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기적의 바드
케락스와 함께 동행하게 된 아셀은 지금 이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믿기지 않았다.
“어.. 음.”
“다시 해볼까요?”
대도시에서 나와 아셀이 생각하고 있던 던전으로 가던 도중 아셀은 켈락스에게 노래를 시켜보았던 것을 떠올렸다.
-가기 전에 노래 하나만 불러주겠니?
-저 근데 노래 잘 못 해요...
-괜찮으니까 불러보렴.
그렇게 해서 부르게 된 것이 7용사에 대한 노래.
40부로 이루어진 길고 긴 노래는 아셀이 게임에서도 즐겨 듣던 노래였다.
-용사들이 이윽고!
-......
케락스가 첫 소절을 불렀을 때 아셀은 이것이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노래가 맞는지 의구심이 생겼다.
즐겨 듣고 유저들이 악보까지 만들어 현실에서 기타로도 몇 번 쳐봤던 곡이었기에.
아셀은 지금 케락스의 외형과 다른 걸걸한 목소리와 함께 4분의 4박자의 노래가 16분의 1로 바뀌는 놀라운 기적을 목도하고 있었다.
‘어찌 이런...’
아셀이 가만히 듣고 있는 것이 긍정의 신호라 생각했는지 검정색 기타 쥬크를 튕기며 노래 하는 모습.
심지어 쥬크는 마지막으로 조율을 한 것이 10년 전인 것처럼 기타소리가 아닌 자동차 수십 대가 동시에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가 기억했을 때는 분명...’
케락스는 수많은 유저들이 함께 하고 싶은 npc였다.
그가 주는 신비롭고 놀라운 버프들은 둘째치고 그가 불러주는 노래를 들으며 사냥하는 것을 즐겨 하는 유저들이 많았으니까.
‘이걸 어떻게 해야...’
다른 누구도 아닌 아셀이 케락스를 먼저 찾은 이유는 그가 그림자들의 후손이라는 사실 외에 하나 더 있었다.
말릭의 그림자를 불러들이고 버프를 일으켰을 때. 그림자 재단의 효과가 끝이 나도 남아있던 버프들은 그다음 그림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케락스와 말릭 두 명의 버프가 합쳐진다면.’
상상 이상의 결과가 나올 것은 분명했기에. 아셀은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는 케락스를 바라보며 괜찮다는 듯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노래를 배우거나 악기를 배운 적이 있니?”
“아뇨. 한 번도 없어요...”
‘역시나.’
아무리 속 안에 들어있는 재능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그것이 개화되지 않았으면 무용지물인 법.
아셀은 케락스의 말에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한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일단 기초부터 조금 알려주고 그다음에 배워야겠어.’
웃기지 않는 일이었다. 동기화를 올리기 위해 배워야 할 대상에게 오히려 가르침을 주고 다시 그에게 음악을 배워야 한다는 상황이.
“강해지기 위해 어쩔 수 없나.”
“네?”
“있다 그런 게. 그런데 저것들은 혹시 네 친구들이니?”
아셀이 노려본 방향은 수풀이었다. 왜 그곳을 바라보며 그런 말을 했는지 케락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도 잠시.
아셀이 허리에 차고 있던 아르테스를 뽑아 들자 그곳에서 십여명의 용병들과 음유시인 차림의 남자가 나타났다.
‘저 녀석은 분명.’
케락스를 데리고 왔던 주점에서 점원이 극찬했던 음유시인 버들이었다.
“싸우러 온 것이 아닙니다. 기사님.”
녀석의 입에서 부드러운 음성이 나왔다.
“그래?”
버들의 말에 아셀은 코웃음을 치며 데리고 나타난 십여 명의 용병들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녹이 슬어있는 무기들.
그러나 그것은 무기를 관리를 잘못했다기보다는 그동안 무기에 묻은 피들에 의해 부식된 것이 분명했기에. 그들이 얼마나 베테랑에 살인 경험이 많은지를 보여주는 것들이었다.
“예. 그저 저 아이가 가지고 있는 악기 하나만 확인하고 싶습니다만.”
버들의 시선은 케락스의 품 안에 있는 검정색 기타 쥬크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실력 있는 음유시인이라고 케락스의 품 안에 있는 기타가 일반적인 기타가 아님을 한눈에 알아차린 것이 분명했다.
“만약 제가 찾는 물건이라면 제값을 주고 사들일 생각도 있습니다. 급전이 필요한 케락스 저 아이에게도 좋은 제안 일테니...”
“이. 이건 안 돼요!”
버들의 말이 끝나기전 케락스가 다급하게 아셀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아버지 유품이에요...”
“그렇게 망가지고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는 기타를 아버지 유품이랍시고 들고 다니는 것보다. 아들이 좀 더 여유로운 생활을 하게 돈으로 바뀌는 것이 더 좋을 거 같구나 케락스.”
버들은 품 안에서 20골드를 꺼내보이며 활짝 웃어 보였다.
“본래는 10골드도 안 돼 보이는 그런 기타지만, 그동안 네가 얼마나 힘겹게 살아왔는지 옆에서 직접 봤었으니까. 내가 큰맘 먹고 20골드를...”
“웃긴 새끼네 저거...”
하도 어이가 없어 아셀은 버들을 바라보며 욕설을 내배었다.
대륙에 단 24개 밖에 없는 슈바우처의 24 신기중 하나인 쥬크를 단 20골드에 사겠다는 말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지 알고 잘 알고 있었으니까.
“못해도 20만 골드는 넘을 물건을 뭐 20골드? 이 새끼가 양심은 오크 새끼들한테 팔아넘겼나.”
기사답지 않은 걸걸한 말에 놀라기보다 버들은 아셀이라는 저 기사가 쥬크의 값어치를 제대로 알고 있다는 사실에 더욱 놀라워할 수밖에 없었다.
‘쥬크의 값어치를 알고 있다고?!’
그것에 대한 값어치를 정확히 알고 있다면 조용히 가져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버들은 긴 한숨을 내쉬며 아셀과 케락스를 바라보았다.
“그저 조용히 가져가려고 했건만..”
“조용히는 무슨 야 너희들 레드 스컬이지? 어차피 해야 할 거 빨리 끝내.”
아셀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주변의 용병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도 잠시.
경지가 조금 높은 몇몇 용병들은 아셀을 바라보며 코를 킁킁거렸다.
“그러고 보니..”
“녀석의 몸에서 동족 살해의 냄새가 나는데?”
“허어.. 저 샌님 같은 놈이 우리 형제들을 죽였단 말이야?”
“형제들은 무슨. 야 너 내가 죽인 네 형제 이름 말해봐. 아니지 아니지 네 형제들 이름이 뭔지 남자였는지 여자였는지 말해봐라.”
용병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아셀이 말에서 자신들의 동료를 여럿 죽인 것 같은 말을 했었기 때문에.
“저는 노래를 좀 불러드려야겠군요.”
용병들이 아셀을 향해 달려드는 모습에 버들은 그저 나른하게 웃으며 기타를 꺼내들었다.
눈앞의 기사가 조금 강해보이는 것 같지만 자신이 데리고온 용병들을 모두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어디 보자 어떤 노래를... 어라?”
버들이 어떤 노래를 부르며 시간을 보내지 고민하는 것도 잠시. 그가 기타의 자판에 손도 올리기 전에 그의 눈앞에서 믿기지 않는 모습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놈은 성기사야!”
“망할!”
어느새 전신에 나타난 순백의 값옷. 음유시인이었기에 저것이 신성의 갑옷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등 뒤에는 작은 날개까지 있는 모습에 버들이 눈을 크게 뜨는 것도 잠시.
먼저 아셀을 향해 달려들던 용병 다섯이 일순간에 그의 검에 의해 몸통이 잘리는 모습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어.. 어?”
“둘러싸!”
“젠장 무기가!”
아셀은 자신을 공격해들어오는 녀석들의 무기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보다 경지가 조금 높은 무인들도 지금 신성의 갑옷을 꿰뚫지는 못할 게 분명했으니까.
그 증거로 아셀을 갑옷에 휘둘러지는 녀석들의 무기는 하나둘씩 부러지거나 박살 나며 땅 위에 떨어지는 모습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신검 아르테스가 아셀을 향해 공격해들어왔기에 움직임이 멈춘 용병들의 목을 순식간에 베어내기 시작했다.
아셀의 경지가 높아졌기에 성장형 무기인 아르테스의 공격력도 강해진 상황.
용병들이 죽으며 새빨간 해골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와중에도 아셀은 뒷걸음질 치는 용병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도망을...”
신성의 갑옷에 몇 개의 버프를 두르고 있는 아셀의 움직임을 용병들이 따라잡기는 불가능한 법.
하물며 이런 상황에서 도망조차 가능할 리 없었기에.
아셀은 순식간에 주변의 용병들을 모두 베어내며 아르테스에 묻은 피를 바닥에 털어냈다.
“아직 부족하네.”
만약 말릭이라면 검에 피 한 방울 묻지 않았을 게 분명했기에. 아셀은 조금 아쉽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믿기지 않는 듯 눈을 껌뻑이는 버들을 바라보았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어떻게..”
아셀이 점점 더 다가가 수록 버들은 한심하게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 나이에 그 정도 경지 서. 설마 빛의 기사?”
“그만.”
“모.몰라봬서 정말 죄송합니다! 빛의 기사님.”
빛의 기사라고 외치는 버들의 모습에 아셀은 저절로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여명 수두원안에서 수련에만 몰두했던 자신이었지만 이런 녀석들에게까지 자신의 위명이 떨쳐진 게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
“네 입에서 한 번만 더 빛의 기사, 빛의 검, 빛이 내린 비둘기, 하늘이 내려준 천사 같은 말이 나오면 지금 당장 죽여버릴 줄 알아.”
지난 2년.
수도원 안에서 아셀에 대한 별명은 조금 더 늘어있는 상황이었다.
그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신성의 갑옷에 작은 날개가 생긴 것을 보고 스승이 말릭이 지어준 빛이 내린 비둘기였다.
잠시 아셀은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고 있는 버들을 바라보며 고민에 잠긴 듯 턱을 쓰다듬었다.
“필요 없을 거 같네.”
이윽고 생각을 끝낸 아셀이 무심한 듯 검을 내려치자 버들은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얘를 써서 배워볼까 했지만 오히려 역효과겠지.’
주점에서 들었던 버들의 실력은 별거 없었기에.
아셀은 자신이 조금만 기초를 잡아주고 케락스 안에 있는 놀라운 재능이 스스로 개화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더 이득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저어...”
살짝 뒤돌아보니 아셀은 멀뚱멀뚱한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케락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난리를 피웠는데도 전혀 겁먹지 않은 모습에 씨익 웃어 보인 아셀은 녀석의 안에 있는 놀라운 재능을 한눈에 발견할 수 있었다.
‘본질은 변하지 않는 법이지.’
수십만 마리의 마족들과 몬스터들 앞에서도 전혀 떨지 않고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했던 케락스였다.
그가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이 정도 가지고는 겁먹지 않을 게 분명했기에.
아셀은 씨익 웃으며 버들이 떨어트린 기타를 집어 들었다.
“가는 길에 내가 조금이라도 기타를 치는 법을 알려주는 게 좋을 거 같구나.”
“기사님이.. 기타도 칠 줄 아세요?”
“조금은 칠 줄 안단다.”
본래의 아셀에게 있는 손재주와 현실에서 기타를 몇 년간 배웠던 기억.
그것이라면 케락스에게 기초는 가르쳐 줄 정도는 되었다.
“우선 c코드부터 잡아볼까?”
생각 이상으로 조율이 잘 되어 있는지 버들의 기타에서 맑은 소리의 c코드가 흘러나왔다.
길을 걸으며 아셀이 코드를 쳐주고 그것을 그대로 따라 하는 케락스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짓는 것도 잠시.
케락스에게 쥬크로 연주해보라고 말했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그저 엉망인 음만 들려올 뿐이었다.
“이게 도대체 왜 이럴까?”
케락스에게서 건네받은 쥬크를 이리저리 살펴보던 아셀은 이윽고 한스의 그림자를 불러들이며 이것에 대한 상태를 살펴보았다.
“허어.. 이럴 수가.”
“어떤 문제가 있는 건가요?”
자신의 아버지의 유품이 설마 망가지기라도 한 게 아닌가 하는 걱정에 케락스가 안절부절못하는 것도 잠시.
아셀은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신기 쥬크의 상태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기야 이건 나도 게임에서 보지 못했던 물건이니까.’
모르는 분야였다. 그리고 아셀은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케락스가 그 시궁창 같은 곳에서 홀로 재능을 개화할 수 있었던 것인지.
“던전으로 가기 전에 갈 데가 생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