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균열
“단장!”
이변을 알아차린 것은 아셀뿐만이 아니었다.
성기사들 대다수가 구울들에게 휘두르던 무기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것.
말릭은 자신의 신성의 갑옷에 점점 들러붙기 시작한 구울들을 보며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놈들이 신성력에 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자식들 일반적인 구울들이 아닌가!?”
“도대체 뭐야!”
신성력에 저항하는 몬스터들은 많았기에 성기사들은 생각보다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들 대다수는 최소 8성급 이상의 고위 몬스터들이었기 때문에.
기껏해야 5성급에서 7성급의 몬스터들이 모여있는 지금의 상황 속에서 나타날 모습들이 아니었다.
‘흑구.’
이 모든 것이 저 하늘에 떠있는 검은색 구체들에 의해 벌어진 것들이었다.
아셀은 달려오는 구울들을 베어내며 이것을 만들어낸 존재에 대해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놈이 드디어 나타나려고 하는 건가?”
사건들이 조금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아셀은 2차 몬스터 웨이브에서 노리고 있던 몬스터들이 이곳에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전원 신성력을 버프계열로 전환해라!”
신성력이 놈들에게 제대로 통하지 않는 것뿐이었지 신성력으로 강화된 육체에서 나오는 공격들이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 아니었다.
말릭의 판단은 정확했다.
신성결계를 구울들이 통과하는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으아아아!”
“놈들이 여명 수도원으로 들어온다!”
“도. 도망처!”
결계를 통과하며 사제들과 일반인들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한 구울들을 바라보며 성기사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눈을 껌벅였다.
신성력이 통하지 않았기에. 사제들은 일반인들과 전혀 다를 게 없어진 상황.
아셀의 눈에도 몇몇 사제들이 일반인들을 지키기 위해 뒤에 남았다가 구울들에게 말 그대로 찢겨나가는 모습들이 나타났다.
“수도원! 수도원으로 다시 돌아간다!”
말릭의 다급한 음성이 들려오기도 전에 성기사들이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며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전에 여유롭게 퇴각했던 것과 다르게 지금은 진흙탕에 빠진 것처럼 앞으로 제대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
신성력으로 단숨에 놈들을 베어내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인 것이 분명했다.
‘이대로라면..’
여명 수도원에 있는 일반인들과 사제들의 피해가 클 게 분명했다.
앞으로 마족들의 대대적인 침공에 그들의 도움은 꼭 필요했기에. 아셀은 한숨을 내쉬며 황금활 기온을 꺼내 들었다.
“르안느.”
검을 휘두르던 그녀를 아셀이 나직하게 부르자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셀을 바라보았다.
“내가 쓰러지면 부탁한다.”
르안느가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듣지 않은 아셀은 투마리스의 그림자를 불러들이며 황금활 기온에 황금빛 오러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신성력만 사용할 수 있는 성기사들과 다르게 아셀은 다른 기운들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었기에.
쾅!
5성급으로 올라섰기에. 쏘아진 샤인 에로우에서 거대한 소음과 함께 집채만 한 늑대의 모습을 한 화살이 쏘아졌다.
“?!”
“아셀?”
아셀의 샤인 에로우에 순식간에 수십 마리의 구울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5성급으로 오른 아셀의 경지와 그에게 남아있는 버프들의 효과가 분명했다.
남아있는 것은 그 이상의 몬스터들 뿐.
그 정도라면 성기사들이 돌파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귀찮은 건.’
다시 한번 아셀의 황금활 기온에 황금빛 오러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말릭의 그림자를 불러들이고 바로 사용하는 것이었기에.
반 토막난 유지 시간을 생각하면 5발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구울들이니까.”
신성력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에서 가장 약한 5성급인 구울들이 가장 번거로운 존재들이었다.
계속해서 달라붙고 진로를 방해했었으니까.
“됐어 길이 열렸어!”
샤인 에로우 5번에 그런 구울들을 대거 사냥했기에 단숨에 여명 수도원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
그 즉시 유지 시간이 풀린 아셀이 겁에 질려 쓰러지려는 것을 르안느가 황급히 다가와 부축해주었다.
“이 바보야 체력 안배를 하고 쏴야 할 거 아니야..”
왜 우는 거지? 라는 생각이 아셀의 머릿속에 가득 차는 것도 잠시.
뒤에서 말릭이 아셀과 르안느를 번쩍 들어 올리며 메이스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단숨에 안으로 들어갈 거란다.”
성기사들 대다수가 이미 수도원 안에 들어가 사제들과 일반인들을 구하고 있었기에.
더 이상 뒤에 남아있을 필요가 없는 말릭이 순식간에 앞으로 치고 나가기 시작했다.
‘메이스!’
신성력이 통용되지 않는 존재들이었건만, 말릭이 휘드르는 메이스에 몬스터들이 터져 나가는 것이 아셀의 눈에 들어왔다.
아마 신성력을 제외하고 말릭 본인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능력에서 나온느 모습들인 것이 분명한 상황이었다.
‘떨고 있어?’
결계를 넘어오며 말릭의 몸이 미약하지만 떨리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태산같이 굳건해 보였던 대륙 제일의 기사의 내면에 무언가 파동이 일어난 것이 분명했다.
“르안느 아셀을 부축해서 가르시아 주교님이 있으신 심부 성당으로 가거라.”
일행이 들어온 곳으로 몬스터들이 들이닥치려고 하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며 순식간에 몸 안에 수백 개의 버프들을 새겨넣은 말릭의 손에 거대한 신성의 대검이 나타났다.
“스승님은?”
“곧 뒤따라가마.”
마치 파도 갈리듯 말릭이 휘두른 대검에 의해 몬스터들 무리가 반으로 잘려 나가는 모습이 나타났다.
‘이거 어쩌면..’
사방에서는 비명이 터져 나오고 말릭은 동요하고 있는 상황.
아셀은 그런 상황 속에서 어쩌면 이번 기회에 말릭의 모든 재능을 흡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심적인 변화가 있는 사람만큼 속마음을 드러내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
말릭이 말한 심부 성당.
가르시아 주교가 평상시에 머물고 있다는 심부 성당은 말릭의 예상대로 이곳 여명 수도원에서 지금 가장 안전한 곳이었다.
“무사했구나.”
원래도 늙었지만 수십년은 더 늙어 보이는 가르시아 주교는 말리과 르안느를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스승님은...”
“말 안 해도 알고 있다. 그리고 걱정 말거라 말릭의 기운은 제대로 느껴지니까.”
‘헤스티야 성배.’
아무리 하늘에 [흑구] 같은 마족들의 기술이 나타났다고는 하지만 헤스티야 성배 같은 성유물이 내뿜는 기운마저 무시할 수 없는 법이었다.
그 증거로 대다수의 몬스터들은 이곳 심부 성당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후우...”
어느새 1시간이 지났기에. 아셀은 투마리스의 그림자를 다시 불러들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제들 대다수가 헤스티야 성배를 이용해 결계를 만들기 위해 그곳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으며 그렇지 않은 사제들은 다친 일반인들을 치료하고 있는 상황.
성기사들은 무언가 허망한 듯 자신들의 무기들을 바라고 있었다.
신성력.
그것이 고작 5성급 몬스터에게 통용되지 않은 지금 그들의 안에 있는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으니까.
“둘 다 어서 쉬거라.”
가르시아 주교는 짧게 아셀과 르안느에게 회복에 도움이 되는 몇 가지 버프를 주고 자리를 떠났다.
“아셀 우리 어떻게 해?”
르안느를 바라보며 무언가 말하려고 했던 아셀은 성당 안으로 들어오는 말릭을 발견하고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단장님?”
“여신이시여 이게 무슨...”
이전까지 몬스터들의 피와 살점 하나 묻지 않았던 말릭의 몸에 수많은 몬스터들의 피와 살점들이 묻어있었기 때문에.
그러나 말릭은 이전처럼 호흡이 전혀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이었기에.
아셀은 다시 한번 말릭의 재능을 놀랍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가르시아 주교님.”
“말릭. 우선 샤워부터 하고 오는 게 좋지 않겠는가?”
가르시아 주교가 주변의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말하는 것도 잠시.
아셀은 말릭의 두 눈에 고여 있는 물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적이 누구인지 알게 되셨구나.”
“응?”
아셀의 중얼거림에 르안느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는 그저 말릭과 가르시아를 데리고 어디론가 가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타락의 세 주교.’
헤스티야교의 12주교.
2차 몬스터 웨이브는 그들 중 6명이나 타락하며 일어난 사건들이었다.
그중 여명 수도원을 공격한 타락의 세 주교들.
그들은 다른 곳을 공격하고 있는 타락한 주교들보다 더 큰 위혐성을 지니고 있는 존재들이었다.
‘예전에는...’
게임에서는 그들이 나타나자마자 수만 명의 유저들이 몇 날 며칠을 밤을 새워서 레이드에 성공했었기에.
아셀은 앞으로의 싸움이 얼마나 어려워질지 잘 가늠이 되지 않았다.
“후우.. 일단 쉬는 게 좋겠다.”
“어. 어 야! 너 또 때렸어!?”
불안해 하는 르안느의 이마를 다시 한번 손가락으로 툭 치며 아셀은 피식 웃어 보였다.
***
오랫동안 가르시아 주교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말릭은 확실히 지쳐 보이는 표정으로 아셀과 르안느에게 다가왔다.
“다친 곳들은 없느냐.”
“멀쩡해요. 스승님!”
말릭의 분위기에 일부러 활기찬 표정을 지으며 외치는 르안느를 바라보며 말릭이 흐뭇하게 웃어 보였다.
“둘다 수고했다. 그리고 기쁘구나 너희들이 내 제자라는 사실이 말이야.”
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말릭을 바라보며 아셀은 어떻게 동요하고 있는 말릭의 속마음을 끄집어 낼 수 있으지 고민에 잠겼다.
‘어린아이들이라고 말 잘 안 해줄 텐데..’
어린아이들 심지어 제자들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는 법이었으니까.
“둘 다 걱정하지 말거라. 내가 어떻게든 너희들만큼은 지켜줄 테니까.”
강한 척해 보이는 말릭이 다시금 몬스터들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의 마음에 일어나고 있는 동요를 풀기 위해 검을 휘두르려는 것이 분명했다.
“스승님.”
아셀은 그런 말릭을 붙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아르테스를 뽑아들었다.
우선 어떻게든 말릭에게 조금 더 붙어있어야 했으니까.
“같이 가시죠. 저도 가만히는 못있 겠습니다.”
한참을 이런 아셀을 바라보던 말릭은 이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성기사라면 그래야지.”
이전처럼 몬스터들 사이를 휘젓지 않았다.
그저 심부 성당 근처에서 소리를 지르는 몬스터들을 베어낼 뿐.
아셀은 동기화는 올라가지 않았지만 코어 안에 쌓여나가는 마나에 조금이나마 만족을 할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몬스터들을 잡아내고 다시금 채워지는 몬스터들을 바라보는 것도 잠시.
말릭은 이만 하면 되었다 싶자 아셀을 데리고 성당 안으로 다시금 들어왔다.
“조금이라도 쉬거라. 휴식 또한 수련의 연장선이니까 말이다.”
“예.”
말릭이 아셀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이내 어디론가 걸어갔다.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셀이 이윽고 무언가 결심했는지 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게 맞는 거야.’
말릭이 어디로 갔는지 충분히 짐작이 갔다.
심부 성당안에서 가장 작은 예배실.
그렇기에 잘 찾지 않고 그 누구도 관심이 없을 만한 곳.
말릭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달빛을 받으며 그곳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잠이 오지 않는 게냐.”
“걱정이 돼서요.”
“걱정할 거 없단다. 아무리 놈들이 신성력.. 아니 특이하다고 해도 성배의 빛은 통과하지 못할 거니까 말이다.”
눈을 감고 있던 말릭은 아셀을 바라보며 미소 지어 보였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좀 더 눈을 붙이고 있거라 아셀.”
인자한 미소 그리고 진심으로 아셀을 걱정하는듯한 표정.
말릭의 그런 것은 아셀의 말 한마디에 순식간에 사라졌다.
“스승님. 신은 정말로 존재하는 건가요?”
믿음에 대한 불신. 그것은 말릭의 삶을 송두리째 무시할만한 그런 것이었으니까.
“네가 어찌 그런 말을..”
그의 심정을 대변하듯 그가 터트리는 거대한 기운이 성당을 부르르 떨게 만드는 것 같았다.