀마저 처음 보는 아이템.
그러나 그가 검정색 고급진 가죽으로 만들어진 부츠를 감정안으로 확인하는 순간.
그는 어째서 자신의 코어가 이것에 끌렸는지 단숨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건 흥미로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