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문제 풀기
쿠이가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마탑의 긴 복도를 걷고 있었다.
가끔 그를 발견하고는 빠르게 피하는 마법사들과 못 볼 꼴을 보았다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늘상 있었던 일이었기에.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보다 재미있는 일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마탑의 멍청이들아. 이것도 못 푸냐? 아니지 이건 저번에 했던 말이니까 다르게 해볼까?”
경지는 마탑주와 동급.
300년 넘게 살아온 마탑주와 동급이라는 사실은 쿠이가의 재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허나 그의 위치는 마탑의 각층장도 아닌 그저 그의 개인적인 공방장일 뿐.
그의 괴이한 성격과 독선적인 성격 때문에 마탑의 중추에 올라가지 못했다는 소리가 있었지만, 실상을 아는 자들은 이런 쿠이가의 처우에 안타까움을 드러낼 뿐이었다.
“어디 보자 어떤 멍청이들이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
벽면을 바라본 쿠이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지난주에 발견한 [공간진동과 마나의 관계]의 수식에 정확한 답이 그곳에 적혀 있었으니까.
“어라. 이번에 쿠이가 영감이 그냥 답을 적어둔 건가?”
“아니지 필체가 다르잖아 누가 풀었다는 소리야.”
“누가 풀었지 설마 마탑주님이 풀은 거 아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이거 맨날 지웠다가 썼다 하는 것도 일이잖아?”
쿠이가의 난제가 풀렸다는 소리에 이미 마탑의 수많은 마법사들이 진을 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개중에는 층장들까지 와서 답이 맞는지 확인하고 있는 상황.
그 모습에 쿠이가의 얼굴이 실시간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누가 감히..”
그의 노 기어린 목소리도 신경 쓰지 않은 채 답이 맞다는 것을 확인한 층장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동안 그들 또한 쿠이가에게 당한 것이 조금 많았기 때문에.
“정답이야 정답! 알로이스 자네가 이걸 풀었었나?”
“나는 자네인 줄 알았는데?”
“허어.. 설마 진짜로 마탑주님이?”
“하기야. 그동안 쿠이가 영감이 선을 넘기는 했.. 헙 쿠이가 선배님 언제 오셨습니까?”
소란스럽던 마법사들이 한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질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쿠이가의 눈치만 살피고 있을 뿐.
갑자기 이내 무언가 떠오른 쿠이가가 피식 웃으며 자신이 적어둔 문제에 걸어갔다.
“흥. 이번에는 그래도 조금 똑똑한 녀석이 있나보구나.”
슬쩍 손을 들어 올리자 벽면에 가득했던 문제들이 일순간 지워졌다.
모든 문제들이 지워지는 것도 잠시.
쿠이가는 무언가 떠오른 듯 씨익 웃어 보였다.
“아무래도 문제가 조금 쉬웠던 거 같아. 새로운 문제를 준비했는데 이번에도 다들 열심히 풀어주기를 바라네.”
벽면 한가득이 아니라 이번에는 천장을 넘어 바닥까지 퍼지는 문자들에 층장 마법사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고약한 심성의 노괴는 자신의 문제가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여러 가지 마법은 물론 저것을 건드릴 수 있는 건 마탑주와 쿠이가 본인일 뿐이었으니까.
“하아.. 한동안 돌아서 가야겠네.”
“우리 공방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는데 제길..”
주위의 마법사들의 절규를 들으며 웃음을 터트리며 자신의 공방으로 돌아가는 쿠이가를 유심히 보는 존재가 한 명 있었다.
“흐음.. 저기 로브에 있는 금실을 저렇게 하면 되겠구나.”
한 손으로는 초급 마법의 이해라는 책을 들고 있는 아셀이 쿠이가의 옷차림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
[대마법사 쿠이가의 로브를 착용했습니다.]
[그림자 재단사의 효과가 발동됩니다.]
[마나의 사랑받는 몸. 초인적인 수식연산. 인간을 초월한 마법 구상. 끊이지 않는 탐구욕이 발현됩니다.]
[동기화 : 5%]
[원단의 재료가 8% 동기화를 높여줍니다.]
개인실로 지급된 방안에서 아셀은 쿠이가의 로브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평범한 회색 천에 금색 수로 여러 가지 꽃을 넣은 후드.
아셀은 그것을 착용하자 몸 안에 미친 듯이 쌓여나가는 마나들에 흡족한 웃음을 지어냈다.
“재능의 차이지.”
아셀의 본래의 재능인 마나에게 혐오 받는 몸에서 사랑받는 몸으로 일순간 변했기에 나타난 효과들.
그는 코어 안에 들어오는 순도 높은 마나들을 느끼며 복도로 나왔다.
“오늘은 그 영감을 어떻게 골려줄까나.”
지난번 절대로 못 풀 거라 장담하며 천장과 바닥까지 만들어둔 문제를 아셀은 별다른 고민하지 않고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후에 답을 적어놨었다.
그 결과 다음 날 마탑이 뒤흔들릴 만큼 노기를 내뿜은 쿠이가가 평상시 볼 수 없었던 괴성까지 질렀다는 목격담이 울려 퍼진 것도 잠시.
그는 이번에는 며칠간 공방에서 나오지 않더니 아예 복도 전체에 수식을 채워 넣는 기행을 벌였다.
“아니 이거 너무한 거 아니야?”
“아에 복도를 지나가지 못하잖아 이거.”
“지금 층장님들이 모여서 마탑주님한테 갔다고 하니까 참아보자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쿠이가의 행동에 모두 고개를 한숨을 내쉬며 길을 돌아가고 있었다.
“어디 보자 이번에는..”
거대한 수식을 확인한 아셀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이번에도 그가 아는 수식.
[음파와 마력의 파동의 연관성]이라는 기나긴 수식이었다.
“이게 답이 25였나?”
긴 수식과 다르게 간단한 답.
아셀이 별다른 고민 없이 답을 새겨 넣으며 그 옆에 작게 글씨까지 남겨두었다.
-좀 더 어려운 것 좀 가져와 주세요. 재미없습니다.
쿠이가를 자극하기 위한 행동들.
아셀이 글씨를 적어두고 자리를 떠나려고 하는 것도 잠시.
그의 눈앞에 그도 예상하지 못한 메시지가 나타났다.
[동기화가 올랐습니다.]
[동기화가 올랐습니다.]
[동기화가 올랐습니다.]
‘어라?’
방금 수식을 풀고 쿠이가를 자극하는 것으로 3%의 동기화가 오른 것.
잠시 이것이 어떻게 된 건지 고민에 잠겨 있던 아셀은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내면과 외면 모두 해당되는구나.”
쿠이가의 승부욕과 연구욕을 자극했으며 그의 수식을 풀어냈으니 동기화가 올라간 것은 당연한 것.
아셀은 생각지도 못한 결과에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원래는 쿠이가를 꾀어내려고 한 건데..”
쿠이가에게 쉽게 접근하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한 방법.
그러나 아셀은 자신의 동기화를 올라갔기에 도서관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가벼울 수밖에 없었다.
“빨리 다음 문제 내주셨으면 좋겠네.”
***
펑!
마탑의 한쪽 벽면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처음 자신의 문제를 풀어내고 벌써 7번째.
쿠이가는 자신이 1주일간 고민해 만들어둔 수식이 완벽하게 풀려 있는 것에 분에 겨워 벽면에 그의 장기인 [백색 태양]을 날려버린 것이었다.
“서.선배님!”
“진정.. 진정하세요!”
그 누구도 쿠이가를 막을 수 없었기에.
층장들마저 멀찍이서 쿠이가를 달랠 수밖에 없는 상황.
몇몇 마법사들만이 마탑에 구멍을 내버린 쿠이가의 마법 능력에 경외심을 들 수밖에 없었다.
“망할 영감이...”
쿠이가가 어디론가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노년인 그가 영감이라고 부를 만한 존재는 세상에 단 한 명뿐.
“처음부터 이상하다 싶었어. 이 영감이 모두 지켜보고 답만 적어둔 거야.”
자신이 1주일간 고생한 문제를 하루가 되지 않아 답만 적어두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쿠이가는 누군가 자신의 연구를 미리 지켜보고 답을 적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존재는 세상에 단 한 명.
마탑의 마탑주뿐이었다.
“쿠.쿠이가님?”
마탑의 최상층.
일반적인 공방장들은 허락되지 않는 공간이었지만, 쿠이가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유였다.
그것을 알기에 입구를 지키고 있던 워메이지들의 단장 켈린이 눈을 껌뻑이며 쿠이가를 바라보았다.
“마탑주님을 만나러 왔다.”
“예? 아. 안 됩니다. 쿠이가님 지금 마탑주님은 취미시간....”
무려 8성급의 강자인 켈린이었지만. 쿠이가를 제지할 수도 없었다.
마탑주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쿠이가를 막을 수 없었으니까.
결국 옆에서 아등바등 거리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상황.
그런 켈린을 밀치며 쿠이가가 방문을 박살 내듯 안쪽으로 들어가자 새하얀 수염을 허리까지 기르며 드워프와 비슷한 키의 쿠욘이 분재를 하고 있었다.
“나이를 먹더니 예의는 잊은 게냐. 쿠이가?”
마탑주 쿠욘.
300년을 넘게 살아온 노괴이며 그 옛날 7용사들을 도와 마왕과 싸웠던 영웅.
세간에 그렇게 알려져 있는 쿠욘은 자르고 있던 나뭇가지를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바라보았다.
“네놈 때문에 어긋나있지 않느냐. 이걸 어떻게 할 거야?”
“그게 중요합니까?”
“이놈 봐라?”
씩씩거리는 쿠이가를 바라보며 쿠욘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탑주님 제가 말렸지만...”
“우선 나가 있게 켈린.”
손을 휘젓자 켈린은 낮은 한숨을 내쉬며 방안에서 나갔다.
“말해 보거라. 혹시 이제와서 마탑내에서 위치가 불만이라면..”
“그딴 건 관심 없고, 어째서 내 연구들은 훔쳤습니까?!”
쿠이가의 말에 쿠욘은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껌뻑였다.
“내가 네놈 연구를?”
“헛소리하지 마시오. 이 망할 영감탱이가 내가 마탑을 그냥 싸그리 불태우려다가 옛정을 생각해서 여기까지 왔으니까.”
“이놈이 노망이 났나. 내가 네놈 연구를 왜 훔치냐? 어차피 그것들 모두가 마탑에 귀속되는 건데?”
“그럼 내가 내는 문제는 누가 풀었다는 말이오?”
“문제? 이 망할 놈아 아직도 벽에 낙서하고 다니는 거냐?”
쿠욘은 진심으로 한심하다는 듯 쿠이가를 바라보았다.
“네놈이 그러니까 층장도 못 되고... 아이고 머리야.”
“영감이 아니란 말이오?”
쿠욘이 문제를 푼 게 아니라는 소리에 쿠이가가 눈을 껌뻑이며 눈앞에 노괴를 바라보았다.
“내가 네놈 장난에 맞춰 줄 만큼 한가하다고 생각하더냐?”
쿠이가는 잠시 쿠욘이 만지고 있던 분재를 노려보자 그는 헛기침을 내뱉었다.
“이건 정말 시간이 남아서 하는 거고.. 아무튼 나는 아니다.”
“그럼 정말로 마탑의 누군가인데... 다들 빡대가리라 이런 건 못풀 텐데..”
“망할놈 동료들에게 빡대가리가 뭐냐 빡대가리가? 어휴....”
볼일이 끝이 나자 쿠이가는 더는 미련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느냐? 오랜만에 왔는데 차라도 한잔하지.”
“잡아야겠소.”
“응? 잡다니 뭔 말이야?”
순식간에 다시 내려가기 시작한 쿠이가를 바라보며 혀를 차던 쿠욘은 무언가 고민에 잠긴 듯 턱을 쓰다듬었다.
“흐음.. 켈린.”
그리 크지도 않은 목소리. 그것에 맞춰 바닥에서부터 켈린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부르셨습니까. 탑주님.”
“쿠이가 녀석의 문제를 풀었던 녀석이 누구인지 알아보도록 하게.”
쿠욘의 말과 함께 사라진 켈린을 바라보던 쿠욘이 다시금 앞에 있는 분재에 가위질을 하기 시작했다.
“흐음... 이거 느낌 참 이상하구만.”
싹둑싹둑.
잘려 나가는 분재들. 그러나 점점 그곳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들에 쿠욘의 눈앞에 있는 분재가 마냥 평범한 것이 아님을 눈치챌 수 있었다.
“다 되었다. 213호. 역시 엘프종으로 만드는 게 생각보다 운치 있단 말이지?”
완성된 쿠욘의 분재. 그것에 잘려 나온 나뭇가지들에서 주르륵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