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너 내 제자로 들어와라
[동기화가 올랐습니다.]
[동기화가 올랐습니다.]
[동기화가 올랐습니다.]
“하하. 이 영감 오늘도 감사합니다.”
아셀은 오늘도 문제를 풀고 올라간 동기화에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벌써 21%의 동기화가 오른 상황.
외적 내적 두 가지가 동시에 오르고 있으니 빠르게 오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쿠이가와의 동기화가 올라갔기에.
아셀은 이제 자연스럽게 몇 가지 마법을 부릴 수 있게 되었다.
손으로 내일도 부탁한다는 듯한 글자를 남기고 자리를 벗어나 도서관에서 하루종일 책을 보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것.
아셀이 이곳에 오고 나서 매일 반복하는 일과였다.
‘참 방생형이란 말이지.’
마법에 재능이 있어 마탑에 들어온 모든 마법사들의 재능이 개화되는 것이 아니었다.
마탑 안에서 어떤 공방에 들어갈지 어떤 스승의 선택을 받을지는 모두 그들의 노력에 따라 달렸으니까.
“지난번에 자네의 재능이 높은 거 같은데. 어떤가 자네를 좀 더 이끌어주고 싶은데?”
“우리 공방에 들어오는 게 어떤가? 1년 안에 주임 직위를 주겠네.”
아셀 또한 몇 차례 제자로 받아주겠다는 말과 공방으로 스카웃 제안을 받은 상황.
보통 같으면 몇 년간 이곳에서 선택되기를 기다려야 하는 게 보통이었지만, 아셀의 경우 이미 이곳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재능이 입증된 존재였기에 가능한 모습들이었다.
‘내일은 어떤 문제를 내주려나.’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아셀이 다음날도 벽면에 적혀있는 새로운 문제의 답을 새겨 넣고 있을 때였다.
“잡았다 이놈!”
문제의 답을 적어내고 있던 아셀은 어디선가 자신의 손목을 붙잡은 쿠이가를 바라보며 눈을 껌뻑였다.
“이 도둑놈! 이제야 잡는구나!”
‘쿠이가!’
마족들을 상대로 장기인 백색 태양을 날리고 하늘에서 운석을 떨어트리던 그의 놀라운 마법들이 한순간 아셀의 기억 속에서 슬그머니 나타났다.
“뭡니까?”
반가움과 그의 재능을 흡수하라 즐거움을 최대한 숨기며 아셀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쿠이가를 바라보았다.
“뭡니까?! 뭡니까?! 네놈이 지금 무슨 짓을 벌였는지 아느냐?!”
“무슨 짓을 했는데요?”
“허어 이놈이!”
그의 몸에서 터져 나오는 푸른 마나들의 기운들에 의해 마탑의 벽면에 금이 가는 모습이 나타났다.
“진짜 웃기신 분이네. 문제가 벽면에 나타났고 그 탑을 적었는데 그게 이상한 일인가요?”
“답을 적어? 이 녀석아 이걸 연산 과정도 없이 답만 적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더냐?”
“문제가 쉬워서 그런가 보죠.”
“문제가 뭐..?”
생각지도 못한 말에 쿠이가는 눈을 껌뻑이며 아셀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문제가 쉬워서 그냥 풀었는데 그게 이상해요?”
“아니 그건 아니지만..”
“아니면 영감님은 이걸 연산과정을 거치면서 풀어야 하나 보죠?”
“절대로 아니지! 나는.. 나는 5초면 풀 수 있다.”
“그러면 된 거네요. 이상한 거 아니죠?”
쿠이가의 말에 아셀이 씨익 웃어 보이자 그는 잠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아셀을 바라보았다.
그가 지금까지 살면서 자신에게 이렇게 당돌하게 말하는 존재는 한 명도 만나보지 못했기에 나온 행동이었다.
“어.. 그래.. 이상한 건 아니지.”
“그럼 저 이제 가도 될까요? 그리고 다음에는 좀 더 어려운 문제 내주시고요.”
쿠이가의 팔을 풀고 아셀이 자리를 떠나려고 했지만, 그는 절대로 놔줄 것 같지 않은 쿠이가의 팔에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저어 영감님?”
“일단 네놈 나랑 같이 가자꾸나.”
“뭐. 뭐요?”
일순간 아셀은 자신의 발밑에 마법진이 생기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공간이동? 허 참 이 영감은...’
마탑 내에서 공간이동은 불가능했다. 그런 상식을 무시하고 공간이동 마법진을 완벽하게 만들어낸 것.
아셀은 어떻게 자신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쿠이가가 자신의 손목을 낚아챘는지 알 수 있었다.
눈을 잠깐 깜빡였다가 뜨고 나니 아셀은 쿠이가의 공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천장에는 하늘의 별자리를 구현한 것 같은 모습들이 펼쳐졌으며 공방의 어느 곳에서든 마법서들과 양피지들이 쌓여 있는 모습들.
심지어 거대한 드래곤의 뼈 위에도 양피지들과 쿠이가가 사용하는 아티펙트들이 올려져 있었다.
“아니 영감님. 이렇게 사람을 납치해도 되는 건가요?”
게임에서 몇 차례 놀라운 모습을 보여준 아티펙트들에서 시선을 겨우 떼어내고 아셀이 쿠이가를 바라보자 그는 책상 위에 올려진 양피지 위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이 영감님이?!”
“풀어 보거라.”
아셀이 발끈하자 내민 양피지에 가득 쓰여있는 수식들. 처음 보는 수식이었으나 높아진 쿠이가와의 동기화가 그것에 대한 정답을 아셀의 머릿속에 바로 떠올리게 만들어주었다.
“3422네요. 맞혔으니까. 저 이제 가도 되죠?”
단숨에 정답을 맞힌 아셀을 바라보며 쿠이가가 잠시 눈을 껌뻑였다.
“네가 풀어낸 수식이 뭔지 아느냐?”
쿠이가가 긴 수염을 쓸어넘기며 아셀을 바라보았다.
“모르겠는데요?”
“내가 만든 8성급 마법인 병마갱용이라는 마법이다. 내 오리지널 마법이라 이 세상 그 누구도 모르는 마법이지.”
쿠이가의 말과 함께 아셀과 그의 주변에 흙을 만든 병사들 수백 명이 갑자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제대로 주문을 완성하면 수천 개도 만들 수 있다.”
“와아.. 영감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영감님은 흙으로 병사도 만들고 그걸 수천 개나 만드실 수 있다고 어린애한테 자랑하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요.”
“이 수식에는 비밀이 있는데 어떻게 풀어낸 거지?”
쿠이가가 소환한 흙의 병사들이 일제히 아셀에게 무기를 겨누었다.
“나 말고는 그 누구도 풀 수 없는 수식이었다. 마법사들에게 있어 자신의 마법이 유출되는 건 절대로 안 되니까 말이다.”
흙의 병사들 하나하나가 거대한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최소 7성급들. 이런 것을 수천 개나 만들 수 있다는 쿠이가의 재능에 아셀은 다시 한번 온몸에 전율이 일어났다.
‘역시 모두 흡수해야 해.’
“그냥 보여서요.”
“그냥 보여? 말도 안 되는...”
쿠이가의 말을 무시하며 아셀은 방안 한구석에서 양피지 하나를 들어 보이더니 무언가 빠르게 적어내기 시작했다.
“네놈 지금 뭐하는?”
“이거 한번 풀어보세요.”
아셀이 내민 수식들을 바라보며 쿠이가의 눈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이게 어떻게?”
쿠이가 본인만 풀 수 있게 만든 수식의 트릭들.
그것이 모두 집대성되어 있는 수식이 지금 자신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기 때문에.
‘이것들 모두 쿠이가가 세상에 알린 거지.’
정확히는 몇 년 후에 마탑주에 올라 세상에 알린 것.
마족들의 침공에 맞서 유저들에게 마법을 알려주던 쿠이가가 자연스럽게 알려준 것들이었다.
“이거.. 그래.. 이거..”
잠시 아셀의 수식을 받아 뻔히 받아보던 쿠이가의 손에 작은 불꽃이 만들어졌다.
어린아이 주먹만 한 불꽃.
아셀이 처음 이곳에 와서 보여준 리타의 불꽃과 똑같은 것이었다.
[동기화가 올랐습니다.]
[동기화가 올랐습니다.]
이번에도 동기화가 3%나 올랐기에. 아셀은 입가에 진한 미소가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아셀에게 무기를 겨누고 있던 병사들은 모두 사라진 상황.
쿠이가는 그저 무언가를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아셀을 바라보았다.
“이제 볼일 없으면 저 그냥 가고 싶은데요?”
“.. 그래 내가 그럴 나이가 되었지.”
“아니 영감님은 남의 말을 원래 이렇게 안 듣는 분이신가요?”
어차구니 없는 표정을 짓던 것과 다르게 쿠이가는 드래곤의 본 위에 아무렇게나 벗어두었던 로브와 챙이 넓은 가죽 모자에 요정목으로 보이는 지팡이를 한손에 들고 왼손에는 자신이 집필하고 있는 마법서까지 들어보이는 모습으로 아셀의 앞에 나타났다.
아셀이 기억하기로 쿠이가가 저런 완전 무장 차림으로 나타났을 때는 마족과 관련된 일들 뿐이었다.
“클클.. 영광인 줄 알거라.”
“뭐가요?”
쿠이가의 지팡이에서 마나가 잘게 부서지며 마치 눈이 내리듯 하늘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쿠이가가 벌인 행동들.
그러나 아셀은 도대체 저런 행동들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느새 노래까지 트셨네?’
방안 가득히 마치 숨어 있던 악사들이 노래를 부르는 듯한 소리까지 들려오는 상황.
자세히 들어보니 아셀은 그 곡이 [마법사와 드래곤들의 만남]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설마 자기가 드래곤 쯤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게임에서 만난 쿠이가는 현자 그 자체였다.
마탑의 폐단을 모두 개혁하고 마법을 배우기 힘들어 하던 유저들에게 마탑의 지식을 공유해주었으니까.
그런 쿠이가의 모습을 봐왔던 아셀은 지금 나잇값 못 하는 행동을 하는 영감이 자신이 기억하는 쿠이가가 맞는지 의구심마저 들었다.
“아셀, 마나에게 사랑받는 존재이자. 마법의 극의에 가장 가까운 남자. 심연과 마주하고 있으며 정령들과 드래곤들조차 경외하는 이 대마법사 쿠이가님의 제자로 들어오겠느냐?”
“영감님.. 그런말 본인이 하면 안 부끄러우세요?”
아셀의 말에 잠시 쿠이가의 눈썹이 씰룩거렸지만 다시금 인자한 미소를 지어냈다.
그는 절대로 아셀이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을 테니까.
제자로 들어오면 예절 정도는 교육하면 그만이었으니까.
‘제자라....’
쿠이가가 뿌려대는 마나의 가루들이 점점 아셀의 눈앞을 가리기 시작했다.
아셀이 뜸을 들이는 것에 쿠이가가 점점 불안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음... 죄송하지만 안 될 거 같은데요?”
“.... 뭐?”
진심으로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쿠이가가 눈을 크게 떴다.
그와 동시에 푸른 마나의 가루들이 붉은색으로 변했으며 들려오던 노래 또한 비극을 노래는 곡들로 변하는 상황.
아셀은 쿠이가가 준비한 마법들이 그의 감정에 따라 변하는 것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제자로 들어가면..’
쿠이가가 주는 지식들만 습득할 게 분명했기에. 지금처럼 빠르게 동기화가 올라가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의 승부욕과 탐구욕을 자극해서 서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 그것이 외적이든 내적이든 동기화를 동시에 올릴 수 있는 방법이었기에.
아셀은 더 생각하지 않고 쿠이가의 제안을 거절한 것이었다.
“영감님. 저 그럼 이만 가도 되죠? 그리고 내일도 어떤 문제를 내실지 저 기대하겠습니다.”
씨익 웃으며 충격을 받은 듯 멍하니 있는 쿠이가의 앞에서 손을 흔들며 아셀은 쿠이가의 공방에서 나갔다.
툭.
쿠이가는 자신의 집필서를 떨어트리며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게.. 이게 어떻게!”
그동안 제자를 받지 않았던 자신이 제자로 들어 올 영광스러운 제안을 했건만 거절한 것.
그 사실이 좀처럼 믿기지 않은 쿠이가는 도저히 이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의 지팡이에서 거대한 백색의 태양이 나타나 마탑의 벽면 한쪽을 박살 내고도 쿠이가의 분은 식을 줄 몰랐다.
“으아아아아 으아아아!”
폭발음조차 묻힐 만한 쿠이가의 괴성이 마탑 안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