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비가 온 뒤 땅은 더 굳어진다
숨을 쉬고 있는 사람에게 왜 숨을 쉬냐고 묻는다면 살기 위해서라고 말할 게 분명했다.
말릭의 경우에도 그렇다.
여신에 대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에게 신이 있냐고 묻는다면 화부터 내는 것이 당연한 법.
그 사실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아셀은 시시각각 변하는 말릭의 표정에서 자신의 예상이 맞았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신이 있는 거냐고 물었더냐?”
화를 내려고 했을 게 분명했다.
아셀이 마치 무너질 것 같은 표정으로 말릭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면!
해답을 구하는 제자를 매몰차게 쫓아낼 리가 없었기에.
말릭은 잠시 손가락으로 예배당의 책상을 툭툭 치기 시작했다.
“이리 와서 앉거라 아셀.”
생각이 끝났는지 말릭은 자신의 옆으로 아셀을 불러들였다.
“지금 어째서 네가 그런 의문을 품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단다.”
신성력이 통하지 않는 수만의 구울들과 몬스터들.
그것들에 점점 죽어나가는 일반인들과 사제들의 모습은 어린아이로 하여금 큰 충격에 빠지게 할 게 분명했다.
‘어린아이 같은 모습도 있구나.’
말릭은 한편으로는 아셀이 대견스러웠다.
자신의 앞에서는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다른 사람들앞에서는 강인한 모습들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허나 의심하지 말거라 아셀. 예전에 내가 필드가에서 했던 이야기가 기억나느냐?”
“마족들이 속삭인다는 그것 말인가요?”
“상황은 다르지만 지금이 바로 그럴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구나. 우리의 믿음을 의심하게 하기 충분하니까 말이지.”
희망을 보여주듯 말릭의 손에서 새하얀 신성력의 빛이 터져 나왔다.
“보거라 아셀. 어둠이 저렇게 드리워졌다고 하나 이 스승의 손에 있는 빛이 사그라졌느냐?”
아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말릭은 씨익 웃어 보였다.
“눈앞에 있는 어둠에 현혹되지 말거라. 아셀. 네 안에 있는 빛과 믿음 그것에 귀를 기울이고 느끼거라.”
[동기화가 올랐습니다.]
마치 자신에게 하는듯한 이야기 같았다.
신실함과 믿음.
그것을 상징하는 주교 3명이 타락한 모습으로 지금 밖에 있는 것을 도무지 믿기지 않는 말릭이 스스로에게 하는듯한 말 같았다.
그랬기에 아셀은 동기화가 올라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진짜로 쉬거라. 아니면 자장가라도 불러줄까?”
짓궂게 말하는 말릭의 표정을 바라보며 아셀은 피식 웃어 보였다.
“그냥 쉬겠습니다. 스승님.”
***
다음날부터 말릭은 하루종일 쉬지 않고 밖의 몬스터들을 상대로 검을 휘둘렀다.
마치 무언가의 의심을 떨쳐내듯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는 말릭의 모습 옆에서 아셀 또한 한계까지 검을 휘둘렀다.
‘의심하지 말고 현혹되지 말지어다.’
말릭이 어째서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는지 아셀은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안에 있는 의심들을 쫓아내기 위한 움직임들. 아셀 또한 그의 내면의 상황에 맞게 자신에게 암시를 걸자 그가 예상했던 대로 효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동기화가 올라갔습니다.]
내적인 상황들이 점점 비슷해지기 시작한 것.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지 않을 때도 말릭은 마치 사제들처럼 부상당한 성기사들을 치료하거나 사제들과 기도문을 읊으며 자신을 통제하는 모습이 보였다.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생각할 시간이 없게 자신을 채찍질하는 모습들.
그것을 따라 아셀 또한 몬스터를 사냥하고 나면 한스의 그림자를 불러와 성기사들의 무기들을 쉬지 않고 손질해주었다.
[동기화가 올랐습니다.]
[동기화가 올랐습니다.]
놀라운 결과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말릭의 그림자를 가져오지 않고 한스의 그림자로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인 것뿐이건만.
다시금 말릭의 그림자를 불러들이자 동기화가 계속해서 올라갔기 때문에.
‘마치 누군가 진짜로 보고 평가하는 거 같군.’
쉬지 않고 올라가는 동기화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질 수밖에 없었다.
점점 말릭의 검에 흔들림이 사라질수록 아셀의 검 또한 굳건해졌다.
말릭의 몸에서 은은하게 나오는 신성력이 이전보다 강렬해지기 시작할 때 아셀이 터트리는 신성력마저 점점 강렬하게 터져 나오는 모습이 나타났다.
“스승과 제자가 동시에 강해지고 있구나..”
말릭과 아셀의 모습을 바라보며 가르시아 주교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둘을 바라보았다.
“대단해 아셀 저 아이..”
“쉬지 않고 계속 저렇게 움직이다니.”
성기사들 또한 아셀의 모습을 바라보며 무언가 깨달음을 얻는 상황.
자신들보다 경지가 낮은 아셀의 모습에서 깨달음을 얻는 아이러니한 일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대단하구나 아셀.. 대단해.’
무인으로서 끝에 도달했다 생각한 자신이 한 발자국 나아간 것과 비슷하게 자신의 제자는 10발자국 앞으로 나간 것을 확인한 말릭은 속으로 놀라움을 나타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네가 있었기에 내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을 수도 있겠구나.”
어느새 아셀의 몸에 걸쳐진 신성의 갑옷은 전신을 뒤덮고 있었다.
최소 7성급.
그 경지에 올라야 나타날 수 있는 신성의 갑옷을 전신에 뒤덮고 있는 아셀을 모든 성기사들이 믿기지 않는 듯 바라보았다.
“천재,.. 이 말인가?”
“천재인 건 알고 있었지만...”
“대단하군.”
전신에 신성의 갑옷이 올라가고 몸 안에 한 번에 사용할 수 있는 버프들이 7가지로 늘어난 아셀은 이전과는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아르테스를 휘둘러 구울들을 베어낼 수 있었다.
‘동기화 62%.’
며칠이 흘러갔는지 알 수 없었다.
말릭과 함께 밤낮이 바뀌는지도 모르게 계속해서 움직였으니까.
그 결과 순식간에 동기화가 62%까지 오른 상황.
원단의 효과로 10%가 올라갔기에 아셀은 지금 말릭과 총 72%라는 높은 동기화를 유지하고 있었다.
“좋네.”
손아귀에는 힘이 넘쳐났으며 신성의 갑옷에 7가지 버프를 두르고 쉬지 않고 3시간은 싸울 수 있었다.
애초에 말릭과 처음 2%밖에 되지 않았기에.
60% 600분이 증가한 값어치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지원군이 근데 어째서 오지 않는 거지?”
구울들을 베어내던 아셀의 귓가에 한 성기사가 믿기지 않는다는 중얼거리는 게 들려왔다.
‘오지 않는 게 아니라 못 오는 거지.’
슬슬 대륙 각지에서 지원군이 올 시간이 되었건만 오지 않는 것.
그것이 어째서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성기사들의 얼굴에 슬슬 의구심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지원하러 오는 녀석들은....’
아셀의 생각을 증명하듯 구울들 무리 뒤에서 갑자기 검은색 광선들이 쏘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뒤로 물러나라!”
아셀을 향해 쏘아진 세 개의 광선들.
그것들은 인간을 초월한 속도로 앞으로 튀어나온 말릭의 검에 의해 허무하게 사라졌다.
[클클.. 역시 말릭이구만.]
[신께서 내려주신 검은 역시 대단해.]
[허나 진짜 신을 목도하면 녀석도 달라질 수 있지 않겠는가]
구울들이 스스로 길을 열고 나타난 존재에 몇몇 성기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무기를 떨어트렸으며 사제들은 경악했다.
“마르스토. 루구엘. 카미리 주교님...”
12명의 주교 중 세 명의 주교들.
아셀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세 명의 타락한 주교들을 바라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외형은 똑같나?’
거대한 몸 하나에 인자한 할아버지 같은 머리 세 개가 붙어있었다.
그에 맞춰 몸에 있는 6개의 손에는 각기 다른 지팡이와 쥐고 있는 염주가 다른 상황.
그 기괴하고 소름 끼치는 모습들을 바라보며 아셀은 씨익 웃어 보였다.
“슬슬 마무리가 되어가는 거 같네.”
게임에서도 녀석들이 나타난 것은 주위의 몬스터 50% 이상을 해치웠을 때였다.
아마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게 분명한 상황.
하나로 합쳐진 타락한 세 주교의 앞에는 거대한 살점으로 이루어진 골렘 세 마리가 함께 나타나 있었다.
“여신이시여..”
“설마 저들은?”
타락한 세 주교들 그리고 살점들로 만든 골렘들.
그것들에 박혀있는 수백 개의 얼굴들을 확인한 성기사들과 사제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할 수밖에 없었다.
“황금 기사단 8번대 대장 조르아...”
“마탑의 워 메이지들이 어찌 저기에.”
“지원군들을 모두 저렇게 만든 것인가!”
지원군들이 오지 않은 것.
그들은 이미 저 타락한 주교들의 손에 죽고 시체들마저 저런 식으로 능욕당했기 때문에.
“변하셨습니다. 주교님들.”
그런 모습들에서도 말릭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아셀이 기억하고 있던 말릭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분명 그때는..’
믿기지 못하겠다며 타락한 주교들과 제대로 싸우지 않았던 말릭이었다.
그 모습에 수많은 유저들이 욕했던 것을 아셀은 아직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우리의 본질은 제대로.]
[보지 못했다네 성검 말릭이여.]
손을 휘젓자 생체 골렘 세 마리가 거대한 크기에는 나올 수 없는 것 같은 움직임으로 성기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말릭이여.]
[자네는 아직도 여신을 믿는 겐가?]
[자신의 신도들이 죽는 와중에 여신은 도대체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사방에서 성기사들의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주교들의 타락에 혼란이 온 상황 속에서 그들은 제대로 반격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우리와 함께하게 말릭.]
[자네는 올바른 신을 믿을 자격이 있어.]
[함께하세 말릭!]
광기에 찬 외침으로 말릭을 현혹하는 주교들의 모습에 아셀의 눈에 들어왔다.
사방에서 비명이 나오는 터져 나오는 와중에 아셀은 말릭이 어떤 대답을 할지 궁금해졌다.
“신께서는 가만히 있지 않으셨다.”
‘저건?!’
말릭의 완전무장 발키리. 그것에 원래 있던 날개에 새로운 날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두 쌍의 날개를 넘어 네 쌍의 날개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
아셀은 그 모습에 아르테스를 휘두르던 것도 멈추고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 나를 세상에 내보내 주었으니 말이지.”
말릭이 이전보다 빠른 움직임으로 타락한 세 주교를 향해 달려들었다.
잔상마저 남길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그 모습에 타락한 세 주교들이 당황하는 것은 당연한 법.
그의 빌딩 같은 검강이 그들을 향해 휘둘러지자 하늘에 가득했던 먹구름들마저 갈라지는 것만 같았다.
“전성기의 말릭은.”
지금은 네 쌍의 날개가 나타나 있었다.
그것이 말릭의 지금 경지를 나타내주는 것.
10성급에서 다음 경지에 완벽하게 한 발자국 나선 것이 분명했다.
“8쌍의 날개를 지니고 있었는데 말이지.”
타락하기 전 말릭의 완전무장 발키리는 8쌍의 날개를 펼칠 수 있었다.
말릭이 새로운 날개를 펼치려면 분명 시간이 더 걸렸을 상황.
그러나 아셀의 등장으로 그가 깨달음을 얻은 것이 분명했다.
말릭 또한 알고 있던 게임 속 흐름과 다르게 강해진 사실에 피식 웃음이 나온 아셀이 생체 골렘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굳건한 믿음.’
그의 심상을 반영하듯 흔들림없는 검이 녀석을 향해 휘둘러지기 시작했다.
[동기화가 올랐습니다.]
“더 앞으로.”
동기화가 올라갈수록 몸에 거는 버프들의 개수를 높여 나갔다.
계속해서 휘두르는 검. 아셀의 이러한 모습에 드디어 정신을 차려 나가기 시작한 성기사들이 반격을 하기 시작했다.
쿠어어어어어!
수백 명의 인간의 음성을 합쳐놓은 생체 골렘들이 아셀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려는 것도 잠시.
아셀의 눈앞에 놀라운 메시지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